3월 마지막 큰 눈이 내렸다 "설악산"
첫째 날 : 오색- 대청봉
둘째 날 : 대청봉-봉정암-구곡계곡-백담사
혼자서
스크린 샷으로 본 대청봉
눈 내린 대청봉
오색매표소-대청봉-봉정암-구곡담계곡-백담사 지도
늦은 3월의 큰 눈이 내렸다. 한계령과 미시령의 차량 통행이 금지되었다. 산다운 산으로 아름다워진 설악산의 바람꼬리가 날카롭다. 봄의 기운을 막을 수 없이 불어오는 남녘으로 부터의 꽃소식이 생기롭기만 한데 아직도 설악산은 한 겨울의 설원 소식이었다.
온 산을 하얗게 덮어 더할 나위 없는 절경을 그려내는 눈, 눈은 구름으로부터 내리는 얼음 결정을 하늘에서 가져왔다. 3월의 아쉬움을 달래려는 듯 설악산에 내려진 대설주의보는 동해상의 습윤한 공기가 내륙 쪽으로 부는 강한 북동기류의 경우에 폭설이 내리기도 한다지만 봄이 찾아오는 길목에서 흩뿌려진 하얀 세상소식을 TV 브라운관은 나의 눈과 발을 설악으로 가져갔다.
생강나무 노오란 꽃눈을 틔운다. 제멋대로 꼬인 칡덩쿨이 나무가지에 더 꼬였다. 산길이 더욱 거칠어지는 된비알의 연속이다. 계단을 터벅터벅 발을 차 보기도 했고 심술궂게 스틱으로 말을 붙혀 보기도 했다. "요노무 가시나 비야, 언제까지 뿌릴껀가?" 뒤새김하고 있는데 "툭"친다. "에이, 누구시란가?" 술태배기 수氏다. 오랫만에 보니 반갑다. 헤헤 "언제 내려오는가?" "내일" "그럼 전화해, 맛난 것 사줄께" " kk " 눈 쌓인 등산로에는 짐승의 발자욱만 찍혀있던 길을 술태배기가 찍어놓은 이정표를 따라 올랐다. "술태배기도 눈 도장 하나는 잘 찍는군"...
옷이 젖셔질 정도는 아닌 이슬비다. 안개 자욱한 산 속이 을씨년스럽다. 겨울이 비껴가고 있는 설악폭포에서 떨어지는 힘찬 물결 소리 들으며 거센 호흡을 숨죽이며 올랐는데 우울한 재빛으로 고도를 높혀 갈 수록 비가 눈으로 변했고 짖눈개비로 휘날리기도 했다. 뽀얗게 눈 덮인 땅은 검은 빈가지들을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 쓰는 안달버거지였다.
올 겨울은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가 계속되어 지구 온난화의 현상으로 올해 100년에 가장 따뜻한 겨울로 기록되었고 평균기온이 2100년엔 예상했던 5.7도의 기온보다 6.4도 올라간다는 기록도 있었다. 북극곰이 사라지고 남극의 빙하가 점점 낮아지는 기후변화에 우린 어쩌란 말인가, 소나무가 없어지고 활엽수가 살쪄져가는 산 속을 누가 지킬 것인가, 벌써 따스한 4월의 봄이 오고 있었는데...
1700미터의 높은 산, 겨울산의 성난 고약한 산이었다. 귀 기울지지 않아도 신묘한 음이 들려왔다. 눈을 뜰 수 없이 불어닥치는 바람소리와 짖눈개비의 부딪힘. 생각도 멈추었고 눈을 뜰 수도 없고 바람앞에 움추려 들었던 대청봉의 칼바람은 모든걸 내려놓고 있었다. 바람의 세기가 발걸음 조차도 떨어지는 걸 거부하고 있는 산정의 호흡이었다. 휘몰아친 칼바람이 나를 때리는 듯 폭격을 맞은 마음도 몸도 멍했다.
칼날능선의 보금자리로 발길을 재촉했다. 산에 들어와 집이 그리워 지는 건 이런 때인가 했다. 빽때가리님이 반가이 맞아 주었다. "어서 오세요" 거센 바람을 막아준 보금자리는 거짓말처럼 아늑했다. 따끈한 밥상을 차려준 쫄가님의 따스한 손 길이 거대한 바람의 온기를 한 순간 녹여주었다. 밤새 이어지는 바람소리의 울림은 잠 못 이루게 하는 참으로 긴 가락이었다. 깊은 겨울밤은 10가 넘어서야 바람도 서서히 잠들었다.
이번 설악여행은 참 게을렀다.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걷기 보다는 앉아서 산능선을 바라보며 안개낀 하늘금을 하염없이 바라다 보았다. 저 산은 어떤 산, 저 산은 누가, 중청 탁구공은 날아가지도 않네! 울산바위와 동해바다의 바람을 다 가져가는 죽음의 계곡엔 언제나 봄이 오는가 등등 그런대로 운치있는 아침은 어제보단 얌전한 강아지였다. 어제 바람은 다 어데 갔을까?
해도 대청봉옆에 떴다. 하얀 세상을 달고 나온 위세 등등해 보이는 산의 실루엣이 설악산을 상징하는 대청봉 삼각형이 있었다. 살갖을 한 꺼풀 달고 나풀거리는 샤스레나무, 앉은뱅이 털진달래, 눕지않으면 안 될것 같은 부자연스런 눈잦나무, 우뚝 솟아있는 짙푸른 분비나무들이 눈속을 아직도 헤매고 있는 아침이었다. 어제 정상석 한 장 찍어 증표 남겨놓은 대청봉앞에 다시 섰다.
*군 벙커 31년 만에 철거*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설악산국립공원 대청봉 남쪽 능선에 있는 군 벙커 시설을 31년만에 철거한다고 했다. 미관 저해 시설물 정비차원의 문화재 형상 변경 허가도 받았다고 밝혔다. 15평 정도 되는 크기고 1975년에 전시 통신 중계소용으로 사용되어 오다가 80년대 중반 이후 등산객의 대피소로 용도가 바뀌어 1996년 5월 중청대피소가 만들어진 이후에 그 기능을 상실해 10년 동안 폐기된 채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왔다. 설악산 최정상부의 자연경관을 해치고 주변지역 훼손이 우려된다는 지적을 받아옴에 따라 관련기관과 협의를 거쳐 며칠있으면 철거할 예정에 있었다. -사람과 山에서 -
설악산의 탑승차에 오르게 된 이유였다.
따스한 아침밥과 정성스레 보살펴준 분들의 배웅을 받으며 눈이 두텁게 깔린 칼날능선의 보금자리를 떠났다. 소청봉가는 길목은 눈이 허리까지 쌓여 있었다. 사람다닌 흔적도 없는 눈높이는 백발과 흰 수염을 날리는 신선처럼 순백의 나라로 치장하고 있었다. 겨울철 산행을 즐겁게 하는 정취로는 눈인데 이 길을 걷고 나면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바람에 다져지고 비에 겹쳐진 땅위에 눈들은 발자욱 색깔을 어설프게 칠하면서 고도가 낮아질 수록 눈의 높이도 얄팍해지고 있었다.
봉정암의 독경소리는 성난 용아장성능의 골짜기를 움푹 파고 퍼져 나갔다. 구름속을 걸었던 구곡계곡의 높은 바위덩어리 앞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는 초라한 나, 깊은 계곡의 힘찬 물소리 만큼 높은 봉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쌍폭은 시퍼런 칼질을 하고 있었다. 지난해 설악산을 흔들어 놓았던 핵폭탄이 거목의 가지를 부러지게 했고 철계단을 잘라 놓아 휘는 등 막대한 피해를 주고간 상흔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지금 일으켜 세우고 있는 시간과 인내가 얼마있으면 이 산을 찾아올 손님들에게 봄의 문턱이 되었으면 했다. 깎아질 듯한 절벽에 거대한 암벽, 멋진 암릉에 매혹되어 내려가면서 발 길 붙잡아 매는 계곡물이 귀청까지 때렸다. 어제의 매서운 바람은 간데 없고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도 따사로웠다. 봄을 일으키는 숨소리였다. 생강나무의 꽃눈이 검은가지에 달려 웃고 있었다.
얼레지 *솔나루님 촬영
현호색 *솔나루님 촬영
수렴동계곡엔 한없이 맑고 고운 계절 봄이 오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 계절들의 시작이었다. 늦은 꽃샘추위의 바람을 달고 오고 있는 생강나무가 검은가지위에 꽃망울을 부풀리고, 현호색, 얼레지가 바위틈에서 사알짝 생기롭게 봄의 숨결이 닿고 꽃눈을 틔우고 있었다. 한겨울이었던 대청봉의 산자락를 보고 내렸던 아침이었는데 날 기다렸다는 듯 새봄의 기운을 전해주는 산허리에 새싹의 날들이 오고 있었다.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어 장엄한 멋을 뽐내는 산, 높이 뻗어 나가는 소나무와 갈참나무, 고도가 낮아질 수록 평탄해 지는 길, 계곡과 계곡을 연결하며 조심스럽게 건너야하는 골짜기, 작년에 한창 공사중이었던 영시암이 곱게 칠해지고 있는 단청, 수렴동대피소의 사랑이야기들이 새록새록 머리에 새김질 하면서 가파른 골짜기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5월 15일까지 입산통제되어 백담사와 봉정암을 찾는 신도들만이 걸을 수 있는 고요히 숨죽어 있는 산이 새 단장되어 가고 있었다.
오솔길을 산책하듯 걷어온 산행 끝을 알리는 넓은 계곡물은 소나무의 연리목이 맞아 주었다. 가까이 자라는 두나무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 (連理)라 한다. 나뭇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枝,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木이라고 한다. 연리지는 한쪽 나무를 잘라 버려도 광합성을 하는 다른 나무의 양분 공급을 받아 살 수 있다는 애뜻한 사랑나무를 보면서 나와 설악산을 잇는것은 무어라 할까? 궁금했다.
40대의 노총각 딱지를 뗀 새신랑과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언제나 설악에 서면 불편없이 손과 발이 되어주는 분들과 산속에서 받았던 내 열정만큼이나 높았던 따스한 보금자리를 아쉬운 이별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운무속에서 눈구름이 휘몰아쳤던 대청봉 산정, 3월의 큰 눈이 내렸던 겨울의 끝자락에 서 있던 설악산은 이제 서서히 눈을 녹아 내리고 있을 것이다. 겨울 갑옷을 걸친 하이얀 눈이 4월이 가고 5월이 오면 분홍빛 털진달래가 눈부실 것이리라...
첫댓글 때 아닌 폭설이 설악을 더욱 설악답게 하는 것 같습니다!
글에서 설악의 이력이 묻어나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중청 탁구공..." ^^
이곳에서 요물님의 글을 보니 반갑습니다. 언제 보아도 요물님의 글은 가슴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는 것 같습니다. 안산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멋진 풍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