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원죄?)
낮엔 추석때 찾아뵙지 못한 어버지, 어머니를 만나뵈었다. 묘소의 잘려진 풀을 뜯고, 돌아서다 또 되돌아서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버지, 어머니 계시고, 가까운 곳 누님 계시니 언젠가 또다른 형제들이 늘어나면 나도 이곳에 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겠다.'
종교가 현실이라면 여기모여 우리가 가난할제 못다한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때란 못가진건 사치고, 배고픈건 현실이었다.
아쉬운 발걸음 돌려 아직은 햇살 따가운 광야 16km를 내리 걸었다. 육신의 힘듬은 정신적 평화를 가져온다는 나의 개똥철학에 기인한 행동이었다.
늦은 시간, 전철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며 하늘을 보았다. 미세먼지 섞인 구름낀 하늘은 요즘의 세태를 보는 것만 같았다.
산다는 것은 공짜가 아니라는데 누구는 인생살이가 즐겁다하고, 누구네는 삶을 슬프다 하였으니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정답이 될 것인지 모르겠다.
짐을 내려놓으라고? 누가 지고싶어 졌다냐? 홀가분한 듣기 좋은 소리이긴 하다만 그 짐은 대체 뿌리부터 누구의 짐이며, 그럼 누가 대신 져줄 것인지...
조물주가 처음부터 무정란처럼 외부와 통하지 않는 튼튼한 벽을 쳐주었다면 모를 일이지만...
사람들은 철이 들면서부터(공자님 말씀대로면 70살이 되어봐야...) 원죄에 대한 생각을 하기 마련이다. 그러한 현상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애정이 결핍되었다거나, 양심이나 도덕성이 부족하고, 그러한 결핍현상으로 심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결핍은 원죄 때문이고, 그것은 우리세대 이전의 아버지, 아버지의 그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 세대를 이어 넘어왔던 것으로 그 원죄는 피할 수 없다는 것과 어쩌면 운명적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텔레비젼의 노래자랑에 나왔던 어느 중년신사는 '어느 날 자신이 갑자기 유명해져 있어 사는 것이 한편으론 즐겁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죄짓지 말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이후 매일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살게 되었는데, 평소 이웃이라는 개념을 잊어버리고 살아 온 동네사람들은 물론 동네 개들도 자신이 지나치면 꼬리를 내리고, 슬며시 힐끔거리며 길을 피해 주던 것이 지금은 꼬리를 흔들며 짖어댄다며 파안대소했다.
어쩌면 그 사람은 짧은 순간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통하여 진정한 자신의 삶의 이정표를 제대로 찾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약해 빠지고 간사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깊이 생각해보면 남들이 알아차릴 약아빠진 머리를 굴리고 육신을 움직이는 것도 꺼린다.
그러다보니 우선 편한 것만 찾고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자신의 영역 안에 많이 쌓아두어야 마음이 편하고, 만족하다는 생각을 갖는다. 한마디로 성실함과 정의감을 상실한 시대라는 말이다.
어제 시청•경찰청뒤편 공원에선 많은 사람들이 모여 5장거리 화투도박을 하고 있었다. 1인 판돈이 5만원 가량이었으니 적잖은 것이다.
도박신고? 누가 누구를...중앙무대 정치꾼들이 사기꾼이고 양아치들인데...남의 것도 받는데, 내돈 내맘대로라면 할말이 없을 것이다.
일반인들은 그냥 내버려두고서라도 소위 산전수전 다 겪은 불멸의 무관들마저 그러니 말이다. 원죄라는 것에 대한 인식을 망각해 버린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세상은 우리가 별다른 생각 없이 머무르는 동안에 디지털화 되어 갔다.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눈을 모우고 자동차는 계기판이 늘어 자가운전이 쉬워졌다.
여성들의 옷차림도 점점 입고 벗기에 손쉬운 맵시로 바뀌어 가고, 일기마저도 성급한양 전국구를 지양하고 국지적으로 편차를 두고 변한다.
한더위때 내방엔 아나로그시대의 잔재물인 작은 선풍기가 곁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며 바람을 품어낸다. 그것도 극히 일시적이니, 내가 생각해도 고인돌 굳어지는 느낌이 난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선풍기라고 원천이 없는데, 무더위에 어디서 시원한 바람을 모아 오겠는가? 그럴 수도 없는 법이어서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가 애잔하게 들렸다.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다. 집으로 돌아오니 문득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적막한 시간에 개발세발 글을 쓴다는 것도 시간과 공간에 죄짓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사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무단으로 끌어다 쓰고, 그들과는 같지 않은 생각을 마치 그런 듯이 옮기고 있으니 말이다.
오늘처럼 친한 벗(동창회)들 병풍삼아 나이불문 겁없이 한잔하고, 남의 정신까지 빌려모은 상태에서 감히 글을 써대는데에 대하여는...
술을 먹고나면 잠도 오지만 이런 저런 씨잘데기 없는 생각이 꼬리를 무는 법이다. 그래도 어쩐 다냐? 다 내가 저지른 잘못(원죄)인데 그래도 모른 척 잠자코 가던 길 가는 수 밖에는...
기독교에서는 원죄를 인정하였고, 불교에서도 같은 의미로 '업' 또는 '카르마'라고 하였다. 또한 성모마리아는 원죄가 없다고 한다.
마음이 괴로워 기도를 하고 신앙고백을 해본들 내세의 영겁보단 현세의 촌음이 더 값져 보인다면 그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있으리오.
다만 나라는 그림자를 남기지 않을 작정이니 이 어찌 마음 편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