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국 의료법인 (주)CSC는 서귀포시 호근동에 ‘싼얼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제주도에 병원 설립 허가를 신청했고, 제주도정은 타당성 검토를 거쳐 보건복지부에 사업계획 최종 승인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에서는 지난 22일 "제주도가 승인을 요청한 싼얼병원의 사업계획서를 충분하게 검토하기 위해 승인을 잠정 보류한다"고 밝혔다.
비록 보건복지부에 의해 국내 제1호 영리병원 설립은 일단 보류됐으나, 영리병원 허용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사안이다.
영리병원 허용은 취약계층이 의료혜택에서 소외되는 의료 양극화와 함께 지난 30년간 한국 의료복지를 지탱해온 건강보험체계와 의료체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또 지금 우리나라 건강보험체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의료민영화가 아니라 의료공공성 강화이며, 국민 계층간의 위화감을 조장하고 특정 이익집단에게만 영리 창출의 기회를 제공하는 영리병원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강하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29일,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의료기관의 개설허가절차 등에 관한 규칙'을 고시하며 영리병원을 허용키로 했다. 법률상으로 현재 제주도에도 영리병원 설립이 가능하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대해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제주도나) 경제자유구역만으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다”며, “당장 병원협회는 ‘해외자본에게만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것은 역차별’이라고 주장하며, 한국에 전면적인 영리병원의 허용을 주장하고 있다. 결국 이번 경제자유구역의 영리병원 허용은 한국의 병원자본과 재벌들이 애타게 기다려온 영리병원 전면 허용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은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전국의 지방병원 100개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에 우 실장은 “지금도 52개 지자체가 응급의료기관이 없고, 48개 지자체는 분만실이 없다”며, “여기서 또 100개의 지방병원이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지방에서는 살지 말라는 이야기다”라고 정부의 방침을 비판했다.
정부와 영리병원 허용을 요구하는 측에서는 영리병원은 외국인을 위한 편의시설이고, 또 제주도나 경제자유구역에만 있으므로 국내 의료제도에 영향이 없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외국의료기관은 말로는 외국의료기관이지만 사실상 국내 영리병원이다. 이 병원에는 국내 기업이 50% 투자 가능하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한 투자자가 바로 삼성증권, 삼성물산, KT&G이고, 이들 국내기업이 50%, 그리고 일본 다이와증권이 50%를 투자한 것으로 사실상 삼성재벌 소유의 기업이다. 국내 기업의 직접 운영도 가능하다.
또 내국인 진료도 100% 가능하다. 외국인 진료를 위한 것이라지만 전체 의료진의 10%만 외국면허를 가진 의사를 두면 된다. 이름은 외국병원 이름을 빌려오겠지만, 사실상 국내기업이 운영하고 한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진료를 하는 국내 영리병원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숱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정이 공론화과정 없이 지난 2월 슬쩍 싼얼병원 설립 승인을 정부에 요청한 것은 매우 잘못된 행태라는 지적을 벗어나기 어렵다.
싼얼병원 설립 인가 신청 내용은 보건복지부의 승인을 앞둔 8월에 들어서야 일반에 알려졌다. 제주도정은 지금이라도 이 병원 설립 승인 여부를 공론화해 충분한 숙고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만약 우근민 지사가 투자유치에 급급하여 영리병원을 승인한다면 제주도가 신호탄이 되어 전국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고, 우근민 도정은 망국적인 정책의 봇물을 터주는 최악의 도지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는 제주참여환경연대의 지난 27일 논평이 단지 비난을 위한 비난으로 일회성으로만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과 민주노총은 철도,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진행되는 민영화(사유화) 현황을 짚는 기획을 공동으로 마련해 연재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는 싼얼병원 설립 인가 신청과 관련해 관련 내용을 곰곰이 새겨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프레시안>의 관련 기사를 추가로 전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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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야심작 '의료 관광', 실은 독(毒)사과?
[민영화 공동 기획 ④] 보험사는 당신의 건강을 팔고 싶다
- 프레시안 김윤나영 기자 -
대기업에 다니는 40대 A 씨는 고혈압 환자다. 그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건강 관리 서비스' 상품을 이용한다. 손목에 헬스케어 단말기를 차면 혈압과 심박 수가 측정된다. 보험사가 운영하는 건강 관리 서비스 회사는 A 씨에게 식사량, 식단, 운동량을 조언한다. 필요하면 보험사가 병원도 연계한다.
올해 보너스를 받은 A 씨는 60대 어머니에게 '효도 건강검진'을 해드리기로 한다. 보험사에서 수백만 원짜리 관광형 효도 상품을 내놓았다. 그는 온천과 의료 호텔, 건강검진 패키지를 보내드릴 계획이다. 돈이 많이 들수록 서비스도 고급이다.
A 씨는 회사가 제공하는 민간 보험 서비스를 받는다. A 씨가 보험료를 일부 부담하면 나머지는 회사가 부담하고, 보험사는 직접 병원을 안내한다. 기업 복지다. 효자 노릇을 한 A 씨는 중소기업 비정규직인 동생 B 씨가 걱정이다. 건강 고위험군인 B 씨는 기업에서 민간 보험 서비스를 받지 않는다. A 씨와 B 씨의 건강 격차는 점점 커진다.
박근혜, "의료 관광 위해 과감한 규제 개혁" 주문
보험 회사가 '건강 관리 서비스' 사업을 벌이고, 국내 환자를 유치하도록 허용됐을 때 생길 수 있는 가상의 사례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보험사도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외국인에 한해서라도 환자를 병원으로 직접 유치할 수 있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보험업계의 요구는 시민 사회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지만, '신성장 동력'을 양성하려는 노무현·이명박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졌다.
박근혜 정부도 다르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7월 17일 청와대에서 '관광 진흥 확대회의'를 열고 관광 분야의 블루 오션으로 "의료 관광"을 꼽았다. 박 대통령은 "과감한 규제 개혁(완화)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각 부처가 칸막이 없는 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문화체육관광부는 "보험사가 보험 계약과 연계한 해외 환자 유치 행위를 허용한 의료법 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보고했다. 새누리당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7월 8일 투숙객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일 때 병원이 메디텔(의료 호텔)을 설립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합의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김재홍 제1차관은 지난 5월 22일 경제자유구역에 "건강 관리 서비스, 원격 진료 등 의료와 IT, 관광이 융합된 새로운 헬스 케어 서비스 시장을 창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의료 관광 활성화를 비롯한 서비스 산업 육성책은 박근혜 정부가 강조하는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일자리 창출 수단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의료 한류'가 창조 경제를 이끌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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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 한쪽은 '의료 산업화 정책'을, 다른 한쪽은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 도입을 뼈대로 하는 건강보험 개혁법(오바마 케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국식 의료 양극화…낸 보험료에 따라 의료 질 달라져"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러한 흐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이 가장 반대하는 것은 보험사가 병원과 직접 계약해서 환자를 알선하도록 허용하는 것과 보험사에 건강 관리 서비스업을 통한 영리 행위를 허용하는 것이다. 질병을 예방하고 국민 건강을 증진하는 중요한 사업을 민간에 맡기는 것은 '전형적인 미국식 제도'라는 것.
전 국민 건강보험 제도가 없는 미국에는 HMO(health maintenance organization : 건강 관리 조직)라는 민간 보험사가 있다. 직장 내 복지 차원에서 비영리로 시작했던 HMO는 1990년대 들어서 영리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HMO는 병원을 직접 소유하거나 병원과 계약을 맺고, 보험 가입자에게 건강 증진 서비스, 건강검진, 질병 예방, 치료, 재활까지 포괄적인 의료 서비스를 연계한다.
문제는 소비자가 낸 보험료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건강 관리, 질병 예방, 치료 서비스의 질, 갈 수 있는 병원 선택의 폭도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김종명 '내가 만드는 복지 국가' 의료팀장은 "미국에서는 4인 가구가 민간 보험료로 연간 1만5000달러(약 1700만 원)를 내는데, 그나마 싼 보험이라서 보장성이 떨어진다"며 "대신 일부 고위층만 드는 VIP 보험에 들면 완벽한 '무상 의료'를 향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과는 달리, 민간 보험 영역에서는 '내가 가입한 보험 값'에 따라서 의료의 질이 결정되는 것이다.
한국 국민건강보험의 보장 범위는 주로 '치료'에 집중돼 있다. 반쪽짜리 보장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건강보험의 영향 밖에 있는 건강 증진, 질병 예방, 재활 등 영역은 보험사로서는 '블루 오션'이다. 이상이 제주대 의대 교수는 "지금도 대형 병원이 고가의 검진 패키지를 팔고 있다"면서 "웬만한 40대 이상은 건강검진을 받는데, 여기에 보험회사가 병원과 손을 잡으면 (건강 서비스 상업화가) 더 촉진되고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HMO 시스템을 한국에 적용한다면, 소득에 따른 건강 양극화가 심화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보험사가 보험료에 따라서 건강 증진 상품을 '차별화'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삼성생명이 삼성병원을 '지정 병원'으로 삼고, 한 달에 5만 원짜리 혈압 관리 상품과 10만 원짜리 혈압 및 식단 관리 상품, 100만 원짜리 종합 관리 패키지 상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병원-보험사 직접 계약은 최고의 선물…의료 공급 왜곡될 것"
건강 증진 사업을 건강보험이나 공공 의료 기관이 뒷받침한다면 어떨까. 정부가 만성 질환 관리 등 국민 건강에 보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늘릴 기반이 생긴다. 반대로 새 사업을 일단 민간에 내주면 되돌리기 어렵다. 건강 증진이라는 영역을 발판으로 보험사와 건강보험이 경쟁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상이 교수는 "만성 질환 환자 등 건강 고위험군의 경우 건강 증진과 질병 예방, 치료가 완전히 분리되지 않는다"며 "치료인지 예방인지 애매하게 겹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 교수는 "기업이 의사를 고용해서 진료를 시작하면 의료가 공사 혼합 영역이 된다"며 "의료 공급이 왜곡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네 의원(1차 의료 기관)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셈이다.
김종명 팀장은 "궁극적으로 보험회사들이 의료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환자 유인, 알선"이라며 "병원-보험사의 직접 계약은 보험사에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말했다. 김 팀장은 "보험사로서는 보험사가 지정한 병원에 환자를 몰아줄 수 있고, 이를 통해 보험사가 병원을 통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직은 논의 수준" vs "외국인 환자에서 시작해 국내로 확산"
보험사의 건강 관리 서비스 사업과 환자 알선 행위를 허용하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의료 관련 사항은 법을 개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도입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 같다"며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협의 중이나, (보험업계의) 건강 관리 서비스 허용은 의료계의 반발이 있어서 언제쯤 되겠다고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은 논의 수준인 셈이다.
전문가들도 이 일련의 정책들이 "10년 전부터 나온 얘기들이라 전혀 새로울 게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보험업계는 꾸준히 새로운 의료 시장 개방을 요구해왔으며,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일자리 창출', '신성장 동력', '창조 경제', '관광 산업 활성화' 등 포장은 바뀌었을지언정 이를 추진하려는 관료들이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의료 산업화 정책을 '외국인 의료 관광'과 '경제자유구역'에 한정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단 외국인에 한정해 도입되면 국내 '역차별론'이 제기되면서 국내로 확대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리 병원이 허용된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의료 관광을 위해서 돈 들여서 의료 기계를 샀는데, 외국인 수요만으로 투자 비용을 채울 수 없다면 국내엔 안 쓰겠느냐"며 "늘린 병상과 장비 값은 결국 국가나 국민이 부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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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달 17일 발표한 관광산업 육성 방안에는 '의료 관광 클러스터' 조성도 포함돼 있다. 문체부는 청심국제병원을 대표적 클러스터 사례로 제시했다. ⓒ문화체육관광부 |
우 실장은 "의료 관광에 의존하면 국내 의료 산업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일단 호화 시스템이 구축되면, 인력이나 전체 의료 투자가 그쪽으로만 간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금도 (의대생들이) 성적이 좋으면 성형외과에 가지 흉부외과는 안 간다"며 "병원 양극화가 심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산업화' 정책이 의료 공공성을 망가트릴 정도는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지금도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라며 "고소득층이 이용하는 서비스를 일반 국민에게 확대하는 것이 의료 체계를 흔들 정도로 위협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건강 관리 서비스는 공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며 "건강보험을 통해 또는 보건소와 같은 공공 보건 의료 인프라를 통해서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정부, 건강보험법대로 공적 서비스 제공할 의사 있나?"
이상이 교수는 "유럽 국가에서는 예방, 증진, 치료를 모두 공적으로 제공한다"며 "지금 삼성생명이 하고 싶어 하는 금연, 비만, 스트레스, 예방접종, 건강검진 관리 등을 유럽에선 주치의나 공공 병원이, 미국에선 HMO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설사 병원이 민간이라도 (건강 증진 사업을) 사회보험(건강보험)을 통해 공적으로 제공하는 모델도 많다"고 덧붙였다.
한국에도 국민건강보험법에 이와 비슷한 규정이 있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를 보면, 국가가 해야 할 건강 정책에 치료뿐 아니라 예방·진단·치료·재활·건강 증진 등이 규정돼 있다"면서 "이 사업들을 정부가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보험사와 기업에 건강 관리 서비스를 맡기면 시장이 커지고, 이를 토대로 보험사가 돈을 벌고 힘을 키워서 건강보험 치료 영역에도 한 다리 걸칠 가능성이 있다"며 "(건강 증진 사업을) 정부가 할 생각이 있는지 묻고, 건강보험법에 따라 정부를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건강 관리 서비스는 복지부에서 법안 제정을 추진했다가 반발로 중단했지만, 아직도 검토는 하고 있다"며 "의료 기관 내에서 예방이 커버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사실상 어렵고, 보건소 인력을 무한정 늘릴 수도 없어서 공공과 민간이 역할을 부담하는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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