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욕망의 긍정적 힘
여기에 소개하는 박우담의 시 다섯 편에서 당신은 무언가를 찾게 될 것이다. 우선 거짓의 욕망을 벗어 던진 당신을 모텔로 안내하겠다. 이름 하여 “천국 모텔”, “천국”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하여 무조건 아름답고 깨끗하다고만 생각하지는 말아 달라. 당신의 문명 가면을 벗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내 안에 원초적 본성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일리어드』를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꿈속에서 그렇듯이 추적자는 그가 뒤쫓는 도망자를 따라잡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도망자 역시 추적자로부터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 결국 아킬레스는 그날 헥토르를 잡은 데 성공하지 못하였으며 그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이를 두고 자크 라캉이 초점을 맞춘 것은 아킬레스가 헥토르(또는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아니라-그는 헥토르보다 더 빠르기 때문에 쉽게 그를 앞지를 수도 있다-헥토르가 언제나 너무 빠르거나 느리기 때문에 아킬레스가 헥토르를 온전히 잡을 수 없음을 강조한다. 여기서 아킬레스를 주체의 욕망, 헥토르를 욕망의 대상으로 대입시켜 보면, 인간은 그 대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욕망을 가지고 있으되 그 대상을 온전히 소유할 수는 없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주체가 욕망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없고, 욕망의 대상에도 영원히 가 닿을 수 없다면, 주체는 그 욕망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까. 그리고 그 욕망의 긍정성을 살려 삶에 생기를 불어 넣을 수는 없을까.
박우담의 시에는 욕망의 대상을 찾아가는 주체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여자로 상징되어 있다. 여자가 있는 박우담의 시는 산뜻하다. 거짓이 없는 순수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모텔에 들어서면 당신의 영혼은 식욕이 생길 것이다.
갑자기 돌아섰다
한때 러브모텔이었는데
창을 통해 침대 모서리를 닮은 저수지가 있었는데
한때 사랑에 굶주린 자들이 모여들었는데
번호판을 가린 차들이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내몸이 용수철로 변했다
지금은 그분의 정에 굶주린 자들이
기억을 가린 자들이 성경책처럼 누워있다
그날 왜 그녀를 데리고 그곳에 갔는지
아직도 그녀는 모를 거다
갑자기 돌아선 모텔 앞에서
내 안의 욕망 한 장 찢겨 나갔다
박우담에게 “러브모텔”은 존재가 활동하는 장場이다. 그는 그곳에서 욕망을 추스린다. 자신의 처소나Persona(남에게 보이는 가면적 인격)를 지우고 인간 본성에 놓인 리비도Libido(성적 굶주림)를 들춰낸다. 그것을 “창”에 비춰 보기도 하고, “침대 모서리를 닮은 저수지”에 넣어 보기도 한다. 그에게 욕망은 거추장스럽지가 않다. “용수철”처럼 강한 힘으로 튀어오를 수도 있고, 정情으로 승화할 수도 있으며, “성경책”과 같은 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욕망을 욕망 그 자체로 놓아두는 것이다. 그는 “그날 왜 그녀를 데리고 그곳에 갔는지/아직도 그녀는 모를 거다”라고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이는 안다는 것에 대한 반어(Irony)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하여 그는 진실의 “욕망 한 장”을 찢어낸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모텔은 인간 본성에 놓인 욕망을 비유한 “천국 모텔”이다. 그에 의하면 욕망은 저주의 대상도 아니요, 괴물도 아니다. 욕망 그 자체이다.
* 격월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2010년 5-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