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는 대체로 중고(3~7세기) 중국어와 맞물린다. 신라 때 많은 학생이 당(唐)에 유학하였으며, 아마 그때 한자어의 기본 틀이 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어의 시대적 낙인(烙印)은 이렇듯 단순하지 않다.
중국의 춘절연휴에 한국을 찾은 중국인들/조선 DB (본문 내용과 무관)
중국어는 上古, 中古, 近代, 現代 4개세대로 구분되며, 각 세대 한자의 어음(語音)체계는 서로 다르다. 일본어는 8세기부터 문자가 있었으므로 일본 당용 한자는 오음(吳音), 당음(唐音)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우리말은 15세기에 문자가 생겼고 그 전의 한자음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口耳相傳) 문자로 적어놓지 않았으므로 부동한 세대 어음의 구분이 없이 단일 체계를 이룬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자어는 대체로 중고(3~7세기) 중국어와 맞물린다. 신라 때 많은 학생이 당(唐)에 유학하였으며, 아마 그때 한자어의 기본 틀이 잡혔을 것이다.
그러나 한자어의 시대적 낙인(烙印)은 이렇듯 단순하지 않다. 중고 중국어를 기본으로 하되 상고(2세기 이전), 근대(8세기 이후), 현대 중국어의 성분도 조금 섞여 있다. 말하자면 4개 세대의 어음이 한집에 모여 사는 사세동당(四世同堂)의 양상을 이루고 있다.
기원 전 108년 고조선이 망하고 한사군(漢四郡)이 설립되며 한반도의 대부분(그것도 정치, 경제, 문화 중심지의 대부분)이 한(漢)의 통치를 받을 때 우리는 한자를 대폭 수용하였을 것이다. 다만 우리말에 문자가 없었으므로 그때 전래된 한자음은 남지 못하고 후세에 전래된 한자음과 절충되어 버렸다. 절충하기 어려운 음은 도태되었거나 ‘고유어’로 변하였다.
좀벌레. ‘蟲’자를 중국어에서 ‘충’처럼 읽으며 한자어로도 ‘충’이라 읽는다. ‘病蟲(병충)’, ‘昆蟲(곤충)’ 등이다. 그러나 상고 중국어에서 한자 ‘蟲’을 ‘좀’처럼 읽었으며 중고 때 ‘충’음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좀벌레’ 역시 ‘蟲벌레’이며 한자어와 우리말 고유어를 겹쳐 스는 ‘족발(足발)’, ‘계수나무(桂樹나무)’, ‘널판자(널板子)’ 등과 같은 유형의 단어이다.
되놈. 중국어에서 동방의 오랑캐를 ‘夷’, 서방의 오랑캐를 ‘戎’이라 했으며 통틀어 ‘夷戎’이라고도 했다. ‘夷戎’을 상고 중국어에서 ‘되놈’처럼 읽었으며 중고부터 ‘이융’처럼 읽었다. ‘夷’를 음변으로 하는 ‘荑’와 ‘木夷’의 현대 중국어에 或음 ‘ti’가 있는데 ‘夷’의 상고음의 잔여라고 보여진다. 우리말의 ‘되놈’이 한자 ‘夷戎’에서 왔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우리 민족이 ‘蟲’을 ‘좀’, ‘夷戎’을 ‘되놈’으로 읽다가 중고 중국어 발음 ‘chung’, ‘yirong’에 따라 ‘충’과 ‘이융’으로 규범하였을 것이다. 본래의 음 ‘좀’과 ‘되놈’이 없어졌으면 그만이겠지만 쉽사리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고유어’처럼 되어버렸다. 이런 ‘고유어’가 우리말에 꾀나 있을 것이지만 가려내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명말(明末) 청초(淸初)에 많은 한국인이 중국에 끌려왔고 지금은 100%가 다 중국인에게 동화되었으며 찾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유독 중국인에 없는 박씨만은 한국인임을 가려낼 수 있다. 박씨가 한국인의 표적이기 때문이다.
한자의 어음도 부동한 세대의 분별적 표적이 뚜렷한 것이 있다. 이를테면 상고의 ①‘-m’받침이 중고의 ‘-ng’받침으로 변한 것, ②상고의 ‘-t’받침이 중고에 탈락된 것, ③상고의 ‘n-’초성이 중고에 ‘r-’로 변한 것, ④상고의 ‘d’초성이 중고에 탈락된 것 등이다. 위에 예로 든 ‘蟲’은 ①에 속하고 ‘夷’는④에 속하며 ‘戎’은 ③에 속한다.
필자는 중국어 음운학(音韻學: 부동한 역사시기의 중국어 어음 변화 및 그 규율은 연구하는 학문)을 반복 배웠고 또한 음운학 논문을 여러 편 썼었다. 이런 성과로 중국음운학연구회의 이사직을 담당한지 20여년이 된다. 그러므로 위와 같이 우리말의 ‘좀’과 ‘되놈’과 같은 단어들의 어원을 캐낼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