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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셨나요? 깜빡 잊고 있었는데, 오늘이 ‘장애인의 날’이지 뭐-예요.
저야 뭐, 매일의 일상 자체가 저의 날, ‘장애인의 날’이라서 이따금 잊어버리곤 합니다.
코로나19로 인해 행사는 자제하는 분위기지만 그 의미는 잊지 말아야겠죠.
한가지 씁쓸한 점은 꼭 이날만 되면 TV 등 각종 매체에 장애인 관련 소식이 나온다는 거죠. 다른 때는 눈에 띄지도 않다가 말입니다.
아마 내일부터는 다시 원상복구가 되겠죠.
‘오늘만이라도 장애인을 생각하자’는 취지에 힘입어 정말 ‘오늘만 장애인을 생각하는 날’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자, 한탄은 이쯤에서 접고요. 봄의 절정 5월이 코앞인 이 시점에서 로맨스 소설 감상을 들고 왔습니다.
참, 봄철이라 꽃 사진도 하나 첨부합니다. 철죽과 라일락 등을 컵에 꽂아둔 거예요.
도서명: 더 사이트 오브 유
저자: 홀리 밀러
* 이 책은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 1번 소설에 2번 로맨스 부문에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지난번 ‘희망 작품 대리 독서 신청’ 이후 읽을 작품을 물색하지 못했다. <목민심서>라는 꽤 어려운 고전을 독서했으니까 이번에는 좀 쉬운 작품을 읽자 하는 마음으로 적당한 책을 찾았더랬다. 때마침 오랫동안 기다려온 추리물 전체 5권짜리가 완결이 나서 파일로 등록된 걸 발견했다. 그래서 그 책을 고를까 하다가 노선을 변경, 《더 사이트 오브 유(The sight of you)》를 들게 되었다. 왜냐? 지금 계절이 4월, 꽃비 흩날리는 봄이니까. 봄에는 나의 연애 세포가 거의 사망 진단서를 끊기 직전이라 해도 로맨스를 좀 읽어줘야 하는 법 아니겠는가?
꿈꾸는 남녀의 사랑 《더 사이트 오브 유》
“CCTV 영상을 봤어. 다 찍혔던데? 보니까 말이야. 타이어에 구멍을 내고 나서 차에 머리를 기대던데, 너도 괴로워서 그런 거지?”
조엘은 반려동물 산책사로 일한다. 시간 부족 및 신체적 노화로 인해 산책시키기 어려운 주인들의 개들을 데리고 대신 산책시켜주는 게 그의 일이다. 참고로 돈은 받지 않는다. 과거 수의사로 일하기도 했으나 특별한 사정 탓에 지금은 한정적인 인간관계와 꽤 소극적인, 혹은 괘팍한 태도로 삶을 꾸려가고 있다. 가끔 기이한 일을 저지르고는 하는데, 이를테면 윗집에 사는 이웃 스티브의 차 타이어를 펑크내는 일 같은 게 좋은 예시겠다. 나쁜 장난 삼아 하는 못된 짓처럼 딱 하나도 아니고, 꼼꼼하게 네 바퀴 전부 펑크를 내놓았다. 조엘은 어떻게 해서든 스티브가 그의 딸 포피를 태우고 밤 드라이브를 가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스티브가 조엘이 나쁜 뜻으로 그런 거 아닌 것을 안다면서 타이어를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그는 스티브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다. 그 누구도 믿지 않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거의 매주 미래에 일어날 일을 꿈으로 본다는 것을, 자신 주변의 사람들이 겪을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을, 때로 하루나 이틀 사이에 일어날, 1년 혹은 몇 년 후에 벌어질 좋은 일, 막을 수 있는 사소한 사고부터 도저히 바꿀 수 없는 죽음까지 그 모든 것을 예지몽을 통해 볼 수 있다는 것을, 그 어느 누가 액면 그대로 믿겠는가? 조엘은 7살 때부터 ‘꿈(dream)’을 통해 미래를 보았고, 막지 못한 어머니의 죽음과 대학 시절 자신의 증세를 털어놓았을 때 의사가 보인 반응 등으로 대내외적인 인간관계가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잠에서 깨어나면 노트에 꿈에 관한 메모를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찾은 카페에서 시선을 사로잡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 덕분인지 조엘은 카페에서 계산을 하지 않고 나오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가지가지 한다. 굶주린 작가라니, 도둑을 그렇게 낭만적으로 미화해줄 사람이 캘리 말고 또 누가 있겠어?”
캘리는 카페의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싹싹하고 긍정적인 성격, 제비 장식의 섬세한 로즈골드 목걸이를 하고, 압화 장식으로 만든 드랍 귀걸이를 착용하는 등 패션 센스도 좋다. 무엇보다 자연을 사랑할 줄 아는 넉넉함이 매력적이다. 그러나 캘리는 지금의 삶에서 뭔가 부족함을 느낀다. 친구의 죽음으로 맡게 된 카페, 함께 일하는 친구 닷과의 우정, 먼저 하늘로 간 친구 그레이스와의 추억을 되새기는 나날들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꿈꾸던 삶을 사는 것 역시 아니었다. 현실을 당당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자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캘리는 인생에서 언젠가 이루고 싶은 것을 ‘꿈꾸길(dreaming)’ 멈추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카페를 자주 찾는 남자에게 자꾸 눈이 가기 시작한다. 깜빡한 계산을 치르러 왔을 때 더욱 호감이 생겼다. 집주인의 변덕으로 새 아파트를 구하게 되었는데, 아래층 이웃이 다름 아닌 카페에서 마주쳤던 그 남자였다.
“나를 깨우는 캘리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나는 아직 꿈 속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는 내가 캘리를 흔들며 깨운다. 메트리스에 얼굴을 묻고서. 제발 안 돼요, 캘리. 이런 식으로는 아니라고요.”
조엘과 캘리 모두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다. 당연히 둘의 사이는 가까워지게 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는다. 캘리는 절친 그레이스를 잃은 상실감을 뒤로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고, 조엘은 은둔생활을 벗어나 일상의 다채로움을 받아들인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이 둘의 주위를 감싸안았을 때 조엘이 두려워하던 일이 기어이 벌어진다. 조엘이 캘리의 꿈을 꾸게 된 것이다. 캘리는 돌이킬 수 없는 꿈을 굳이 들으려 하지 않고 그의 곁에서 함께하는 꿈을 꾸려 한다. 하지만 조엘은 언젠가 벌어질 그녀의 미래에 초조함을 느낀다. 조엘은 예지몽에서 알게 된 가족관계를 단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을 진짜 부친을 만나러 간다. 과연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떻게 될 것인가?
《더 사이트 오브 유》 당신이 보는 시선, 나에게서 어떤 꿈을 보고 있나요?
“오늘이 마지막이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신 얼굴을 보고, 당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 만약 오늘이었다면?”
이 소설은 프롤로그부터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걸 예측하게 된다. 여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되는데, 그 내용이 참 심상치 않다. 내일 만남을 기약하는 헤어짐이 아니라, 쿨하게 작별하자는 헤어짐도 아니라, 마치 불가항력적인 운명에 시달리는 거 같지 않은가. 너무 애절하고 애틋하다. 소설은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part1~part4로 구성된다. part1에서는 캘리와 조엘의 썸타는 관계,, part2에서는 두 주인공이 사귀기까지의 이야기, part3에서는 예지몽으로 인한 고민과 이별을, part4는 그들이 헤어지고 난 뒤에 겪은 일들을 보여준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는 예상대로, 혹은 충격적인 마침표를 찍는다.
주인공 조엘과 캘리의 입장을 1인칭 시점으로 번갈아 보여주는데, 그 덕분에 좀 더 입체적으로 부각된 그들의 내적 심리를 솔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를 보는 남자와 그조차 사랑해 주고 싶은 여자. 그런 그들에게 드디어 찾아온 여자의 미래. 그런데 그 운명이란 게 싸하다. 싸해도 지나치게 싸하다. 내가 기본적으로 해피 결말을 선호하는지라 그 대목을 보자마자 갈등이 치밀었다. 이걸 덮어, 말아? 소개글도 보지 않고 제목에 필이 꽂혀서 읽기 시작한 거라서 충격이 더욱 컸다. 작가가 그래도 어찌저찌 행복하게 끝내주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봐도 프롤로그에 나온 여주인공의 독백을 곱씹자면 그것도 요원할 것 같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래도 이왕 책을 펼친 것 끝까지 읽는 게 작품과 작가에 대한 예의라는 신조 아래 계속 소설을 독서했다.
“어쨌든 아직은 조엘과 거의 모르는 사이나 마찬가지다. 무한한 우주 속을 떠다니는 은하의 별들처럼, 지나가며 미소나 인사말을 주고받는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서 잠시, 책의 감상을 총체적으로 나열하기 전에 우선 짚고 싶은 점이 있다. 이 작품이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사실이다. 연애관이 어마무시 자유분방하다. 먼저 조엘에게는 멀리사라고, 그 뭐시냐, 같이 잠을 자는 파트너가 있었다. 서로에게 더 끌리는 상대가 나타났을 때는 깔끔하게 손 털고 바이바이를 하자는 조건 하에 시작된 교재라는 언급이 있는 걸 보면 연인은 아니고, 그렇다고 썸을 타는 만남도 아니고, 그런데 또 할로윈데이 같은 기념일에 왕래할 정도면 욕구만 해소하는 것도 아닌데, 그 말하자면 서로의 필요에 의해 즐기는 관계인 것 같다. 그 뭐냐, 약간 친밀한 지속적인 원 나이트 스탠드?
이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인상을 받았다. 내가 보수적인 가치관이 강한 심리라서 약간 삐걱거리긴 했다. 끌리는 상대한테 접근하기 전에 만나고 있던 사람은 정리해야 순서 아닌가 말이다. 하지만 뭐, 요즘 세상에 안 될 게 무엇인가, 넓은 마음으로 이해했다.
그런데, 막 두근두근 사랑에 빠지려고 하는, 방금 키스한 여자 앞에서 멀리사를 들키는 장면에서는 진짜 ‘헐~’ 하는 얼척 반응을 막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두근두근한 여자는 자기 썸남이 다른 여자랑 함께하는 걸 보고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먼저 가진다. 보통 그런 경우, 상대가 있구나 하며 등 돌려서 다른 남자 찾지 않을까 싶은데 말이다. 다음날 아침에 멀리사랑 캘리랑 슈퍼마켓에서 만나 신경전을 동반한, 나름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그냥 ‘어허허~’ 웃음만 나왔다.
그 옛날 흥선대원군이 왜 그렇게 쇄국정책이니 척화비니 세우면서 난리를 쳤는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다 이런 정신 충격을 예견했던 게야.
서양의 연애관이 이런 건지, 아니면 영국 고유의 특성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어느 쪽이든 외국의 연애 세계관은 내게 문화적으로 너무 벅찬 감이 있었다. 하여튼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은 이 부분을 감안하고 봐야 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긴 하지만.....
아무튼 다시 아름다운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좀 파격적인 연애 가치관만 빼고 본다면 작품 자체의 묘사는 더없이 유려하다고 생각한다. 가독성도 좋고, 무엇보다 자연에 대해 많이 묘사하고 또 빗대는데, 그런 풍요로운 녹색 광경이 눈앞에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많은 걸 잃어야 했던 도시와 생태계가 살아숨쉬는 국립공원을 대비해 보여줌으로써 ‘자연’이라는 것에 대한 매력을 더 부각시켰다. 또 도심 안에서도 자연을 느낄 수 있는 묘사가 많아서 마치 자연적인 영화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장면 하나하나를 따라가다 보면 회색 건물에서 해방되는 느낌, 일상을 벗어나 꿈을 꾸는 기분, 코로나19 코로나블루도 잠시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문장들이 전체적으로 현재형으로 쓰인 것도 주목하고 싶다. 마치 담담하게 잔디밭에 누워 그간 있었던 일, 있는 일, 있을 일을 털어놓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 같았다. 읽다 보면 캘리와 조엘의 차림새나 장신구 같은 묘사가 곧잘 나오는데, 그렇게 해서 비슷비슷한 일상을 묘사하는 데 생동감을 더하고 캐릭터 특성도 부각시킨 것 같다.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깨달은게 있다면,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기적을 낳기도 한다는 거야. 조금 다르게 생각해봐. 네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믿어보라고.”
이제 작품에서 주요 키워드로 다룬 예지몽에 대해 써야겠다. 대부분 한번씩은 미래 예지를 꿈꾸곤 한다. 나 같은 경우 시험을 앞두고 있을 때나 어려운 교정 의뢰물을 맡았을 때 그 결과를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예지몽으로 업무의 결과를 확인한다면 실수를 하지 않을 테고, 예지몽으로 답안지를 본다면 틀린 답을 쓰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조엘만은 이 예지몽의 능력으로 인해 과장 조금 보태서 인생의 상당 부분을 망쳤다. 하지만 그와 같은 현상을 겪고 있는 선배이자 조언자는 타협점을 찾아 다시 사람들 곁에 서 있다. 그렇다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그야 뭐, 뻔한 얘기겠지만 ‘사람 by 사람’, 즉 사람마다 다르다고 해야겠다. 능력은 쓰기 나름이고 받아들이기 나름 아니겠는가.
사실 이 소설 설정이 현재 내가 취미 삼아 일요일마다 연재하고 있는 창작 소설 내용과 약간 오버랩이 되어 더욱 몰입했더랬다. 작품 후반부에 캘리와 조엘은 ‘행복’에 대한 다른 가치관을 두고 부딪히게 되는데, 상황은 같지 않지만 내가 연재하는 소설에서도 둘과 비슷한 양상의 갈등이 그대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캘리는 조엘 곁에 있는 게 행복이고, 자신의 죽음을 굳이 알지 않고 그의 옆에 머물고자 한다. 하지만 조엘은 꿈을 통해 캘리의 행복을 보았고, 그녀의 삶이 얼마나 남았는지도 보았다. 조엘은 그녀가 자신을 떠나 여한없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놓아주는 게 둘 중 한 명이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내 소설에서는 마녀와 유령의 러브 라인을 다룬다. 마녀는 언젠가 헤어질 것을 알지만 유령이 이승에 있는 동안 옆에 있고자 한다. 그의 마음을 알고 있고, 그녀에게는 그것이 행복이기 때문에. 하지만 유령은 자신의 한계가 명확하고 끝이 있기에 그 자신의 마음과 마녀의 고백을 열심히 회피하는 중이다. 시작하면 놓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마음, 그의 곁에 있기보다 보내주는 게 그녀를 위한 행복이라고 여기기에. 어떤가, 설정이 《더 사이트 오브 유》와 꽤나 흡사하지 않은가. 상대를 바라보면서도, 상대를 사랑하면서도 캘리와 조엘은 서로 보는 시선, 즉 주관이 달랐고, 내가 쓰는 소설에서도 마녀와 유령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상대를 보는 시선, 즉 관점이 다르다.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꿈을 꾼다. 같은 꿈을 놓고도 생각이 다르다. 그 꿈이 교차하는 순간에는 함께할 수 있지만 엇갈릴 때는 이별의 그림자가 스치게 된다. 캘리가 막 사랑의 한 페이지를 넘길 때 조엘은 결말을 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은 눈을 마주보고 결정해야 한다. 버드나무 잎새를 책갈피로 꽂아둔 채 ‘사랑’을 마무리할 것인지, 현재에 충실하며 결말은 애써 잊은 채 서로의 옆을 지킬 것인지.
둘은 결국 이별하게 되고, 각자의 인생을 걷는다. 물론 많이 아팠고 많이 슬펐다. 그러나 삶을 놓지 않고 상실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조엘은 다시 수의사로 복귀했고, 캘리는 자연을 벗삼아 여행을 떠난다. 그러다 삶의 한순간, 작별한 연인과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조엘과 캘리의 헤어짐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런 한편으로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캘리를 지켜보는 조엘은 웃어도 웃는 게 아닐 거고, 캘리도 자신의 미래가 조엘에게 부담이 되는 상황에 힘들어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나는 헤어짐을 선호하지 않기에 둘이 현재를 보며 함께 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다. 꿈결에 불온한 미래가 찾아온다 해도, 서로를 보며 이 현재를 꿈처럼 행복하게 살기를. 그리하여 상실의 슬픔이 온다 해도 둘의 시간이 행복한 기억으로 남기를.
우리는 모두 꿈을 꾼다. 눈을 뜨고 꾸는 꿈, 눈을 감고 꾸는 꿈, 그 둘 모두 꿈이다. 이 둘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기억’이 아닐까 싶다. 기억에 남지 않는 꿈은 공허하고, 기억이 되어 추억으로 남는 꿈은 언제나 찬란하다. 작품을 읽으며 캘리와 조엘이 이별한 후에도 상대방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는 걸 보며, 또 서로에 대한 꿈을 꾸는 것을 보며 그런 감정선이 깊은 여운으로 남는다. 만약(if) 조엘과 캘리가 헤어지지 않고, 죽음이 둘을 갈라놓는 순간까지 계속 같이 있었다면, 그래도 이런 여운이 남았을까?
이런 의문이 들면서도 나는 해피 결말이 더 끌린다. 아무래도 사랑은 둘이 같이 있어야 성립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인 것 같다. 혼자 남는 사랑은 너무 쓸쓸하니까. 그렇다고 조엘과 캘리의 사랑이 행복하지 않았다는 건 아니다. 그저 끝이 아쉬울 따름이다.
전체적인 총평을 적자면 약간의 연애관 문화 충격과 개인적인 취향에 좀 부합하지 않는 결말이 아쉬웠지만 가독성 좋은 문장과 자연적인 묘사, 애절한 사랑이 잘 조화된 소설이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나를 통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PS. 작품에 등장하는 덴마크식 스펀지 케이크 ‘드레뫼카게’의 맛이 궁금하다. 그 뜻을 직역하자면 ‘꿈의 케이크’라고 한다던데.....
첫댓글 멋진 사랑, 아름다운 사랑, 애절한 사랑, 짝사랑. 모든이의 가슴에 묻어나는 인간미의 완성으로 보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