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거(掉擧)와 혼침(昏沈)>
도거(掉擧 - 들뜸)란 큰 번뇌심으로서, 정신이 바깥 경계에
끌려 다니므로 마음이 이리저리 날뛰어 안정되지 못하고
번뇌 망상이 어지럽게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즉, 마음이 들뜨고 혼란스러운 흥분상태에 있는 것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면 전혀 집중력이 없는 상태, 번뇌 망상에 시달리는
혼란 상태이다. 초조해 있다거나 긴장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마음이 긴장되거나 들떠서 혼란 상태에 빠지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특히 다른 사람 앞에서는 긴장해버린다.
어떤 발표할 기회가 있어도 자신의 순서가 돌아오기 전에
벌써 긴장해버리는 일은 흔히 있다.
면접 등에서도 준비를 다해 갔음에도 면접장에서
자기 이름이 불리는 순간 긴장해서 어쩔 수도 없게 된다.
이런 것이 도거이다.
예컨대, 아이가 최선을 다해 연극을 하고자 무대에 오르는 순간
너무 긴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또는 연극을 하다가도 무대에서 객석에 있는 어른들을 보자마자
도거의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이럴 경우 머리가 띵 하고 굳어져 통나무처럼 서서
아무 행동도 할 수 없게 경직된다.
어른의 경우, 산행을 가다가 날은 저물고 깊은 골짜기에서
길을 잃을 경우, 당황해서 방향감각을 상실할 수 있다.
이런 마음 상태가 도거이다.
도거 상태가 되면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때에 나쁜 짓을 하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긴장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긴장해서 굳어진 상태에서 무리하게 무엇을 하려고 하면
실수를 연발해서 일을 그르치기 일쑤다.
감정이 고양된 상태는 도거, 그 반대는 혼침(昏沈)이다.
항상 좋은 일만 없는 법, 만약 감정이 고양되면
다음에 닥쳐올 그 고양된 감정의 하강을 슬기롭게 기다려야 한다.
혼침(昏沈)은 잠이 와서 정신이 몽롱한 상태를 말한다.
그리하여 몸과 마음이 무겁고, 침울하고, 무기력해진 상태이다.
혼침은 도거(掉擧)의 반대 현상인데,
혼침은 마음을 어둡고 답답하게 하는 정신작용,
정신이 혼미해 사리분별을 잘 못하는 것,
좌선할 때 정신이 맑지 못해 수마(睡魔)에 빠지거나
무기공(無記空)에 떨어지기 쉬운 상태 등을 말한다.
혼침에서는 깨어 있기는 있는데도 잠에 빠지기 전의 상태.
대상을 잊어버리지 않았는데 잊어버리려 하는 상태를 말한다.
“좌선할 때 수행자를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혼침이다.
혼침이 올 때 잘 대처하지 못하면 깊은 잠에 빠져
좌선시간을 낭비해버리는 수가 있다.
설령 깊은 잠은 아니라도 혼침으로 인해 정신이 흐려지면
마치 뿌옇고 희미한 안개 속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것처럼
수행의 대상을 정확하게 관찰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혼침에는 거친 혼침과 미세한 혼침이 있다.
거친 혼침은 대상을 잊어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대상을 명상하는 마음이 밝지도 못하고 힘이 있지도 못한
상태의 마음을 말한다.
미세한 혼침은 명상할 때 마음이 밝기도 하고
대상을 집중해서 대상을 선명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것이 제일 위험한 것이다. 힘이 있기도 하지만
힘이 조금 약한 상태에서 미세한 혼침에 들어간다.
이 미세한 혼침 상태에서 집중도 잘 되고 밝게도 잘되고
뭔가 힘이 있는 것 같은 상태인데,
이것은 선정이 아닌데도 선정인 줄 알고 오래 빠져 있는 경우이다.
손 안에 염주를 들고 나중에 손 안에 뭔가 있긴 있는데,
마음 집중도와 힘, 밝기가 다 있는데도 뭔가 부족한 것이 있어
이 상태에 오랫동안 빠지게 되는 경우가 미세한 혼침의 상태이다.
미세한 혼침에 빠져 오래 가면 빠져 나오지 못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쁜 습으로 들어가게 되면 고치지 못하게 된다.
혼침을 일으키는 원인과 혼침을 대처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좌선할 때 혼침을 일으키는
주범 중의 하나가 식곤증이다.
식곤증으로 인한 혼침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식사할 때
모든 동작을 알아차리며 식사를 해야 한다.
알아차리며 식사를 하면 보통 때보다 거의 두 배 정도 시간이
더 걸리고 적은 양을 섭취해도 배가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수저를 내려놓으면 알맞은 양을 섭취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알아차림 없이 허기짐을 만족시키려는 욕심으로
필요 이상으로 마구 먹으면 나중에 좌선할 때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
결국 수행처에서 공양이란 수행하기에 필요한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이지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배고픔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공양 후엔 행선을 한다.
행선을 할 때 몸의 움직임을 잘 관찰한다.
발을 올리고 앞으로 나가고 … 등,
한 움직임 한 움직임이 알아차리는 마음과 일치하도록 한다.
행선의 이로움 중 하나는 혼침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발의 움직임과 알아차림이 일치하는 과정을
지속하다가 보면 어느 순간 식곤증으로 희미하던 정신이
말끔하게 깨어나는 것을 경험한다.
그리고 좌선을 하면
맑은 정신으로 편하게 좌선에 들 수가 있다.“ - 강물처럼
그래서 좌선할 때 주의사항을 이르는데 나오는 말이다.
“정신은 항상 적적(寂寂)한 가운데 성성(惺惺)함을 가지고,
성성한 가운데 적적함을 가진다.
만일 혼침(昏沈)에 기울어지거든 새로운 정신을 차리고,
망상에 흐르거든 정념(正念)으로 돌이켜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본래면목 자리에 그쳐 있으라.”고 한다.
그리고 혼침은 정신적으로 위축된 상태를 말하기도 한다.
행동적이지 않고 위축된다는 의미이다.
슬금슬금 조심하면서 작아져버린다.
밝고 당당히 가슴을 펴서 정면을 바라보지 못하고,
위축돼 아래를 내려 보면서 마음에 힘이 없어져버린 상태,
그것은 걷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어렵사리 알 수 있다.
밝게 등을 펴고 힘차게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등을 구부리고 머리를 숙여서 걷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는 마음이 위축돼 있다. 마음이 계속 위축되면
몸도 그것에 맞추어버린다. 게을러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싫게 된다.
걸을 때만이라도 단단히 가슴을 펴고 당당히 걸어보면
마음의 위축상태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그리고 명상을 시작할 때 들뜨는 마음이 올라오면
도거가 일어날 위험 있고 슬픈 마음이나 의욕이 빠지는 마음
일어날 때 혼침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비유컨대, 마음이 조금 기쁠 때 망상의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도거이다.
슬플 때, 아플 때 의욕이 사라지고 같이 놀러가기 싫어지고
혼자서 말도 안하고 그냥 있고 싶어질 때 혼침에 들어가고 있다.
대개 우리 마음은 도거(掉擧) 아니면 혼침(昏沈),
대개 양 극단으로 마음이 쏠릴 때가 많다.
수행자는 이 두 가지 극단의 마음을 잘 다스려
조복(調伏)시킬 수 있어야 한다.
늘 들떠 있으면, 마음을 관할 수 없게 되며,
나를 놓치고 살기 쉽고, 또한 경솔하게 일을 그르치기 쉽다.
늘 쳐져 있으면 허무주의에 빠져 세상 모든 것이 우울해지거나,
마음이 너무 무거워 또한 일을 그르치기 쉽다.
수행자는 모름지기 일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할 줄 알아
겸손함을 잊지 말며, 막힐 때를 잘 녹일 줄 알아
어떤 막힘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혼자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기 쉽고
여럿이 함께 있으면 들뜨는 마음이 되기 쉽다.
그러나 수행자는 혼자 있어도 즐거울 수 있고
여럿이 함께 모여 있어도 마음은 고요할 수 있어야 한다.
범부 중생은 하루에도 수십 번 마음이 도거와 혼침 속을 오락가락 한다.
그러나 참된 수행자는
그 양극단 어디에도 마음을 뺐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여여 (如如)하고 여일(如一)한 마음,
순일(純一)한 마음을 연습해야 한다.
마음을 관하고 세상을 관하며 나와 주위의 경계를 가만히 관해보면
의외로 쉽게 혼침과 도거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들뜨는 마음도 불안 하고 가라앉는 마음도 불안하다.
오직 여여한 마음, 그 마음이 우리의 내면을 바로 깨어있게 해 준다.
중국 남송시대의 대혜(大慧宗杲, 1089~1163) 선사는
참선의 대표적인 병통으로 이 혼침과 도거를 들고 있다.
웬만큼 수행이 된 납자도 오랜 기간 혼침과 도거에 시달릴 정도로
이 두 가지는 수행에 커다란 장애물이다.
이렇게 혼침과 도거에 시달리는 것은 나태한 마음과 망상 때문이다.
정신이 오롯이 깨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성적적(惺惺寂寂)은 마음의 참모습이다.
성성이란 어둡지 않고 환히 깨어 있는 마음의 본래 작용이며,
적적이란 한결같이 고요한 마음의 본래 모습을 말한다.
우리나라 고려시대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년~1382년) 화상은
이렇게 말했다.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생사라 한다.
이 생사에 부딪혀 힘을 다해 화두를 들라.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면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어질 것이니,
일어나고 사라짐이 없어진 것을 고요하다고 한다.
고요함 가운데 화두가 없으면 무기(無記)라 하고,
고요함 가운데서 화두가 살아 있는 것을 신령한 지혜하다고 한다.
이 텅 빈 고요와 신령한 지혜가 허물어지거나 뒤섞이게 하지 말 것이니
이렇게 공부하면 멀지 않아 깨달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화두와 한 덩어리가 되면 기대고 의지할 것이 없어지고
마음이 갈 곳도 없어질 것이다. -
念起念滅 謂之生死. 當生死之際 須盡力提起話頭.
話頭純一則起滅卽盡 起滅盡處 謂之寂. 寂中無話頭
謂之無記 寂中不昧話頭 謂只靈知. 卽此空寂靈知
卽無壞無雜 如是用功 卽不日成功 身心與話頭打成一片
無所依倚心無所之.」 - <태고화상어록(太古和尙語錄)>
적적과 성성이 온전히 아우러지면
마음의 길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완숙한 공부에 이르게 된다.
중국 당나라 때 영가 현각(永嘉玄覺, 647~713) 선사는
혼침과 도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고요하기만 하고 깨어 있지 않으면 혼침에 잠겨 있는 것이요,
깨어 있기만 하고 고요하지 않으면 생각에 얽혀 있는 것이다.
깨어 있음도 고요함도 아니라면
그것은 다만 생각에 얽혀 있을 뿐만 아니라
혼침에도 빠져 있는 것이다. -
寂寂不惺惺 此乃昏住 惺惺不寂寂 此乃緣慮 不惺惺不寂寂
此乃非但緣慮 亦乃入昏而住」- <선종영가십(禪宗永嘉集)>
그렇다면 혼침과 도거를 극복하는 법을 좀 더 알아보자.
참선을 하면서 혼침과 도거에 빠지는 것은
화두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화두를 빈틈없이 참구하면 혼침과 도거가 찾아올 틈이 없다.
혼침은 깨어있는 마음으로 다스려야 하고,
도거는 고요한 마음으로 다스려야 한다.
마음이 또렷하게 깨어 있다면 혼침이나 졸음이 찾아올 리가 없고,
마음이 한 가지 대상에 빈틈없이 몰입돼 있다면
생각의 실타래가 뒤엉키거나 들떠 있는 도거가 발붙일 수 없다.
혼침과 도거가 오거든 정신을 바짝 차려
오직 이 공부뿐이라는 생각으로 간절하게 화두만 들어야 한다.
진정으로 화두를 들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초롱초롱해져
두 가지 병통이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혜 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을 비워 없애려 하지 말고, 생각을 붙이고 분별하지도 말고,
다만 언제 어디서나 빈틈없이 화두만 들라.
망념이 일어날 때 또한 억지로 그것을 그치게 하지 말라.
움직임을 그치게 해 끝내 그치게 되더라도
그것은 잠시일 뿐 더욱 크게 움직이게 된다.
단지 마음이 움직이거나 그치는 곳에 화두만을 살피라. -
也不著忘懷 也不著著意 但自時時提撕. 望念起時
亦不得 將心止遏 止動歸止 止更彌動. 止就動止處 看箇話頭.」- <대혜어록(大慧語錄)>
혼침이나 도거는
모두 우리 마음자리에서 생겼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혼침과 도거는 물리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이들 또한 불성의 그림자임을 알아 화두를 참구해
본래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번뇌 망상도 본래 불성이기에
그것이 화두를 통해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번뇌 즉 보리”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우물에 빠진 사람이
우물을 벗어나려는 간절한 마음과 사공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려는 확고한 의지로 공부해 나가야 한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