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인계동 2- 13(완)
7
일이 생각보다 지지부진하다. 오산까지 집터를 찾아 다녀보았지만 하나가 맞으면 다른 하나가 마음에 차지 않
는다. 학교가 가까우면 시장이 너무 멀었고 시장이 가까우면 학교가 멀고, 초겨울의 날씨는 아직 낮에는 덥다.
적어도 올 안에 터를 사야 내년 날이 풀리면 집을 짓기 시작할 수 있을 테고, 내년에는 이사를 하여야 후년에 현
준이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때를 맞추기가 좋은데 그것이 생각만큼 되지 않는 것이다.
진철은 차고에 차를 주차시키고 현관으로 들어서며 윗도리를 벗어드는데 주방에 있던 진우가 쫓아 나와 옷을 받
아 든다.
-현준이는?
-자요. 유치원에 갖다 와서 이것저것 주워 먹더니 배가 부른지 티브이를 조금 보다가 잠이 들었어요. 저녁은요?
-별로 생각이 없는데, 당신은?
-나도 아까 언니네 같다가 거기서 집어 먹은 것이 있어서, 차 한 잔 드려요?
-그러지.
진철이 소파에 가서 앉는다. 그러자 진우가 국화차를 한 잔 타서 앞에 갖다 놓으며
-저, 그런데
하며 말 꼬리를 접는다.
-왜! 무슨 일 있어?
-언니네 가 아무래도 내년 초에 이사를 할 것 같아요.
-이사! 어디로?
-정은읍이라 그러던데. 몇 년 전에 근무했던 학교로, 거기 있잖아! 언니 처음 결혼하고 신접생활 하던 곳
-그래!
-그 학교로 이번에 형부가 교감으로 승진해서 가게 되는 것 같아. 말은 얼버무리지만 거의 확실한 것 같던데.
-그거 잘됐네! 이제 교감 몇 년 하면 교장 할 테고. 축하 모임이라도 해야겠네.
-그래서 말인데…….
진철은 말꼬리를 내리는 진우를 바라본다. 무언가 더 중요한 말을 할 것 같다.
-말해봐
-우리 정은읍으로 가면 안 될까?
-정은읍!?
-응, 언니랑 너무 멀리 떨어지는 것이 싫기도 하고, 현준이도 시골서 초등학교를 보내기로 했으니까, 거기도 좋
을 것 같은데.
-당신 생각이 그렇다면 한 번 생각해보자고, 급한 일은 아니니까.
진철과 진우가 경희의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벌써 난희와 그의 남편인 강익선, 그리고 박양 부부가 와있었다.
-어서와! 언니.
-다들 모였네.
진우는 진철의 뒤를 따라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가 앉는다.
-무슨 일이야?
-응! 언니, 혜숙이가 언니들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해서.
-혜숙이 곧 온다 그랬어
-가게 문 안 열고?
-무슨 중요한 말이 있나봐.
진우와 난희의 대화를 자르며 심명국이 경희를 보며
-여보! 그러지 말고 술 안주좀 준비하지.
-안주! 뭐로?
-그냥 순대하고 국물이나 챙겨 줘.
경희가 일어서서 주방으로 가자 난희가 함께 들어가서 술상을 준비하는데 혜숙이가 문을 열고 들어서며
-벌써들 다 와 계시네.
한다.
모두들 혜숙이가 들어서는 것을 보며 은근히 긴장들을 한다. 도대체 무슨 중요한 말이 있어서 모두를 모이도록
한 것일까? 그것도 자신의 가게에 초대를 한 것도 아니고 경희의 식당으로.
혜숙이 신을 벗고 올라앉는 동안 경희와 난희는 테이블에 술과 안주를 내려놓는다.
-그래! 무슨 일로 이렇게 다 불렀니?
박양이 참지 못하고 혜숙이가 자리에 앉자 곧 묻는다.
-잠깐만! 혜숙 처제 숨이나 돌리고 나면 묻지. 자! 그 동안 우린 술 한 잔씩 하자고
명국이 주인답게 먼저 병을 들어 모두의 잔을 채운다. 그리고 잔을 들어 다른 사람 앞에 놓인 잔에 슬쩍 부딪치
고 한 입에 털어 넣고 순대 한 점을 새우젓에 찍어 우물거리며 씹기 시작한다. 명국의 행동에 다른 사람들도 한
잔씩 마시고 순대를 찍어 먹는다.
-저,
혜숙이 말문을 열었지만 쉽게 끄집어내지를 않자
-야! 모이라 했으면 얼른 말해야지.
경희가 한 마디 윽박질렀다.
-저, 나. 이제 고향으로 갈래요.
혜숙이의 말에 모두가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고향!?
-예, 명자년 그렇게 되고 나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가게 문 열면 명자 생각나고, 나도 그렇게 되지 말라
는 법도 없고, 여러 번 생각을 해 보았지만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서 직장 생활을 하든지.
혜숙의 말에 박양이 잠시 있다가
-그래! 잘 생각했다. 고향 가서 참하게 이 삼 년 생활하다가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는 것이 제일 좋을 거다.
-네 고향에서는 니가 이곳에서 어떻게 하는 지 잘 모르지?
난희가 묻는다.
-고향에서야 그냥 적당한 직장 다니는 줄 알지 뭐.
-그래! 그럼 됐다. 여기 생활 미련 갖지 말고 내려가라.
-그래서, 가게를 내 놓았어요. 오늘도 몇 사람 와서 보고 갔는데, 그런데, 다들 아시는 것처럼 그 가게 원칙적으
로 내 것이 아니잖아요. 우리 넷이서 시작했던 것이고, 진우 언니가 조금 도와주었고
-그런 거 신경 쓰지 마라. 가게 보증금 해야 그리 큰돈도 아닌데.
-그래! 가게 보증금 빼서 니 퇴직금 삼으면 되겠다. 나야 이 식당만 가지고도 먹고 사니까 걱정 없고, 난희도 익
선씨가 버니까 그만 하면 될 테고, 언니들이야 어쩌겠어 그냥 동생 도와준 것으로 해야지. 두 언니 그렇지?
경희가 박양과 진우를 번갈아 보면서 그렇게 말한다. 그러는 경희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린다.
-그래! 경희 네 말이 맡다. 진우도 그 돈에는 관심이 없을 거다. 그렇지?
진우는 박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예, 나는 처음 그 돈을 얘들에게 줄 때 그때 잊어버린 돈이야.
-그래요. 혜숙이 처제 잘 생각했고, 이제 마음잡고 고향에 가서 시집갈 궁리나 하도록 해요.
진철이 진심어린 마음으로 혜숙이의 결정에 동의 해주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표시한다.
-이왕 말 나온 거 나도 말해야 하겠다. 나도 연말이나 내년 초에 시골로 내려가게 될 것 같다. 시부모님들 연세
도 있으시고, 저 사람도 내년에는 정은 중학교 교감으로 발령 나는 것이 거의 확정적이고 해서.
모두가 술에 취했다. 이렇게 모두 모여서 술자리를 갖게 된 것이 얼마만인지 모른다. 명자 한 명을 빼고 모두 모
였다. 경희와 난희 그리고 혜숙이는 술에 취하자 울었다. 명자 생각도 났을 것이고, 박양의 이사와 진우의 이사
문제가 그녀들을 울게 만들었다.
이제 수원에는 경희와 난희만 남게 된다. 박양과 진우는 정은읍으로 가게 될 것이다. 혜숙이는 고향으로.
박양이 그녀들을 안아준다.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그러는 박양을 보는 진우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끝
*그다지 작품성도 없는 글이 너무 늘어지기만 해서 읽으시는 분들께 송구한 마음이 앞섭니다.
나름 잘 써보겠다는 욕심은 있었지만 저의 한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저 a-4용지 350여 장의 긴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에 제 나름 보람을 얻어 보는 글이었습니다.
읽느라 애쓰신 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