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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距離)
박 태 원
우리가 그 바깥채를 얻어 든 안집에는, 그들의 친아버지라 일컫는 노인과 더불어 기생만 삼 형제가 살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외설한 대화며, 비속한 가요들을 밤낮으로 듣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우리 가족ㅡ나와 모친과 형수와 또 어린 조카를 위하여 슬픈 일이었다. 누구보다도 어린 조카의 교육을 위하여 더욱이 그러하였다. 암만을 꾸지람을 하더라도, 더러 종아리를 때리기까지 하였어도, 조카의 입에서 군소리같이 나오는 「양산도」니 「수심가」니 「개성난봉가」니 하는 그러한 종류의 속요들을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었다. 그것은 조카 자신에게 있어서도 매한가지인 듯싶어, 그 몹쓸 소리들은 그렇게도 쉽사리 그의 입에 배어버렸던 까닭에, 그가 제 자신 그것들을 결코 입 밖에 내지 말리라 마음먹더라도 아주 보람이 없는 듯싶었다. 얼마 안 가서 어른들은 그만 꾸짖기에 지치고, 다만 그 대신 그때그때에 더러 하잘 수 없는 입맛들을 다시곤 하였으나 그것도 며칠 안 가서 우리들은 그러한 것에 관하여 다시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만약 소리 없이 지낸다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의미하는 말이라면 우리같이 평화로운 집안이란 드물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백매에 삼 전이란 공전¹으로 받아다 하는 약봉피를 하루 종일 걸려서 천 매의 능률을 내기에 바빴고, 형수는 때로 들이밀리는 삯바느질에 다만 적삼 한 가지라도 남에게 뻬앗기지 않으려 종일을 쉴 사이 없이 재봉틀을 놀렸고, 또 어린 조카는 이곳으로 떠나온 지 이틀도 못 되어 완전히 사귄 동네 안의 고만한 또래의 아이들과 장난하기에 끼니를 잊기조차 하였고, 나는 또 나대로, 조반을 치르고는 밖에 나가 저녁때나 되어야 돌아왔고, 그리고 밤이면 자기들의 하루에 제각기 지친 네 사람이 그 좁은 한 칸 방에서 웅크리고들 끼어 자지 않을 수 없었으므로 그러한 우리들이 무슨 화제를 가져 서로 제법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럴 수는 없었다. 일 있는 이는 일에 시달렸고 한가한 이는 또 한가함에 지쳤고, 온 집안 식구가 단칸방 속에서 서로 너무나 가까이 모여 있었으므로 도리어 마음들은 서로 멀어지고 아침저녁으로 대하는 늘 한 모양인 그 핏기 없는 얼굴들은 서로 남의 마음을 어둡게 하여 그래 우리들은 그렇게 가까이서도 서로 마주 대하기를 꺼리고 어린 조카도 쉽사리 어른들의 풍속에 젖어 우리 가족들은 모두 방의 네 벽과 같이 말이 없었다.
온 집안이 그만을 믿고 의지해오던 형이 죽은 뒤 삼 년, 마땅히 그를 대신해 온 가족을 부양해야만 할 내가 도리어 그들에게 부양을 받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슬프게도 딱한 일이었다. 그러나 대체 내가 무슨 방도를 가져 능히 그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인가. 게으름에 익숙한 나는 세간 사무에 적당치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의 일로 부지런히 쓴 원고는 아무 데서도 즐겨 사주지 않았다. 늙은 어머니와 외로운 형수는 그들의 가난이 새삼스러이 느껴질 때마다 은근히 그들의 마음속으로 내 위인의 변변치 못함을 욕하고 또 내가 능히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 없이 놀고만 있다고 그러한 것을 원망하는 듯싶었다. 그러나 학교라고는 중학을 마쳤을 뿐인 스물아홉이나 된 사나이에게 아무런 일자리도 있을 턱 없었고 또 허약한 나의 체질은 결코 노동에 견디어내지 못하였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 위에 나에게 대한 비난과 질책의 빛을 느낄 때마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고 아무런 방도라도 차려야 하겠다고 불쾌하게 또 초조하게 혼자 애를 태워도 보는 것이다.
언젠가 비 오는 하룻날에 우장²이 없는 나는 종일을 그들과 함께 방 속에 있었어야만 하였으므로 바쁘게 일하는 옆에 그렇게도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직 나만 한가함이 마음 괴로워 나는 어머니를 도와 약봉피를 붙였다. 그러나 내가 어머니와 같은 시간을 일해 얻은 것은, 겨우 팔백여 매, 그러니까 공전으로 쳐서 이십사 전이나 그밖에 안 되는 것이었고, 또 내 손으로 된 물건은 이미 이 방면의 전문가인 어머니의 것과 비겨 적잖이 손색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 일에 홍미를 가질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어머니는 또 어머니대로 자기의 ‘귀한’ 아들이 그러한 부녀자가 내직〔內職〕으로나 할 일에 손을 대는 것이 애처롭게 생각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스물아홉이나 그렇게 된 남자가 종일을 그 좁은 방에 붙박여서 서투른 솜씨로 약봉지에 풀칠을 하는 광경이란, 누가 보기에도 불쾌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사흘째 가서 내가 다시 그 일에 참여할 것을 금하고 나는 다시 볼일 없는 거리로 나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리 위에서 나는 언제든 갈 곳을 몰라 한다. 내가 아무런 볼일도 갖는 일이 없이 그냥 찾아가 만나줄 벗이란 다섯 손가락에도 차지 못하였고, 물론 같은 이를 매일같이 찾아보는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너무 자주 그들을 찾아 그들이 나의 심방을 불쾌해할 것을 접하고, 또 마주 대해서는 그들이 내게 어떠한 생각을 갖고 있는가 그것이 언제든 염려되어, 만약 참말 나의 심방이 그들에게 우울을 주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단순한 나의 심방에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나의 그러한 비굴하고 또 자신 없는 태도로서일 것이다. 그래도 찾으면 그들은 반가이 맞아주었고, 우선, 내게 담배를 권하고, 또 즉시 내 건강을 묻고, 그리고 때로 산보하자고 같이 거리로 나와 더러 차를 사주곤 하였다. 그들은 내가 그렇게도 가난하였으므로 도리어 내게 일종의 호의를 가졌던 듯싶어,
까닭에, 그들의 내게 대한 우정은, 그들의 다른 벗에 대한 우정과, 서로 구별되지 않으면 안 될지도 모른다. 내가 푼전을 몸에 지녔을 것을 예기하지 않는 그들은, 따라서, 삼사 명이 행동을 같이하는 경우에 서로 몸에 준비한 금액에 대하여 자기들끼리만 의논하였고. 결코 시험 삼아 내게 묻는 일이 없었다. 역시 그것은 내게 대한 그들의 호의로서의 일일 것이요, 따라서 나는 그들의 두터운 우정에 대하여 마땅히 사례해야만 옳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할 때마다 나는 너무나 적막한 내 자신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고, 또 그들의 맘 씀의 고마움을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던 까닭에, 나는 언제든 불쾌하였다. 더구나 그들의 우정이란, 혹은, 마치 당연한 것이나 같이, 나의 감사를 예기하고 발휘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요, 또 세 차례에 한 번쯤은 나의 지나친 가난을 그들은 불쾌하게 생각할 것에 틀림없으리라고, 분명히 그러리라고, 문득 생각이 그러한 것에 미치면, 벗에 대하여 부채를 느끼고 미안한 생각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은, 결코 내가 아니라, 그들 자신에 틀림없다고, 저도 모를 사이에 나는 객쩍게 흥분도 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내게 대접해준 담배며 차며 점심이며 술이며 그러한 모든 것이 언제까지든 나와 또 그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에 비겨, 그때그때의 나의 감사는 결코 그들의 마음 속에 기록되는 일 없이, 그래 나는 역시 언제까지든 그들 앞에 떳떳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면, 그들의 대접이 나에게는 결코 고마운 것일 수 없었다. 사실 어떠한 형식으로든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은 그것만으로 이미 유쾌한 일이요, 그래 그의 마음은 쉽사리 만족하고 또 자랑스러울 것이므로 베푼 은혜의 보상을 그는 제 마음 위에 충분히 구하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남의 은혜를 힘입었다는 그 점 하나만으로도 적잖이 불유쾌한 지위에 있게 되는 내가 객쩍게 그들의 우정에 사례한다든 하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시 세상일을 그렇게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을 것으로, 그것은 오로지 나의 가난과 비굴로 하여 삐뚤어진 감정에서 우러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깨달으면 나는 또 몇 번이고 쓰디쓴 침을 삼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나, 대체 그 어느 생각이 옳은 것이든 간에 그 어느 것이고가 모두 내 마음 위에 부과되는 적지 않은 부담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라. 그래 나는 단 얼마 동안이라도 그들을 결코 심방하는 일 없이
시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이틀 동안 아무도 찾는 일 없이 아무렇게나 헤매 돈 가을의 서울 거리는 내게는 너무나 슬픈 것이었고 비도 안 오는 한나절을 딴 때 없이 붙박여 지낸 우리 방 속은 역시 내 마음을 어둡게 해주어 내가 다시 벗들을 생각할 수밖에 다른 아무 도리도 없었을 때, 나는 뜻하지 않고 옆집 양약국의 젊은 점원과 알았다.
우리들은 어쩌면 벌써 오래전에 사귀었어야만 옳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으로 떠나온 뒤 하루에도 몇 차례씩 그 앞을 지나다녔고 또 그는 언제든 그곳 의자에 앉아 항상 밖을 내다보고 있었던 까닭에 두 사람 중의 누구든지 서로 얼굴을 대하는 순간에 먼저 그냥 고개만 끄떡하면 또 한 사람은 물론 서슴지 않고 답례하였을 것이요, 그래 가지고 두 사람은 가장 용이하게 친구가 될 그러한 운명에 있었다. 사실 우리가 사귄 것은 바로 그러한 경로를 밟아서였고, 또 다행히 그의 사무는 결코 분망치 않아 그 자신 항상 말벗 없음을 한하고³ 있었던 모양이라 우리는 피차가 알게 된 그날부터 둘이 다 서로 지극히 만족하였다.
나는 종일을 그와 마주 대하여 앉았어도 조금도 심심치 않았다. 그의 지식은 일종 특이한 것이어서 가령 일례를 들면 매일같이 그 약방 앞을 지나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관해 그는 그들의 직업과 주소와 또 더러는 일화 같은 것까지를 알고 있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그는 결코 화제의 궁핍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 자신 가끔 길 위에서 보는 중산모자에 안주항라⁴ 두루마기를 번듯이 입은 인품 좋은 노인은, 결코 내가 막연히 상상하고 있었던 바와 같이, 전에 어디 군수라도 지낸 일이 있다든 하여, 당시에 좋이 모아두었던 돈으로 그의 여생을 즐기고 있다든 하는 그러한 노인이 아니라, 그는 일개의 × ×권번 소리 선생에 지나지 않았고, 그의 마나님은 딱하게도 애꾸라고 그는 나에게 설명하였고, 또 발을 다쳤는지 며칠 전부터 슬리퍼를 신고 단장에 의지하여 절룩거리며 다니는 노상 젊은 양복쟁이는, 바로 요 아래 골목 안 변호사집 둘째 아들로, 작년 봄엔가 집안사람 모르게 동경엘 간다고 나섰다가 그만 부산서 거동불심으로 걸려, 그의 아버지가 몸소 그곳까지 가서 데리고 돌아왔는데, 집에 있대야 물론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이 밤낮으로 놀러나 다니고, 요사이 저렇게 절뚝거리는 것은 분명히 ‘요꼬네’ ‘나 그러한 것에 걸린 까닭에 틀림없다고, 그는 상세히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한 그는 물론 바로 이웃에 사는 우리 안집 기생들에 관하여서도 관찰을 게을리 할 턱 없어, 내가 반년 이상을 한집의 안팎에 살면서도, 거의 얼굴 하나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 못한 것에 비겨, 그는 그들의 일은 고사하고 그들과 다소간이라도 교섭을 갖는 대부분의 남자들에 관하여도, 실로 놀라울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대문 기둥에 문패가 걸려 있는 강옥화라는 것이 바로 큰 기생인데, 그는 얼굴이나 소리나 뭐 취할 것이 없으나, 원체 수단이 있는 아이라, 기생 생활 팔 년에 그가 삿갓을 씌웠다 할 남자가 적지 않으나, 작년 가을부터는 × ×피혁주식회사 사장 하나만을 물고 늘어져, 이제는 놀음에 불리는 일도 적은 그가, 그래도 남부럽지 않게 차리고 다닐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 다 늦게 바람이 난 늙은 사장 덕이라 한다. 노인은 적어도 사흘에 한 번씩은 인력거를 타고 찾아오는데, 그때마다 흘리고 가는 돈이 적지 않은 듯싶어, 옥화는 요릿집에서 인력거가 올 때마다 반드시 한 번은 약방의 전화를 빌려 계동에 있는 ‘영감’에게 오늘 밤에 오시렵니까 안 오시렵니까 물어서, 갈 수 없다고 대답이 있어야만 놀음에 나간다는데, 그것은 어쩌면 옥화가 그 노인에게 대한 한 개의 수단일지도 모른다.
수단으로 말하자면, 그중 끝의 아이 옥희라는 것도 큰형에지지 않아, 역시 그리 예쁠 것은 없으나 어느 여학교를 이 년까지 다녔대서 국어도 좀 할 줄 알고, 즐겨하는 여학생 차림이 결코 서투르지 않아, 셋 중에는 그중 놀음에 불리는 도수도 많고, 간혹 전문학교 학생들이 찾아오는 일도 있는데, 올봄부터는 어떻게 알았는지 개성서 어물전 하는 최 아무개라나 하는 사나이와 관계가 깊어, 걸핏하면 개성서 장거리 전화가 염치도 좋게 이 약방으로 걸려오는데, 그때마다 아이를 보내어 불러다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적잖이 성가시다 한다. 바로 그저껜가도 전화가 왔는데 낮잠을 자다 머리도 쓰다듬지 않고 달려온 옥희는 수화기를 떼어들기가 무섭게 요새는 대체 게서 무슨 재미를 보고 있길래 내게는 발그림자두 안 하느냐고, 내일이라도 곧 좀 올라오라고, 제일에 돈이 없어 사람이 죽을 지경이라고, 그래 내일 못 오더라도 돈은 전보환으로 부쳐주어야만 된다고, 그럼 꼭 믿고 있겠다고, 한바탕을 지껄이고 나서 응 그럼 꼭 믿구 있겠수 하고 전화를 끊기에 미쳐서야 생각난 듯이 참 몸이 편찮다더니 요새는 좀 어떻수 하고 그런 말을 하였다고 그는 그 계집의 음성까지를 교묘하게 흉내 내어 내게 여실히 이야기하였다.
형하고 아우가 그렇게 활약을 하고 있는 데 비하여 인물이 그중 나은 옥선이만이 성적이 가장 불량한 것은 참말 모를 일로, 그들의 친아버지라는 감투 쓴 노인은 말끝마다 자기 둘째 딸의 무능을 탓하는 모양이요, 물론 딸이라고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으므로 가끔 집 안에 음성 높은 소리도 들리게 되는 것은 남이 보기에도 딱하나 어쨌든 그렇게 세월이 없는 기생이라는 것도 참말
드물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 어디서 인력거가 왔을 때에도 마침 외출을 하고 없어 그냥 돌려보냈더니, 조금 뒤에 돌아와 그것을 안 옥선이가 왜 내가 화신상회 간다구 그렇게 말하구 나가지 않었느냐구, 그런 결 왜 그냥 돌려보냈느냐구 제 형하고 또 아우를 나무라는 것을 아우도 지지 않고 그래 화신상회면 대체 화신상회 어디를 가서 찾아야 옳단 말이냐고 빈정대니까, 옥선이는 더욱 기가 나서 내가 어제 취색⁷해달라구 비녀 갖다 맡긴 것 찾으러 간다지 않았느냐고, 그러니 아래층 은방부로 오면 되었을 게 아니냐고 늘어놓는데, 잘못되었다고 사과는 말더라도 그냥 잠자코 내버려나 두면 좋았을 것을, 그때까지 듣고만 있련 노인이 빌어먹을 년 제가 모두 운수가 나빠 그렇게 된 걸 가지구 남의 탓만 한다고 핀잔을 주어서, 드디어 옥선이는 울고불고 앞뒷집이 다 소란하였는데, 아닌 게 아니라 벌이를 낫게 하는 형과 아우 틈에 끼어서 제 처지도 적잖이 어려울 것이라고 그는 매우 옥선이를 동정하는 듯싶었다.
나는 그의 이 방면의 지식에 오직 경탄하고 또 남의 비밀이라든 그러한 것을 안다는 것에 제법 흥미를 느꼈던 것이나 문득 그렇게 우리 안집 일에 자세한 그가 바로 그 바깥채에 들어 있는 우리 집안에 관하여 모를 까닭이 없을 거라고 그러한 것에 새삼스러이 생각이 미치자 나는 역시 당황해하고, 또 마음에 매우 불쾌하였으나 사실이란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었고, 뿐만 아니라 이미 내게 관하여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을진댄, 내가 연일 그와 마주 대하여 잡담으로 세월을 보내는 것이 겸연쩍다고, 사흘에 한 번이라도 볼일 없는 거리를 헤맨다든, 그럴 필요가 조금도 없는 일이라. 결국은 그게 도리어 좋았다고, 나는 그다음부터는 아무런 불안도 느끼는 일 없이 아침을 치르고서는 으레 동저고리 바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으러 고무신을 끌고 나섰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까지든 그렇게 헛되이 그러면셔도 지극히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와 서로 안 지 사흘째가 되는 날 오후에, 약방으로 성병에 관한 약을 사러 오는 모든 남자들의 모든 표정에 대하여, 내가 흥미 있으면서도 또 슬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 때, 뜻밖에도 옆집 우리가 얻어 든 바깥채에서, 분명히 옥화라나 하는 큰 기생과 나의 어머니가 음성을 높이어 다투는 듯싶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온갖 가정 내막에 통효⁸하고 있는 나의 벗이, 그의 이웃집 소동을 어떻게 감수하고 있나, 그 기색을 살피기에 바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이 대체 무슨 일로 해 그토록이나 험한 소리로 다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그것을 놀랍게 또 불안하게 생각하고, 인생에 있어, 그것이 그렇게 중대사가 될 수 없을진댄, 부디 어느 편에서든 얼른 양보하여, 남들의 비웃음을 더 받는 일이 없으라고, 나는 마음속으로 은근히 빌었던 것이나, 나의 희망은 헛되이, 옆집에서의 소동은 결코 쉽사리 진압되지 않고, 도리어 그들의 음성은 좀더 높아가, 마침내 안집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방을 내어달라고 요구한 데 대하여, 우리가 그것에 결코 응하지 않고 있는 것이, 이 소동의 내용임을 내가 알 수 있었을 때, 나는 순간에, 거의 귓바퀴까지 새빨개가지고, 그 사귄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점원 앞에서 남김없이 손상되는 나의 체면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계집이 하도 기가 나서 소리소리 치는 통에, 어느 틈엔가 십여 명이나 그렇게 문 앞에 가 발을 멈추고서 연해 안을 기웃거리는, 소위 구경꾼이라는 것들의 존재를 불쾌하게 여기며, 만약 저이의 요구가 정당한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우리 가족에게 욕을 보이지 않는다더라도, 나가줄 것을, 그년, 인정도 의리도 배우지 못한 상것이라고, 나의 얼굴은 저도 모를 사이에 험악한 표정을 짓고, 이 경우에 이 모든 소동을 마치 남의 일이나 같이 나 혼자만 옆집 의자에 가 안연히 앉아 있을 수는 도저히 없음을 마음 깊이 느꼈으으나, 그러나 이번 일에 내가 취해야만 할 태도나 행동이란 대체 어떠한 것인지, 나에게는 전연 어림이 서지 않아, 혹은, 내가 순간에 생각하였던 바와 같이, 역시 나는 이 길로 집으로 돌아가, 마땅히 차가인⁹의 이권 웅호를 위하여 안집의 횡포를 꾸짖어야만 옳았다 하더라도, 그 퍽이나 능변인 계집을 상대로 끝끝내 싸우기 위해서는 우선 나는 구변과 용기가 없었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나는 이번 일에 대하여, 대체 저편에서는 어떠한 이유와 조건을 말해왔는지, 또 그것에 대한 우리 가족들의 주장과 방침이란 어떠한 것인지 눈곱만 한 지식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므로, 비록 무조건하고 어머니 편을 들어 우리의 주장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그것은 적잖이 곤란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의 주고받는 수작으로 보아 이 문제는 결코 어제나 오늘에 비롯한 것이 아니요 보름도 한 달도 훨씬 전부터 끌어온 것으로, 내가 그것을 전연 몰랐던 것은 그러한 소동이 공교롭게도 내가 밖에 나가고 없을 낮에 한하여 일어나기 때문인 듯싶으나 물론 이러한 중대한 문제는 온 가족이 같이 걱정하고 또 같이 생각해야만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나 형수나 아무도 그것을 내게 알려주지 않았던 것은 내게 객쩍은 근심을 가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거나 하는 그러한 생각에서보다도 설혹 내게 이야기를 해본댔자 결국은 아무런 소용도 없으리라고 어디까지든 나를 무능한 사나이로 돌리고 있는 데서 나온 일에 틀림없으리라 알자, 나는 순간에 그지없는 반감을 그들에게 느꼈고 또 제 형을 도와 어느 틈엔가 문간에 나온 옥희라나 하는 계집이 반은 문간에 모여 선 군중을 향하여 그들이 바깥채를 자기네들 자신이 쓰기 위하여 이미 두 달 전에 내어달라 요구하였을 때 허다한 힐난과 논쟁 뒤에 비로소 보름 동안의 유예를 약속하였던 것이 보름은커녕 한 달은커녕 두 달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서도 의연히 나가지 않고 앙탈을 하며, 물론 방세야 또 석 달 치나 밀리고 있으나 자기들은 그것도 모두 탕감해주겠다는 것이요, 또 이사 비용으로 십 원을 줄게 방만 내어놓으래도 듣지 않고 있다고, 그러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잘못은 분명히 우리 가족들에게 있는 것같이 느끼고 그렇게까지 해준다는데도 대체 무슨 이유를 가져 저런 욕을 당해가며 나가지 않으려만 드는 것인지, 그야 잘못은 어떻든 간에 나는 나와 이해관계가 밀접한 우리 가족 편을 들어야만 옳을 것이라 생각은 하면서도, 도리어 속으로는 안집 처지에 동정을 느껴 제 마음속의 이 모순을 나로서는 아무렇게도 하는 수 없이 둘째 아이 옥선이까지 마저 나와서, 그래 그렇게까지 해준대도 듣지 않는 이상에야 더 말할 게 뭐냐고 어서 같이 파출소로 가서 시비곡직〔是非曲直〕을 따지자고 서두르는 소리를 듣고는 내 자신 얼굴이 또 빨개가지고 정말 순사라도 불러온다면 일이 적잖이 난〔難〕하여지겠다고 마음속에 질겁을 하여, 빌어먹을 년이 대체 누구를 협박하는 모양이냐고 가슴속에 치밀어 오르는 불덩어리를 느끼면서도 일변으로는 이러한 곤경에 있으면서도 어머니나 형수나 아무도 결국 이 경우에 내가 집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든 하지는 않으리라 깨달으니, 넨장할, 부르려거든 정말 순사든 형사를 불러다가 모두를 잡아가든 말든 나는 모르겠다고, 흥 하고 부지중에 코웃음까지 나왔다.
사실, 어버이니, 자식이니, 지아비니, 지어미니, 형제니, 친구니, 하고 떠들어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결국, 따지고 보자면 이해관계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할 것으로, 저편에서 생각하니까 이편에서도 생각하는 것 이요, 이편에서 고맙게 하니까, 저편에서도 고맙게 하는 것이지 저편에서는 죽을 때까지 제 생각은 조금도 할 턱 없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이편에서는 언제까지든 그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서는 아무러한 보수도 받는 일 없이 저로서 할 수 있는 온갖 것을 하겠다고, 바로 팔 걷고 나설 시러베아들놈은 없을 게다. 먼 일가보다 가까운 이웃이란 이걸 두고 한 말일 것으로, 만일 동네 안이 모두들 자기네에게만 박절하게 대한다손치면, 혹은 결코 그렇게 냉정하지는 않을지도 모를 먼 친척을 생각할 것에는 틀림없는 일이라, 속속들이 파헤치고 보자면 사람이란 제게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익을 주는 이를 가장 긴하게 알밖에 아무 다른 수가 없는 것이다. 남남끼리는 이를 것도 없지만, 부모 형제 사이라도, 결국은 별수가 없어, 내가 만약 한 달에 돈 백 원씩이라도 벌 수 있다면, 그것만 가지고 우리 집안 식구는 우선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어, 어머니는 약봉지를 붙이지 않아도 좋고, 형수는 삯바느질을 안 해도 좋고, 그러한 까닭에 물론 그들은 나를 알기 태산 같을 것을, 오직 내게 그만한 돈이 없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결코 어머니와 자식이나 아주미와 아주비의 관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련만, 그들이 내게 냉정한 것은, 도시 몇 ㅍᅟᅮᆫ 돈 상관에 틀림없다고, 나는 입 안에 고인 쓰디쓴 침을 삼키다가, 문득 내가 지금 이웃집 약방에 가 이렇게 앉아 있는 것이라고, 새삼스러이 그것을 깨닫고, 불안하게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에 우리 집에 소동이 일어날 때에는 분명히 내 앞에 가 그대로 앉아 있어, 민망스러이 내 얼굴만 힐끔힐끔 곁눈질하던 젊은 점원은, 어느 틈엔가, 저편 책상 앞으로 자리를 옮겨 『일본 약국방』이나 그러한 두꺼운 책을 펴놓고 한눈도 파는 일 없이 읽고 앉았다. 나는 그의 옆얼굴을 보며 대체 이 젊은 벗은 내게 대하여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적어도 연민이나 모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으로,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의자에, 좀더 다른 사람이 몸을 의지할 때에 그는 틀림없이 나의 불유쾌한 경험에 대하여, 그이에게 또 무책임한 소식을 전할 것이라 깨닫자, 나는 그에게 한없는 혐오와 불쾌를 느끼고, 전후 생각 없이 밖으로 나왔으나, 물론 아직도 소동이 끝나지 않은 집으로 들어가, 내 자신 그 속에 뛰어들 용기도 욕심도 있을 턱 없이, 그래 나는 동저고리 바람에 고무신을 끈 채 되는대로 큰길로 걸어 나갔다.
내가 우리 집에서 제법 떨어진 곳까지 왔을 때 나는 나의 흥분이 차츰차츰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문득, 만약 내가 그들과 사이에 영구히 이만한 거리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나에게 있어서나 또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나 일종의 행복과 같은 것을 의미할 것같이 생각하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불쾌한 사건이란 그들이 결국 너무나 가까이들 모여 있는, 오직 그 까닭에 틀림없으리라고, 그래 나는 문득 영영 집에 돌아가지 않을 것을 생각하였던 것이나 그러나 대체 내가 집을 떠나서 간다면 어디로 하고 그것을 새삼스러이 내 자신에 물었을 때 나는 뜻하지 않고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서 자살이라든 그러한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내었다. 나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거리 위에 걸음을 멈추었으나 결국 지금의 나에게 있어서 그것 말고는 아무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모르는 이는 혹 비겁하다 말하더라도 이십구 년간 내게 너무나 냉정하였던 이 세상에 대하여 그것이 나로서 취할 수 있는 오직 한 개의 보복 수단인 것 같아서 한편으로 나는 내가 그렇게도 용이하게 자살의 결심을 할 수 있은 것에 놀라면서도 결코 좀더 깊이 생각해보는 일 없이 그저 그대로 그렇게 작정하여버렸다. 그러나 내가 뒤이어 생각한 것은 그것을 결행할 장소라든 방법 같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그 소동 속에서 체면을 깎이고 욕을 보고 할 나의 어머니와 형수와 또 어린 조카의 일이었다. 참말 내가 이대로 그만 이 세상에서의 나의 한 생을 끝내버리는 것이라면 그 전에 다만 한 번이라도 다시 그들의 얼굴이 보고 싶다고 나는 딴 때 없이 그들에 대하여 끓어오르는 애정을 느꼈으나 그것은 결국 내
가 그들과 이제 영구히 떨어질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느낄 수 있는 것으로 다시 우리가 그렇게 가까이 얼굴을 대한다면 역시 나는 그들에게 대한 실망과 혹은 증오 이외에 아무런 감격도 갖는 일 없을 것을 깨닫고 이제 다시 만나는 일 없이 내가 그대로 목숨을 끊을 때 나는 순간에 반드시 그들을 생각하고 또 그들의 행복을 빌 것이요, 그들은 또 그들대로 다시 나를 눈앞에 볼 수 없다는 그 까닭만으로라도 응당 기왕의 그들의 잘못을 뉘우치고 또 나를 아껴할 것임에 틀림없다, 생각하니, 사람과 사람의 관계란 어쩌면 그들의 실체의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에, 그들의 마음의 거리는 도리어 더욱더 가까워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그러한 것을 마음 한구석에 느끼며 역시 아무도 다시 만나는 일 없이 나는 외로이 또 고요히 땅 위에서 사라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추위를 재촉하는 궂은비가 간밤에 지나간 가을의 거리 위에서 문득 그렇게도 적막하였던 나의 전 생애를 돌아보았을 때 모든 회상은 내 가슴속에 울음을 자아내었고 또 이대로 뉘우침만을 남기고 사라져버리는 것의 걷잡을 길 없는 안타까움을 나는 새삼스러이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나는 이대로 그만 한 줌 흙으로 돌아가도 좋을까, 이 생에서 내가 할 일은 참말 하나도 남지 않았나, 그러한 것을 속으로 헤아려보았을 때 나는 문득 내가 어제까지 그렇게도 문학을 사랑해 왔으면서도 거의 작품다운 작품을 내어놓지 못하였던 것에 생각이 미쳐, 나는 이제 마땅히 심혈을 쏟아 한 편의 귀한 작품을 남겨야 하겠다고 내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 뒤에라도 결코 늦지는 않다고 갑자기 그렇게 마음을 먹었으나 어쩌면 이제 와서 그러한 생각을 먹는 것이 아직도 이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틀림없는 듯싶어 나는 그러한 제 자신을 불쾌하게 여겼다. 그러나 만약 내가 사실 나의 가슴 한구석에 생에 대한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도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나는 그것을 완전히 잃을 때까지는 그대로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이나, 그렇다고 이대로 다시 우리 가족들에게 돌아가고는 싶지 않다고 그러한 것을 생각하였을 때 나는 갑자기 나의 가족에게서 떠나 모든 벗들에게서 떠나 어디 먼 곳으로만 가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 어디든 좋았다. 동경이든, 상해든, 만주든, 오직 내가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만 있으면 나는 틀림없이 행복될 것같이 생각되어 내가 참말 오래전부터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번개같이 기억 속에서 찾아내고 내게는 정말 이 길 밖에는 없다고 작정하였던 것이나 그러나 대체 여비는 하고, 당연한 문제에 부딪쳤을 때 나는 갑자기 실망을 느끼고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뜻밖에도 사직동으로 나는 대체 어디를 어떻게 걸어서 여기까지 이르렀는지를 알아낼 수 없었으나 이제 또 어디로 가야 옳은가 생각하였을 때 가장 필연한 형세로 이 동리에 사는 벗이 나의 머리에 떠올랐다. 그와 함께 나는 내가 푼전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것에 비겨 그에게는 암만이든 돈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고, 참말 그에게 있어서 백 원이니 이백 원이니 하는 돈이 우스운 것임에 틀림없다 깨닫자, 나의 발길은 제풀에 그리로 향하며 거기서 나는 다시 사람과 사람의 모든 관계는 오직 이해 이외의 아무것도 아닌 것의 실례를 발견하고 내 자신 쓰디쓴 웃음을 금하지 못하였으나, 그 결코 대단하지 않은 금액이 내가 이 세상에서 나 아는 이에게 끼치는 마지막 폐일지도 모른다고 일종 비장한 생각을 함으로써 스스로 용기를 얻어 그를 찾았다.
그러나 나의 부름에 응하여 나온 그의 집 하인은 동저고리 바람인 나를 일종 모멸을 가져 훑어보고, 간단히 한마디, 안 계십니다고 말하였다. 나는 갑자기 전신에 피로를 느끼며, 벗이 일찍이 신경쇠약의 고통을 호소하고, 쉬이 어디로든 전지 요양을 가겠노라 하던 것을 생각해내었다. 나는 그대로 사직공원을 향하여 기운없는 다리를 내어놓으며, 그가 아직 서울에 남아 있는 동안에,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하였던 것인가 뉘우쳤으나, 문득 그 집 사람의 안 계십니다, 한마디로는 그의 소식 이 분명치 않아, 혹은 어디 잠깐 외출하고 없는 것을 가리켜 말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깨달았으나, 다시 돌아가 그것을 물을 기력도 없이, 나는 그대로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간밤에 내린 비는 이곳 풍경을 좀더 삭막하게 해놓은 듯싶어, 내가 낙엽을 밟으며 숲 속을 찾아들어, 그곳 들 위에 지친 몸을 의지해 앉았을 때, 내 마음에는 다시 새로운 슬픔이 솟아나왔다. 차차로이 저물어가는 하늘을 우러러, 아무런 빛도 이제는 바랄 수 없는 내 앞길을 한숨지었을 때 나는 문득 의외의 인기척에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삼십이나 그렇게 된 사나이가, 남의 눈도 꺼리는 일 없이, 땅 위에 두 손을 짚고서 물구나무를 서기에 열심이었다. 그도 역시 인생에 피로한 것일까, 나는 능히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같이 생각하였던 것이나, 그가 그의 운동을 중지하고 내게로 고개를 돌렸을 때, 나는 그가 뜻밖에도 내가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 마지않았던 그 벗임을 알고 가장 신기하게 놀랐다. 그뿐 아니라, 그도 나를 알아보자, 그는 거의 미친 듯이 내 옆으로 뛰어와서, 내 손을 힘 있게 잡고, 내가 그에게 바로 지금 찾아갔던 것임을 일러주었을 때, 그는 순간에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여,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하고, 그의 눈물이 방울방울 내 손등에 떨어지는 것도 그는 깨닫지 못하였다. 아무리 신경쇠약이라고는 하더라도 나의 심방이 그렇게까지 그에게 감격을 줄 것을 나는 결코 예기하고 있지 못하였었으므로, 한참이나 나는 오직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나, 문득 내가 그를 만나보려 한 본래의 목적을 생각해내었을 때, 나는 갑자기 그의 지나친 감격에 불쾌를 느꼈다. 만일 이 경우에 내가 돈 이야기와 같은 것을 꺼내기라도 한다면, 그는 응당 나의 심방에 대하여, 그렇게도 자기가 감동하였던 것을 뉘우칠 것이요, 그래 그는 제 자신 불쾌하지 않으면 안 됨으로써, 내게까지 그 우울을 나누어줄 것에 틀림없었고, 설혹 뜻밖에도 내가 그에게 돈을 취하는 것에 성공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나는 바로 그의 약점을 이용하여 내 몸을 이롭게 하였다고, 그러한 비난을 받아도 어쩌는 수 없는 노릇이라 그래 나는 좀처럼 냉정해지지 않고, 그저 그대로 그동안의 자기가 얼마나 고독하였었던가를 내게 호소하기에 열정인 그를, 그와는 훨씬 먼 거리에서, 그에게 대하여 내 마음속에 일종 격렬한 증오조차 느끼며, 언제까지든 불쾌하게, 또 우울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끝-
2016년 6월 3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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