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5일
따뜻한 일요일이다.
올봄 코로나 때문에 못간 대구를 가기로한 날이다.
대구수목원의 국화전시회를 보기위해서다.
올해 대구수목원 국화축제는 대구수목원 뿐만 아니라 동대구역,송해공원, 사문진나루터등 여러 곳에서 분산 개최하기 때문에 다보러갈 수 없고 대구수목원과 사문진나루터만 보기로 했다.
시간이 촉박하므로 8시2분 구포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탔다.
얼마 전과는 달리 기차간에는 사람들이 꽉 차서 빈자리가 없었다.
9시20분 동대구역에 내려 동대구전철역에서 설화명곡 방향 1호선 전철을 타고 대곡역에 내려 3번출구로 나가 시간절약을 위해 걷지 않고 택시를 타고 수목원 1주차장에 내리니 10시 20분이었다.
대구수목원의 국화는 15일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었지만 싱싱하고 매우 아름다웠다.
게다가 길 양쪽에 수백 개의 화분을 놓아두었는데 , 아름다움에 모두들 아! 하고 감탄하면서 걸었다.
국화뿐 만아니라 길옆 나무들이 빨갛고 노랗게 단풍이 들어 환상적이었다.
12시 대구수목원 구경을 마치고 사문진나루터에 가기위하여 정부대구지방합동청사앞 정류장에서 달서3번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걸려 종점인 화원유원지 정류소에 내렸다.
사문진 나루터
화원유원지에는 사문진주막촌과 사문진나루터가 있는데 점심식사는 유람선을 타고난 후 하기로 하고 13시에 출항하는 표를 샀다.
유람선 승선비는 대인 10,000원이고 경로할인은 없다.
표사기전 이름, 전화번호, 주민번호 앞 번호 적고 표 끊을 때 신분증 검사를 했다.
배는 출항해서 강정고령보 까지 갔다 오는데 20분, 다시 반대편으로 갔다 오는데 20분. 그렇게 총 40분 정도 걸렸다.
보 덕택에 강은 물이 가득차있었고 강둑에는 나무들이 보기 좋게 늘어져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보는 참 잘 만들었는데 철거 우운하는 인간들이 있으니 뇌 구조를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배를 내려서 밥을 사먹으려고 주막촌으로 가니 엄청 많은 사람들이 밥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주문서를 써서 들고 언제 밥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한 시간을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아까운 시간 허비할 수 없고 수목원에서 군것질을 좀해서 배도 고프지 않아 식사 패스하고 동대구역으로 가서 식사하기로 했다.
부지런히 다니면서 주위를 카메라에 담고 14시2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20분 배차이고 10여분 달려 화원초등학교 정류소에 내려 전철로 환승해서 15시20분 동대구역에 도착했다.
동대구역에도 국화전시회를 하고 있어서 대강 구경하고 동대구역 2층 식당가에서 식사를 하고 16시31분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고 귀가길에 올랐다.
참 멋진 여행이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열 아홉의 어린 나이에 장원 급제를 하여 스무 살에 경기도 파주군수가 된 맹사성은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무명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베푸시면 됩니다.”
“그런 건 삼척 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 줄 말이 고작 그 것 뿐이오.”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무명 선사가 녹차나 한 잔 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그는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스님은 찻물이 넘치도록 그의 찻잔에 자꾸만 차를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님,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망칩니다. ”
맹사성이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잔뜩 화가 나 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스님의 이 한 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붉어졌고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다.
그러다가 문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히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 저 평지와 같은 마음이 되면, 거기엔 더 이상 울타리가 없으며
벽도 없을 것입니다.
열린 마음은 강합니다.
열린 마음에는 일체의 시비가 끼어 들지 않습니다.
마음을 열고 끝없이 자신을 낮추십시요.“
강원도 정선에서 살 때이다. 강원도 집들은 다 야트막하다. 집집마다 문이 다 여닫이인데 문 높이가 내 키보다 훨씬 낮다. 내가 건망증이 심하다 보니 그 사실을 잊어 버릴 때가 많았다. 교우들 집이나 동네 이웃집이나 들어가면서 내 이마가 문틀에 박치기를 한다. 별이 번쩍번쩍 한다. 손으로 아픈 이마를 만지면서, 다음에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다짐한다.
그러나 그 집에서 나오면서 문틀에 또 박치기를 한다. 이마가 성할 날이 없었다. 작은 문을 제대로 통과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여야 한다. 심지어 다락문 같은 데는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잊어 버리고, 또 박치기를 했다. 그래서 나의 아버지가 나를 ‘미련곰탱이’라고 부르셨을까?
요령부득하면, 이마만 찧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다친다. 문이 주는 화두는 '내가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낮아져야 한다. 그것을 기독교에서는 '겸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또 그 반대가 '교만'이다.
교만은 많은 지식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겸손은 적은 지식으로도 풍요롭게 한다. 오만한 마음에는 더 이상 채울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늘 비어 있어서 채울 준비가 되어 있다. 오만의 그릇은 쏟아 보면 나올 것이 없으나 겸손의 그릇은 빈 그릇에서도 지략이 철철 넘쳐 쏟아진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성을 내는 법이 없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은 조그만 일에 성을 낸다.
자기 가진 것이 많다고 하여 교만을 떨면 마음은 추해지고 만다. 자기가 잘났다고 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겸손할 줄 모르면, 그 사람은 아직 인생의 철이 나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고 겸손에 처할 줄 아는 사람은 이미 삶의 깊이를 갖춘 사람이다. 내가 높아지려고 하다가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낮아져서 결코 손해 보는 일은 없다. 내가 낮아질 수 있다면, 그 어떤 세상의 문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다. 결국 길과 문은 연결되어 있다. 누구든지 자기가 가야할 길이 있고 통과해야 할 문이 있다. 그러나 고개를 빳빳하게 치켜들고서는 그 길을 제대로 갈 수 없고, 또 그 문을 안전하게 통과할 수 없다. 낮아져야 한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