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산길은 이런 산을 두고 하는 말인가?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에다가 그 흔한 이정표도 딱 두 개에 그친다.
그나마 정상석마저 엉뚱한 곳에 세워져 있으니 독도(讀圖)는 헷갈리기가 딱 십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산길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은 건 등로 좌우로 도열한 선홍색 진달래 물결.
시골 아낙네같이 수더분한 진달래는 산길내내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백두대간은 소백산을 지나 죽령을 건너 도솔봉~묘적봉~묘적령을 거쳐 저수재로 잇는다.
묘적령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영주시 봉현면, 예천군 상리면을 가르는 분기점인 동시에 자구지맥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자구지맥은 묘적령에서 옥녀봉~자구산~부용산~냉정산~남산을 거쳐 한천과 내성천이 만나는 예천군 호명면 담암리까지 이어진
39km의 산줄기다.
지맥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우리가 진행할 옥녀봉(玉女峰)과 달밭산(月田山), 자구산(子求山)이 자리하고 있다.
아직은 찾는 사람이 많지 않고 가끔 지맥을 종주하는 사람들만 지나칠 뿐이다.
애달픈 전설이 있는 옥녀봉과 달빛이 교교한 달밭산,그리고 공을 들여 자식을 얻었다는 자구산이 자구지맥 상에 이어달리고,
공민왕이 춘생(春生)마을에 이르러 봄이 온 것을 알았다고 그 뒷산을 부춘산(富春山·732.3m)이라 했다던가?
옥녀봉에선 북쪽으로 소백산의 국망봉, 비로봉, 연화봉이 하나의 능선을 이루며 소잔등처럼 부드럽게 다가온다.
조망은 썩 좋은 편이 아니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산골 풍경은 도회지에서 느낄 수 없는 정취를 불러일으킨다.
물 한 모금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이 식으면서 오싹 느껴지는 한기가 상쾌하다.
또한 이 날 산행을 함께한 내로라하는 세 분의 블로거(Blogger)들께 감사드린다.
◇ 천성산의 보금자리 <☞ http://blog.daum.net/chonsungmt2432/1509>
◇ 등네미 산행기 <☞ http://blog.daum.net/leekw051/17461818>
◇ 청노루 <☞ http://blog.daum.net/kgteaa038777/2408061>
※ 클릭하면 원본 지도 ↑
자구지맥
네비게이션에 마땅히 입력할 지형지물이 없어 '옥녀봉 자연휴양림'의 주소인 "경북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 1171-1번지"를 입력하였다.
버스가 고항치로 올라가면서 좌측으로 공사로 어수선한 옥녀봉 휴양림을 지나쳐서...
꾸불꾸불 2~3분 만에 고항치에 다다른다.
들머리는 버스의 오른쪽 세멘트 포장도로를 조금 오르다 굴다리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고항치(古項峙)는 영주시와 예천군의 경계로 두 개의 굴다리(구도로의 굴다리,동물이동통로 굴다리)가 나란히 있는 지점이다.
우리를 내려준 버스는 날머리인 '예천군 상리면 석묘리'를 향하여 출발하고...
우리는 굴다리 위를 지나면서...
금방 우리 차가 우리를 내려준 지점을 내려다 보고...
버스가 날머리로 떠난 '동물이동통로'굴다리를 쳐다본다.
(옥녀봉동물이동통로)
곧 안내판과 이정표가 선 본격 들머리를 만난다.
동물이동통로 건너편에 세워진 안내판과 이정표
버스에서 내려 우리가 올라온 동선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내 가파른 오름길이 시작되지만...
그렇게 힘들지 않는 것은 바로 의외의 진달래 꽃길을 만나서이다.
산길내내 진달래는 우리를 반기고...
우리는 진달래가 양 옆으로 도열한 등로를 마치 개선장군처럼 걷는다.
돌아보니 나무숲 사이로 백두대간이 힘차게 지나간다.
이정표에서 딱 20분 만에 옥녀봉에 올랐다.
조망이 탁월한 옥녀봉 정상에서...
한동안 머물며...
아슴이 보이는 소백산 자락을 바라본다.
가까이 보이는 도솔봉으로 대간이 지나가고,멀리 어깨를 들어올린 능선에 소백산천문대가 보인다.
살짝 당겨본 모습
도솔봉과 나무에 가려진 묘적봉.
옥녀봉에는 예천흑응산악회에서 세운 안내판과 예천 봉현면에서 세운 옥녀봉 정상석이 또하나 있다.
다시 산길을 이어가면서 우측 아래로 우리 버스가 지나갔을 예천군 시골모습이 보인다.
그러고보니 이 골짜기는 자구지맥과 백두대간의 사이에 푹 꺼진 골짜기 마을들이다.
편안한 능선길에 곱게 핀 진달래.
산길 정비가 되지않아 말그대로 청정산길이라 하였는데,이제 오른쪽 예천방면으로 산길을 정비하고 있다.
이렇게 정비를 한 다음에 이정표를 턱하니 세운다면 여느 산과 다를 바 없을 것이고,탈출로가 많아 편리하기는 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느낌은 반감되리라
이 지점, 달밭고개에 뜬금없이 달밭산 정상석이 서있다. 정상석을 메고가다 무거워서 이 지점에다 세운 것일까?
준족이라면 달밭산에서 천부산을 다녀와도 좋다고 하였는데,열정의 '천성산'님은 여기에서 이정표 뒤로 난 족적을 따라 천부산을 갔다가 헛방을 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렇듯 잘못 표시된 지형지물은 자칫 사고까지도 이어질 수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달밭고개에서 만난 두 번째 이정표이면서 마지막 이정표.
또다시 만나는 산길 정비의 모습
우리는 달밭고개와 달밭산 중간쯤에서 식사를 하곤 숲속 좌측으로 흘러내리는 천부산 능선을 쳐다본다.
대구의 판떼기맨 '김문암'님이 달아놓은 달밭산(974m)정상 판.
정상에서 영주시 봉현면 천부산(天浮山·852m)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비로소 열려있다.
산행후에 들었지만,오늘 참여하신 '등네미'님은 천부산을 다녀왔다고 한다.
왕복 40여분이 소요됐다고 하는데,나는 요즘 그러한 열정이 부럽기만 하다.
지나온 달밭산에서 우측으로 흘러내리는 천부산 능선.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하다...
아무런 표식없는 무명봉(중요지점)에 올라선다.
봉우리에선 직진으로 우뚝한 자구산과 이어지는 능선길이 보이지만,직진은 길이 아니고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서야 한다.
그러니까 우로 휘어져 내려가다 좌측으로 틀어 능선으로 붙는다는 말씀.
다시 능선으로 걸으며 올려다보는 뾰족한 자구산.
안동권씨 묘지를 지나고...
유인안동권씨지묘
좌로 임도를 만나는 안부에서 다시 성큼 산길을 올라선다.
이어지는 산길 역시...
진달래 꽃길. 오늘 참여한 '청노루'님도 그 열정을 어찌하지 못한다.
돌아본 지나온 길은 나무숲에 가려진 채 윤곽을 드러내고...
마치 허물어진 성곽인양 흘러내린 돌무더기봉을 올라선다.
공을 들여 자식을 얻었다는 자구산(子求山)이다. 사위에게 선물로 받은 고도(高度)가 나오는 산악시계를 팔목을 비틀어 정상석에 맞춰본다.
784m 딱 맞다. 물론 옥녀봉에서 한차례 맞춘 바가 있지만...ㅎㅎ
언제 자구산을 다시 오르랴.
.
나무숲 사이로 자구지맥은 이어달리고...
우리는 다시 돌무더기봉을 올라선다.
돌아보니 도솔봉 너머 소백산 자락이 아슴한데...
살짝 당겨보니 역시 도드라진 소백산천문대의 우뚝한 모습이 보인다.
공민왕이 봄이 오는 소리를 들었다는 부춘산은 어데쯤이뇨? 갑자기 오른 한낮의 봄기온은 우리들을 살짝 지치게 한다.
거기다 바지가랭이를 내내 쓸고 다닌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길은 우리들의 체력을 소진케 하였다.
질러가는 고개인 지름목의 경북 사투리인 '지르매기'를 지나고,높게 솟은 철탑도 지난다.
봄소식을 들었는강~
부춘산에서...
분홍색 화신과 함께온 봄소식을...
부춘산 정상판은 산꾼화가 조규한님의 작품.
조규한님의 정상판은 산청 석대산에서,거창 좌일곡령에서,문경 공덕산에서,남원 만행산에서,하동 이명산 흰덤산에서 익히 보아온 바가 있다.
삼각점 밟기를 하고...
언제 다시 또 오랴~
삼각점은 옛'국방부지리연구소'의 것이다.
진달래 산길은 계속 이어지며 고도를 급속히 낮추어간다.
석주와 비석은 온전하지만 봉분에 잡목들이 아무렇게나 웃자란 걸 보니 묵은 묘다. 옛 영화는 세월속에 묻어두고 망자는 그저 내가 누구란 것만 알리고 있다.
선성김공휘성지묘(宣城金公輝聖之墓). 개념도엔 '의성김씨묘'라고 잘못 기록되어 있다.
안동의 선성김씨는 고려 때 예안호장을 지낸 김상(金尙)을 시조로 하여 선성(宣城, 예안의 옛 이름)을 본관으로 하는 안동 지역 토성의 하나이다.
임도급 넓은 산길을 따라...
황토색 붉은 흙길을 돌고...
이화(梨花)가 활짝 핀 과수원을 지나며...
곡각지점의 농막에 내려섰다. 잠시 숨을 고르다...
농막 뒷쪽 푸른색 철망 휀스를 넘는다.
민가가 내려다 보이는 산길농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서서 뒤돌아 본다. 중간의 고갯마루가 농막이 있던 곳이고,좌측 스레트지붕의 민가쪽으로 내려섰다.
세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
이름이 유별난 손씨집 '데일리팜 어린이직업 체험나라' 앞으로 내려온다.
아스팔트도로가 보이는...
'석묘보건진료소' 앞으로 내려선다.
.
'석묘보건진료소' 앞의 정자엔 보호수 한 그루가 있는데,'영괴보수기념탑(靈槐保樹記念塔)'비석이 세워져 있다.
신령(영 靈)한 홰(괴 槐)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세운 기념 탑이라는 말이겠다.
정류장은 석묘리 정류장
.
도로 아래의 다리밑으로 내려가면 콸콸 흘러내리는 냇가가 있다.
머리를 감으며 땀을 씻어내는데,어이쿠~ 손이 너무 시리다.
옆에 있는 일행에게 "손이 시리지 않나요?" 하였더니"남의 일 하는 모양이군."하고 농을 한다.
진달래 / 이국헌
눈을 감아라
봄날 산사에서는
숨을 고르다
아련히 떠오르는
그대들의 표표한 상징들
산꽃들이 날리며
물들어버린 산에는
아,
미치도록 점점이 뿌려지고
흩뿌린 선홍색 꽃잎들이
아스라히 따스운 피 뿌리는데
산마다
끝머리에서 혼백들이
온통 젖어들어 물드니
눈을 감아라.
※ 매번 이렇게 식어빠진 산행기를 올리자니 쓰는 이나,보는 이나 김빠지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