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태극기 달다 추락사… 故 이하늘양 1주기
6일 낮 12시 제주도 제주시 양지공원(시립 화장장 및 납골당). 아파트 베란다에서 태극기를 내걸다 떨어져 숨진 이하늘(당시 9세·외도초 3년)양의 사진을 쳐다보는 어머니 정모(45)씨의 어깨가 흔들리고 있었다. 밝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하늘이는 천사였다. 하늘이의 작은 유골함에 묻어 있는 먼지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는 정씨의 뺨에는 눈물만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하늘이가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작년 6월 6일 현충일 오전 10시 30분쯤 제주시 외도동 모 아파트 11층. 하늘이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베란다 밖에 설치된 국기꽂이에 태극기를 꽂고 셀로판테이프로 감기 위해 의자 위에 올랐다. 석달 전 3·1절에 내걸었던 태극기가 바람에 날아간 것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하늘이가 태극기 깃대를 잡고 단단히 붙여 매려는 순간 의자가 휘청거렸다. 소녀는 무게중심을 잃고 베란다 난간에서 아파트 아래 화단으로 떨어졌다. 밑에는 동백나무가 있었지만 하늘이를 받아주지 못했다.
마지막 작별인사도 못하고 딸을 보낸 어머니 정씨는 여전히 그때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하늘이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던 정씨는 단둘이 살던 아파트에 하늘이 유품을 그대로 간직한 채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씨는 "고층아파트 베란다 밖의 국기꽂이는 쉽게 손이 닿지 않아 아이들에게 너무 위험하다"며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작은 태극기를 아파트용으로 만들어 하늘이와 같은 비극이 더는 안 생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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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년 전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태극기를 내걸다 추락해 숨진 이하늘양의 어머니 정모씨가 6일 제주시립 납골시설인 양지공원에 안치된 하늘양의 유골함을 닦고 있다. /이종현 객원기자 grapher@chosun.com
정씨는 하늘이 일이 발생한 뒤부터 직장도 그만두고 외부와 단절한 채 병원을 오가며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당시 언론을 통해 사고가 알려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친서를 보냈다. '하늘양의 순수한 생각과 행동이 많은 어린이들에게 모범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편지를 보내 하늘이의 안타까운 사고를 위로했다.
제주도의회와 보훈청도 작년 하늘양을 위해 충혼묘지에 작은 비석을 세우거나 추모·장학사업을 벌이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식이 없는 상태다. 다만 지난 5일 저녁에 하늘이의 넋을 추모하는 행사가 유일하게 열렸다.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제주지회(지회장 홍석표)가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개최한 '고(故) 이하늘 추모 문화제'였다. 하늘양이 태극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퍼포먼스, 외도초 학생과 시민들이 참여하는 태극기 퍼레이드 등이 진행됐다. 홍석표 국가발전미래교육협의회 제주지회장은 "학급반장을 지내고 친구와 선생님들 사랑을 받던 이양은 이제 나라사랑을 상징하는 존재로 거듭났다"며 "현충일 전야에 이하늘양을 애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하늘이는 국경일에는 집집마다 태극기가 펄럭였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국경일에 태극기를 다는 것에 점점 더 인색해지고 있다. 하늘이가 살던 아파트 단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20~150가구가 모여 사는 아파트 동마다 베란다 밖으로 내걸린 태극기가 10여개에 불과할 정도로 적었다.
하늘이와 작별인사를 나눈 어머니는 "하늘이가 6학년이 되는 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만 있다면 더는 소원이 없겠다"며 "국경일만이라도 펄럭이는 태극기들을 볼 수 있다면 하늘이도 기뻐할 텐데…"라고 깊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