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방글라데시에서 15번째 파견을 마치고 돌아온 국경없는의사회의 베테랑 활동가인 약사 최정윤 활동가가 인터뷰를 통해 현장 경험을 전했습니다. 이번 활동은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이전의 파견 활동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최정윤 활동가가 전하는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이름: 최정윤
포지션: 프로젝트 약국 총책임자 (Mission Pharmacy Manager)
파견 국가: 방글라데시
활동 지역: 잠톨리(Jamtoli)
파견 기간: 2020년 8월 ~ 2021년 6월
3월 20일 ‘세계 여성의 날’ 기념 행사에서 동료와 함께. © Choi Jeong Yoon/MSF
이번에15번째 활동을 다녀오셨는데요! 이렇게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직업을 택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죠. 저의 경우 돈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 직업을 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로 일하는 것은 제 가치관에 맞아서 즐겁고, 열악한 환경에서 의료서비스를 지원하는 일이라 무척 보람되기 때문에 저에게는 직업적인 만족감이 큽니다. 그래서 힘들어도 계속 하고 있죠!
최정윤 활동가가 활동한 방글라데시의 잠톨리 난민 캠프.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에는 약 90만명의 로힝야 난민이 열악한 난민 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다. © Hasnat Sohan/MSF
이번에 다녀오신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활동은 코로나19로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활동가님의 업무에는 어떤 영향이 있었나요?
우선은 코로나19로 방글라데시 비자를 받는 것이 무척 힘들어졌어요. 그렇다보니 국경없는의사회 국제 활동가 파견이 어려워졌고, 중요한 직원이 없거나 각자 나라에서 원격 재택근무를 하다보니 일이 진행되는 속도가 떨어지고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힘들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지원 활동 전반에 걸쳐 코로나19 대비 조치가 이루어졌다. 방글라데시 잠톨리의 1차 진료소에서도 호흡기 증상 환자 분류 등 감염 예방∙통제 조치가 시행됐다. © MSF/Daniella Ritzau-Reid
우키아 난민 캠프 인근에는 세 채의 숙소가 있었는데, 동료 2명이 코로나19 확진이 되면서 같은 숙소에 살던 모든 사람이 자가격리에 들어가고, 숙소 두 채 전체가 격리됐어요. 제가 있던 나머지 한 채만 이동이 가능해서 격리된 동료들을 위해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필요한 물품도 사다 주면서 돌봐야 한 적도 있습니다. 이미 봉쇄가 시작된 이후였는데, 앞으로 더 강도 높은 봉쇄가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봉쇄가 시작되기 전날 근무를 마치고 콕스바자르에 식료품을 사러 가서는 남은 빵을 몽땅 쓸어 담아 왔던 기억이 나네요.
한국에서는 봉쇄라는 걸 경험하지 못했고, 예전에 콕스바자르에서 같이 살던 친구가 지난 봉쇄 조치가 내려졌을 때 어땠는지 너무 무섭게 이야기해서 두렵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지만, 막상 닥치니 또 어떻게든 살아지더라구요. (웃음)
다만 봉쇄 기간 동안에는 도시간 이동이 제한되고, 현지직원들은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준비한 차량으로만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에, 업무시간이 단축되는 등 일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죠. 한 번은 결혼을 하는 현지 동료 약사가 있었는데, 결혼식에도 갈 수가 없어서 결혼식이 끝난 다음 동료가 따로 집에 초대해주어서 따로 축하하는 자리를 가지기도 했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저는 방글라데시에 있는 로힝야 난민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젝트에 약국 총책임자로 일했습니다. 방글라데시 보건부와의 협력 프로젝트로 콕스바자르에 있는 병원의 방역 부문을 지원하기도 했는데요,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된 이후 감염 예방에 초점을 맞춰 병원의 방역을 지원했습니다.
제가 맡은 업무는 모든 의약품과 관련한 업무를 책임 지도, 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약품의 품질 관리와 공급이 주업무였고, 이번 활동은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이었던 만큼 마스크, 손 세정제 등 방역 물품의 품질 관리와 공급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최정윤 활동가가 활동한 잠톨리 난민 캠프의 한 보건소. 이 보건소에서는 의료서비스가 부족한 로힝야 난민을 위해 응급실과 외래 진료, 산과 및 정신건강 진료를 제공하며, 보건증진 활동도 진행한다. © Anthony Kwan/MSF
하루 일과는 어땠나요?
코로나19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는데요, 숙소에서도, 국경없는의사회가 운영하는 병원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면서 재택근무를 해야 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보통 아침 8시 업무 시작과 동시에 밀린 이메일을 확인하고, 의약품 창고로 가서 약품 공급 현황 등을 파악한 다음, 9시 30분 정기셔틀을 이용해 병원으로 갑니다. 현지 직원과 서로 업무를 확인하고, 2시에 다시 정기셔틀로 숙소로 돌아오거나 의약품 창고로 가서 밀린 업무를 보기도 했습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같이 일했던 동료 의사가 “윤(활동지에서 사용하는 이름)이 이곳에 온 이후 약국이 10배는 좋아졌다”라고 말해줬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열심히 했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습니다.
우키아를 떠나기 전 마지막 날에는 병원 약제과 직원들이 숙소를 방문에 함께 옥상에서 조산사 동료가 협찬(?)해준 콜라와 직원들이 사온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먹으면서 조촐한 송별회를 했는데, 무척 뭉클했답니다.
병원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호흡기 환자 약 투입구에 아무런 보호막이 없어서 감염에 취약했다. 한국에서 봤던 플라스틱 가림막을 설치하도록 해서 마침내 설치된 모습. © Choi Jeong Yoon/MSF
숙소는 어땠나요? 봉쇄 기간 동안에는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콕스바자르의 숙소는 아파트였는데, 덥고 습한 방글라데시 날씨 속에 다행히 숙소에는 에어컨이 있어서 아주 쾌적했답니다. 다른 국제 비정부단체(INGO) 직원들도 여럿 사는 아파트였어요.
콕스바자르 숙소에서 사용한 방. © Choi Jeong Yoon/MSF
우키아로 옮긴 다음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생활했는데, 주변에 열대 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마치 리조트에 와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제 방에 에어컨이 설치되어있지 않아서 손수건이 필수품이었습니다. 땀 흘리면서 밥 먹고, 땀 흘리면서 한국 프로그램 시청하면서, 여가시간을 보냈죠. (웃음)
숙소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봉쇄가 시작된 이후에는 주로 방에서 TV 프로그램과 함께 혼자 밥을 먹어야 했죠. 맞은편 방을 쓰는 케냐 출신의 조산사 동료와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옥상에 올라가 엄격한 방역수칙에 따라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웃음), 함께 술도 마시고 음악도 듣고 춤도 추는 게 유일한 스트레스 탈출구였습니다.
현지 약사 동료의 가족이 선물해 준 코코넛. © Choi Jeong Yoon/MSF
다음 계획은 무엇인가요?
7월 중 레바논으로 다시 파견을 떠납니다. 출국 전까지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먹고 싶은 것도 맘껏 먹고, 요리도 하고 산도 타면서 여유롭게 보내고 싶은데… 잔여백신 신청 때문에 하루 종일 휴대폰만 들여다봐야 해서 안타깝습니다.
예비 활동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요?
마음을 비우고, 항상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면서 활동지에 가면 견디기가 쉬울 겁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적성에 맞아야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함께 즐겁게 일할 활동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첫댓글 보람된일...
해보고 싶긴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