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이 조금 덮인 하늘 덕에 강렬한 태양은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자전거로 집에서 출발하였다.
나비야 청산가자에는 목요산우회 회원 9명(월봉 산해 삼정 석당 춘강 아석 월전 밝뫼 인광 등)이 모였다. 춘강의 얼굴을 본지 거의 3주가 된 듯한데 학회 세미나를 간 김에 스페인 관광까지 마쳤는데 특별한 이야기는, 쉽게 일어날 수 없는 정말 특별한 사연이었다. 스페인에서 암벽등반을 하다가 휴대폰을 잃어버렸는데, 타고 있던 선박의 볼링장에 근무하는 어느 흑인 여인이 주워서, 습득물 신고센터에 맡겨놓은 것을 찾았고, 그 인연으로 그 이방인 여인과 분홍빛 Something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는데, 내가 작년 중국 신강성 여행 때, 사막에서 자동차 트레킹을 하다가 춘강처럼 휴대폰을 잃어버렸었지만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었는데, 역시 춘강은 억수로 재수 좋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목적지를 편백 숲으로 정하고, 돌아올 시각은 12시로 정한 다음, 10시 30분이 지난 뒤 산행을 시작하였다.
광덕사 입구에서 편백 숲으로 방향을 잡고 언덕을 올랐다. 하늘에는 하얀 구름조각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어서 기온은 비교적 서늘하였다. 편백 숲 아래 옛날 수원지였던 자리에도 작년에는 바닥이 하늘을 보고 있었는데, 올해는 물이 방방하게 채워져 있었다. 편백 숲으로 가는 코스는 골짜기가 둘이다. 중앙 숲으로 가려면 한 번 더 구비를 돌아가야 하였지만, 오늘은 전과 달리 중앙의 큰 숲으로 가기 전에, 전에 가 보지 않았던 왼쪽의 작은 골짜기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처음으로 가보는 왼쪽 골짜기의 모습은 조금 생소하였다. 길목 곳곳에 쓰러진 나무들이 길을 가로 막고 있거나 산언덕에도 넘어져 죽은 나무들이 시체처럼 길게 누워 있었다. 얼마쯤 올라가다가 편백 통나무로 만들어진 벤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였다. 어김없이 산해가 등짐에서 내 놓은 수제 녹차를 한 잔씩 나누어 마셨다. 시원한 녹차 물이 뜨거운 내장으로 스며들어가는 것을 느길 수 있었다.
다시 산행을 시작하여 우리가 지나왔던 골짜기를 감싸고 있는 산등성이 중턱에 이르러서 오른쪽에 있는 편백 숲으로 넘어가다가 한 번 더 벤치에서 쉬었다.
11시쯤 오른쪽 큰 숲으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편백 큰 숲에는 아직 더위가 한창이 아니라 피서객들이 몰려오지 않아서인지, 숲 특유의 청량한 기운이 우리 일행을 포근히 감싸 안아 보듬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유치원생들이 와서 놀다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무등산 국립공원의 한 직원이 줄에 매달아 놓았던 대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물건들(리듬악기)을 거두고 있었다. 왠 물건들이냐고 물었더니, 국립공원에서 광주시내에 있는 많은 유치원들 중에서 십여 개의 유치원들을 골라 초청하여, 어려서부터 숲을 사랑하게 하는 체험행사를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그 체험 행사를 하고 나서 시설을 철거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12시경에 우리는 다시 ‘나비야 청산가자’에 모였다. 오늘의 자리는 춘강이 자신의 희수연(喜壽宴, 77세)을 하겠다고 자청하여 마련된 자리였다. 우리는 춘강의 만수무강을 빌면서 건배하였다. 건배는 춘강의 제자가 직접 제조하고 포장하여 선물해 준 복분자주를 잔에 채워서 높이 들었다. 우연히도 춘강을 비롯하여 월봉 삼정 아석 등 4사람이 모두 임오년 섣달 생이다. 춘강이 오늘이 생일이라고 한 것은 그냥 베풀고 자축하고 싶어서 희수연을 자청한 것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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