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오디오와 컴퓨터 원문보기 글쓴이: 管韻
01.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2020년)
탈레반(Taliban)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다. 이름의 기원은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라는 의미로, 아랍어원의 단어 탈리브(طالب) 의 주격 복수 형태다. 흔히 탈레반을 아랍어 단어로 착각하고 있지만 '탈리반'은 아랍어로 '학생 2명'이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탈레반 조직을 파키스탄 북부 및 아프가니스탄 남부 파슈툰족 거주 지역에 산재한 마드라싸의 교육 체계를 이수한 신학생들이 내전으로 인해 막장 상황이었던 아프가니스탄에 내전을 무력으로 종식시키고 이슬람 신정국가 건설을 위해 결성한 단체였고, 이들이 자기들의 단체 이름을 '학생들'이라는 의미인 '탈레반'으로 명명했기 때문이다. 막장 상황을 종식시키겠다고 들고 일어나서 지금까지 막장 상황을 만들고 있는 것은 함정이다.
대체적으로 파슈툰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며, 이슬람 이전부터 있어왔던 파슈툰족 전통 교리인 파슈툰왈리(پښتونوالی)와 자기들이 해석한 이슬람 율법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는다.
초기에는 비교적 상식적인 이슬람 율법 적용과 엄정한 규율, 파슈툰족 사이의 혐하자라족 감정을 등에 업고 오랜 전쟁과 기존정부의 무능에 지친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아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 국토 상당 지역을 점령하면서부터 빠르게 미쳐가더니 순식간에 반인륜적 무리로 돌변했다. 그리고 현재는 이들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이 엉망인 상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식적으로는 이슬람 순니파 하나피파에 속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이비 종파라고 보면 된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하나피파는 하나피파의 기원이 되는 아부 하니파부터가 "여성 환자가 남성 의사에게 진료받는 중 신체 일부를 노출해도 상관없다"는 율법 해석을 내렸음에도 불구, 탈레반은 "여성은 의사가 돼서도 안 되고 남성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안 된다"는 사이비 파트와를 내렸다. 심지어 중세시대 파슈툰족 관습법보다도 퇴보한 점이 많은데, 파슈툰왈리에서는 '불의를 보면 참지 말고 적극적으로 저지하라'는 구절이 있는데, 문제는 탈레반은 파슈툰족 여자와 다른 부족의 남자가 결혼하는 것을 불의로 여겨서 여자를 죽인다. 파슈툰왈리에서는 '여성의 명예를 수호하고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 여자를 죽이는 것은 율법을 어기는 일이지만, 정작 탈레반 정권 당시 운전 중 실수로 부르카를 입은 상태에서 팔을 약간 노출한 여성이 근본주의자에게 맞아죽은 일이 있었으나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라크 내전 이전까지는 알 카에다와 함께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그 범위가 범세계적이며 가장 위험한 테러 단체로 손꼽혔다. 비록 다에시와 그들의 따까리를 자처하면서 준동하기 시작한 보코 하람에 의해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밀려나긴 했지만, 현재도 탈레반은 매우 위험한 조직이며 테러 공격으로 수많은 희생을 초래하고 있다.
탈레반은 모하메드 오마르를 중심으로 결성된 단체이며, 1994년 아프가니스탄 내전 중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구성 멤버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의 무자헤딘 출신, 그 중에서도 남부 파슈툰족 출신들이 모여서 결성되었다. 어떻게 보면 그저 많은 지방군벌 출신으로 보이지만 이들은 처음에는 하자라족 완전 박멸을 주장하며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다. 이런 지지를 바탕으로 전국에 난립하는 군벌들을 하나하나 제압해 가며 혼란스러운 아프가니스탄 내전상황을 종식시키고, 1996년 9월에는 수도 카불에 입성,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90%를 통치하는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선포하며 정권을 수립하기까지 이른다.
정권이 들어서고 나서는 전세계, 심지어 이슬람권 국가들마저 경악할 초강경 샤리아를 펼치며 공포정치를 펼쳤다.
2001년 9월 11일에는 9.11테러를 일으킨 테러단체 알카에다의 수장 오사마 빈라덴의 인도를 요구한 미국의 요청을 거부하다가 결국에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발발, 미국의 지원을 받는 북부동맹에게 전세가 역전, 아프가니스탄 남부로 쫓겨나거나 많은 수가 파키스탄으로 도망을 갔다.
2003년은 탈레반에게는 천운의 기회였는데, 이라크 전쟁이 터지며 미국의 관심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라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북부동맹 출신의 내각은 단결이 잘 되지 않았으며 무능하고 부패했기에 탈레반은 다시 세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계 탈레반
이슬람 원리주의를 믿으며 무력을 사용하여 극단적인 신정일치 종교 사회를 창조하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경전(쿠란과 샤리아)을 현실정치에 적용한다면서도 막상 쿠란의 뜻 자체를 곡해하고 온갖 비도덕하고 비인간적인 만행을 일삼는 것이 이들의 실상이다. 게다가 일부는 쿠란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1999년 한겨레 신문사의 정문태 기자가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모하메드 오마르를 만났을 때 탈레반의 꼴통스러움을 여과 없이 보였다. 정 기자가 쿠란을 공부하여 반박했는데, 결국 말이 막힌 오마르는 "무슬림도 아니면서!"라고 버럭거리곤 말문을 막고 나가라고 했다. 정 기자도 책자에서 "오마르 그놈을 만나 이야기해보니, 제대로 미친 광신도였다"라고 혐오감을 감추지 않고 비난했다. 무슬림 지인들에게 이 일을 말하자 그들도 "탈레반이 그만큼 미친 놈들이다"라고 이해해줬을 지경이라고 했으니.
덕분에 주류 이슬람 세력에게도 이들은 반쯤 이단시당하며, 성직자를 중심으로 한 정권 구성을 추구하는 이들의 사상은 태반이 왕정인 아랍 이슬람 국가들에게 외면당했고, 이란은 시아파가 국교였기 때문에 수니파 꼴통인 이들을 멀리했다. 단순히 소원한 관계가 아닌 말 그대로 적대 관계로 이란은 아프간 전쟁 때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묵사발내는 꼴을 보고서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람보 3에서 나오는 무자헤딘들처럼 탈레반이 소련과 싸운 독립투사라는 잘못된 인식이 국내에서 횡행한 바 없지 않으며, 탈레반들도 그렇게 주장하지만 소련과 싸운 것은 탈레반 총사령관 <믿음의 군주> 물라 오마르 뿐이며, 탈레반 조직 자체는 무자헤딘 연립정부 결성 이후 파키스탄 부족 지역에서부터 세를 확장하기 시작한 신생 조직이다. 사용하는 무기는 소련 침공 때 미국이 지원해준 미군의 제식병기들로 미국으로서는 자기들이 준 무기 가지고 자기들이 당하고 있는 상당히 난감한 상황.
1994년 내전에 빠진 무자헤딘 연립 정권을 각개격파하는 방식으로 1996년 수도 카불까지 장악하는 등 아프간 영토의 80%를 수중에 넣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을 세웠으나, 어디까지나 파슈툰족이 주류를 차지하는 아프간 남부의 칸다하르를 중심으로 제압했을 뿐 우즈베크인과 타지크인, 하자라족이 주류를 이루는 북부 일부는 끝내 점령하지 못했으며, 이렇게 소수민족들이 무장한 세력을 통틀어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이라고 불렀다. 2001년 당시 UN 의석은 여전히 북부동맹 정부가 가지고 있었지만, 탈레반 정권은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대사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9.11 테러 직후 단교당했다.
파키스탄계 탈레반
파키스탄 서북부 지역 중에서 오직 초록색만이 정부에 의해 완전히 통제되는 지역이다. 이것을 보면 사실상 수도인 이슬라마바드 근처만 제외한 서북부 지역은 탈레반의 영토나 다름없다.
사실 탈레반의 지지 기반인 파슈툰족이 아프가니스탄에만 사는 게 아니라 파키스탄 서북부에도 살기에, 아프가니스탄에서 한 번 축출된 이후에는 다시 세력을 모아서 파키스탄 서북부를 장악했다. 사실 파키스탄과 탈레반의 밀월 관계 역시 반쯤 사실이었던지라 파키스탄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 성전하러 간다든지, 아프간 탈레반들을 숨겨준다든지 하는 일도 많았다.
해당 지역은 파키스탄 정부의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며, 주민들마저 반정부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사실 파키스탄 건국 이래 해당 지역이 늘 소외되어온터라 주민들이 정부에게 반감이 큰 것도 있다.
여기도 종교적으로 미친 놈들인지라 파키스탄 탈레반에서는 서구식 학교를 전부 폐쇄하며 여자들은 집 밖에도 못 나오게 하고, 심지어 탈레반에 동조하는 여성들을 부르카를 씌우고 앞장세워 서양 물품들을 파는 가게를 "이슬람을 타락시킨다"며(...) 우루루 몰려들어 파괴하고 다니는 미친 짓을 벌인다.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집에서 뛰쳐나온 일부 여성들은 파키스탄 탈레반에 의한 위협을 피해서 하루하루 숨 죽이며 살아가는 지경이다.
거기다 이 정도 협박과 폭력에 그치치 않고 각종 영상매체 상점, 전통 음악인들과 가수들, 서구식 상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문 닫으라고 협박 편지를 보내며, 극장과 서구식 전자제품 가게 등지에 폭탄 테러를 해대고, 심지어 가정용 텔레비전조차도 샤리아에 어긋난다며 금지시키려 하기도 한다(!). 2007년에는 아프가니스탄 국경에 있는 스와트 주에서 탈레반이 득세하며 이젠 소아마비 예방접종도 서구의 산물이라고 금지하라는 막장을 과시했다. 그러나 이건 부모들이 "아이들을 죽이는 짓"이라고 결사반대했고, 탈레반 내부에서도 '아니 우리 아이들도 아플 수 있는데 이건 뭐야?'라고 반발이 거세서 이 부분에서만 물러났다. 사실 이건 탈레반 전체가 아니라 일명 라디오 물라라고 하는 탈레반 이름을 내세운 또라이 일부가 하던 주장이라, 파키스탄 탈레반 내에서도 "아이들을 죽이려고 작정했냐"며 반발이 거셌다고.
뿐만 아니라 파키스탄 정부의 지원까지 은밀히 받고 있다. 실제로 파키스탄이 카슈미르 무장 분쟁에 투입하기 위해 만든 여러 개의 무장단체가 탈레반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빈 라덴의 휴대전화에서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의 수장들과 통화한 내역이 나왔다. 미국은 당시 파키스탄 정부에 항의했지만 파키스탄은 무시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으로서도 별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이들 지역을 파키스탄군이 공격하자면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 같은 꼴로 내전이 벌어진다.
파키스탄 정보부가 아프가니스탄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 탈레반을 비롯한 여러 무장단체를 지원하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들고 나온다면 보급로가 끊기고, 탈레반에 대한 지원 역시 더 많아질 것이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은 탈레반이 파키스탄에 위협적인 존재임을 계속 강조하며 파키스탄이 미국에 협력할 것을 계속 주문하고 있다.
사실 이 파키스탄 탈레반이 가장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파키스탄 정부가 전복되고 탈레반의 파키스탄이 건국되기라도 하는 날에는 파키스탄의 핵무기와 기술이 탈레반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여태까지 해왔던 테러와는 차원이 다른 핵테러 같은 것을 계획하고 행동에 옮길 수도 있기 때문에, 서방세계와 인도 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위험해진다. 같은 이슬람 국가조차 등지고 자기들만 정의라고 외치는 미치광이들이 전세계를 핵으로 심판하겠다고 떠드는 상황을 생각해보자. 탈레반의 거점은 거진 다 지하나 오지에 꽁꽁 숨겨져있는데다 점조직 형태로 널리 퍼져있기 때문에, 설령 핵으로 보복하려고 해도 어느 지역에 어떻게 보복해야 할지 마땅치가 않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파키스탄의 핵이 탈레반에게 탈취당하는 상황은 굉장히 골때리는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2001년 3월 9일 전세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였다. 이교도 잔재 청산이 명분이었는데, 이는 레콘키스타 당시 스페인/포르투갈이라는 골수 가톨릭 국가들이 이슬람 문화유산인 알 함브라 궁전이나 메스키타 등에도 하지 않았던 짓거리로 엄연한 문화재 반달리즘이다.
사실 탈레반이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같은 나라의 와하브파 성향 수니파 나라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면서도 이슬람 기준으로 소위 '완벽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으로는 인정 못 받는 게 바미안 석불 파괴 때문인데, 이슬람 이전 문물은 존중해주는 쿠란의 교리를 우상 파괴 교리를 앞세워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간에도 불교 문화가 스쳐지나간 흔적으로 암벽에 조각한 석불들이 남아있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했는데, 이 불상들을 탈레반이 죄다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버리는 장면을 CNN에서 포착했던 것이다. 동굴 내 불화도 전부 화염 방사기로 반달해버리는 것은 물론, 아프가니스탄 박물관 내에 있는 유적들을 도끼로 박살내서 사막에 갖다버렸는데, 당시 박물관 직원들이 필사적으로 뜯어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문맹이 많았던 탈레반 대원들이 이를 듣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이전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게 탈레반의 실상이었지만, 이를 계기로 전세계가 탈레반의 악랄한 실상을 똑똑히 보게 된다. 사실 잘 보면 불상 폭파되기 전 사진에서도 얼굴이 이미 반쯤 날아가 있는데, 19세기 이전부터 이 지방을 지배한 독실한 무슬림들은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했다. 유명한 것은 무굴 제국의 이슬람 광신도 황제로 유명한 아우랑제브로, 무려 대포를 쏴서 바미안 석불을 날려버리려고 했다. 몇 번 그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팔, 다리, 머리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면 가즈니 왕국의 투르크인 정복자 무함마드도 이를 날려버리려 했다.
다시 말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탈레반은 위대한 황제 아우랑제브도 부수지 못한 석불을 날려버리는 대단한 오랜 숙원 위업을 달성한 것.
탈레반 정권이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려 한다는 소식이 나오자 대영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비롯한 몇몇 대형 박물관은 "돈을 주고 사겠다"고 애원했지만 소용 없었다.
그리고 세계불교도연맹이나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물론 태국이나 스리랑카 같은 불교 국가들은 일제히 비난 성명을 냈다. 불교 전통이 깊은 일본에서도 "석불을 파괴하지 마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슬람 국가들도 파괴하지 말 것을 탄원했고, 후원자인 파키스탄도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게다가 스스로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이란도 "제발 이슬람 이미지 그만 말아 먹으라"고 했지만 쇠 귀에 경 읽기였다. 결국 이란 정부는 공식적으로 "탈레반은 사이비 종교이다"라고 선포했다. 사실 이란에도 쿠샨 왕조 시절 불교 흔적들과 페르시아 시절 조로아스터교 흔적이 많고, 지금도 이란 중부의 야즈드에는 조로아스터교가 남아 있으며, 야즈드 조로아스터교도나 북부의 아르메니아 정교회 신자들은 호메이니 정부가 들어서고도 전혀 박해받지 않았다. 아예 아르메니아인들은 이란 상류층을 차지하기까지 했다. 애초 그 호메이니조차 페르시아 전통을 없애려다 페르시아 자부심이 가득한 이란인들에게 넌씨눈 소리나 듣고 까였던 그런 나라가 이란이다. 그러니 이란은 종파도 다르고 자신들을 사이비 취급하며 호전, 배타적인 탈레반과 손절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란과 아프간은 탈레반이 무너지는 2001년 이전까지 적대 관계를 유지했고, 지금도 사이가 좋지 않다.
폭파 이후에 중국과 일본은 공식 성명을 통해서 이 만행을 규탄했고, 유네스코와 유럽연합도 비난을 쏟아부었지만, 탈레반은 "돌과 바위 좀 부쉈는데 왜들 저리 호들갑이지?"라고 세계의 반응에 매우 의아해했다. 그리고 자신들을 국제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인정해줄 것을 촉구하며 바미안뿐만 아니라 아프간 전역의 모든 불상을 때려부쉈다.
이 때 탈레반 내부에서도 극렬주의자들을 빼면 '이건 역사에 죄를 짓는 미친 짓이야'라고 혀를 내둘렀지만 그들의 주장은 철저히 묵살되었다.
그리고 탈레반은 파괴된 현장에 기자들을 불러놓고 자랑하는 지거리를 했다. 더 웃기는 건 이런 돌상 파편 조각을 해외 불상 수집가들이 돈 주고 산다니까 몰래 빼돌려 일부를 팔아버린 탈레반도 있다는 것.
모하마드 오마르의 변명에 의하면 "사실 어차피 아프가니스탄에 불교도가 남아있는 것도 아니니 처음부터 파괴할 생각은 없었는데, 서양인들이 민중보다 석불에 더 신경쓰는 것 같아서 파괴했다"고 했는데 말도 안되는 소리다. 사실 아프가니스탄에도 극소수 불교도와 힌두교도, 시크교도가 엄연히 남아있었고, 그들은 노란색 터번을 쓰라고 강요당하며 차별받았다. 그래서 인도로 도망가거나 한 사람도 많았다. 시아파 무슬림도 차별은 마찬가지라, 수니파 파슈툰인들의 터번과 다른 색상과 모양의 터번을 강요당하고 북부 일대 거주지를 벗어나지 못하게 억눌렸었다. 몽골계 유목민족 튀르크계가 대게 시아파인지라 아리아계 백인종인 파슈툰인과는 인종 차이까지 더해져 더욱 차별받았다.
이런 막장 문화재 파괴 행위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해외에서 떠돌아다니는 국보급 유물도 상당하다. 그 중 한 예로 신라 금관과 유사한 양식성으로 주목된 틸랴테페 금관을 비롯한 고대 아프가니스탄 유물들. 이 유물들은 수십 개 국가를 떠돌고 있는데, 2016년에는 한국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되었고 현재는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전시된다.
그 중에서도 인권침해 부분이 극심했는데, 수니파 이슬람 이외의 모든 종교를 탄압한 것은 물론 모든 언론과 방송이 중단되고, TV와 라디오는 오로지 한 채널로 24시간 쿠란만 방송하게 되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에서부터 아래에서 설명할 온갖 막장 세계가 현실이 되었다. 이러니까 결국 미군이 카불에 들어섰을 때 시민들은 탈레반이 카불을 지배한 1996년부터 몰래 숨겨둔 인도 드라마, 인도 영화 및 이란 영화 녹화본과 주변 나라들인 인도, 파키스탄 연예인 사진을 다시 팔았다. 진짜다. 아프간도 인도문화권이라 인도 발리우드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고 이웃 이란 영화도 인기였는데 탈레반이 영화 자체를 못 보게 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제외한 모든 대중 매체, 타종교, 대중문화, 가치관, 인권, 복식 등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자유를 모조리 금지했다.
이들의 막장행각은 인류사에 둘도 없다고 할 정도인데 노래, 춤, 카드놀이, 체스, 영화 감상, 화장품, 장신구 착용, 그림 그리는 것까지 모두 금지되었다. 영화나 그림은 형상을 묘사한 것이니 우상숭배라는 또라이 같은 논리를 폈는데, 심지어 아랍어로 그림처럼 그리는 대중문화인 핫(Hat)조차도 금지했다. 천여 년 동안 이슬람권에서 인정받아오던 핫을 금지하면서 대대로 핫을 그리고 새기던 장인들은 격분했지만, 이들도 따르지 않으면 구타 및 구금, 사형을 당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모든 아프간인들이 평생동안 탈레반 정권에 아무 불만없이 사는 실사판 1984(소설)식 사회였다.
서구식 학교와 도서관, 극장, 박물관 등을 모조리 폐쇄하고, 텔레비전과 영화필름 및 문화유산들을 모조리 불태우거나 남김없이 부수고 파괴했으며, CD와 DVD는 거리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불을 질렀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전통 음악가들과 시인들, 예술가들을 모조리 탄압하고 구타하고 처형했다. 이들이 무슨 록 음악 같은 걸 하는 것도 아니고, 중세 이슬람 시기부터 번성했던 시문학이나 전통 음악들을 하는 문화유산 전수자들이자 장인들인데도 탈레반에게는 이들마저 때려죽여야 할 타락한 놈들로 보일 뿐이었다. 심지어 가수들의 무덤에 가서 총을 난사하는 미친 짓도 저질렀다. 절도범들은 전통적 이슬람 형벌에 따라 손목을 잘랐고, 재범일 경우 발목을 잘랐다.
여성의 근로권, 복장 자유권 등 모든 기본적 권리를 박탈하고 의료, 교육, 법률의 권리마저 빼앗았다. 여성이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면 여성 변호사만을 선임할 수 있지만, 여성에 대한 교육이 금지되어 있으므로 여성 변호사가 있을 수가 없고, 여성의 몸은 여성만이 진료할 수 있는데 여성 의사가 있을 수 없는 식이었다. 심지어 남녀공학 학교를 공격하기도 했다. 탈레반은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당시 무자헤딘들에게 거의 망해가는 형국이긴 했지만, 그래도 비이슬람적 사회주의 성향이던 무하마드 나지불라 정권의 여성인권 우대정책으로 인해 카불에는 교육받은 여대생만 8,000명이 있었고, 아프간 내의 의사들의 40%, 공무원들의 50%, 교사의 70% 가량이 여성이었는데, 탈레반들은 이들의 일과 학업을 모조리 강제 중단시키고 집에만 있기를 총칼로 강요했다. 당연히 말할 것도 없이 이들 여성들은 모조리 빈민층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부르카를 여성들에게 무조건 강제로 입게 하고, 안 입으면 사형시킨 것도 모자라 여성 혼자 밖에 나가는 것조차 금지했다. 남자 가족과 동행하지 않고 혼자서 돌아다니는 여자는 부르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개 패듯이 구타하는 게 일상이었다. 또 여성이 매니큐어를 칠하다 걸리면 손가락을 잘랐다. 남자들에게도 아프간 이슬람식 전통 복장과 터번을 강요했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남에게 말을 걸거나 웃어도 처벌을 받기가 일쑤였다.
국민들의 1인당 소득율은 단연코 전세계 최하위를 달렸고, 법률 또한 완벽히 마비되어 이슬람 샤리아의 전통적인 형벌들이 법률을 대신했다. 심지어 아이들이 하늘에 연을 날리는 것조차도 '알라의 하늘을 더럽힌다'며 처벌 대상이었다고 한다. 연날리기하다가 걸려서 맞아 죽은 아이들까지 실제로 있었다. 또한 현대적인 치약의 사용을 금지했는데, 이유가 가관인 게, 무함마드는 7세기에 현대식 치약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적인 나무뿌리로 양치를 했기 때문에 치약은 비이슬람적이라는, 그야말로 어이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는 이유였다. 실상은 치약조차 제대로 공급이 안 돼서 불만이 나오자 내린 조치다. 탈레반은 "발전소가 없어서 전기가 부족하다"는 불평이 나오자 "선풍기는 사탄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는 파트와도 발표했는데, 나중에 탈레반 정권이 전복되고 나서 보니 탈레반 주요 인사들 집에는 에어컨과 하이파이 스테레오 시스템이 있었고, 모하마드 오마르 집 마당 축사에는 선풍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한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북부동맹 병사가 "오마르가 국민들을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했다"며 분노하는 모습이 잡혔다.
또한 남성들은 일절 수염을 자르지 말아야 했고, 면도하는 이들을 공개처형할 정도로 막가파 살인마들이었다. 최소한 턱 밑으로 주먹 한 줌 정도는 긴 수염이 되어야 처벌을 면했다. 진짜다. 이 때 몽골계 인종인 튀르크계 하자라인 및 키르기즈인 남성들은 몽골계 혈통 상 도저히 인도아리아계 파슈툰인이나 타지크인들처럼 덥수룩한 수염을 못 길러서 이들만 어느 정도 예외 취급을 받았을 뿐이다.
그 밖에도 그때그때 자기들 배알 꼴리는 대로 사람들을 잡아다가 축구 경기장에 몰아넣고 처형하는 게 일상이었다.
관계서적의 증언에 따르면, 광신에 미친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던 1995년에 일어났었던 끔찍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도 있다. 어떤 탈레반 대원이 카불 동물원에 쳐들어가서 곰 우리에 뛰어들어 곰의 코를 잘라버렸다고 한다. 그 이유란 게, "곰은 수염이 짧기 때문에 형벌을 집행했다는" 것. 그런가 하면 또다른 탈레반 대원은 자기들이 원하는 이슬람 샤리아의 지옥도가 카불에서 펼쳐지는 걸 보고 너무나 자신감에 도취되어, 사자 우리에 뛰어들어서 "나는 사자다!"라고 외치다가 사자에게 물려죽었다고 한다. 탈레반은 이 사자에게 수류탄을 던져 눈을 멀게 했고, 코잘린 곰, 눈먼 사자, 늑대 2마리가 당시 카불 동물원에 남아있던 유일한 동물들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대놓고 동물 학대를 저지르는 잔혹함을 보인 것으로 이것이 알려지자 전세계의 공분을 샀다.
이 다큐멘터리는 BBC에서 2018년 카불의 불안한 치안상황을 취재한 영상인데, 영상 13분 17초경에 위 서술에 나왔던, 탈레반 대원을 물어죽이고 수류탄에 눈이 멀었던 사자 이야기가 등장한다. 1995년에 탈레반 대원을 잡아먹었던 해당 사자는 마치 영웅처럼(...) 재건된 카불 동물원 안에 동상까지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이슬람이 가장 패권주의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을 보였던 맘루크 왕조나 오스만 제국의 그리스 식민통치 시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유일하게 허용되는 스포츠가 권투였는데 문제는 면도하면 사형(...)이라 권투 선수들이 면도를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얼굴에 난 상처로 채점하는데 지장이 된다고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OCA)가 이걸 받아주지 않자 아시안 게임도 불참한다.
다른 스포츠는 스포츠 경기는커녕 선수들 생존도 어려운 상황이라, 죄다 망명하거나 살해당했다.
여성 선수는 탈레반에서 금지 정책을 내려 이보다 더 심했으며, 이렇다보니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조차 탈레반의 여성 탄압을 구실로 올림픽 참가를 금지시켰다.
축구는 예외적으로 허용하는데, 축구 경기장 자체를 처형장으로 사용하고, 경기가 있는 날에도 축구 경기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처형을 집행한다. 오히려 사람이 많을 때 처형 장면을 공개함으로써 공포 정치를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
더 황당한 것은 나체의 인간이 그려져있는 의학교과서는 음란물이라고 의학교과서를 모아서 불태워 버리는 바람에, 탈레반 아래에서 공부한 의사들은 책 없이 학교 교수의 기억력과 구전에 의지해서 공부했다고 하는 믿기 힘든 이야기까지 있었다.
사실 어디건 극단주의자들은 이렇긴 하다. 이를테면 더 극단적인 사례로는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가 벌어져서 지식인 계층이 전멸했던 이후 초등학교에서 과학 실험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좀 더 온건한(...) 미국인 목사이자 정치인인 앤소니 컴스탁도 바로 이랬다. 컴스탁 덕분에 19세기 미국에서 해부학 그림을 음란하다고 우편으로 보내는 게 금지되었고, 대학에서조차 이런 의학서적을 금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러다보니 시사 만화로 알몸인 아기를 낳은 임신부도 음란하다고 고소하는 컴스탁이라고 신랄하게 가는 만화까지 나올 지경까지 갔다. 마크 트웨인이나 조지 버너드 쇼, 헨리 제임스 같은 내로라하는 당대 미국 문인들에게 미친 원숭이라느니, 진화가 덜 된 종교쟁이라고 비난받았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는 플라밍고 그리기를 좋아하는 화가에게 플라밍고의 다리가 음란하다고, "플라밍고에게 옷을 입혀 점잖게 만들든가 죽든가를 택일하라"고 고문하는 장면도 나온다.
민간인 처형도 빈번하였고, 변방으로 밀려난 현재도 여전하다. 무고한 비 파슈툰 부족민들을 미국과 협력했다며 학살해 놓고서는 "이슬람을 수호했다"며 자화자찬해서 자기네 사이트에 동영상까지 올린다. 이는 현재진행형 악습이다.
2012년 10월, 탈레반 지배하에서 압제받는 아동 인권, 여성의 교육권 수호를 주장하던 14살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에게 총격을 가해 의식불명의 중태에 빠뜨렸다. 이것은 자신들의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시위 행동을 겸한 보복이었지만 큰 실책이었다. 되려 전세계가 이 행위에 공분했고, 아랍권과 이슬람 세계에서조차 분노의 목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유사프자이는 이후 영국에서 치료받고 생명을 건졌다. 그리고 이 소녀는 2014년 세계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수상과 동시에 각종 극단주의 단체에서 테러 예고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신변에 문제가 생긴 상황. 그녀 말고도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과 친척 일부도 탈레반을 강력하게 비난했으며, 아버지가 운영하던 학교에 대하여 경고 테러를 감행하던 터에 그녀 식구들도 위험했다.
그래서 말랄라와 온 식구와 친척 몇몇도 영국에 이민 가서 거주하면서 말랄라 펀드를 만들어 이슬람 여성교육 확대 및 교육제한 철폐운동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관찰자인 외부에서와 다르게 탈레반을 대하고 살아야 하는 서북부 파키스탄 현지에서 유사프자이에 대한 평가는 갈리는데, "괜한 뻘짓으로 공동체에 화를 불러왔다"는 비난과 "용감한 행동이었다"는 칭찬을 동시에 듣는다. 현지에서는 전자가 더 우세하다. 그 이유는 말랄라가 살던 지역이 바로 위에서 나오는 스와트 주로, 원래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좀 더 보수적이거니와 근본주의자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에 노출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2013년
2013년 6월 22일에는 파키스탄 낭가파르바트 산 베이스 캠프에 총격을 가하여 외국인 9명을 비롯한 등산객들이 목숨을 잃었다. 미군 무인 폭격기의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고 하지만, 애시당초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해쳤다는 점에서 평생까임권만 더 추가됐다. 당시 아시아 산악연맹의 이인정 회장이 파키스탄 정부에 항의하면서 "이런 테러에 대하여 파키스탄 정부 책임이 크다"며, "국제산악연맹과 손잡고 테러위험국가로 파키스탄 등정을 금지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을 정도였다. 이에 파키스탄 장관이 애원하면서 중무장 호위 병력을 낭가파르바트 곳곳에 두며 등산객 안전에 만전을 가하기로 했다.
2014년
2014년 6월 8일, 대담하게도 테러범 10명이 파키스탄의 대도시인 카라치 진나 공항에 폭탄 테러와 로켓, 수류탄 등을 동원하여 테러를 감행, 총 28명이 사망하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탈레반은 미국의 드론 공격과 카라치 공항이 미군의 군수물자를 공급, 관리하는 물류기지의 역할을 하기에 해당 테러를 자행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2014년 9월, 탈레반 대변인이 트위터를 하다가 실수로 위치정보를 노출했는데, 아프간이 아니라 파키스탄 남동부에 있었다.
2014년 10월, 파키스탄계 탈레반 조직 다수가 ISIL에 충성을 맹세하고 병력을 보내기 시작했다. 약 1,500명의 병력이 이미 시리아-이라크로 이동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12월, 파키스탄 페샤와르 주 초등학교에서 이들이 들어와 총격전과 학살극을 벌여 어른 및 아이들이 140여명 이상이 죽거나 다치는 참극이 벌어졌다. 피해자 대다수가 10살 초반 아이들이라 여론이 분노하고 있고, 탈레반도 부랴부랴 "아이들을 제외한 테러를 가하려고 했다"(...)고 변명이나 찌질거렸는데, 이건 뭐 총알이나 폭탄이 어른들만 맞게 할 수 있다고 알라에게 빌었다고 한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그들이 테러를 자행한 곳이 파키스탄군에 부속된 군인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인 점을 볼 때, 그들의 변명과는 달리 고의성이 다분하다. 결국 이 사건 이후로 파키스탄 탈레반은 "앞으로도 파키스탄군이 계속 우리들의 여자와 어린이를 공격한다면, 우리도 공격 대상을 구별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살 기도 입장을 밝혔다.
2014년에도 계속해서 테러를 일으켰으며, 2015년 2월에는 아프간 동부 로가르 주 풀리알람의 경찰서에 자폭 테러를 가해 10명이 사망하고 20명이 부상당했다.
2015년 2월 13일에는 페샤와르의 이슬람 시아파 모스크를 공격해 20명을 죽이고 50명을 부상시켰다.
2015년 3월에도 펀자브 주 라호르 지방의 가톨릭 성당과 개신교 예배당에 연쇄 폭탄 테러를 저질러 90명을 죽였고, 자신들이 이번 공격을 주도했다며 "이슬람 율법 샤리아를 집행하는 활동을 계속하겠다"고 밝혀, 분노한 기독교인 수천명이 폭력적으로 반발 시위까지 벌여대는 참극이 발생했다.
2015년 5월 13일에는 파키스탄의 대도시 카라치에서 탈레반들이 오토바이를 나눠 타고 일반 버스를 강제로 세우게 한 뒤, 버스를 둘러싸고 무차별 총기 난사를 자행해 무고한 민간인 43명이 학살당하고 13명이 부상당했다. 정황상 시아파 예배를 드리러 사원으로 가는 버스를 공격한 것으로 보인다. 계속해서 민간인과 타 종교, 타 종파에 대한 악랄한 공격이 멈추지 않고 있어 국제사회의 공분과 우려를 사고 있다.
2015년 4월 20일에는 탈레반과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가 "하늘 아래 2명의 칼리프가 있을 수 없다"라는 명분으로 서로에게 지하드를 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쌍으로 가지가지 한다
2015년 6월 22일, 수도 카불로 쳐들어가 아프가니스탄 의회 의사당을 공격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 의회 건물 주변에서 6차례 폭발이 발생했으며,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트위터에 "탈레반 조직원 여럿이 의회 건물에 들어가 전투가 진행 중"이라고 글을 올렸다.
탈레반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아프간 정부에 따르면 2년 전인 2013년에 파키스탄 카라치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결국 탈레반이 오마르의 사망 사실을 시인했으며, 새 지도자로 2인자이던 아크타르 물라 만수르를 추대했다.
그러나 오마르의 아들인 야쿠브 오마르가 반발하면서 야쿠브 지지파와 만수르 지지파가 격렬한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역시 막장조직은 항상 내분이 일어나서 망한다
2015년 9월 28일, 탈레반이 미군 침공 이후 14년만에 북부 주요 도시를 장악했다. 공격 개시 12시간만에 학교와 병원, 법원 등을 장악하고 교도소 내 탈레반 수감자들을 석방시키는 등 여전히 깽판을 치고 있다.
10월 1일, 아프간 정부가 쿤두즈를 탈환했다고 밝혔으나 탈레반은 부인하는 등, 아직까지도 혼전의 양상을 거듭하고 있다.
4.10. 2016년
2016년, 파키스탄 탈레반이 부활절을 맞아 어린이 공원에 몰려 축하하고 있던 기독교 신자들을 목표로 폭탄 테러를 저질렀다. 이 끔찍한 공격으로 최소 72명 사망에 300여명이 부상당했다. 희생자들 중에는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공격을 주도한 세력은 파키스탄 탈레반에서 분리되어 나간 강경파 조직인 '자마툴 아흐랄'이 벌인 짓이라고 한다.
2016년 3월 28일에는 아프간 국회의사당에 탈레반이 로켓포 공격을 가했다(!). 다행히 사상자는 없었다고 한다. 막장
그리고 2014년에 취임한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에 강경대응 천명 및 파키스탄도 강경대응에 동참할 것을 발표했다. 2016년 5월 21일에 탈레반 지도자였던 만수르가 미군의 드론 공격으로 사망하면서 아프간전 개입 및 확대를 시작했다.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만수르의 사망은 아프간에 평화를 찾아오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쿤두즈 장악에 이어, 2016년 9월 7일에 아프간 남부의 타린코트을 장악하려고 공세를 넓혀갔다. 하지만 2016년 10월 4일에 아프간 정부는 "나토군의 도움을 받아 탈레반을 몰아내고 쿤두즈를 다시 탈환했다"고 밝혔다.
2016년에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은 9월과 10월에 2차례 만났고, 10월 18일에 카타르에서 비밀리에 평화협상을 재개했다. 하지만 탈레반측은 아프간 정부와 평화협상을 비공개 진행했다는 것을 10월 19일에 부인했다.
2016년 11월 30일에 탈레반이 아프간 정부에 "국가 인프라를 보호하겠다"는 지X주장을 했으나 아프간 정부는 이를 의심했다.
2017년
2017년 4월 18일 파키스탄 탈레반의 대변인 에사눌라 에산이 파키스탄 정부군에 투항했다.
2017년 파키스탄 탈레반 대원 3명이 파키스탄 페샤와르의 농업 교육기관을 총격테러를 가해 학생 12명이 사망하고 35명이 부상당했다. 탈레반 대원 3명은 출동한 파키스탄 경찰과의 총격전에서 모두 사살되었다.
2018년
2018년 2월 12일 파키스탄 탈레반의 2인자 칼리드 마수드가 미군의 무인기 공격에 사살되었다.
2018년 미국 정부는 파키스탄 탈레반 수장에 대해 500만 달러의 현상금을 걸었다.
2018년 2월 21일 아프간 국방부는 "아프간 서부 파라주에 있던 탈레반 은신처를 공습하여 탈레반 사령관 2명을 포함한 32명의 반군을 사살했고, 17명을 부상입혔으며, 그들의 폭탄 수송 차량 2대를 파괴했다"고 발표했다.
2018년 2월 28일에 가니 대통령은 "탈레반을 합법단체로 인정(!)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2018년 3월 4일 미국 국무부는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간의 새 평화협상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2018년 아프가니스탄 정보요원 4명이 동료 16명을 죽이고 탈레반 세력에 합류했다고 한다.
2018년 6월 15일, "파키스탄 탈레반의 수장 물라 파즈룰라가 미군의 드론 공격에 사살되었다"고 아프간 국방부가 발표했다.
2019년
2019년 6월 24일에 "아프간의 탈레반은 아프간 언론들이 우리에 대한 정부의 반아프간 선동보도를 중단하지 않으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격을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탈레반을 캠프 데이빗으로 초청해서 평화 협상을 하려던 계획이 불발되었다. 탈레반이 미군 병사와 민간인들이 희생된 자살 폭탄 테러가 자신들의 행동이라고 주장했기 때문. 그런데다가 탈레반을 미국 영내로 데려오려는 데 반발한 의원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