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 14. 주일예배설교
사도행전 16장 11~15절
앞마당을 넓히자!
■ 요즘은 아파트나 빌라 같은 다세대 주택이 일반적이니 오늘 설교 제목에 나온 ‘마당’이라는 말이 오랜만일 것입니다. 예전에는 마당이 흔했습니다. 앞마당도 있고, 뒷마당도 있었습니다. 뒷마당은 주로 창고 용도로 쓰였고, 앞마당에서는 여러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텃밭, 닭장, 빨래, 세면, 친교 등이 있는 활동 공간이 앞마당이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앞마당으로 그 집의 분위기를 가늠할 수 있었습니다. 밝은지, 어두운지; 생동감이 넘치는지, 그렇지 않은지; 화목한지, 갈등이 있는지; 이웃과 잘 지내는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가늠할 수 있는 공간이 앞마당이었습니다.
이런 의미를 담은 공간인 앞마당을 비유로 삼아, 올해 2024년에 우리 교회가 살아갈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앞마당을 넓히자!>는 이야기인데, 오늘 본문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 줍니다.
■ 바울이 회심한 후 여러 해 동안 신앙과 신학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 후, 그가 받은 사명이 ‘해외 선교’였습니다. 그동안 제자들이 복음 활동했던 곳은 국내인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주로 자기 민족인 유대인을 상대로 복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자 바울을 부르시고, 그에게 해외 선교의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이방인에게로 보내셨습니다. 이 일은 이미 예수님이 승천을 목전에 두고 지시하신 부분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이 지시를 실행할 때가 됐고, 바울이 공식적으로 이 물꼬를 트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외선교사로 파송을 받은 바울은 아시아를 중심으로 선교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시아를 중심으로 선교 확장을 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어느 날 아시아가 아닌 유럽으로 방향을 바꾸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강권으로 유럽으로 방향을 바꾸고 간 곳이 오늘 본문의 빌립보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였습니다. 그런데 루디아는 사전에 만나기로 약속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연고도 없는 그곳에 간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간 그곳에서 안식일을 맞아 기도할 곳을 찾던 중에 루디아와 그 일행을 만난 것입니다. 13~14절입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연고도 없는 빌립보였습니다. 루디아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복음을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그녀와 그녀의 가정과 친척에게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참으로 그녀는 빌립보의 복음화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 우연한 만남이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고, 스쳐가는 관계가 스쳐가는 관계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과 일상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올 2024년도 비전교회의 표어가 <앞마당을 넓히자!>입니다. 이는 우리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내 삶의 자리에서 거룩한 판을 넓혀보자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세 가지입니다.
1. 일상 속에서 스쳐가는 관계들을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2. 그동안 다소 소원했던 관계들을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3.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 표면적으로 보면, 바울에게 루디아 일행은 스쳐가는 관계에 불과했습니다. 단지 안식일에 기도할 마땅한 곳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말 걸기를 한 것이지 다른 뜻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쳐가는 관계에 놀라운 일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14절입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입니다. 스쳐가는 관계에 주님의 터치가 일어난 사실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일상에는 스쳐가는 관계들이 많습니다. 동네 마트, 동네 이웃, 동네 놀이터, 그리고 동네에서 스쳐가는 관계가 제법 됩니다. 이 관계들을 거룩한 마음으로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스쳐지나는 관계이니 함부로 대했기도 했고, 소홀히 대했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러지 말자는 것입니다.
바울과 루디아의 관계가 스쳐가는 관계였지만,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지 않으셨습니까? 의도적 접근도 아니었는데, 주님은 선교라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녀의 마음을 여셨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건을 염두에 두고 혹시나 복음의 역사가 있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주님의 하실 일이고, 우리가 취할 태도는 스쳐가는 관계라도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대하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마당을 넓히자!>는 것의 첫 번째 의미입니다.
■ 이제 <앞마당을 넓히자!>는 것의 두 번째 의미를 나누겠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다소 소원(疏遠)했던 관계들을 돌아보자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사이가 두텁지 않고 거리가 있어서 서먹서먹한 관계들이 있습니다. 그리 큰 비중을 둘 이유가 없는 관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해는 순전히 작은 믿음에 의한 판단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 이후의 사건을 보면, 바울과 실라가 귀신 들린 여자를 고쳐준 일 때문에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일이 소개됩니다.
사실 두 사람은 이 귀신 들린 여자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을 따라 다니며 귀찮게 하는 이 여자가 불편했을 뿐입니다. 물론 이 여자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17절입니다. “그가 바울과 우리를 따라와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틀린 말은 아니죠?
그런데 이 여자는 귀신 들렸기에 이 여자의 행동은 미친 행동이었습니다. 이러기를 여러 날을 따라다니며 한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귀찮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래서 마지못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했고, 그 여자에게서 귀신이 나갔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여자는 너무 행복해졌습니다.
문제는 이 여자의 주인이었습니다. 이 여자를 종으로 부리고 있던 주인은 귀신들린 이 여자가 점쟁이 노릇을 하는 덕에 수입이 꽤 됐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나가자 수입이 끊겼고, 이에 난리를 친 것입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는 영업방해죄로 체포됐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기막힌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밤중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나면서 모든 감옥 문이 저절로 열리고, 옥에 갇힌 사람에게 채워졌던 족쇄들이 다 풀렸습니다. 세상에!
이에 당황한 간수가 자신에게 돌아올 문책을 염려하여 자결하려 했습니다. 바울은 지혜롭게 이를 말렸고, 이에 감동한 간수는 자신을 포함해 온 가족, 친척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했고, 세례를 받게 했습니다. 이로써 든든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데 시작은 귀신 들린 여자였습니다. 관심도 없었고, 귀찮은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에게 비중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이 엄청난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그동안 다소 소원했던 관계들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원했던 것에 주님의 거룩한 일이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앞마당을 넓히자!>는 것의 두 번째 의미입니다.
■ 이제 <앞마당을 넓히자!>는 것의 세 번째 의미를 살펴보죠. 이것은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새로운 관계를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내가 원치 않아도 새로운 관계는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보시다시피, 바울이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났고, 귀신들린 여자를 만났습니다. 계획에 없던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루디아를 통해서 루디아의 집안사람들을 만났습니다. 15절입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계획에 없던 만남이었죠? 그리고 간수의 집안사람들도 만났죠? 이 또한 계획에 없던 만남이었습니다.
결국 이 모든 만남들이 다 새로운 만남/관계입니다. 이것들을 수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왕지사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고 확장하자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일들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빌립보 교회가 들어있었듯이, 비전교회의 미래와 부흥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새로운 관계들을 만들자는 것이 <앞마당을 넓히자!>는 것의 세 번째 의미입니다.
■ 혹시 일명 ‘관계전도’를 하자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을 벌이시는 내 앞마당을 점검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중에 내 사명 중 하나인 ‘영혼 구령’에 대한 사명을 이행하자는 것입니다.
결국 앞마당을 넓히자는 것은, 일상에서, 가정과 직장과 학교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제대로 살자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지난 23년의 세월이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