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자
정현옥
아파트 단지 내 작은 공원 나무의자가 있다
쥐똥나무 단풍나무 대추나무 감나무가
줄지어 바람을 풀어놓는다
새들이 하늘을 끌고 내려와
나무들 속에서 소리로 커진다
단풍나무 아래
머리칼처럼 작은 햇살을 만지는 노인들
쥐똥나무 하얀꽃 성글어진 틈새로
아이들의 웃음소리 쏟아진다
어느 날 내 등에서는 푸른 수액이 돌았다
의자 되기 전 저 나무
산과 산 팽팽하게 떠받들고
흔들리면서 하늘을 키웠을 것이다
길과 길 사이, 아파트 숲 속으로
나무의자가 하늘을 내리고
골짜기보다도 더 깊게 나를 데리고
둥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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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에게 가는 길
햇살을 먹고 나뭇잎이 붉게 물들었다
산자락 낮게 흐르는 바람이 귀를 세운다
수액이 빠져나간 나무에서는 석유 냄새가 난다
생전에 들어보지 못했던 소리
소리들이 말을 달린다
검붉게 타오르는 불을 끄려고
어제는 왼종일 찬비가 내렸지만
만산홍엽을 어쩔 수가 없었나 보다
짧은 치맛자락에서 햇살이 나무들을 들여다본다
소리들이 말을 달리는 동안
내 속의 적혈구는 창틀에 고인
빗방울처럼 아리기만 하다
나는 누군가의 여린 순결보다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길바닥에서도 붉게 타는
화염의 여자가 되고 싶다
나뭇잎에게로 가는 길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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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을 찾아서
플라스틱 소쿠리에는 똬리 튼 채 말라비틀어진 국수가 있다
나는 국수 한 젓가락을 입 속으로 말아 넣으며
하늘을 올려본다 별은 보이지 않는다
어린 시절 모깃불에 피어오르던
마당가 생풀들의 영혼
나와 동생은 멍석에 앉아 국수를 먹었다
막내 동생 오목한 입 속으로 빨려들던 국수가락 끝
후루룩 별들이 따라 들까봐 고개를 젖히곤 했다
다랑이 논에 물대는 소리가
마당까지 들리고, 해질녘 삶아 건진 국수가 허옇게
몸을 불리다 시들해질 때쯤
논물에 찰랑찰랑 별을 담구고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포장마차를 나선다
별들은 하늘을 버리고 어디로 떠난 것일까
아스팔트 바닥에는 딱딱하게 굳어버린 껌들이 붙어 있다
― 2006년 〈시와시학〉신춘문예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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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옥 1959년 경북 예천 출생. 대구간호대학 졸업. 오정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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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자 / 정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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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19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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