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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와 같은 환경 문제는 이제 우리 삶에 실제적 문제가 됐다. 환경 위기에 직접 노출된 이들은 그들 삶의 지속 가능성 문제로 두려워한다. 그들은 교회를 향해 환경 문제에 대한 대책이 있는지를 질문한다. 환경 문제에 대해 기술, 교육, 과학과 경제적 대응의 노력이 있지만 더 깊은 차원에서 보면 이는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에 뿌리를 둔 영적·도덕적 문제다. 결국 환경 위기에 대한 대응의 핵심으로 영적·도덕적 대처가 필요하다. 이제 교회가 이 모든 것을 감당하기 위한 건강한 신학과 기독교적 실천이 필요한 때다. 이를 위해 헌신하여 환경 문제에 대한 견고한 성서적 기초를 다시 확인하며 창조 세계 돌봄을 위한 전 지구적 네트워크를 형성해 활동하는 아로샤의 신학위원장 데이브 부클리스 목사를 만났다.
창조 세계를 향해 아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환경 선교에 뛰어는 그는 성서신학과 생물 다양성이라는 무척 달라 보이는 두 분야를 연결하여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지속적인 연구와 활동을 하며 우리 시대 환경 운동에 성서적 기초와 보다 근원적인 해결의 길을 찾아 제언하는 그를 사순절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지난 2월 21일 비대면으로 만났다.
목사님이 몸담고 계시는 환경 단체인 아로샤(A Rocha)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먼저 ‘A Rocha’라는 단어는 포르투갈어로 ‘바위’라는 뜻으로 제가 일하기 전, 즉 약 40년 전에 포르투갈에서 시작됐고 지금은 약 20개국에서 활동합니다. 현재 저는 아로샤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인도와 필리핀에서 활동하며, 한국에도 이 활동이 생기기를 기대합니다. 만약 사역에 동참하시려면 원격이나 세계 여러 국가에 있는 센터 방문을 통해서 자원봉사로 환경 보존 관련 활동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제적인 야생 동물 조사와 보존에도 참여할 수 있고, 지역사회에서 지원하는 유기농 농업에 참여하기도 하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음식 나눔 사역도 있습니다. 산림 보호 프로젝트나 해안가 지역 센터에서는 석호와 산호초 보호 등 해양 보호 작업도 많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위한 연구 작업 참여도 가능하고 무엇보다 센터에서 지내는 동안 환경보호 관련 주제에 대한 성경을 배우고 토론할 기회가 있습니다. 이 외에도 방문 단체의 요청과 논의로 특별 프로그램도 편성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은 어떤 계기로 환경보호 관련 신학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까?
원래 제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목회자 훈련을 시작할 때 저는 제가 교회 리더로서 평생 살 것이라 생각했고 통문화적 또는 타 문화와의 교류 속에서 사역할 거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일종의 ‘다메섹 경험’을 통해 변화됐습니다. 신학교 시절 아내와 함께 한 작은 섬에 휴가를 갔어요. 아름답고 평화롭고 많은 야생 동물이 살고 있는 곳이었는데, 쓰레기 수거 체계가 없었습니다. 직접 쓰레기를 태우거나 섬 해변 한켠에 갖다 버리는 방식이었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바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혀 예상도 못 하고 기대하지도 못 했던 일인데 당시 제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내가 만든 세상에서 네가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내 기분이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니?”
전에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고 이것이 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습니다. 이는 저를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생각하게 했습니다. 성경은 쓰레기에 대해, 창조물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는지,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지 물었고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성경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만 생각했고 사람 외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 이야기로 읽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과 창조물을 어떻게 생각하시며 보호하시는지 그리스도인으로 창조물에 대한 책임이 무엇인지 등 새로운 질문을 가지고 성경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바로 거기서부터 사역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저서인 《나의 지구를 부탁해》에서 성서와 창조 세계를 하나님이 주신 두 권의 책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신학과 생물 다양성 보존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어떻게 이 두 영역의 연결에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와 이 둘을 어떻게 연결했는지, 그리고 이러한 연결이 왜 오늘 꼭 필요한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아로샤를 통해 과학 분야 동료들과 대화하면서 발견한 사실이 자연의 가치에 대한 논쟁입니다. 예를 들어 자연은 우리가 좋아하거나 유용하기에 가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연 그 자체에 본질적인 가치가 있는지, 또 본질적인 가치가 있다면 그것이 어디에 기인하는지 등의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저는 이에 대해 성경적 대답을 할 준비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과연 성경은 자연의 가치에 대해 뭐라 말하는지, 그 자체로 본질적인 가치를 갖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으로부터 가치를 부여받은 것인지 등을 물으며 박사 과정 연구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데이비드 포드 교수의 지도 아래 다른 신학자들과의 대화, 그리고 아로샤 네트워크를 통해 훌륭한 과학자들의 조언을 받으며 이 모든 논쟁을 하나로 모으려고 했고 이를 성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보며 하나님의 위대한 주권을 보려 했습니다. 이에 창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5가지 개입 방식을 살펴봤습니다.
첫 번째인 창조 그 자체로 하나님은 사람뿐 아니라 모든 창조물을 좋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인 노아를 통해 나타난 언약의 주도성에도 사람뿐만 아니라 땅 위 모든 생물이 포함됐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입니다. ‘육신’으로 표현된 헬라어 ‘사륵스’()에 드러나듯 인간보다 더 광범위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라는 점에서 성육신은 하나님이 ‘피조물’이 되셨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사역은 사실상 모든 피조물을 위한 것입니다. 바울도 골로새서 1:20, 22에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됐다고 확인합니다.
네 번째 위대한 개입은 교회를 탄생시킨 오순절 사건인데 교회와 관련해 바울이 여러 곳에서 주장하듯이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일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의 머리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는 몸 된 교회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창조물에 대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로마서 8:19에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그 하나님의 자녀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피조물이 고대하고 있다는 의미는 교회가 창조 세계를 향한 역할이 있음을 강력하게 말해 줍니다.
성경이 말하는 다섯 번째 위대한 개입은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이때 피조물들은 어떻게 될까요?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심판과 이로 인한 불연속성의 주제가 반복 등장하지만 분명히 ‘회복’의 주제도 있습니다. 구약의 샬롬 평화의 비전, 신약에서 새 창조와 새 하늘과 새 땅을 가리킬 때도 사용하는 단어가 ‘카이노스’() 즉 다시 새롭게 되다 또는 회복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이 물질적 세계가 파괴되고 교체되기보다는 모든 창조물이 정결해지고 구원받고 새로워질 것이라고 시사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창조물을 소중히 여기시고 모든 창조물이 하나님께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하기에 이 모든 것에 대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역할도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통치권과 거룩한 리더십을 통해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를 다스리는 것이지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인간중심주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말씀하신 내용이 더 중요하게 다가옵니다.
창조 세계 돌봄(creation care)은 오늘 우리의 상황과 관계없이 성경적 우선순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성경에 신학적으로 정립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특별한 상황에서 살고 있지요. 실제로 로잔 문서 중에서도 창조 세계 돌봄은 성경의 첫 번째 명령이자 오늘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임을 말합니다. 인구 증가와 자원 소비는 늘어나지만 지구는 그렇게 무한정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고 어느덧 지구상 모든 생명체에 문제가 됐습니다. 이제는 변해야 할 때입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인간이 지구를 원하는 대로 사용할 수 있는 천연자원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구를 주셨고 결정권을 주셨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 결과 어느덧 우리는 이상기후, 생물 다양성 붕괴, 환경오염, 식량 생산 등 여러 측면에서 심각한 위기의 시대를 살고 있고 더 이상 현재의 생활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결국 이를 다루기 위해 신학과 기독교적 실천 대응이 필요합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환경 위기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관련 전문가와 과학자들과의 대화와 협력 사역에 근거해 말씀드린다면 최근 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지구 위험 한계선’(planetary boundaries)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이는 오늘과 다가올 세대까지 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잘 살기 위해서 우리가 넘지 말아야 할 자연적 경계나 천장이 존재함을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현재 9가지의 한계선을 발견했는데 토지 사용, 물 사용, 대기오염, 새로운 화학물질과 이들의 환경 영향 등입니다. 이 9가지에 속하는 것으로 가장 관심을 받는 두 가지는 기후 위기 변화와 생물 다양성 붕괴입니다.
우선 기후 위기는, 지난 200년간 화석연료 사용이 지나치게 증가해 지구대기를 덮고 있는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의 농도가 생명이 번성하기 좋은 상태를 훨씬 넘어서서 지구에 엄청난 두께의 담요를 덮은 꼴이 됐습니다. 빙하와 만년설과 북극 영구 동토층이 녹고 있고 해양의 폭풍우와 사이클론과 허리케인이 증가하고 그 힘이 증폭되며 더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식량 생산과 농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극심한 가뭄과 홍수 같은 기상현상으로 농부들은 더 이상 날씨를 예측할 수 없다고 말하고 식량 재배는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는 미래가 아닌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실은 매우 명확한 권장 사항이 제시되지만 이를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생물 다양성 붕괴를 살펴봅시다. 생물 다양성의 번영과 인간의 번영이 얼마나 깊게 연관됐는지를 인식한 것은 최근 일입니다. 그중 하나가 꿀벌과 같은 꽃가루 매개충의 중요성이지요. 세계의 중요한 식량 작물의 대부분은 꽃가루 매개충에 의존하고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서식지가 손실되거나 살충제의 사용 또 기후변화 등으로 인해 이들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고 결국 인간을 위한 식량 생산에도 실제 위험을 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전 세계 열대우림의 파괴 문제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구 증가로 인한 주거지 확보 차원보다는 그저 더 고급스러운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팜유 생산을 위한 콩 재배나 농작물 재배보다 8배의 토지가 필요한 육우 사육을 위해 등) 일어나는 일입니다. 열대우림의 파괴는 야생동물의 노출과 접촉 증가를 가져오는데 이로 인한 많은 질병과 전염병이 발생합니다. 코로나19도 그렇고 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 에이즈를 초래한 HIV 바이러스도 모두 야생동물에게서 인간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렇게 고유하고 다양하게 존재하던 생물 다양성이 파괴된다는 것, 특히 특정 종을 멸종으로 몰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독특한 예술 작품을 파괴하고 창조자의 지문을 지워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방식이 문제가 되는 듯합니다. 한편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더 많은 힘을 주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힘이 창조 세계를 파괴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기술과 과학의 발전, 또 화석연료 사용 등이 가져다준 이점과 편안함이 있습니다. 더 따뜻하게, 좀 더 부유하고, 기대 수명도 연장해 주는 등의 이로운 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 비용의 대가를 우리와 미래 세대가 치르게 될 것임을 깨닫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이 모든 것을 다시 살피고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기술과 산업을 사용하지만 지구 한계선을 인식하고 미래를 파괴하지 않을지, 어떻게 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지구를 돌볼 수 있을지를 말입니다.
저는 순환 경제 부분에서 한 가지를 제안합니다. 현재 우리는 원자재를 발굴하고 물건을 만들고 사용한 후 버리는 직선형 경제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히 그럴 수 없습니다. 순환 경제는 천연자원을 사용해 무엇인가를 만들 때 그 원자재를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 계속 재사용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이며,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예로, 휴대전화나 노트북을 사용할 때 그저 몇 년 쓰고 새것으로 교체하기보다는 기체 업그레이드나 새 부품의 장착 방식이 가능하지요. 새것을 사야 한다고 해도 기존 기체들이 분해돼 그 안에 다양한 원자재들이 재사용되는 방식으로 제작돼야 합니다.
이러한 순환 경제는 하나님의 창조 계획과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물을 만드셨는가를 살펴보면 자연에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재사용되며 자연 자체가 순환 경제입니다. 요한복음 6:12의 말씀처럼 아무것도 낭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만드신 방법이고 우리가 세상의 자원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기독교계에서 환경 문제를 다룰 때 종종 기존 세상의 환경담론에 기독교적 개념을 몇 개 첨가하는 방식이 많았음을 보게 됩니다. 목사님은 성경적 관점을 보다 근원적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세상의 환경 단체에 동참하고 협력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종종 만나는데 아쉽게도 그들 대부분에게 창조 세계 돌봄에 대한 성경적 기초가 부족합니다. 단지 지구를 걱정하는 마음이지요. 저는 이에 대한 견고한 기초를 갖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 전체의 큰 그림을 보면 하나님은 인간에게만이 아니라 창조 세계 전체에 관심을 두시지요. 특히 저는 이러한 이슈에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1장에서 그리스도가 창조주이며 유지자임을 알려 줍니다. 즉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고 또 십자가를 통해 화평을 이루사 만물이 자기와 화목화게 되기를 기뻐하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저는 환경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 중심적 이해를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 환경 문제를 이해함에 있어서 이것이 영적·도덕적 문제라는 점도 중요합니다. 환경 문제는 과학이나 정치, 기술 등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 뿌리에는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이라는 죄, 즉 영적이고 도덕적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에 대해 영적이고 도덕적인 대응이 필요합니다. 물론 기술적·과학적·교육적·경제적 대응도 필요하지만 먼저는 사람의 마음의 중심이 변화돼야 합니다. 성경적으로 보면 결국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는 회심이라는 근원적 사건이 필요합니다.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가 이 지구가 실은 하나님의 세상이고 우리는 그것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그 소유자가 아닌 것입니다.
종종 교회가 복음을 이해할 때 사람 중심으로만 바라보는 좁은 시각을 나타내고는 합니다. 이런 환경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 어떻게 복음을 재개념화하고 또 증거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제가 나누고자 하는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저는 선교사 부모님의 가르침과 강력한 복음주의 교회에서 자라났습니다. 대학에서도 기독교 단체에서 열심히 활동하며 전도와 제자훈련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만드신 세상에 대해 주님이 어떻게 생각할 것 같냐는 질문은 정말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기독교 복음에 대한 저의 이해가 정말 좁고 편협했음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주님이라 고백하지만 그 깊이는 얼마나 될까요? 복음이 그들 삶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켰나요? 부패 문제, 가정 폭력, 돈과 건강, 그리고 환경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변화시켰나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님이시라면, 우리는 더 깊은 곳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모든 것의 주님이 돼야 합니다. 어디에서든 복음주의 교회가 필요로 하고 기억하고 바라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복음은 예수님께서 모든 것의 주인이심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 관계, 돈과 일, 생활 방식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까지도 포함합니다. 단지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 삶 전체에 관한 것입니다. 그중 창조 세계 돌봄은 우리가 가장 소홀히 여기는 영역입니다. 복음주의자로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성경으로 돌아가자입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중심을 예수님께 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이 주님이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로 묵상한다면 이는 환경 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 또한 변화시킬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복음 전도와 변증적 측면에서도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이제 환경에 대해 열정을 갖고 돌보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기후 절망과 기후 불안을 큰 이슈로 삼고 있습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메시지는 이 모든 상황이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희망은 과학과 교육에 머물지 않고, 예수님 안에 있으며,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헌신으로 인해 우리가 미래에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분이 다시 오실 때 이루실 일을 기대하면서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 노아 시대 창조 세계를 구한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노아를 통해서 하셨지요. 우리도 창조 세계 돌봄을 향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교회도 이를 위해 창조 세계 돌봄을 위한 좋은 설교를 선포해야 하고 좋은 신학을 정립해야 합니다. 교회 생활, 사업, 생활 방식에 변화를 주는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이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아로샤가 하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일들입니다.
영국 아로샤는 생태교회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영국의 6500개 이상의 교회가 여기에 등록돼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예배와 교육을 위한 자료뿐 아니라 난방, 조명, 폐기물 처리 등 가정과 교회가 할 수 있는 일 등 매우 실용적인 아이디어도 제공합니다. 이 모든 것이 복음 증거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태 영성에 대하여 질문드립니다. 진정한 행동은 우리 신앙의 가장 깊은 곳, 바로 영성에서 흘러나온다 하는데 생태적 행동과 생태 영성도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생태적 영성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사람마다 생태적 영성의 의미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기에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어떤 이는 자연을 숭배하려고도 하니까요.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생태 영성은 자연이 아니라 창조주를 예배하는 것입니다. 특히 시편에서 생태 영성을 발견할 수 있는데, 시편 기자는 피조물이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지 나타내며 우리에게도 그러한 예배를 요청합니다. 예수님도 공중의 새와 들의 꽃을 통해 하나님을 먼저 바라보며 걱정하지 않는 삶, 삶의 우선순위 등을 배우게 하시지요. 일종의 생태 영성입니다. 솔로몬의 지혜서에도 동물, 새, 곤충, 심지어 바위에 자라는 식물을 연구하는 것도 포함돼 있음을 봅니다. 자연에 대한 연구와 성찰도 우리 영성의 일부가 돼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새로운 것, 뉴에이지, 또는 이교도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에 있는 내용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은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권의 책을 쓰셨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생태적 영성은 성경과 자연 모두를 바라보고 그들 사이에서 대화하는 것입니다. 저에게 생태학적 영성이란 성경과 자연 모두를 한데 모아 사람들에게 전하고, 결합하는 영성입니다. 이것이 저의 생태적 영성에 대한 정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