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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은 창녕군 영산면(靈山面)
지난번 창녕군의 화왕산 환종주 산행을 하면서 계성면이 아닌 영산면 방향의 구계저수지가 자리하는 영산천 수계인 작약산-함박산 쪽으로 잠시 다녀온다
소 머리를 닮았다는 함박산 이후의 소 이까리 길은 너무 편안하고 이끼 나무아래 연초록의 마삭줄이 집단 서식하는데 이제까지 보아오던 산길과 전혀 다른 별천지로 느껴진 곳이다.
새벽에 일어나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하며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하늘 위에 있어야 할 구름이 심술궂게 내려앉아 오늘 같은 날은 어딜 기어 나가지 말고 집에 있으라! 하는 듯하다
일기예보 검색해 보고 해가 뜰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따리 챙겨 밖으로... 나간다
硯池(연지)
선조들께서 영산 고을에 농사와 화재 예방을 위해서 만든 저수지로 가운데 별을 상징하는 작은 섬 다섯 개가 더 있으며 연지라는 뜻은 벼루를 닮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크고 작은 저수지가 1만 8천 개가 있고 이중에 한국 수자원공사가 관리하는 댐이나 저수지는 3천7백 개가 있다.
영산 쇠머리대기
유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만 적어보면 영산면을 가운데 두고 북, 동쪽에 영축산과 남, 동쪽에 함박산이 있는데 산세가 마치 소(牛)가 마주 보며 불편한 심기로 겨루는 형상을 하고 있어 산살(山煞 :죽일 살)을 풀어줘야 마을의 불행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아 위의 그림과 같은 놀이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오늘 걷는 길에 영축산은 낙동강과 인근의 창녕, 합천, 함안, 의령까지 조망되는 산이나 함박산은 조망은 없다
다만, 소의 이까리(고삐)라 할 수 있는 호국공원까지 1,5KM 길은 여느 둘레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니 가까이에 살고 계시는 분은 한번 찾아도 좋을 것 같다.
자가용은 날머리인 호국공원옆 만년교 인근에 주차하고, 영산면을 가로질러 영축산 아래 보덕사까지 걸어간다.
보덕사로 올라가는 길에 본 날머리의 함박산
보덕사에서 본 창녕군 영산면 방향
구름 아래로는 낙남정맥길에 만날 수 있는 광려산과 함안의 여항산이 구름을 벗어나 있고
130년 된 보덕사
대웅전 법당에 절하고 일어서려니 주지스님께서 잠시 앉아서 이야기 나누다가 가라고 말씀하시어
영축산이나 지금은 폐사된 보림사 유래와 지공선사에 대해서 듣고 일어선다.
길을 걷던 산에 들던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 보다
그곳에 서면 그곳 사람의 향기가 담긴 이야기를 들어야 제맛이다
전각은 대웅전과 산신을 모시는 산신각 그리고 스님이 거처하시는 요사체로 되어있다.
산행길로 오르기 전에 오늘도 무탈한 걸음 되도록 합장하고
신선봉까지 짧은 오름길이 이어지는데 올라 갈수록 잘 보여야 함에도 잘 보이지 않고 안개가 자욱하다.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영산면이 보이는데
안개로 자욱하던 곳이라 순식간에 보여주고 사라진다.
설마 무릉도원?
전날 비가 왔으니
때 빼고 광(光)낸 마을이 훤하구나 싶어진다
신선봉에서 조망이 아쉬울 뿐인데
영축산성길
가야와 신라의 국경이라 신라의 침입을 막고자 가야국에서 쌓은 성으로 둘레는 대략 1,500M 폭은 사진에서 보듯 4M 정도로 넓고 자연 암벽에 주위로 돌을 쌓았다
훗날 임진왜란 때 왜군과 전투를 벌인 곳인데
특별한 승전? 소식은 없다
키 작은 나무들이 빗물을 잔뜩 머금고 있어 간만에 등산화 물 좀 묻힌다.
우리나라 연간 강수량은 1,300MM로 무게로 환산하면 213억㎥이다
가로, 세로, 높이 1m 약 600kg (삼다수 2리터짜리 6개 한묶음 50개는 낱개로는 300개 600kg이며, 84개 한묶음은 1톤)
참고로 바닷물의 량은 13억 8천만 ㎦이고 무게로 따진다면 경이 넘어가니 숫자는 별 의미가 없겠다.
결론은 오늘 등산화에 물 좀 묻힌다는 이야기
영축산 방향으로
신라와 가야 그리고 백제
밥 숟가락만 놓으면 칼 들고 전쟁터로 싸우러 다녔으니 이런 성이 전국에 얼마나 많았겠나
전국에 무려 2천300개가 존재하니 밥 먹고 성 쌓으러 산으로 출근하고... 그러다 칼 들고 전쟁터로 싸우러 가고 전쟁이 없는 날은 허리가 부러지도록 일만 했으니 하루 일과 치고는 좀 빡빡하게 흘러갔을 것 같다.
이 성(城) 다 쌓기 전까지 죽지 마라며 고함치는 감독관의 듣기 싫은 목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영축산 정상에서
오래전 삼국시대에는 수리뫼라 불렀다가 서역(인도)의 승려인 지공선사가 영축산 아래 보림사에 와서 산의 형세가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던 영취산과 닮았다고 해서 영축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동국여지 승람에 나온다.
참고로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스님으로 지공선사께서는 인도 출신,나옹선사는 경북 영덕 창수면,무학 자초대사 합천이 고향인데 한국 불교에 있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분들이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지공선사께서 원나라에 계실 때 나옹선사께서 먼저 찾으셨고 이후에 무학대사께서 지공선사를 찾아 스승으로 모시기도 했다. 이 세분의 부도탑은 양주 회암사에 모셔져 있다.
나옹선사께서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셨던 분이죠
무학대사는 이성계의 왕사셨고
안갯속의 영축산 뒤태는 요염하고 정숙한데
지난주에 왔음에도 뭔가 부족했나 새침하게 돌아앉은 두리뭉실한 여인을 닮았다
그나저나 운해는 언제쯤 없어질런가? 뭐라도 보여야 설명을 하던지 하지..
운해인지 안개인지
세상 모든 만물이 수명대로 꽉 채워 사는 개체가 없듯
짙은 안개도 그수명을 다해 공기로 사라질 것 같다
빗물 머금고 있는 솔잎
바람에 물방울 하나 뚝 떨어지면
그 뒤에 있던 또 다른 물 방울이 그 자리에 맺히고 또 떨어진다.
작은 물방울이지만 우주 최강의 파워 물질인 물이다
고체가 되면 부피가 커지고
표면의 장력이 중력을 이길 수도 있고
그리고 대부분의 물질에 용매 작용을 하고 마지막으로 뭇 생명을 살린다
전날 비가 와서 소나무 기둥은 검은 철갑으로 갈아입어 그 단단함과 묵직함을 전해준다.
삼거리에서
변봉방향
구름은 바람에 의해 서서히 물러가고
화왕산 자락으로 운해가 바람에 의해 물러나는데
마치 땟국물이 줄줄 흘러가는 것 같다
잠시 걸터앉아 쉬기 좋은 곳인데
변봉에서 조망구경이라도 하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생(生)을 지키는 건
늙고 허리가 굽은 소나무가 다 내려놓고 최선을 다하라 하는 것 같고
영산면 구계리 방향의 함박산과 신선봉 방향
지나온 영축산 방향으로
어떤 날은 운해가 산아래 있으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또 어떤날은 파란 하늘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마음은 파란 하늘과 운해를 비빔밥 버무리듯 버무려 산아래 적당한 곳에 뿌려놓아도 좋을 것 같다
변봉 올라가는 길에
설악산이나 지리산에는 산이 높고 웅장하니
키 큰 소나무나 천년 주목나무가 어울리고
덩치가 작은 산에는 등이 굽은 절송( 節松)이 잘 어울린다.
보일 듯 안보일듯한 뿌연 배경과 소나무를 지나
변봉 정상 직전의 암릉
화왕산 방향
지나온 영축산 방향
변봉 정상 가는 길에
변봉
보림사 뒤편 현 변봉 아래에 천하명당터가 있었는데 보림사 사찰의 경내라 묘(墓)를 쓰면 절이 망한다는 전설이 있다
감히 어느 누구에게도 그 땅을 허락하지 않는 땅이건만 고개 넘어 밀양땅의 어느 부잣집에서 이 명당을 가만 둘리 없었던지 기어코 묘(墓)를 쓰고자 했다
절에서는 사찰안에 묘를 쓰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했으나 부잣집에서는 꼭 써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부잣집의 상여가 나가는 날 빈 상여를 앞장 세워 절 입구에서 스님들과 싸우게 하는 한편 몇몇 장정들은 지게에 시체를 짊어지고 다른 길로 가서 명당터에 묘를 썼다
묘는 벌써 쓰였으니 차마 파묘를 하지 못하였고 스님들께서는 궁여지책으로 뒷산 봉우리가 다 덮일 정도의 큰 고깔을 만들어 모자처럼 씌웠는데 이후에 부귀영화를 누릴 줄 알았던 밀양의 부잣집은 고깔 때문에 땅의 기운(氣運)이 다한건지 자손이 생기지 않아 가문(家門)이 쫄딱 망해 버렸고 보림사 역시 임진왜란 때 불타서 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결론은 니죽고 나 죽고 그런 이야긴데 어지간하면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일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제 조망 좋은 구간은 없고 강약을 조절하며 긴 능선길을 걷는다.
능선마다 자욱했던 안개가 서서히 물러나고 뿌연 조망이 아른거린다
열왕지맥길에서 영산면으로 가는 함박산 능선으로 전체적으로 조망은 없으니, 이렇게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가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그나마 함박산 직전의 작약산은 조망이 좋은 곳이다.
구계임도 어디로 가던 열왕지맥길과 만날 수 있는데
걷는 이의 마음이니... 우측 임도길로 가면 보름고개까지 비슷하게 이어진다.
보름고개는 진행하다가 설명하기로 하고
일단 산으로 오른다.
임도길에 알림 표시판으로 송이가 나는 곳이라
가을날은 앞만 보고 가야 즐거운 산행이 이어지겠고
괜히 송이밭으로 들어갔다가 오해라도 산다면 즐거워야 할 산행길은 그야말로 지옥 체험이 될 것 같다.
산에 들면 그게 뭐든 내 것이 아니기에 욕심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임도길 대신 산으로 올라오면 만나는 열왕지맥길의 이정표
안개가 걷히고 이 신선함이란...
조용하던 산길에 지난주에 듣던 그 녀석인가?
홀딱 벗고 새(검은 등 뻐꾸기)가 홀딱벗고 라고 우는지
"어쩔씨구" "어쩔씨구" 라는지 시름도 번뇌도,슬픔도 홀딱벗고 어쩔씨구 어쩔씨구 짧은 봄날 짝 찾아 열심히 운다.
부곡온천 방향으로
등로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이나 조망은 없다.
보름(寶林)고개인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영산면 구계리의 보림사에서 유래된 고개로
세월이 흘러 보림고개에서 부르기 쉬운 보름고개로 바뀐듯하다
지금은 잡초뿐이지만 예전에 창녕 영산 사람들이나 밀양시 무안면 사람들이 넘던 고개로
이고개를 넘어 4km 정도 가면 목탁대신 칼을 든 사명대사의 생가지가 있는데
사명대사께서는 불자(佛者)는 살생(殺生)을 할 수 없다고 하셨지만 조선 장수와 관군(官軍)은 너무 약했고 나라에 믿을 건 의용군(義勇軍)이라 결국 낮에는 칼을 들었고 밤에는 중생을 위해 기도를 드렸다.
종암산 방향으로
정상의 바위가 마치 간장 종지 (그릇)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인데 정상에 가면 바위가 밥상 위에 자리 잡듯 옹기종기 여럿 모여 있다
소 등을 닮은 오르막길에 줄지어선 참나무 군락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놓은 듯 재앙은 없고 깨끗한 이미지만 남아있다
부곡온천 방향
창녕과 밀양땅의 경계인 종암산 정상
정상에서 조망은 서쪽으로만 빼꼼하게 보이고 나머지 방향으로 조망은....
마치 소등짝에 붙은 빈대를 닮은 정상적
어느 누구의 작품인지 멋지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빼곰하게 보이는 함박산 방향
등로는 나름 좋은 편이나 함박산 전위봉인 작약산까지 조망은 일체 없다.
간장 종지와 닮았다는 종암산에서 보는 조망이란 밥상 위에 간장 한 종지와 다를 바 없으니
지맥길에 꼭 올라 보시고
낙동강과 창녕 남지가 보이고 그 뒤로 함안의 묵신우 장군의 전설을 간직한 방어산과 괘방산 라인이고 그뒤로 진주의 광제산이나 어진현자들의 산인 집현산? 그 옆으로 의령의 자굴과 한우가 서있다
이곳 정상에서 50미터 더 진행하면 함박산으로 가는 이정표가 서있다
부곡으로 가는 덕암산... 함박산 방향으로
주의할 곳인데 함박산 가는 방향으로 등로가 좋은 곳은 다시 되돌아가는 길이니 주의하고
함박산 이정표 바로 아래에 희미한 내리막 등로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되겠다.
내리고 오르고 올라온 불조심봉
빨간 머리를 하고 있는 새는 우포늪에 산다는 따오기 모양을 닮아있다.
함박산 방향
작약산에서 본 신선봉에서 영축산 변봉 조망
예전에 없던 정상을 알리는 표지판으로 조망이 좋아서 세워둔 모양이다.
앞은 창녕군 도천면 방향이며 낙동강 건너
무학산 광려산 그리고 여항산-백이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으로 보아고 그 옆으로는 괘방산과 방어산으로 이어진다.
가운데 무릉산과 작대산 방향
좌측은 천주산 우측은 무학산 광려산 방향
무릉산은 정상에 오르면 동쪽으로 조망이 있으나 나머지는 그렇지 못하고 작대산은 조망이 없다.
멀리 불모산 방향이고 가운데 천주산 우측으로 무릉과 작대산 방향
소의 머리에 해당한다는 함박산은 조망이 없음
함박산에서 호국공원 방향으로 진행하며
나무에 이끼를 잔뜩 붙이고 사는 곳을 지난다
처음 몇발째 걸으면서 어라? 지리산 깊은 계곡도 아닌데 이끼가 많이 있네 생각했으나 마루금에 이런 이끼가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이다
등로 빼고 온통 그린 그린하다는 소 이까리 길의 이끼들
금방이라도 숲 속의 아름다운 요정이 나올 것 같은 길이 잠시 이어진다.
등로옆으로는 마삭줄이 자라는데 너무 아름다운 곳이니
이런 길은 거액을 들여도 만들지 못할 것 같다
절벽에 잔도를 내고 험한 바위에 길을 낸다 한들
절대 흉내 내지 못하는 길이 바로 적당한 습(濕)이 만든 이끼 가득한 길
오직 자연만이 만들 수 있는 고운길
이 계절에 짧아도 강열한 인상을 심어준 소 이까리길
종암산에서 5km 진행해서
거의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길인데
가까운데 사시는 분 계시면 추천합니다.
영산 3,1 독립운동 기념비
일제의 폭력적인 무단통치에 맞서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일어나자 영산면에도 애국지사 23인의 결사대가 일제에 항거하여 분연히 일어나니 그때가 3월 13일 이곳 영산면이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남산봉이다.
영산면에서 해마다 3,1일 날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고 한다
잠시 묵념하고
영산 3,1봉화대
영산지역의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이곳 남산에서 횃불을 들고 독립만세를 외친 것을 기념하고자 건립하였다
낙동강 영산지구 전적비
1950년 9월 낙동강 돌출부와 이이목 나루를 건너온 북한군이 창녕군 장마면을 지나 영산면까지 왔으나
미군과 국군은 북한군이 밀양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치열하게 싸워 많은 사상자 내며 낙동강 방어선을 피로써 지키던 곳이다.
돌출부 (박진지구)전투:미군 24사단 9.19,21,34연대
배속부대:국군 17연대.
미해병 임시여단
합계 8천명 (당시 1개 대대병력은 500명 수준)
그리고 북한군
북한군 4사단 17.18연대 총병력 약 7천명
북한군 4사단 거의 궤멸
| 낙동강 방어 목적상 몇 가지 이점 |
| 1.개전 이래 최초로 이루어진 전투 방어선이며 2.서쪽 측면 낙동강은 강폭 400-800m으로 형성되었고 기본 수심 2m-4m 강수면폭 200-400m 형성되어 천연의 방어선 구축 3.낙동강 방어선 안쪽은 거대한 보급창고인 부산으로부터 대구. 포항 영덕. 밀양. 창녕까지 병참선 발달로 보급과 병력 이동에 유리함 |
| 북한의 부산 점령하기 위한 전투 작전 개요 4가지 방안 |
| 1.남강과 낙동강 합류점(창녕 남지교)을 통해서 마산으로 통과하는 방안 2.낙동강 돌출부(박진교)를 통과하여 영산-밀양에서 철도와 도로를 이용하는 방안 3.경부 본도와 5번 국도를 따라 대구를 통과하는 방안 4. 동해안 도로를 따라 남하하는 방안 |
영산면은 조선시대 때 경남 통영에서 마산 진동면 진고개를 지나 함안, 남지, 영산으로 올라오는 주요길이기도 하다.
창녕에 오시면 꼭 구경(九景) 해야 할 곳으로
우포늪, 화왕산, 부곡온천, 남지 개비리길, 산토끼 노래 동산,송현동 고분군,만년교,관룡사가 있으니 둘러보시기 바라고
만년교
아치형의 다리로 정조 4년에 석공(石工) 백진기가 가설하였고 고종 때 영산 현감이 다시 지었다.
최근에 다시 보수를 하였고 다리 위에 걸터앉거나 높이 뛰지 말라는 글이 쓰여있다.
만년교 바로 위에 영산 현감비군(縣監碑群) 32기가 있는데
현감 19기, 군수 2기, 병마사 1기, 관찰사 7기, 암행어사 1기, 좌수 1기 미상 1기로 되어있다.
선정비는 지방관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문자로 기록한 비석으로 유애비, 거사비, 청덕비로도 불리며
비문(碑文)에는 수령의 이름과 공적을 4구 16자로 요약하여 새기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석들을 보고 있으면 진짜로 백성을 아끼려 노력했는지
아니면 마른 오징어 쥐어짜서 물 나오게 하는 방법이라며 백성을 괴롭혔는지
이럴때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고 라고 해야할것 같다
조선시대 전국에는 537개의 역이 있었으며 관리들의 선정비가 있는데 추정치로 대략 6천 기가 있다고 한다.
사진에 보이는분은 울산에 사시면서 전국의 선정비를 연구하시는 대단한 분이시다
암행어사 유석이란분도 있는데 통도사, 법주사. 영천 신령면, 아산 영인면에도 이분의 선정비가 있는데
박문수급의 어사로 활동하신 듯하다
만년교
이 길을 지나는 길 만대까지 편안하고 만대까지 복 받을 것 같다.
짧은 산행을 마치고 조그만 점빵에 들어가 오뎅이라도 하나 사 먹고
콜라라도 한잔 할까 했지만 그것도 아까운 시간이라고 집으로 향한다.
다음 길은 서울의 북한산으로...

첫댓글 예전 만만해서 가끔씩 걸었던길^^ 볼거리 있는 영산 여전히 좋네요
창녕땅에는 볼거리가 꽤 있죠
6,25 격전지를 찾아가며 엄청 돌아 다녔는데
참 많이 배웠던곳입니다.
영축산,변봉,종암산이야 화왕지맥,열왕지맥 걸으면서 지난 길이지만
함박산은 조망으로만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함박산 이후 이끼 가득한 길은 인상적이네요.
이끼가 있을 때 다니러 가볼까 싶기도 하네요.
글 잘보았습니다^^
함박산은 조망은 없구요
다만 날머리 부근의 이끼와 마삭줄은 한번 찾아볼만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소이까리길이라고 했죠
이름도 특이하지만 판타지영화에 나올법한
이끼와 넝쿨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
더 멋지고 환상적입니다.
지맥길을 걸어야하니 저 곳에 가는건
내 선택에 달렸네요....ㅎ
이끼와 마삭줄이 이어지는 등로는 너무 아름다웠구요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찾아 볼만한 곳이라 생각 듭니다.
지맥길에 최선을 다하시구요,안전 산행 하시기 바랍니다.
등산화 젖어 우리나라 강수량과 바닷물 양까지 설명하셨네요 ㅎ
삼국시대 허구헌날 성 쌓고 싸우고 일하고 했었을 것이란 글을 재밌게 읽었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고 두려웠을까요~
방장님의 재미난 옛날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그동안 하천을 하면서 많은 자료를 찾아보고 기억하다 보니
물과 관련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어쩌다 지맥길을 조금 걸을때면 포빛님의 밝은 미소와 가벼운 발걸음을 생각하는데
늘 안전산행 하시기를 기원드리겠습니다.
배경음악 처럼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후기가 빠르게 진행한게 아닌 천천히 진행 하셨을 것 같아! 지도와 걸으신 길을 대조하며 여유롭게 편안하게 후기를 봤습니다. 저도 단순히 정상석 이나 조망만 담지 않고 올라가고 내가가고 지나온 길 앞에 보이는 길을 사진에 담에 그 길을 기억하려고 후기에 남기는데 방장님도 그렇게 하신듯 합니다. 그래서 더 여유를 가지고 보게 되네요! 가본 산이 얼마 없다 보니 클럽후기는 대부분 카카오맵을 켜서 같으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설악산과 지리산은 안보지만요! ㅎㅎ 주차 하고 면내를 지나 보덕사를 지나시고~ 방장님의 걷는 모습을 상상하며 봅니다. 김삿갓의 모습?ㅎㅎ
역 디듣자(ㄷ)로 걸으셨네요! ㅎㅎ 암튼 후기 편안한 마음으로 잘 구경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이번주에 두타산과 삽당령으로 이틀간 일정으로 갈것 같습니다.
시간되시면 차나 한잔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