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오,깨달음에 이르는 길 ]
<33> 여여의 뜻
2018-09-18 원순스님 송광사 인월암 삽화=손정은
온갖 시비분별 사라진 마음자리
텅빈 그대로의 마음이 ‘여여’며
깨달음이니 더 닦을 것도 없어…
말길이 끊어지고 마음 갈 곳이 사라진 텅 빈 마음자리가 변함없이 영원한 것을 ‘여여’라 합니다. 이 자리를 대주스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원문 번역: 문) 여여란 무엇을 말합니까? 답) 여여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마음이 참으로 고요하고 변함이 없이 여여 하므로 ‘여여’라고 한다. 과거 모든 부처님도 이 여여한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시고, 현재의 부처님도 이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시며, 미래의 부처님도 이 행을 실천하여 도를 이루신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이 닦아 도를 증득한 것이 이와 조금도 다를 게 없으므로, 이를 여여라고 한다. <유마경>에서 “모든 부처님도 여여하고, 미륵보살도 여여하며, 모든 중생도 다 여여 하니 무슨 까닭인가. 부처님의 성품은 끊어짐이 없이 여여한 성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강설: 여여한 마음 그것이 본디 우리 마음입니다. <능엄경>에서 이 마음을 알기 위해 아난은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 마음을 찾습니다. 아난은 일곱 군데에서 마음을 찾았다고 부처님께 말씀드렸지만 부처님께서는 그것은 모두 참마음이 아니라고 하셨으니, 아난이 찾아 낸 것은 모두 망념으로 그 실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몸과 마음 등 세간의 모든 법은 허깨비나 이슬, 꿈과 같은 것으로 임시로 인연이 모여 있을 뿐입니다. 인연이 다하면 흩어져 사라져 그 실체가 없으니, 공(空)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공(空), 공(空) 하는 것은 망념이 다 사라진 마음자리를 말하는데, 중생의 온갖 시비 분별이 사라진 이 마음자리가 부처님입니다. 이 마음에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고 다만 텅 빈 모습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다만 텅 빈 모습 그대로 있는 이 마음을 ‘여여’라고 하고, ‘참마음’이라고 합니다. 이 ‘여여한 마음에서 오신 분’이 바로 여래입니다. 시비분별이 사라져 여여한 마음이 드러나게 되면 그 마음이 드러나는 자리가 부처님이 오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여’ 그 자리의 참마음을 얻고자 하면, 먼저 이 세상 모든 것이 환(幻)인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온갖 존재가 환인 줄 알면 그 자리에서 환을 여의는 법입니다. 연기법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의 실체가 환인 줄 알았다면, 더 이상 이 세상을 집착하는 중생의 꼭두각시놀음에 놀아나지 않게 됩니다. 환을 여읜 이 자리를 깨달음이라 하니, 여기서는 더 이상 집착할 깨달음도 없습니다.
중생들은 ‘허깨비와 같은 이 세상의 온갖 허망한 경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이 허망한 경계를 멀리 벗어나려는 마음도 집착에서 생긴 것이니 이 또한 ‘허깨비 같은 마음’이요, 여기서도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허깨비 같은 그 마음에서 ‘멀리 벗어나려는 것’도 ‘허깨비 같은 마음’이 되니, 여기에서도 다시 더 멀리 벗어나야 합니다. 멀리 벗어나려는 ‘허깨비와 같은 마음’을 벗어나고 또 벗어나서 더 벗어날 바 없는 곳에 다다르면, 곧 모든 ‘허깨비와 같은 그 마음’은 저절로 사라지는 법입니다.
모든 ‘허깨비 같은 마음’이 사라지면 이 자리에 아무 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본래 있던 참마음이 드러납니다. ‘허깨비 같은 마음’인 줄 알고 ‘허깨비 같은 마음’을 떠나니 방편 쓸 일이 없고, ‘허깨비 같은 마음’을 떠난 그 자리가 깨달음이니 점차 닦을 깨달음도 없습니다. 이런 참마음을 <금광명경>에서 ‘여여(如如)’라고 하니, 참마음은 참되고 영원하여 조금도 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교신문3424호/2018년9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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