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희 의 대중적 인기 ◎
내가 사랑할 사람/이선희
내가 사랑할 사람 나를 바라봐주길
내 모습이 다르게 보여도 같은 맘 이니까
너를 마주보기엔 용기나진 않지만
나를 사랑해줘요 뒤돌아봐 줘요
익숙지 않죠 이런 모습에
나를 보여 주는 게 처음이니까
혼자 견디고 참아 내기엔
너무 외롭고 힘들 다는걸 알았으니까
변명 같아서 널 기다리는 게
부담주기 싫은데 자꾸만 붙잡게 돼
내가 사랑할 사람 나를 바라봐주길
내 모습이 다르게 보여도 같은 맘 이니까
너를 마주보기엔 용기나진 않지만
나를 사랑해줘요 뒤돌아봐 줘요
욕심 같아서 널 가지려는 게
감추려고 해봐도 자꾸만 그렇게 돼
내가 기다린 사람 그게 바로 너이길
혼자서는 애를 써보아도 꿈인걸 아니까
너를 사랑하기엔 부족한걸 알지만
나를 사랑해줘요 고개 돌려 봐요
나 혼자 말 못하면 후회될까봐
네 마음을 이제는 보고 싶은데
내가 사랑할 사람 나를 바라봐주길
내 모습이 다르게 보여도 같은 맘 이니까
너를 마주보기엔 용기나진 않지만
나를 사랑해줘요 뒤돌아봐 줘요
이선희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작사·작곡가로, 요약하면 싱어송 라이터이다.
당대 최고의 가창력을 바탕으로 하여 1980년대 중후반을 휩쓴 가수로,
가창력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뤘던 대표적인 케이스다.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완벽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1980년대 인기정상을
구가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이룩했다.
MBC 강변가요제 대상 출신으로 탁월한 가창력과 무대매너,
그리고 차분하고 모나지 않은 선한 이미지의 소유자로 호불호 없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진정한 의미의 국민가수이다.
또한 최초의 언니부대를 탄생시켰으며, 이미자와 패티 김의 뒤를 이어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로 성장했다. 벽을 뚫을 듯 쨍한 맑은 진성 고음이 특기이며
동시에 자연스러운 진가성구 전환을 사용한 감정 표현에도 능하다.
조용필, 이승철, 임재범 등과 함께 역대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리스트
반열에 올라 있을뿐만 아니라 역대 대한민국 최고의 여성 보컬리스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데뷔한 지 3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정현, 소향, 이영현, 거미 등 젊은 세대 가수들과의 전성기가 아닌
'현재' 가창력을 논할 때에도, 이미자, 패티 김, 현미, 하춘화 등 레전드 디바들과의
음악적 업적을 논할 때에도 결코 빠지지 않는 가수이다.
수식어는 작은 거인, 여가왕, 국민가수, 국민디바, 만년소녀 등이 있다.
작사·작곡에도 능한 싱어송라이터이다. 일례로 영화 왕의 남자에 쓰였던 명곡 <인연>을
포함한 13집의 노래들은 전부 그녀가 작사, 작곡한 것이다.
그 이후 14집과 15집은 대부분이 자작곡으로 채워졌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조금씩 곡을 쓰긴 했으나 앨범에 넣지는 못했고
1996년 발표한 10집 '라일락이 질 때' 부터 본인의 자작곡을 앨범에 수록하기 시작했다.
데뷔 이래 변치 않는 외모와 목소리를 유지해 오고 있는 가수로 진정한 자기 관리의
화신으로 평가받는다.
대표곡은 J에게, 아! 옛날이여, 달려라 하니, 갈바람, 괜찮아, 연인의 눈물, 알고 싶어요,
영, 사랑이 지는 이 자리, 나 항상 그대를, 아름다운 강산, 나의 거리, 한바탕 웃음으로,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 겨울애상,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왜 나만,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조각배, 비 오는 거리에 서서, 라일락이 질 때,
너에게 가면, 이별 소곡, 살아가다 보면, 이 노래를 빌려서, 아마, 인연, 사랑아,
여우비, 떠나지 마,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바람꽃 등이 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OST계의 대모'라는 수식어를 얻을 정도로 드라마 OST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선희는 1964년 12월 14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1984년 제 5회 MBC 강변가요제에서 같은 과 선배 임성균 과 "4막 5장"이란 팀으로
참가하여 로 대상을 수상하고 큰 관심을 모으면서 데뷔했다.
이 때 부모님에게 나간 걸 들킬까봐 전날 급히 파마를 했다고 한다.
유달리 촌스러워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선희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장욱조 음악 사무실에 찾아갔다가
한 작곡가가 쓰레기통에 버리려던 악보를 '이거 제가 불러도 되느냐'고 말하고
주워 왔는데, 이 악보의 곡이 바로 였다고 한다.
이 작곡가는 이세건, 민해경의 <사랑은 이제 그만>을 작사/작곡했던 인물이다.
여담으로 이 시절 대통령이 전두환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대통령을 연상시킨다고
방송 금지곡이 되지 않을까 하는 농담도 있었다.
실제로 "J~ 아홉시 뉴스에~"라는 식으로 땡전뉴스를 풍자할 때 이 노래가 사용되었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바지만 고수하는 옷차림의 보이시한 매력으로 남성팬보다 여성팬을
더 많이 보유한 가수로도 유명했다. 일명 '언니부대'의 시초이다.
당시 이선희의 무대 영상을 보면 남자 아이돌의 무대에서나 나올 법한 여성팬들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선희의 언니 부대의 규모가 어마어마해, 회사에서 돈을 주고 사람을 동원했다는
유언비어마저 떠돌 정도로 언니 부대의 위력은 위대했다.
또한 이선희의 동그란 안경과 커트 머리가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유행할 정도로 소위 '이선희 신드롬'을 일으켰다.
수줍은 소년 같은 외모와 바지 의상만을 고집하는 독특한 이미지 메이킹은
남성 팬뿐만 아니라 여성 팬들에게도 ‘이선희 신드롬’을 불러 일으켰고,
퇴폐 풍조를 배격하는 사회 분위기는 이선희와 같은 건전한 이미지의 가수가
나래를 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놓은 상황이었다.
이선희는 이에 더해 가녀린 듯 하면서도 고음에서는 강력한 힘을 표출하는
특유의 보컬 능력과 젊은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들을 앞세워 인기 몰이에
나설 수 있었다.
당시 타 방송사에서 데뷔한 가수는 다른 방송사에 출연하지 못했던 관례를 깨고,
MBC 가요제 출신으로서는 이례적으로 11월 25일 KBS 가요톱10에서 골든컵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84년 KBS 방송 가요대상 신인상, '84 MBC 10대가수 가요제
최고 인기 가요상, 신인상, 10대 가수상으로 최초 3관왕에 오르는 등
데뷔 직후부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평론가 임진모의 말을 빌리자면
대한민국 역대 가장 임팩트 있던 데뷔라고 한다.
경이로운 점은 이 때까지 정규 앨범 한 장도 없이 MBC 강변가요제 출전곡인 'J에게'
하나만으로 이 모든 상을 휩쓸었다는 것이다.
이 때 MBC-FM에서 'J에게'가 하룻동안 무려 16번 방송되면서 FM 라디오 하루
최다 방송 횟수 기록을 세웠다. 이후로는 PD들이 자체적으로 이러한 중복 선곡을 피하고
있다고 한다.
1985년 첫 음반 《아! 옛날이여》가 발매되었고 그녀를 스타덤에 오르게 한
'J에게'와 록적인 스타일이 가미된 '아! 옛날이여' ,'갈등' , '소녀의 기도' 등
수많은 곡이 히트하며 등장과 동시에 KBS 가요톱10에 무려 7곡을
진입시키며 큰 인기를 끌었다. '아! 옛날이여'
로 1985년 4월 8일 가요부문 통합 1위를 차지했고 발라드가 아닌 다른 장르에서도
그녀의 가창력이 빛이 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86년 초 2집 《갈바람》이 발매되면서 '갈바람', '괜찮아
'연인의 눈물', '그래요, 잘못은 내게 있어요' '서울의 밤' 등이 인기를 모으며
TV가이드, 뮤직박스 1위로 선정되고 일간스포츠 골든 디스크상, KBS 방송 가요대상,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갈바람이 인기를 구가하던 도중 "김연자의 <사랑의 미로>와 후렴 부분이 같다."
라는 표절 시비에 휘말리는 바람에 곡 일부가 수정되어 다시 발표되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1986년 '이선희 학생 가장 돕기 콘서트'라는 타이틀을 걸고 공연을 시작했다.
홍익대학교에서 첫 공연을 한 이후 수년 동안 학생 가장 돕기 및 장한 청소년 돕기
공연을 이어가며 그 수익금을 학생 가장들에게 기부했다.
소년, 소녀 가장들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했던 그 당시 그들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건 이선희였다. 사회적 약자, 사회적 소회계층을 향한 따뜻함이 남달랐던 그녀는
이후에도 위안부 할머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공연 등을 이어나가며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꾸준히 따뜻한 마음을 베풀었고,
그녀의 이런 선행은 팬들은 물론 대중들에게도 나눔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1987년 3집 수록곡 '영'의 KBS 가요톱10 영상
1986년 말 3집 앨범 《알고 싶어요》가 발매되었으며
대표곡 '알고 싶어요'는 1987년 KBS 가요톱10 5주 연속 1위를 하면서
두 번째로 골든컵을 수상하는 주인공이 되었고
한 달 방송 횟수 107회, MBC 라디오 음악차트에서 15주 연속 1위 기록을 배출했다.
그 외 '영', '어둠은 걷히고' 등이 히트했다.
여담으로, '알고 싶어요'곡을 양인자와 김희갑이 만든 후
소설가 이재운이 허락을 받고 소설 "황진이"에 노래 가삿말을 인용해서 한시로 실었는데,
이게 반대로 알려져서 선후 관계가 바뀌어 알려진 경우가 많다.
1집부터 3집 앨범 활동 당시 이선희는 본인이 작사, 작곡한 노래들을
지구레코드 사에 가져갔으나, 묵살당했다고 한다.
1980년대 당시에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이 없었을 뿐더러 가수와 작사, 작곡가의
영역을 확실히 나누어 생각했던 때이기에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1집부터 3집을 발매한 지구레코드 사와의 전속계약이 끝난 뒤 그녀의 4집 음반부터는
서울음반(현 로엔엔터테인먼트)에서 발매하게 된다.
1988년 4집 《사랑이 지는 이 자리》에서는 '나 항상 그대를'으로
KBS 가요톱10에서 3번째로 골든컵을 수상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70년대 신중현과 뮤직 파워(26인조 악단)의 '아름다운 강산'을 리메이크하며
폭발적인 가창력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게 되고,
그 밖에도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안녕' 등이 히트하게 되었다.
다른 방면으로는 만화 주제가 '달려라 하니'를 불러 인기를 끌었다.
1988년은 서울 올림픽이 개최된 해인만큼 행사가 많이 열렸는데, 각종 행사의 대미를
이선희의 '아름다운 강산'이 장식했다.
1989년 5집 《한바탕 웃음으로》에서도 '나의 거리'로 KBS 가요톱10에서
4번째 골든컵을 수상했고, 후속곡인 '한바탕 웃음으로'가 1990년에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등 전성기가 계속 이어졌다.
그리하여 이선희는 1989년, 1990년 한 앨범으로 2년 연속 골든 디스크상을 차지했다.
그 외에 '겨울 애상', '불꽃처럼', '오월의 햇살등의 노래가 히트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홍콩 배우 장국영과의 조인트 콘서트를 개최하며,
화제를 모았다. 이때 한국인 가수로는 최초로 홍콩 퍼시픽레코드와 로열티 15%를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영어 음반을 발표했다.
이선희의 데뷔곡인 'J에게'를 포함한 4, 5집의 수록곡 중 몇 곡을 추려서 영어로
번안해 홍콩과 한국에서 음반을 낸 것이다.
1980년대 후반, 당시 큰 인기를 모았던 만화영화 달려라 하니의 주제곡을 불러
청소년뿐 아니라, 어린이들에게 익숙한 목소리였던 이선희는 그 인기에 힘입어
피터팬, 오즈의 마법사, 박문수 등의 어린이 뮤지컬에 출연하며 전회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가창력뿐만 아니라, 무대 위에서 뛰어난 연기력까지 보여준 이선희는
세대를 뛰어넘어 당대 최고의 핫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1990년 몬트리올 챔버 오케스트라 협연 '나 항상 그대를' 영상.
1990년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를 발매하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그리운 나라', '왜 나만' 등이 히트했다. 5집《한바탕 웃음으로》의 수록곡
'한바탕 웃음으로'가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6집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로 KBS
가요대상 최우수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을 했다.
전성기 시절 이선희는 발매되는 앨범마다 대표곡 뿐만 아니라 앨범의 모든 노래가 히트하는
쾌거를 안았다. 또한 폭발적인 가창력 속에서 남다른 감성으로 노래했던 이선희는
노래에 담았던 그 감성을 글로 써내 1990년 4월 <떠나는 자만이 사랑을 꿈꿀 수 있다>
라는 자작시집을 발간했다. 시집과 함께 발매된 낭송집은 노래를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당시 10대 소녀들의 감성을 자극하며 대형서점들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진입해 오랫동안 상위권에 오르며,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대중가요와 클래식은 전혀 다른 장르로 인식되어 있던 시절,
이선희는 1990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캐나다 몬트리올 챔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통해
대중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들을 거리를 제공했고,
몬트리올 협연 라이브 실황 앨범을 발매했다.
5집 앨범은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1989년도 음반 판매량 2위에 오른다.
1989년도 MBC 10대 가수 가요제는 엽서 집계 ( 순수 인기 투표 ) / 음반 판매량
/ 방송 횟수 / 여론조사 4가지를 조사하여 종합점수로 10대 가수를 선정하였는데,
이선희의 경우 엽서 집계 1위, 음반판매량 2위, 방송횟수 2위, 여론조사 4위였다.
6집 앨범 역시 1990년도 음반 판매량 3위를 차지했다.
1989년의 경우 양대 방송사 가요대상에서 이선희는 엽서집계 1위, 음반판매량 2위,
방송횟수 2위, 여론조사 4위를 차지했고, 1990년의 경우 엽서집계 1위, 음반판매량 3위,
방송횟수 7위, 여론조사 3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대상 수상에는 실패했고, 1996년 머라이어 캐리의 그래미 어워드 수상 실패에
비견될 만한 1985년, 1986년 여자 대상을 차지한 정수라와 함께 1989년 트로트 광풍으로
대상을 휩쓴 주현미, 현철의 수상은 가장 의문이 드는 대상 수상 기록 중 하나로 남았다.
이선희는 데뷔곡부터 6집까지 매 앨범마다 KBS 가요톱10 1위 곡을 배출하면서
가요톱10 골든컵(5주 연속 1위) 수상 횟수 역대 2위(4회), 1위 횟수 역대 2위(26주)에
랭크, MBC 10대 가수 가요제 10대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KBS 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
6년 연속 수상,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5년 연속 수상, 가배상 5년 연속 수상 등
국내에 있는 모든 부문의 상을 모조리 다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며 빛나는 최전성기를
보냈다.
콘서트 활동
?1986년 ~ 1990년 '학생가장돕기 이선희 콘서트' 개최
?1986년 ~ 1990년 '장한 청소년돕기 이선희 여름콘서트' 개최
?2.2. 1991년~2005년: 위기와 화려한 부활[편집]
90년대로 접어 들면서 80년대 중후반을 휩쓸며 승승장구를 달리던 그녀에게도
고비가 왔다. 1991년 발매한 7집《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은
'그대가 나를 사랑하신다면', '그대가 떠나신 후에' 등이 인기를 끌었지만
이전만큼의 인기는 끌지 못했고 상업적으로는 가장 저조한 성적을 얻었다.
1992년 8집 《조각배》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삼는다는 말처럼,
변화된 가요계 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하여 국악과 가요의 콜라보레이션을 이끌었다.
8집 앨범은 이선희 앨범의 수작으로 평가받았으며, 현재에도 색다른 이선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8집에서 이선희는 상당한 가창력을 필요로 하는 타이틀곡
'조각배'와 '초원', '작은 연가', '성주풀이', '한네의 이별' 등을 이선희만의
느낌으로 소화해 냈다.
1994년 9집《한송이 국화》는 락의 느낌을 가미하며 새로운 이선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송이 국화'를 시작으로 'Bluse Cafe', '기분이 좋아', '비 오는 거리에 서서',
'아쉬움' 등이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으로 그녀는 KBS 가요대상 본상을
수상했다.
1996년 10집 《First love》는 이선희가 직접 모든 노래의 작사, 작곡에 참여하면서
큰 음악적 성장을 보여주었다. 대표곡으로는 '라일락이 질 때'가 있다. '회색 도시'는
락의 느낌으로 앨범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새로운 느낌을 주며,
'성 안의 아이'는 몽환적인 느낌으로 팬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다.
'소국 한다발'이라는 수록곡에서는 성악가 바리톤 김종홍과 듀엣을 펼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다. 또한 '아카라카치'는 삶에 희망을 주는 메시지를 담고
응원 구호를 접목시키며 가창력까지 돋보이게 해 현재까지도 응원가로 쓰인다.
이 앨범 이후로 이선희는 직접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도 보여 주기 시작했다.
1998년 SBS 국난극복 1주년 희망음악회 '너에게 가면' 영상.
1998년 11집 《Dream of Ruby》를 발매했다. 대표곡으로는 '낯선 바닷가에서',
'너에게 가면', '백우'가 있다. 이선희는 이 앨범에서 '낯선 바닷가에서'의 뮤직 비디오
촬영 중 넘어지는 가로등에 머리를 가격당하는 부상을 당하였다.
이 앨범은 큰 인기는 끌지 못했지만 부드러운 느낌을 주며 팬들에게는 따뜻하게 다가왔다.
신중현의 아들 신대철이 만든 '너에게 가면'에서는 엄청난 고음을 선보이며 여전한
가창력을 나타냈다.
2001년 12집 《My Life + Best》에서는 유영석, 박진영, 김종서 등 젊은 세대들의
대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였고 이선희는 MBC 10대 가수상을 다시 한번 수상하며
건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표곡인 '이 노래를 빌려서'는 이별의 슬픈 감정을, '아마...'는 소녀적인 감성을,
'살아가다 보면'은 삶에 대한 격려와 희망을, '이별 소곡'은 조용한 느낌을 드러내며
인기를 끌었다. 그 외 1988년에 발매했던 '나 항상 그대를'이 영화 "가문의 영광"에
삽입되며 젊은 층에게도 인기를 모았다.
2002년 FIFA 한일 월드컵이 열렸을 당시 붉은 악마가 운집한 서울시청과 광화문 광장
일대에서 애국가, 아리랑, 오 필승 코리아, 해야, 아카라카치, 아름다운 강산 등을
열창하며 거리 공연 및 열띤 응원을 펼쳤다.
식지 않는 열기 속에 2003년 월드컵 1주년, 2004년 월드컵 2주년 기념 무대도 가졌다.
2003년 10월에는 북한 평양 특별생방송 통일음악회 (통칭 평양공연)에서
'J에게'와 '아름다운 강산'을 열창하기도 했다. 이후 주로 자신의 제자 이승기와 함께
응원 무대에 등장했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2006년 독일 월드컵,
WBC 준결승전 응원 무대 등에 섰다. 사실상 2002년부터 2006년까지 있던 대부분의
대규모 스포츠 응원 관련 행사에는 이선희가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2006년 4월 백상예술대상 축하공연에서 '인연' 영상.
2005년 이선희가 직접 모두 작사, 작곡한 13집 《사춘기》를 발매하였다.
직접 작사, 작곡한 그녀의 대표곡 '인연'이 천만 영화 "왕의 남자"의 OST로 삽입되며
큰 인기를 얻어 화려한 복귀에 성공하게 되며, 곡 '장미'와 '왜?'는 이선희의
싱어송라이터의 면모를 확실하게 드러내어 전문가들에게 많은 호평을 받았다.
그 전까지 꾸준히 다양한 음악적 시도로 자신을 담금질한 결과 '사춘기'
앨범의 퀄리티는 역대 이선희의 앨범 중 최고로 평가받을 만큼 훌륭했으며,
이 앨범은 이선희가 왕년의 인기가수를 넘어 21세기에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창창한 현역이자 훌륭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시발점이 되었다.
콘서트 활동
1992년 위안부 할머니 보금자리 마련을 위한 '이선희 한의 소리 콘서트' 개최
199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10주년 콘서트 '이선희 서울의 사랑 콘서트' 개최
2002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이선희 BIG CONCERT' 개최
200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20주년 콘서트 'J에게 20주년 이선희 콘서트' 개최
200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22주년 라이브 콘서트 '인연' 개최
1991년 서른이 채 안된 나이에 서울시의회 시의원 선거에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나와
마포구 갑에 출마하여 당선되어서 정치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는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과의 개인적 친분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자유당을 탈당하여 새한국당을 창당한 이종찬을 따라 역시 민주자유당을 탈당했고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여 야당 의원으로 끝까지 활동했다.
이후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역시 이종찬이 소속된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를 지지한 것을 제외하고는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후일 토크 프로그램에 나와 발언한 바에 의하면 어린 시절 부모님 없이 자란 친구로 인해
청소년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여 청소년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만 활동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정치인으로서의 타이틀을 보유하면
활동 범위를 넓힐 수 있다는 지인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그래서 시의원에 출마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시의원에 당선되었지만,
정치보다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였고 세비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인이 세비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으로 대단한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말은 청산유수이나 행동으로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자신의 의정 활동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공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에 가장 훌륭한 증명이다.
정치 입문의 목적이 민생을 살피는 것이 아닌 권력 획득과 부의 축적인 대부분의 정치인 중
국민의 생활을 돌보는 것과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올바른 정치인들도
더러 있는데, 이선희는 자신이 그러한 올바른 정치인 중 하나라는 것을 몸소 증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팬들을 제외한 대중의 이선희에 대한 비판 중
대부분의 내용은 이때의 의정 활동과 관련한 것이다.
아무래도 정치인 이미지가 이미지이다 보니 대중적으로 그녀의
정치 활동은 그리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06년~2019년: 국민 가수로의 도약[편집]
그러던 도중 그녀는 돌연 미국행을 선택하며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그 동안 잊힐 것 같았지만, 2009년 귀국해 14집 《사랑아...》를 발매하며
여러 방송과 행사에 출연했다. 계속적인 음반 발매와 콘서트를 통한 활동으로
2010년 SBS TV 드라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의 OST '여우비'와 '
내가 사랑할 사람', 《대물》의 OST '떠나지 마'를 불러 이선희 특유의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OST계의 대모라는 칭호를 받으며 큰 인기를 얻었다.
그 결과 2010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표창을 받았다.
이선희는 2011년 2월 3일에 세계적인 가수들만 설 수 있다는 뉴욕 카네기 홀 중에서도
가장 큰 메인 공연장인 '아이작스턴 오디토리움'에서 대한민국 대중 가수로는
4번째로 단독 공연을 가졌다. 2,800여 석에 이르는 좌석 전석 매진이라는
큰 기록을 세우며 한국인으로서는 최다 관객 동원으로 뉴욕 한인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
2011년 9월부터 방송된 MBC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시즌 2의 멘토로 출연하였다.
멘티 구자명과 배수정을 모두 결승에 올렸으며 구자명이 우승, 배수정이 준우승하는
기염을 토해 국민 멘토로 불리며 또 다시 인기를 모았다.
2011년 음악전문사이트 몽키3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선희가 유재석을 제치고 인생의 멘토가 되어줬으면 하는 스타 1위에 등극했다고 한다.
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방송 중에 구자명과 배수정, 두 제자와 함께 합동 무대를
가졌는데, 수많은 지원자를 뚫고 결승까지 올라간 두 사람을 가창력으로 찍어 내리며
본좌급의 가창력 클래스를 보여주었다.
구자명과 배수정이 혼신의 힘을 다해 고음을 내는데,
오히려 이선희는 제자들에게 맞춰주며 귀엽다는 표정으로 노래를 하는데도
성량이 너무 커서, 방송에는 이선희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2014년 3월 25일 이선희는 데뷔 30주년을 맞았고, 15집 앨범
《SERENDIPITY》를 발매하였다. 그녀의 음악적 역량이 최고로 발휘된 이 앨범은
팬들에게 전하는 아름다운 추억과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선희는 앨범의 전 11곡 중 9곡을 직접 작곡하고 7곡을 작사하였는데,
대표곡으로는 '그 중에 그대를 만나'가 있다. 이 곡은 4월 첫째 주 MBC 쇼!
음악중심에서 2위를 차지하였고,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2014년 올해를 빛낸 가요'
3위에 선정되었는데, 동시대 여가수들과 비교해 보면 가히 대단한 성적이다.
2014년 3월 29일과 4월 5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 전설로 출연했다.
등장하며 본인의 데뷔곡인 'J에게'를 열창했다. 이선희의 명성을 반증하듯 임창정,
박정현, 윤민수, 신용재, 바다, 홍경민, 더 원, 알리 등 쟁쟁한 후배 가수들이
경연 가수로 출연했다. 대중의 관심도도 높아 2회분 모두 무한도전을 제치고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2014년 8월 23일 히든싱어 시즌3 첫방송에 출연해서
모창능력자들을 누르고 우승했다. 1라운드는 J에게, 2라운드는 인연,
3라운드는 아름다운 강산, 4라운드는 그 중에 그대를 만나가 선곡되었다.
이 방송분은 시청률 7.181%로 왕중왕전을 제외한 히든싱어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는
동시에 동시간대 공중파 포함 전체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2014년 10월 이선희는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중
가수 부문에서 조용필에 이어 2위에 올랐다.
총 13개 도시에서 열린 이선희 전국 콘서트 투어는 27회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또한 아이돌 가수들이 점령한 가요계에서 이선희는 한국갤럽이 조사한
‘2014년 올해를 빛낸 가수’ 5위, 40-50대에서는 ‘2014년 올해를 빛낸 최고의 가수’
1위로 선정되었다. 2014년 12월 신촌 명물거리에서는 이선희의 그 해 마지막 공연이
열렸다. 이선희의 애제자 이승기와, 오랜 친분을 자랑하는 이서진도 깜짝 출연한 ‘
구세군 나눔 콘서트’였다. 소외된 이웃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서 이선희는
한 해 동안 대중들에게 받은 사랑을 라이브 무대로 보답했다.
이는 SBS의 '나는 산다 - 이선희, 대한민국을 위로하다'라는 프로그램으로
특별 편성되었다.
2015년 KBS2 광복 70주년 기념 행사 '나는 대한민국' 아름다운 강산 영상.
2015년 '광복 70주년 국민대합창 나는 대한민국'에 출연하여 1945년생 해방둥이로
이루어진 1945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았고, 대합창 당일 인연 아름다운 강산
행복의 나라로'를 열창했다. 또한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행복의 나라로'
디지털 싱글을 발매했다. 2016년 4월 SBS 판타스틱 듀오에 출연했다.
예선에서 '그 중에 그대를 만나'를 열창하며 김예진 양(예진아씨)을 판타스틱 듀오로
선택했고, 결승에서 '나 항상 그대를'으로 정규 편성 이후 초대 우승자가 되었으며,
'추억의 책장을 넘기며', '이별', '알고 싶어요', '아름다운 강산'으로 결국
5연승을 하면서 규정상 하차했다.
2016년 '천호식품 우먼솔루션'의 CF에서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며 출연하였다.
갱년기 여성에게 에너지를 불어 넣어주는 여성건강식품이라는
우먼솔루션의 특징과 부합하는 이선희의 동안 이미지 때문에 캐스팅되었다는 비화가 있다.
2016년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OST 작업에 참여한다는 기사가 떠
큰 주목을 받았고, OST '바람꽃'을 발표했다.
2017년 본격적으로 월드 투어에 나선다. 5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공연을 펼쳤고,
9월에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2017년 8월 5일에는 강원도 원주의 오크밸리 썸머 페스티벌에서 무료 공연을 펼쳤다.
2016년에 발표한 곡을 마지막으로 휴식기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2017년
한국갤럽 '올해를 빛낸 가수' 10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018년 4월 1일 평양 대동강지구 동평양대극장에서 남북 평화협력 기원 남측 예술단
평양 공연 《봄이 온다》 무대에 올랐다.
대표곡인 'J에게', '알고 싶어요', '아름다운 강산'과 합창곡 '다시 만납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북한 주민들 앞에서 불렀다.
같은 달 3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남북 합동공연 《우리는 하나》를 선보였다.
대표곡인 'J에게', '아름다운 강산'과 합창곡 '백두에서 한라까지', '다시 만납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다. J에게는 북측 가수 김옥주와 듀엣으로,
합창곡은 남북 가수 모두가 열창했다. 남북 여가수가 모두 함께 부른 '백두에서 한라까지'
무대에서는 고음 파트에서 이선희의 목소리 외에는 잘 들리지 않았을 정도로
엄청난 성량을 과시했다. 남북 가수가 모두 함께 자리한 마무리 무대
'다시 만납시다'에서는 '다시 만나요' 부분에서 나머지 30여 명에 달하는 가수의
음량과 비슷한 수준의 성량으로 화음을 선보였다.
이로 인해 네이버, 다음, 유튜브 등의 댓글 창은 대부분이 자랑스럽다,
국격을 높였다는 등 이선희에 대한 칭찬 일색이다.
2018년 리메이크 앨범《le dernier amour (르 데르니에 아모르)》
를 발매했다. 수록곡은 '끝사랑'(타이틀곡, 원곡 : 김범수),
'바람기억'(원곡 : 나얼), '제발'(원곡 : 휘성), '소주 한 잔'(원곡 : 임창정),
'겁쟁이'(원곡 : 버즈), '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원곡 : 에일리) 이상 총 6곡이다.
2018년에는 집사부일체에 10번째 사부로 출연했다.
방송은 21회(5월 27일)와 22회(6월 3일). 가수 생활을 위해 평소 절제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이 방송을 통해 다시 한 번 그녀의 생활이 공개되었다. 노래방에 가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인 '끝사랑'을 불렀으며 남산에 가서는
'J에게'를 무반주로 불러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콘서트 활동
2009년 이선희 14집 앨범 발매기념 콘서트 '초대' 개최
2011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27주년 콘서트 'J에게 27th 라이브 콘서트' 개최
2014년 세종문화회관에서 데뷔 30주년 콘서트 '데뷔 30주년 기념 콘서트 -
노래하는 이선희' 개최
2016년 세종문화회관에서 'The Great Concert LEE SUN HEE' 개최
2017년 5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The great concert LEE SUN HEE in LA'
개최
2017년 9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The great concert LEE SUN HEE in Sydney' 개최
3. 대중적 인기[편집]
▲ '1980년대 가요계의 진정한 가왕, 조용필과 이선희'
'이른바 들국화와 김현식, 그리고 조용필과 이선희가 지배하던 80년대의 지형도에서는...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한 신인가수가 이름과 목소리를 알리는 데 이보다 더 충격적일 수는 없었다.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2014년 2월 인터뷰 中
80년대 가수 중 대중적 인기의 최고봉은 단연 조용필이지만, 범위를 여자 가수로
한정한다면 80년대 여가수 중 대중적 인기의 최고봉은 이선희라는 평이 많다.
다만 앨범 발매 및 활동주기가 지금보다 길었던 당시 환경 상, 윤시내, 정수라,
이은하, 나미, 이상은, 주현미, 김완선 등과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많은 가수들 중 2000년대와 2010년대에도
히트곡을 낸 것은 조용필과 이선희 정도에 그친다.
이선희가 80년대 여가수 중 대중적 인기의 최고봉이었다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980년대 대한민국 최고 인기 가수에 대한 설문조사 상.
1980년대 대한민국 최고 인기 가수에 대한 설문조사 하.
1.80년대에 이선희보다 많은 수상 실적을 올린 여가수는 없다.
1984년 양대 방송사에서 신인상을 휩쓸었고, MBC 최초 3관왕에 올랐다.
또한 KBS 올해의 가수상 6회 연속 수상, MBC 10대 가수상 6회 연속 수상,
골든디스크상 5회 연속 수상, 여가수로서 KBS 가요톱10 1위 최다 랭크(26회),
각종 차트 1위 석권 등 이선희는 인기 최정상의 위치에 서 있었다.
1.80년대에 이선희보다 규모가 큰 팬클럽(팬덤)을 보유한 여가수는 없다.
조용필의 오빠 부대에 비견될 정도의 규모를 갖춘 이선희의 언니 부대라는
용어를 새로 만들어 내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남녀노소에게 골고루 사랑받는 가수였다.
1.80년대에 이선희보다 히트곡이 많은 여가수는 없다.
이선희는 내는 앨범마다 족족 히트곡을 냈고, 가요톱10 1위를 한 곡만 7곡이다.
1위를 하지는 못했지만 히트한 아! 옛날이여, 갈등, 영, 사랑이 지는 이 자리,
아름다운 강산 등까지 포함하면 손가락으로 다 셀 수도 없다.
1.80년대에 이선희보다 방송이나 행사에 출연을 더 많이 한 여가수는 없다.
가요톱10, 열린음악회, 가요무대,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쇼! 특급, 화만나,
젊음의 행진 등 방송이란 방송은 모조리 출연하였다.[57] 실감이 나지 않는다면
당장 부모님께 여쭈어 보거나, 유튜브를 찾아 보자.
1.80년대에 이선희보다 길고 꾸준한 전성기를 누린 여가수는 없다.
이선희는 발매하는 앨범마다 히트하며 1984년부터 1990년까지 6년 연속으로
가요톱10 차트 1위곡을 보유하였다. 다른 여가수들이 잠시 이선희의
인기를 앞지를 수는 있었겠지만, 80년대를 통틀어 이 정도의 인기를 이 정도로
꾸준히 누린 여가수는 이선희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에 대해 이견도 있는데,[60] 다른 여가수의 팬들은 당대 평가는
서로의 전성기가 엇갈리며 서로가 엎치락 뒤치락하는 최소한 백중세였는데
이선희가 201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고평가 받는다고 주장하곤 한다.
거기다 이승기를 발굴해 낸 스승이라는 점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인지도를 넓히며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는 점도 부인하지는 못한다.
이선희가 당대 여가수 중 최고봉이라는 평가를 하는 쪽이 주로 드는 근거는
당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던 가요순위 프로그램 KBS 가요톱10 최다 1위 수상 실적과
대상 바로 아래의 최우수상 격인 KBS 올해의 가수상, MBC 10대 가수상의
최다 수상이고, 최고까지는 아니고 최고 인기 여가수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는
쪽은 이선희가 당시 양대 방송사 가요대상인 KBS 가요대축제,
MBC 가요대제전에서 대상 수상 실적이 없다는 점을 주로 이야기한다.
정확하게 얘기한다면 1984년부터 1990년까지가 이선희가 전성기를 보낸
시점이라고 할 수 있으며, 90년대 초반부터는 이선희의 인기가 꺾였다고 할 수 있지만,
이선희는 그 당시부터 현대까지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유일무이한 여가수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현재의 위상[편집]
가장 중요한 것은, 이선희의 한결같음이다.
데뷔한 지 30주년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이선희는 현역 여자가수들과 수없이 비교되고
회자되는 당대의 톱스타이자 전설의 현역 보컬, 현재 진행형 '리빙 레전드'라는 것이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꾸준히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
올해를 빛낸 가수' 순위권 내에 들고 있으며, 2014년에 신곡 '
그 중에 그대를 만나'를 발표했을 때에는 아이돌이 점령한 가요계에서
그녀의 곡이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올해를 빛낸 가요' 3위에 선정되는 등
저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갤럽 조사의 순위권에 드는 1980년대
가수는 2010년대 들어서 조용필과 이선희 둘 뿐이다.
말인 즉슨, 1980년대의 대중적 인기를 넘어 현재의 가수로서 위상은 당대 여가수들 중
이선희가 가히 압도적인 원탑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전에도 이선희의 위상이 가장 높았다고 볼 수 있다. 1990년,
몬트리올 챔버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통해 처음 세종문화회관에 발을 딛었고
1994년, 데뷔 10주년 콘서트를 세종문화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했으며
2004년, 데뷔 20주년 콘서트도 세종문화회관에서 성황리에 개최했다.
이 때까지 동시대 여가수 중 단독 무대로 세종문화회관에 서 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세종문화회관은 가수의 기량과 대중적인 인기, 활동 이력 등을 모두 고려해
대관이 결정되기 때문에 대중가수들이 쉽게 설 수 없는 무대인데,
이선희는 이를 데뷔한 지 6년 만에 해낸 것이다.
동시대 여가수 중에는 주현미만이 유일하게 30주년 콘서트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64] 이선희는 2006년, 2009년, 2014년, 2016년까지 4년
연속으로 전석이 매진된 가운데 세종문화회관 무대에 섰고,
2011년에는 미국 뉴욕 카네기 홀, 2017년에는 호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을 펼친다. 말하지 않아도 위상의 차이가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음악적 능력[편집]
▲ '연인의 눈물' 2002년 이선희 BIG CONCERT 무대영상.
?대한민국 역대 최고 가창력 보컬리스트에 대한 설문 조사.
대한민국 땅 위에 100년에 한 명 나올 그런 가수가 나왔습니다. 이선희 양입니다.(조영남)
대한민국에도 세계 무대에 내놓을 수 있을 만한 가수가 등장했습니다. 이선희!(이문세)
제 롤모델은 이선희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발전하는 가수는 그녀밖에 없습니다.
음역대는 메조 소프라노, 보이스 타입은 라이트 리릭 소프라노이다.
기본적으로 가장 활용도가 높은 발성은 진성, 고음부에서 두드러지는 발성은 벨팅이다.
음원과 라이브를 포함하여 D3 - A5(진성은 F#5)의 음역대를 가지고 있다.
음역이라는 관점에서 이선희는 다른 여가수들과 비교했을때 그렇게 넓은 음역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저음부부터 고음부까지 흉성이 매우 발달한 가수인데,
그에 반해 두성의 적극적인 활용도는 다른 소프라노에 비해서 떨어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선희가 국내의 대중과 전문가에게 골고루 '가창력이 가장 뛰어난
여가수'라는 평가를 받는 것은 대중과의 음악적 소통에 기인한다.
그것이 음악이든 노래든 대중예술에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고 모두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기란 정말 어렵고 힘들다는 점에서, 이선희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영역에 다다른 예술가이다.
이선희는 기본적으로 노래할 때 복식 호흡을 잘 활용하는 가수이다.
주로 두성을 활용하는 믹스 보이스보다는 흉성을 한계 음역까지 끌어올리는
흉성 기반의 테크닉을 선호해서 대부분의 무대에서는 흉성 위주의 스타일을 고수한다.
이러한 창법의 특성과 뛰어난 호흡 조절 능력, 타고난 성량 덕에 밀도 있는 소리가
깨끗하고 강력하게 뻗어 나간다. 이처럼 뱃심으로 노래를 부르기에 때때로
뮤지컬 발성처럼 들리기도 하는데, 마치 휘트니 휴스턴처럼 소위 말하는
'꽉 찬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큰 성량 때문에 마이크를 뗄 때, 배 밑으로 내리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가진 가창력의 핵심은 특유의 힘, 공명감, 폭발력이다.
음색은 한없이 맑고 막힘없이 쭉 뻗으면서도 소리는 깊은 배음이 울려서,
아주 두텁고 단단한 공명감이 곡 전체에 울린다. 고음부에서도 알맹이가 있는
두꺼운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마치 대중음악적인 측면에서 이선희의 목소리는
뮤지컬적인 요소와 팝적인 부분이 절묘하게 조화된 목소리와 같다'고
음악평론가 김형석이 평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이선희는 음역대가 넓지는 않지만
자신의 레인지 내에서는 독보적인 깊이의 힘과 울림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종종, 아무리 노래를 잘 하는 보컬리스트가 그녀의 노래를 불러도,
분명히 그녀의 공명감보다는 약하기 때문에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의도적 보컬 브레이크(Intended vocal break)를 구사할 수 있으며,
비교적 중음역부터 중고음역까지(A4 ~ E5) 골고루 폭발력 있는 음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렇게 공명감이 가득찬 소리를 내는 데에는 창법적인 이유와 더불어
음색 등 가수의 개성 또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이선희는 성악이나 일반적인 대중음악 발성과는 달리 벨팅 창법을 구사한다.
이는 성대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이선희는 성대 개입근의 개입과
발달을 억제하며 조임근을 제대로 발달시켰기에 성대의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고
창법이 목소리를 해치지도 않았다. 오랜 세월 동안 그대로인,
오히려 공명감이 더해진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의 발성법이 건강하다는 방증이다.
또한 이선희의 경우 2000년대 이후로는 이전의 히트곡들을 부를 때 외에는 흉성 위주의
믹스 테크닉(Chesty mix technique)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아직까지
성대에 이상이 없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이선희가 성대의 건강을 잘 유지해 온 것은 사실 선천적인 부분과
엄청난 자기관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창법적 요인뿐만 아니라 이선희 특유의 철저한 목 관리 방법과 타고난 성대가
큰 작용을 했다는 것이다.
이선희의 경우 벨팅을 주로 사용했던 가수 중에서 목소리를 매우 잘 관리한 케이스로,
철저한 목 관리와 더불어 독보적인 성대 내구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벨팅의 특성상 성대의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도로 훈련을 받은 오페라를 부르는 소프라노들도 성대에 이상이 생길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호흡을 강한 더 강한 성대 접촉으로 내는 창법인 벨팅이 성대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선희는 벨팅을 사용하면서도
조음기관의 성대 개입근을 발달시키지 않고 조임근만을 발달시켰고 철저한 목 관리와
타고난 성대의 내구성이 더해져 아직까지 목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선희는 대한민국 여가수 가창력의 독보적인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30여 년 동안 등장한 소위 '가창력이 뛰어난 여가수'라는
수식어를 가진 양희은, 정수라, 주현미, 민해경, 인순이, 이소라, 신효범, 박미경, 이은미,
빅마마, 거미, 박정현, 소향 등 거의 모든 여가수들과 비교당하지 않은 적이 없다.
즉, 30년의 세월 동안 한결같이 다른 여가수들과 비견되는 한국 여가수 가창력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방증하는 부분이다.
압도적인 성량[편집]
압도적인 성량의 소유자로, 노래할 때 소리가 커질수록 마이크가 입에서 멀어지는걸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스피커 장비가 고장난 적이 있다고한다.
이선희의 성량 때문에 그에 관련된 일화가 많은데 전남대학교 운동장에서 무대를 가졌는데
그 소리가 건물들을 뚫고 도서관까지 들렸다는 일화도 있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끝난 후 광화문 일대에서 국민대축제를 할때 세종로 사거리
교보문고 근방에서 공연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무대가 보이지도 않는데
유일하게 이선희 노래 소리만 들리더라는 일화도 있다.
한 누리꾼은 자신이 군악대로 복무 중 행사를 나갔을 때 이선희가
초청 가수로 왔는데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다 부대 음향 앰프 하나를 날려 먹었다고 ?
증언했다. 아예 ?신문에까지 나올 지경이니 말 다했다.
소위 '배꼽 마이크'의 시초이기도 하다. 사실상 이 단어가 유일무이하게 쓰이는 가수는
이선희 단 한 명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그녀의 성량은 누가 듣기에도
엄청나기 때문에 성량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가수로 평가된다.
또한 성량이 좋을 뿐더러 목소리가 무척 맑고 발음이 정확한 가창 스타일을 보여준다.
고음역대에서도 파워와 함께 정확한 발음을 구사할 수 있는 가수는 드문 편이다.
야외 무대에서 이선희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섬세함과 맑은 음색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맑은 음색과 감성[편집]
▲ '여우비' 2011년 이선희 오월의 햇살 콘서트 무대영상.
음색의 경우 극도로 맑은데, 이선희 본인은 탁하고 허스키한 음색을 부러워하는
기색을 비추기도 했다. 그런데 맑은 것도 이 정도로 맑으면 오히려 개성일지도 모른다.
이선희의 팬들 중에는 이선희의 이 맑은 음색을 더욱 좋아하는 경우도 많고,
이선희도 최근으로 올수록 성량과 고음보다는 음색과 감성을 강조하는 노래를
더욱 많이 부르는 추세이다. 기본적으로 80년대에 데뷔한 가수이기 때문에
대표곡들은 8비트 기반의 노래들이고, 또 따라서 현대적인 청자들에게는 올드하게 들릴 수
있다. 80년대 이전의 레전드급 가수들의 노래들이 다소 촌스럽게 들리는 이유가
바로 이 8비트 기반의 리듬감 때문이다. 그런데 이선희의 놀라운 점은 90년대 이후
16비트 기반의 리듬감을 요구하는 노래들도 아무렇지 않게 불러낸다는 점으로,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00년대 이후로는 R&B 등 리듬을 더 쪼개는 곡들도 부르고 있지만,
널리 알려진 노래들은 80년대 곡들이 많기에 대중들이 그녀의 리듬감과 호흡을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선희를 그리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선희는 이 정도가 한계라고 평가 한다.
엄청난 성량, 음역대, 정확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지만 노래에 적절한 감성을 담아내고
전달하는 데는 약하지 않긴 하나 그리 강하지도 않다는 주장이다.
정서의 표현력이나 전달력이 강하거나 독특한 나미나 정수라, 주현미 등과 비교해 볼 때
부족한 점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느끼는 바가 다른
가수의 감정 전달력을 평가한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다는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이는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장이다.
한정된 장르에서 자신만이 전달할 수 있는 그 장르 특유의 감정을 전달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동시대 여가수들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곡들을 적절히 소화하는
이선희를 비교하는 것은 약간 다른 관점의 문제이기 때문.
음악적 스펙트럼[편집]
이선희하면 파워풀한 가창력만 떠올라서 가려지기 쉽지만 이선희만큼 다양한 음악을
한 뮤지션도 많지 않다. 국악풍의 '조각배' 등 8집 전곡, 13집에 실린 모던락
스타일의 자작곡 '왜?', 싸이가 피쳐링한 '안녕히', 타이거 JK가 피쳐링한 14집 수록곡
'You Too' 등이 그 예이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들어보면
음악적 실험, 도전과 발전을 위한 노력, 점점 성숙해지는 기량이 함께 묻어난다.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0년대에는 각종 음악 방송이란 방송마다 모조리 출연하며
주류 팝 음악 락 발라드 트로트 알앤비(소울)
재즈(라틴) 모던 뮤직 뮤지컬 오페라 심지어 외국 팝송과
국악(민요) 까지 거의 모든 음악 장르를 소화해 냈다.
자신의 노래보다 타 가수의 노래를 더 많이 부르는 진기록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실제로 1990년대에는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 2000년대에는 오페라 '문화초대석 바리'
등의 무대에 출연하기도 했고, 2016년 판타스틱 듀오에서 부른 '알고 싶어요'에서
힙합(랩)까지 소화해 내는 모습을 보이는 등 그만큼 이선희의 음악적 스펙트럼의 폭은
굉장히 넓다.
자기 관리와 호흡[편집]
▲ '그 중에 그대를 만나' 2014년 이선희 30주년 기념 콘서트 무대영상.
이선희는 호흡을 정말 잘 쓰는 가수이다. 라이브에서도 호흡소리가 거의 안 들리게도
노래에 따라 섞어 쓰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호흡소리가 안 들리게 하는건 무척 어렵다.
다른 가수들이 그녀의 노래 중 몇 곡을 원곡 그대로 부르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30주년 앨범의 타이틀인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절정 부분 브릿지에는
F5(3옥타브 파)라는 어마어마한 고음이 있는데,
그걸 또 라이브에서 완벽하게 소화한다. 고음도 고음이지만 이 노래, 가뜩이나
개마고원처럼 고음이 이어지는 후렴부에 숨 쉬는 데가 없는 노래인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를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
또한 이선희의 대단한 점은 아무리 훌륭한 가수라도 나이가 들다 보면 목이 상하게 되는데
이선희는 먹는 것도 일일이 주의할 만큼 목관리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지금도 예전 목소리와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목소리 관리를 위해 늘 운동과 식단 조절을 하며, 짜거나 매운 음식, 음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더운 여름에도 목 관리를 위해 손수건이나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있다고 한다. 평상시 대화할 때도 목 관리 차원에서
조용히 대화한다고 하니, 진정한 자기 관리의 화신이라고 할 만하다.
또한 아침에 일어나서 자신의 목 상태를 점검해 보고는 상태가 최상이 아닌 때에는
필담을 나눈다고 한다.
비평적인 한계와 총론[편집]
이선희의 약점은 비평적인 면에서 이선희가 크게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평가는 동시대의 다른 여가수들도 예외가 되지는 않는다. 1980년대의 여가수들이
비평가들의 명반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드물고, 별로 약점이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이렇듯 이선희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이견 없이 여가수 중 최고 수준의 가창력을 보유한, 대한민국 가요계의 여제로
정평이 나 있다. 완벽에 가까운 자기 관리 능력 또한 대한민국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정리하자면, 그녀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여성 싱어송 라이터 이자
공명감, 성량, 음색, 호흡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국내 최정상의 보컬리스트라는 것이다
이선희는 오직 3옥타브의 음역만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녀의 전반적인 가창에는 폭발적인 공명 (힘과 울림), 혼이 담긴 목소리,
풍부하고 깨끗한 음색, 큰 성량, 음의 세밀한 컨트롤, 그것을 유지하는데에
필요한 강력한 호흡압을 지탱하는 피지컬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다.
결국 음역대는 넓지 않지만 그 좁은 음역대 안에서 독보적인 깊이의 울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리비아[편집]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의 부친인 조 잭슨으로부터 미국에 데뷔하자고 러브콜을 받았던 적이
있었다. 아시아판 잭슨 파이브를 만든다고 조 잭슨이 한국에 직접 와서 오디션 합격하고
안전지대가 만든 앨범까지 다 완성된 상태였는데 결국 시의원을 하게 됐다고 한다.
1992년에는 8집 앨범에서 위안부를 기리는 노래인 '어느 조센삐의 극락'을
타이틀곡으로 실었는데 노래 제목의 '조센삐'라는 단어가 되려 위안부 할머니들을
비하한다는 이유로 고발당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후 8집 앨범의 타이틀곡을 '조각배'로 변경했으며 제목도
어느 할머니의 극락'으로 바꾸면서 일단락되었다. 1998년에는 11집 앨범 수록곡인
낯선 바닷가에서'의 뮤직비디오를 촬영하다가 금속으로 된 전등이 기울어 쓰러지면서
머리를 직격하는 바람에 전치 6주 이상의 부상을 입었고 수술까지 받는 큰 사고를 당했다.
이것 때문에 활동 복귀도 취소되는 등 본인에게 가장 큰 흑역사였다.
당시 연예관련 프로에서 그녀가 전등에 머리를 맞는 장면을 그대로 내보내
엄청난 비난을 들었다. 2001년 5월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코너였던
게릴라 콘서트에 출연,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심지어 먼저 인사를 건네도
아무도 자신을 못 알아보는 굴욕을 겪었지만 게릴라 콘서트 현장에는 9217명의
관객을 모으면서 대성공을 거뒀다.
동안으로 유명하다. 남자가수계의 절대 동안 이승환이 있다면,
여자가수계에는 이선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현, 안내상, 한석규, 정진영과 동갑이고, 김상중, 조재현, 김국진, 김태원보다 한 살 많다.
오죽하면 강변가요제 때부터 나이를 속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선희의 아버지는 국내에서는 상당히 드문 태고종의 대처승 이었고,
불교 음악인 범패 전수자였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졸업 즈음까지 숲에 있는 큰 절에서
자랐기 때문에 많은 스님들과 함께 지내며 스님들의 불경 독송을 따라하곤 했다고 한다.
어린시절 이선희는 아버지가 스님이고 절에서 산다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은 이선희의 노래를 듣고 감동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한다.
홍콩 영화 배우이자 톱스타였던 故 장국영과도 친분이 있었는데 장국영이
1989년 내한했을 때 함께 합동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었다.
당시 MC가 장국영에게 이선희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넌지시 묻자 장국영 왈
귀여운 여동생 같다고 했다.
이후 홍콩에 초대받아 장국영이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주윤발 등이 참석한 선상파티에도
초대되어 즐거웠다고 훗날 추억하기도 했다.
장국영이 홍콩에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는걸 보면 장국영이 이선희를
마음에 들어한 모양이다. 이선희는 남자 셋 여자 셋-화이팅 홍박사!
(1999)에서 가수 이선희 역할로 특별출연하기도 했고, MBC 시트콤 깁스 가족
(2000)에서 이선희를 좋아하는 모창가수 역할로 나오기도 했으며
두근두근 체인지 (2004)에서는 가수 지망생들의 보컬 트레이너 역할로 나오는 등
연기 활동도 했었다.
능청을 떠는 것이 필요한 시트콤이었는데도 은근 자연스럽게 연기 잘 한다.
제자들도 길렀는데 이선희의 첫 제자가 바로 조정린 이었다. 모창대회에서 조정린을 보고
목소리가 예뻐 스타성과 실력을 겸비한 가수로 키우려 했는데, 실력도 중요하지만
성공하기 위해서는 외모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타성과 실력을 갖춘 그 다음이 이승기였다. 이선희가 소극장에서
밴드 공연을 하던 이승기를 우연히 보고 바로 제의를 했는데,
처음에 이승기는 이선희가 누군지 몰라 거절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에 바로 그 이선희가 제의했다는 사실을 안 이승기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
이승기 에게 어서 가서 사과드리고 제자로 받아 달라고 말씀드리라고 했고,
그렇게 이승기는 이선희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 밖에 이선희가 유난히 아끼고 좋아하는 후배가수들로는 홍경민, 백지영 등이 있다.
홍경민은 불후의 명곡에서 밝혀지기로는 자신과의 약속을 깬 적이 있었음에도
별다른 얘기를 안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시 홍경민은 '그때 김창환 작곡가와 미팅이 갑자기 잡혔다'며 그 자리에서 받은 곡이
<흔들린 우정>이라고 한다.
콤플렉스로는 다리가 못 생겨서 치마나 드레스를 입지 못한다고 한다.
한번 콘서트 때 드레스를 입었더니 관중들이 실망해서 그 뒤로 안 입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방송에서 한복을 입을 때에도 남자 한복을 입었다.
그러나 이덕화의 말 '다리에 흉터가 있다. 다리가 못 생겼다 그러던데,
한번 치마 입고 나온 걸 보니 예쁘던데요.
그 당시에 신문에 이선희가 치마를 입었다고 대서특필되기도 했었어요.'
에 따르면 굉장히 예쁜 다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콘서트에서 치마와 드레스를 종종 입기도 한다.
예외적으로 MBC의 어린이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도로시 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이 때에도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 역시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또한 2002년 이선희 빅 콘서트에서 12집 'My life + Best' (2001) 앨범의 타이틀곡
'이별 소곡'을 부를 때에도 빨간 드레스를 입은 적이 있다.
2016년 4월부터 SBS 방송국 프로그램인 판타스틱 듀오에서 예진아씨란 예명으로
함께하는 김예진과 환상적인 무대를 보여줬고,
초대 우승을 포함한 5연승을 이룬 뒤 명예졸업했다.
자신의 노래에 '인연', '운명'과 같은 가사를 자주 사용한다.
13집 사춘기의 타이틀곡 제목이 아예 인연인 것도 그렇고, '인연'과 '운명'이라는 가사가
'인연', '그 중에 그대를 만나', '바람꽃' 등의 노래에 전부 들어가 있다.
가사를 자주 개사하여 부른다.
그냥 가사를 헷갈리는 것일 수도 있다. 본인이 직접 작곡했는데 말이다.
나 항상 그대를'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돌아와 그대 내게 돌아와 난 온통 그대 생각뿐이야'
에서 2000년대부터 '그대여 내게 돌아와 난 온통 그대 생각뿐이야'로 굳어졌고, '
그대여 돌아와요 나에게' 등의 바리에이션도 있다.
인연'의 후렴구는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요'와 '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의 두 가사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날의 기분에 따라 후렴구의 가사를 원래대로 부르는 경우가 있고, 전자 또는 후자로
통일시켜 부르는 경우도 있다.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먼 길 돌아 다시 만나는 날 나를 놓지 말아요' 등의 바리에이션도 있다.
그 중에 그대를 만나'의 후렴구는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와
'별처럼 수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서로를 만나'가 있는데, 후렴구의 가사 원래대로 부르기도
하고, 주로 전자로 통일시켜 부른다.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을 '우리 사랑 인연이었다면'으로 개사하여 부른 적도 있으며,
마지막 부분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을 전자로 통일하여
마무리하기도 한다.
1992년 음반 제작자 겸 자신의 매니저 윤희중 과 결혼하여 딸 윤양원을 낳았지만
결혼 6년만에 파경했으며 이후 2006년 6살 연상의 건축 사업가와 미국에서 재혼했다.
신승훈과 함께 KBS 가요톱10에서 역대 2번째로 최다 1위 수상자이자
최다 골든컵 수상자다.(26회, 4번) 이선희와 함께 MBC 강변가요제에 4막 5장으로
출전하여 대상을 수상한 임성균은 제대를 한 후에 음반을 내고 잠깐 활동을 했지만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했으며 현재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 나오는 일화에 따르면 그녀가 방방곡곡 콘서트 활동을 다니면서
지쳤을 때 한 할머니가 그녀의 대기실로 가서 빳빳한 지폐 한 장을 건네주며 격려해주자
그녀는 할머니가 준 지폐를 꼭 쥐면서 열정적으로 공연을 마쳤다는 이야기가 있다.
최불암은 이선희에 대해 "처음 봤을 때 머리가 뽀글뽀글한 어린 소녀가 콧등에 땀방울이
맺혀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그 감성과 울림,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부르짖음.
깜짝 놀랐어요. 최선을 다해서 노래하는 모습이 정말 예뻤어요"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소향, 박정현은 이선희를 가장 존경하는 가수로 꼽고, 임창정, 홍경민, 윤도현, 백지영,
벤, 슈퍼주니어 규현 등의 후배 가수들은 이선희의 팬으로 유명하다.
이선희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뛰어난 노래 실력에 감탄하며, 가장 닮고 싶은 가수로
‘이선희’를 꼽는다. 2017년 2월 28일 SBS '불타는 청춘'에서 양수경이 오랜 친구인
이선희를 향한 속마음을 고백했다.
양수경은 “내가 정말 힘들었을 때 아무 말 안하고 통장번호 대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당시 느꼈던 고마움을 고백했다. 또한 “넌 역시 대단한 가수고,
나한텐 좋은 친구야”라는 말로 오랜 친구 이선희에게 애틋한 속마음을 전했다.
래퍼 Mad Clown 역시 같이 음악작업을 하고 싶은 가수로 이선희를 꼽았고,
그의 트랙 'Piece of mine' 중 '콩'은 원래 이선희의 피쳐링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라고 한다. 친한 사람으로는 개그우먼 김미화, 아나운서 이금희, 배우 겸 MC 김원희,
방송인 최유라 등이 있으며 최유라를 제외하고 세 명은 12집 'My life+Best(2001)'의
수록곡 '살아가다 보면(박진영 작사, 작곡)'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김미화와 이금희는 이선희 콘서트에도 출연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이며
, 2004년 SBS '이선희와 친구들' 가요쇼에도 함께 출연한 바가 있다.
1985년 이선희는 KBS로부터 돌연 6개월 간 방송 출연 정지를 당한다.
당시 학생 신분이었던 이선희는 학교 시험으로 방송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KBS는 방송을 펑크냈다는 이유로 6개월 이상의 방송 출연 정지라는 조치를 내렸던 것이다.
또한 1985년 '나는 사랑에 빠졌어요'가 이은하의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곡과
표절 시비에 휘말리면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1986년 정수라의 KBS 가요대상 수상곡이자,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제곡이었던
'난 너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대상 수상 직후에 표절 시비에 휘말려 표절 판정을 받았다.
이선희의 1집부터 4집 앨범은 전부 연초에 발매되었다.
그녀는 연초에 앨범을 발매해서 연말에 인기가 주춤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연말의 인기가 가요대상의 여부를 판가름하는 척도였던만큼,
이선희는 유달리 상복이 없었다고 할 수도 있다.
1988년 MBC 가요대상에서는 대중 엽서 집계 1위와 음반 판매량 역시 2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차지하지 못했다.
이선희는 '알고 싶어요'의 작사, 작곡가인 양인자, 김희갑 부부의 결혼식 무대에서 축가로
'알고 싶어요'를 불렀는데, 양인자, 김희갑 부부가 정신이 없다 보니 감사 인사와 답례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무려 30년 동안 말이다! 2017년 5월 13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방송분에서 양인자가 이선희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고,
다음에 밥 한 끼를 사겠다고 약속했다.
이선희의 노래는 그녀가 너무 노래를 쉽게 부르고, 또 음역이 큰 폭으로 왔다갔다 하는
부분이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애창하는데 쉽게 보다가 피를 보는 경우가 무척 많다.
그녀의 가창력을 새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일례로 인연의 경우, '먼 길 돌아' 부분에서 '길' 부분을 가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반인 여성은 둘째치고 여가수조차 드물다.
이선희가 ?넘치는 가창력을 주체하지 못하고 노래를 너무 잘 불러서 SBS 판타스틱 듀오
프로그램의 취지를 잘 살리지 못했고,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기사도 있다.
그리고 기자는 마음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며 댓글 창에서 대차게 까였다.
인터뷰나 콘서트 중 멘트를 할 때는 그녀가 노래를 부를 때와는 달리 매우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말하면서도, 조리 있게 말을 잘 하는 편으로 30년 이상 가수로
활동하면서 쌓인 그녀의 경력과 그녀 개인의 노력 덕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연예가중계에서 인터뷰를 했을 때 제작진으로부터 예상질문 리스트를 받아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나하나 달아보며 준비한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콘서트 보안이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그 흔한 공연 후 인증샷도 찍을 수 없다.
최근 팝스타들의 내한공연에서 관객들의 각종 비매너 논란이 있는 가운데
이럴 바에는 아예 처음부터 이선희처럼 해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자기 관리를 위해서 술담배를 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평소 식성도 소식에다
자극적이지 않은 채소 음식을 즐긴다. 이 때문에 이승기가 이선희의 집에서 숙식하며
노래를 배울 때 상당히 곤란해 했다. 한창 잘 먹을 나이인데 매일 먹는 반찬이 싱거운
풀때기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승기가 운동하고 오겠다는 핑계로 나가서 몰래 자극적인
음식을 사 먹고 온 적도 있다고 하는데,
정작 이선희는 그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이렇듯 제자인 이승기와의 인연으로 2018년 5월 27일, 6월 3일에 SBS 집사부일체
10대 사부로 출연했다.
인천대학교 2018학년도 후기 학위수여식에서 '인천대를 빛낸 인천대 동문상'을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