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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버리라
잠언 6:1-19
1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2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3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4 네 눈을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을 감기게 하지 말고
5 노루가 사냥꾼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 같이 스스로 구원하라
6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7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8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
9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10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 하면
11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12 불량하고 악한 자는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니며
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14 그의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 그러므로 그의 재앙이 갑자기 내려 당장에 멸망하여 살릴 길이 없으리라
16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의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예닐곱 가지이니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이니라
참된 신앙은 현실 속에서 실천으로 나타나야 하고, 그러한 실천은 생명을 담은 성품으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빚어내지 못하는 신앙은 죽은 신앙이며, 삶의 실천과 무관한 믿음은 머리 속에서의 지적 유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복음의 능력은 우리의 모든 삶에서 실천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며, 그러한 실천이 진행되면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복음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
으로써 우리는 그 말씀을 항상 우리 마음에 새기고 우리 목에 매고 그 명령과 법을 지키고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우리가 다닐 때에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가 잘 때에 우리는 보호하며 우리가 아침에 깨어날 때에 우리와 더불어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그 복음은 우리의 삶의 “등불이요 빛이요 생명의 길”이 될 것입니다(참조, 잠 6:22-23).
저는 16절 이하를 먼저 다루고 그 다음에 앞부분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6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해 미워하시는 것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교만한 눈,
둘째는 거짓된 혀,
셋째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넷째는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다섯째는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
여섯째는 거짓을 말하는 망련된 증인
일곱째는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
입니다.
먼저, 교만한 눈은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 우습게 여기며 내려다보는 눈으로서 그 ‘마음’이 교만한 것을 의미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을 보면, “새로 입교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라고 언급합니다. 즉, 선한 천사의 영역에 있었던 천사들 중에 교만이 들어간 천사가 마귀가 되었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교만이 들어가면 그 마음은 마귀와 같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곱 가지 악덕 중에 제일 먼저 ‘교만’을 언급한 것은 교만이 모든 죄의 근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 가운데 가장 미워하는 죄는 교만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교만을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심지어 가끔 보면 교만을 멋있다고 느끼는 어리석은 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교만은 가장 무섭고 더러운 죄악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이 없이 살 수 있다는 착각이며,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높다는 어리석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는도다”(딤전 6:4).
교만은 일반적으로 보면 많은 학식이 있든 없든, 돈이 많든 적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노숙자를 만나보았는데 얼마나 교만하던지요, 온 세상을 자신이 다 꿰뚫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신자는 성경도 제대로 한 번 읽어본 적이 없는데 하나님을 만나보았다고 하며 지독한 영적 교만에 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특히 교만한 자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권위 질서를 허무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
둘째로 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은 거짓된 혀입니다. 거짓된 혀는 의도적으로 진리와 사실을 왜곡시키고 사람을 속이는 혀를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거짓의 아버지는 ‘마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이에 성경은 선포합니다.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시 5:5-6).
그러므로 거짓된 혀로 사람들을 속이는 자들은 이단을 포함하여 결단코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계 21:8).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세 번째 죄악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입니다. 이 내용은 정확하게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아벨은 가인에게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인은 무죄한 아벨을 죽입니다.
[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라
](창 4:8, 10-11).
물론, 잠언이 말하는 피 흘리는 손은 비록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어도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와 고통과 비참을 가져다 주는 악행을 의미합니다. 특히 이유 없는 비방 및 험담은 이 죄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악인을 대단히 미워하십니다. 이 자리에 계신 성도들은 모두 이유 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나 고통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쓸데없이 남을 비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손에 결단코 무죄한 자의 피가 묻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손에 무죄한 자의 피가 있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만나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5).
넷째는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입니다. 이는 은행 강도가 은행을 털기 위해 모든 정보를 모으고 계획을 하는 것처럼 악을 도모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악을 성취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계획을 짜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상태는 여호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합니다. 따라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다섯째는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입니다. 악을 저지르는데 너무나 익숙하여서 멈춤이 없다는 뜻이고, 심지어 악을 행하는데 신이 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죄악에는 ‘헤도네이’라는 마약성 쾌락이 있습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죄악에 중독됩니다. 그러므로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은 양심이 화인 맞은 사람을 말합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
여섯째는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입니다. 원어를 보면 거짓으로 호흡하는 거짓 증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자기 삶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며 살아가는 것이요, 거짓에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거짓 증인은 재판장 앞에서 거짓을 증언하는 죄를 짓는 자를 말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거짓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거짓입니다.
잠언 14장 5절을 보면, “신실한 증인은 거짓말을 아니하여도 거짓 증인은 거짓말을 뱉느니라”고 되어 있고, 14장 25절은 “진실한 증인은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여도 거짓말을 뱉는 사람은 속이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은 거짓 증인으로 하여금 벌을 받게 하시며 망하게 하실 것입니다(참조, 잠 19:5, 9). 우리가 거짓을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영원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로는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거룩한 공동체에서 ‘다툼과 분쟁을 만드는 자’입니다. 이는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과 권력을 위해 공동체 및 그 지체들을 이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거룩한 교회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서운 범죄입니다. 이 죄는 사실 고린도 교회를 무너뜨리는 죄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주께서 창조하신 인간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또한 성령으로 서로 하나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이를 망각하고 자신의 영광과 권한과 유익을 위해 그리스도의 공동체 내에서 당을 짓는다면 무서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백성을 이간시키는 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기 때문에 결코 잘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증이 여기시고 미워하시고 혐오하시는 일곱 부류의 사람들은 불량하고 악한 자이며, 구부러진 말을 하고 다닙니다.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을 하며, 그의 마음은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갑자기 재앙을 내리셔서 당장에 멸하실 것이며, 그들은 살아날 길이 없을 것입니다.
이제 처음으로 돌아가서 1-5절은 보면, 우리에게 보증을 서지 말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잠언을 통해 지금까지는 악인에 대해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다루어왔습니다. 하지만 1절부터 5절은 매우 가까운 사람, 또는 아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하늘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것은 친구 때문에 어리석음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어리석음이란 내 자신을 담보로 하여 타인을 위하여 보증을 서는 것입니다. 이때 타인은 종종 아는 친구, 또는 가족 등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증을 전혀 서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까? 보증 서는 것은 죄입니까? 사실 친구를 위해 보증을 선다는 것은 진정한 우정을 보여주는 행위일 수 있습니다. 죽음 앞에 서 있는 친구 대신 네 생명을 담보로 하여 그를 살려준다변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대신 담보가 되셔서 십자가 상에서 속죄양이 되신 것 아닙니까?
창세기 43장을 보면 유다가 야곱에게 말하기를 자신의 생명을 베냐민을 위해 담보로 맡기겠다고 말합니다. 이는 야곱 가족을 굶주림에서 살려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입니다. 그 희생이 담보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내(유다)가 그(베냐민)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창 43:9).
또한 빌레몬서를 보면, 바울이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를 위해 담보를 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진 빚을 바울이 대신 갚겠다고 말합니다.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빌 1:18-19).
지금 잠언에서 말하는 것은 이러한 우정을 저버리고 내 안전부터 챙기라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 잠언의 내용은 친구의 위태한 상황에 어리석게 함께 빠져 들어서 둘 다 망하는 경우가 없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한 친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를 위해 내 모든 것과 가정을 담보로 거는 것이 아니라 힘 닿는 데까지 돕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녕 참 사랑이며 우정이며 정의이며 지혜입니다. 따라서 시인은 “은혜를 베풀며 꾸어 주는 자는 잘 되나니 그 일을 정의로 행하리로다”(시 112:5)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단순한 인정 때문에, 또는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담보 보증을 서는 것은 그 친구에게 내 삶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그 친구의 채권자에게 내 삶과 재산과 가정을 맡기는 것입니다. 이는 지독한 어리석음입니다. 그 친구의 채권자에게 왜 내 삶과 가정의 앞날을 맡깁니까? 우리는 오직 주 하나님께 우리의 삶과 가정과 앞날을 맡겨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러한 담보는 하늘의 지혜가 아니며 종종 이러한 보증 이후에는 친구와의 관계 역시 원수로 마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잠언은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되는 자는 손해를 당한다”(잠 11:15)고 말하고 있고, “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이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잠 17:18)고 하며, 그 친구의 채권자는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할 것이며, 그의 몸을 볼모로 잡을 것”(잠 20:16)이라고 말합니다. 즉, 그 친구의 채권자가 나의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심지어 감옥에 보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잠언의 지혜는
“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만일 갚을 것이 네게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잠 22:26-27)
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보증을 섰다면 신속하게 갚을 것이요, 갚을 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한다면 친구의 채권자에게 찾아가 끝까지 자비를 구해내서 그 상태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담보를 서지 말라는 지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서 함부로 약속하지 않는 지혜와 연결됩니다. 그리스도인의 표지는 신용입니다. 즉, 우리 주께서 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키심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그리스도의 향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쓸데 없는 약속을 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는 하나님께 서원을 하고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떤 약속이든 약속을 할 때는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만일 약속을 했다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약속하지 않기 바랍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6-11절인데 그 내용은 게으름에 대한 것입니다. 성경은 게으른 자는 지혜에 있어서 개미보다 못한 존재라고 말합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가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잠 6:6).
즉,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개미를 스승으로 삼아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개미에게 무엇을 배웁니까?
첫째, 8절을 보면, 개인은 “양식을 모으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모은다’는 히브리어 단어는 (아가르)인데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계속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개미는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합니다.” 즉, 개미는 대단히 작은 것 하나라도 부지런히 감당합니다. 개미는 그의 현재의 수고가 어려운 때에 그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 개미를 많이 보며 지냈습니다. 개미가 어디에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연구도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개미는 언제나 작은 것 하나라도 물면 열심히 그것을 집으로 가져갑니다. 그리고 또 나옵니다. 어떤 때는 자기 몸 보다 큰 벌레를 물고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제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먼지 같은 것을 하나 물고 열심히 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개미는 언제나 크든 작든 주어진 책임을 부지런히 감당합니다.
우리는 개미로부터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이 환난을 피하는 비결인 것을 배웁니다. 더욱이 우리는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기업을 얻는데 있어서도 작은 것에 충성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둘째는, 개미는 미래를 준비할 줄 안다는 것입니다.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잠 6:8).
개미는 겨울을 위해 봄 여름 가을에 준비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항상 미래를 위해 준비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특히 성경 전체에서 볼 때 지혜로운 자는 궁극적인 미래인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있게 될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서 살아갈 준비를 합니다. 겨울은 이 땅에서든, 영적으로든 반드시 옵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을 때 열심히 예비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훈련된 자는 영적인 거울인 마귀의 시험이 갑자기 닥쳐올 때에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평소에 영적인 훈련을 조금씩이라도 쉬지 않고 쌓아왔기 때문입니다.
[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딤전 4:5, 7-9)
셋째로, 개미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수고합니다.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감독자도 없고 통치자도 없으되… 양식을 모으느니라”(잠 6:7-8).
강제로 일하는 것은 아름답지 못하며 보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여 하는 수고는 언제나 보람이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즐거움으로 수고하는 자들은 언제나 보람이 있고 장래도 밝습니다. 하지만 억지로 수고하는 자는 오늘도 내일도 항상 불만족 가운데 힘들게 살아갑니다.
성경은 우리가 마리아처럼 주의 은혜로 가득할 때 자원하는 마음으로 감사 가운데 수고하게 되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때 그러한 자원하는 수고는 영원한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넷째로, 개미는 그의 수고가 열매를 맺을 때까지 인내하며 수고합니다. 7-8절을 보면, 이러 저러함에도 불구하고 양식을 예비하기 위해 모으는 개미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날마다 지켜보았던 개미들은 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개미가 지나는 길에 물을 부어 길을 지워본 적이 있는데, 개미는 길이 사라진 것을 보고는 한 동안 안절부절 못하지만 결국 어떤 방법이든 다시 길을 찾아내어 자기의 수고를 이루어내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직 인내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 땅에서도 그러하고, 특히 영적인 것과 영원한 것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
8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8-10; 4:16-18)
[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 6:7-9)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요이 1:8).
반면에,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합니다”(잠 12:27). “게으름뱅이는 손으로 일할 생각은 안 하고 꿈만 꾸다 죽고 맙니다”(쉬운 성경, 잠 21:25).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며”(잠 13:4),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잠 26:13)하며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게으른 자는 “문짝이 돌쩌귀에 따라서 도는 것 같이 침상에서 돕니다”(잠 26:14).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합니다”(잠 26:15),
성경은 게으른 자에 대한 매우 특이한 특징을 알려주는데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더) 지혜롭게 여긴다”(잠 26:16)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게으른 자에게는 아무리 충고를 해도 ‘너나 떠들어라, 나도 다 내 생각이 있다’고 하며 계속 게으른 상태에 머문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게으름뱅이는 다른 사람의 충고와 조언을 무시하고 계속 게으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게으름은 죄입니다. 죄는 그 가운데 거할수록 중독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죄에 물들수록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죄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마약 중독, 도박 중독, 음란 중독, 미움 중독, 의심 중독, 질투 등, 죄에 중독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게으름도 중독됩니다. 그러므로 게으름이 깊어가고 오래갈수록 그 사람은 게으름의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를 영적으로 적용해보면, 성경 묵상과 기도에 게으른 자들은 점점 깊은 영적 잠에 빠집니다. 그들에게는 말씀과 기도가 너무나 따분하고 무겁기 때문에 영적으로 깨어있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을 멀리하고 기도를 하지 않는 것에 중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5절에서 깨어있지 못한 제자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이 말씀이 자고 쉬라는 뜻이겠습니까? 바울이 주의 이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선포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엡 5:14)
게으른 상태에서 깨어 있지 못한 영혼은 철저한 회개 가운데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깨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주님을 저버리게 되면서 한없는 영적인 기갈과 궁핍을 겪게 될 것입니다.
어떤 게으른 아주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마 두 달에 한 번 정도 빨래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빨래를 하면 이곳 저곳에 널린 빨래 줄과 담벼락에 빨래를 걸어두었습니다. 하지만 빨래를 거두는 일이 없습니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어 먼지가 나든, 태양이 쬐든, 항상 빨래는 몇 개월 동안 담벼락 및 빨래 줄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방 안에는 항상 요강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요강 옆에서 밥도 먹고 텔레비전도 보았습니다. 그 아주머니의 집은 언제나 지저분했고 냄새가 났으며 바퀴벌레가 항상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어떤 게으른 분은 정원이 있는 큰 집을 샀는데 정원을 돌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원래 집을 살 때는 정원이 아름다웠는데 관리를 하지 않으니 세월이 지날수록 흉측한 밀림이 되고 있었습니다. 온갖 잡초가 생겨났고 나무들은 벌레가 먹었으며, 거미줄이 무성하여 그 지역의 흉물이 되었습니다. .
그렇다면 깨어 있지 못한 게으른 사람의 몸과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신자의 몸과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하는데, 그 성전은 얼마나 방치되어 있겠습니까? 세상의 더럽고 냄새 나는 쓰레기들이 얼마나 그 방에 가득 차 있겠습니까? 에스겔이 예루살렘 성전의 방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안에는 쓰레기와 해골과 우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참조, 겔 8:3-17).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도 분노로 갚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도 아니하리니 그들이 큰 소리로 내 귀에 부르짖을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겔 8:18).
사랑하는 여러분!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벧전 5:8-9).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우리 주 예수께서 당부하십니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누워 있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잠 6:9).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막 13:37).
한편, 본문의 게으른 자는 깨기는 합니다. 그러나 다시 잡니다.
“아,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누워 있자”(잠 6:10)
영적으로 말하면, “예배보다는, 말씀보다는, 믿음의 친교보다는, 좀더 세상 것에 취하자, 좀더 놀자, 주님께 안부 인사를 드리긴 해야 하는데 좀더 누워있다 나중에 하자”라고 미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섭리 가운데 만남이나 사건을 통해 영적인 잠에서 깨워 놓으면 그때만 잠깐 깨고 또 다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느라 스스로 영적인 잠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오늘 하루 먹고 살 수 있으면 되는 것이지 내일은 알 바 모른다는 자세입니다. 그러면서 전혀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고 나아가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것이 이 땅에서의 삶을 대충 사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않기 바랍니다. 이는 이원론적인 사고입니다. 영원한 나라를 사모하며 준비하는 참된 복음의 사람은 현실 속에서 더욱 성실하게 작은 일까지 최선을 다하며 부지런히 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되고,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주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들이여! 내가 믿음이 좋아서 게을러도 된다는 악한 착각과 생각에서 벗어나기 바랍니다.
[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14 게으른 자들을 권면하고 경계하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살후 3:6-8; 살전 5:14; 살후 3:10-12)
또한 게으른 자들은 주께 순종하지 않는 죄의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어디서나 짐이 되면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
13 또 그들은 게으름을 익혀 집집으로 돌아 다니고 게으를 뿐 아니라 쓸데없는 말을 하며 일을 만들며 마땅히 아니할 말을 하나니
15 이미 사탄에게 돌아간 자들도 있도다
](딤전 5:13, 15)
[
11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12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
8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히 6:10-12; 벧후 1:8-9)
(그러므로)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 그렇지 아니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잠 6:11).
장차 마지막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 주 예수님은 주를 위해 게으르지 않은 자들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또 네가 인내하며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3).
그러나 게으른 자에 대해 심판하십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마 25:26).
즉, 주님은 심고 거두는 원칙대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게으른 자는 거둘 것이 없고 나아가 주인의 뜻을 대항하였기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어두운 데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늘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깨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성하기 바랍니다. 주부는 주부로서, 회사원은 회사원으로서, 공무원은 공무원으로서, 법조인은 법조인으로서, 주의 영광을 목적으로 하여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열심히 살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우리의 빛이여 생명이고 진리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십자가를 붙들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에게 생명수를 부어주시고 하늘의 거룩한 생명의 떡을 먹이실 것입니다. 주의 생명수와 생명의 떡을 배불리 마시고 먹은 그 힘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것들을 다 버리시고 부지런히 주께서 맡기신 각자의 소명에 충성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매일 영원한 보람과 만족을 성취하며 믿음과 충성으로 살아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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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설교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큰 은혜 받고 갑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