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sZCOFlpMDQ
"약속의 자손인가, 자기 뜻의 자손인가"
부제: 자신의 의를 내려놓고 여호와의 마음으로 돌아오라
본문: 로마서 9:9–16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오늘의 히브리어
1) 에무나 — אֱמוּנָה (Emunah)
뜻: 믿음, 신실함, 충성
에무나는 단순히 머리로 믿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여호와를 신뢰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태도와 연결됩니다.
하박국 2:4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묵상: 나는 내 생각과 열심을 의지하는가, 아니면 여호와의 약속을 신뢰하며 살아가는가?
2) 헤세드 — חֶסֶד (Chesed)
뜻: 인애, 자비, 신실한 사랑
헤세드는 여호와께서 언약 가운데 베푸시는 사랑과 자비를 뜻합니다.
출애굽기 34:6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묵상: 나는 여호와의 긍휼을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는 근거가 아니라,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은혜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에무나(אֱמוּנָה) — 여호와의 언약을 신뢰하는 믿음
헤세드(חֶסֶד) — 언약 가운데 베푸시는 신실한 사랑
우리는 자신의 열심으로 언약을 얻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헤세드를 의지하며 에무나로 살아가는 언약 백성입니다.
1. 누가 참된 언약의 자녀인가?“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롬 9:16)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자신을 이렇게 나타내셨습니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출 3:6)
왜 이스마엘의 하나님, 에서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그들의 이름을 아는 것일까? 그들의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일까?
오늘 바울은 로마서 9장에서 언약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누가 참으로 언약의 자손인가? 여호와께서 부르신 백성은 누구인가?
이 질문들을 따라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2. 언약은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여호와의 약속으로 세워진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었습니다.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혈통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삭을 통해 언약을 이어 가셨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능력으로 얻은 아들이 아닙니다.
사라는 이미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인간의 능력과 노력만으로는 약속이 이루어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롬 9:9)
그리고 약속대로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에는 웃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불가능했던 일이 여호와의 약속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스스로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라 여호와의 신실하심으로 시작된 생명입니다.
3. 언약은 완전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아니다.
이번에는 이삭의 아들인 에서와 야곱을 이야기합니다.
두 사람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쌍둥이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리브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롬 9:12)
당시에는 장자가 먼저 상속받는 것이 일반적인 질서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장자 상속 질서에 매이지 않으셨습니다.
야곱을 통해 언약의 계보를 이어 가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야곱이 처음부터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선택받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야곱도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방법을 의지했고, 형을 속였으며,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그는 분명 정직함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보다 더 정직하지 못해 10번이나 속이는 라반 아래에서 훈련받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연약함에도 여호와께서는 거룩함을 위해 다루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게 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언약은 인간의 완전함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언약(신실하심)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은 여호와의 다루심 속에서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진다고 모두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사실만으로 참된 믿음이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이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부정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언약을 자랑하면서도 언약 백성처럼 살지 않는 태도를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가 이삭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여호와의 약속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야곱의 하나님을 믿는다면 자신의 방법을 내려놓고 여호와의 다루심을 받아야 합니다.
믿음의 후손이란 조상의 이름을 가진 자가 아니라, 조상들을 부르신 대로 믿음으로 응답하는 사람입니다.
4. 여호와의 공의와 긍휼은 분리되지 않는다
바울은 질문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리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합니다.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롬 9:14-15)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금송아지 사건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숭배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을 받은 백성이 급히 여호와의 언약을 배반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금송아지를 숭배한 이스라엘의 죄를 묵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날 약 3천 명이 죽었으며, 여호와께서는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셨습니다(출 32:28, 35).
그러나 범죄한 이스라엘을 모두 멸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심판 가운데서도 남은 백성을 보존하시고 언약의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모세는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하며 자신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 것까지 감수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출 32:33)
죄의 책임은 범죄한 자에게 있으며, 의로운 중보자에게 부당하게 전가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다른 사람의 의로움이나 희생을 이유로 자신의 불순종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죄를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시며, 동시에 죄인이 돌이켜 살기를 원하시는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긍휼은 죄를 허락하는 것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킬 기회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5 예슈아의 속량은 죄에서 돌이켜 순종하도록 부르는 은혜이다
예슈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죄인들이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죄 가운데 살아도 구원받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4)
예슈아의 희생은 죄의 권세에서 우리를 해방하고, 여호와께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으로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예슈아의 죽으심은 죄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의 의미를 깨닫고 죄와 싸우며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예슈아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지만, 죄의 종으로 계속 살아가도록 죽으신 것은 아닙니다.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히5:8-9)
이 말씀은 충성된 믿음이 순종의 삶과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순종은 구원을 위한 조건이라기 보다,
참된 믿음이 삶 가운데 나타나는 열매이며, 예슈아를 따르는 제자의 길입니다.
그러므로 예슈아를 구원자로 고백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불법(죄)을 행하는 삶을 정상적인 구원의 상태라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예슈아와 연합한 사람은 그분의 죽으심에 참여하여 옛사람이 함께 못 박힌 자입니다.
그 목적은 다시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죄를 미워하는 삶
- 불순종을 합리화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이키는 삶
- 죄의 종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삶
- 넘어졌을 때 언약에 따라 회개하고 다시 순종으로 일어서는 삶
예슈아의 죽으심은 죄를 지어도 되는 근거가 아니라,
죄와 싸워 이겨야 할 이유입니다.
6.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경고
예슈아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
예슈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고백만으로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슈아께서는 마지막 날에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게 경고하십니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마 7:23)
다만 죄와 싸우다가 넘어져 회개하는 사람과, 죄를 사랑하며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은 구별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돌이키는 자에게 용서와 회복의 길을 열어 두셨습니다.
참된 믿음은 언약에 따라 죄를 인정하고 돌이켜 여호와께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언약 백성입니다.
7. 모세의 중보와 예슈아의 속량
모세는 백성을 위해 자신의 이름을 내어놓으려 했지만, 여호와께서는 죄를 범한 자에게 책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예슈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오실 때에는 구원의 완성과 함께 의로운 심판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희생을 의지한다는 이유로 불순종을 정당화해서는 안 됩니다.
예슈아의 속량을 받았다고 하면서 죄를 사랑하고 불순종을 지속한다면,
그것은 예슈아의 죽으심을 모독하고 여호와의 공의를 멸시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공의가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슈아께서는 우리로 죄에서 돌이켜 의롭게 살아가는 백성으로 세우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입니다.
모세에게 선언하신 죄에 대한 책임과 예슈아께서 가르치신 순종의 요구는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8. 자기 열심인가, 여호와의 언약인가?
이스마엘과 에서를 단순히 악한 사람으로, 이삭과 야곱을 처음부터 완전하게 순종한 사람으로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이삭과 야곱이 언약의 계보를 이은 것은 그들이 처음부터 의로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러나 언약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삶에서 돌이켜 여호와의 뜻을 배워가고 순종해야 합니다.
특히 야곱도 처음부터 자기 뜻을 온전히 내려놓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방법으로 축복을 붙잡으려 했던 야곱이 여호와의 다루심을 통해 변화되어 갔습니다.
로마서 10: 2–3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은 토라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여호와의 뜻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의를 세우려는 인간의 태도가 문제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예레미야 31:33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새 언약은 토라를 마음에서 지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새기는 약속입니다.
이사야 56:6절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
“언약의 자손은 자신의 의를 증명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여호와의 마음을 알아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9. 비유 이야기 (1)
"문을 열어 주신 아버지"
어느 마을에 두 형제가 살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는 아버지의 재산을 훔치고 집을 떠나 먼 나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방탕하게 살아가던 두 사람은 가진 것을 모두 잃었습니다. 결국 빚을 갚지 못해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는 두 아들이 감옥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을 사랑했지만, 그들이 저지른 잘못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너희가 저지른 일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가 이곳에서 죽어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와 바르게 살아가기를 원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전 재산을 내어놓아 두 아들의 빚을 갚았습니다.
그리고 감옥의 문이 열렸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너희는 자유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 것은 다시 도둑질하며 살라는 뜻이 아니다. 돌아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는 것이다.”
두 형제는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께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두 사람의 삶은 달라졌습니다.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희생을 기억하며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옛 습관이 떠올랐고, 욕심에 넘어져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아버지께 돌아와 용서를 구했고,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사과하며 잘못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는 매일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놓으셨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그 감옥으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반면 둘째 아들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신다. 내가 또 잘못을 저질러도 결국 용서해 주실 것이다. 아버지가 내 빚을 갚아 주셨으니 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닌가?’
그는 다시 도둑질을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경고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너를 감옥에서 구해 주신 이유를 잊었느냐?”
그러자 둘째 아들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너희는 아버지의 사랑을 모르는구나. 우리 아버지는 나를 위해 모든 재산을 내어놓으신 분이다. 나는 이미 용서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께 돌아가지 않았고,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너희는 아직도 법과 죄를 이야기하느냐? 나는 아버지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이다.”
세월이 흘러 둘째 아들은 다시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이 물었습니다.
“너는 이전에도 같은 죄를 저질렀느냐?”
“그렇습니다.”
“그때 누가 너의 빚을 갚아 주었느냐?”
“제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같은 죄를 저질렀느냐?”
둘째 아들은 당당하게 대답했습니다.
“제 아버지는 저를 사랑하십니다. 저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재판관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네 아버지가 너를 사랑하셨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네게 다시 도둑질할 권리를 주었느냐?”
둘째 아들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재판관이 다시 물었습니다.
“네 아버지가 갚아 주신 것은 지난날의 빚이었다. 그런데 너는 그 희생을 기억하며 새로운 삶을 살았느냐? 아니면 그 희생을 핑계로 새로운 죄를 지었느냐?”
둘째 아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재판관이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감옥의 문을 열어 주셨지만, 다시 그 문으로 걸어 들어간 것은 너 자신이다.”
한편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역시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넘어질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돌이켰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희생을 자신의 자유를 위한 핑계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희생 때문에 더욱 정직하게 살아가려고 애썼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첫째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왜 그렇게 애쓰며 살아가느냐?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아직 믿지 못하느냐?”
첫째 아들이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죄를 멀리하려고 하느냐?”
아들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희생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기에, 저는 다시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던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품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잘했다, 아들아. 내가 너를 자유롭게 한 것은 네가 다시 죄의 종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자유로운 아들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의 차이는 아버지가 누구를 더 사랑했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두 아들을 모두 사랑했고, 두 아들을 위해 똑같이 희생했습니다.
그러나 두 아들은 그 사랑에 서로 다르게 응답했습니다.
한 아들은 아버지의 희생을 기억하며 죄와 싸웠습니다.
다른 아들은 아버지의 희생을 죄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예슈아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으심은 죄인들이 계속 죄의 종으로 살아가도록 허락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돌이켜 의의 종으로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당신은 예슈아의 죽으심을 죄에서 벗어나야 할 이유로 삼고 있습니까, 아니면 죄 가운데 머물러도 된다는 위안으로 삼고 있습니까?”
9. 비유 이야기 (2)
"왕의 마음을 잃어버린 두 서기관"
옛날 어느 나라에 백성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왕이 있었습니다.
왕은 백성들이 서로 해치지 않고 평안하게 살아가도록 법도를 세웠습니다.
그 법에는 가난한 자를 돌보는 방법, 억울한 자를 공정하게 재판하는 방법, 이웃의 소유를 존중하는 방법, 그리고 정해진 날에는 모든 일을 멈추고 안식하는 방법까지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왕은 두 서기관을 불러 자신의 법을 가르쳤습니다.
“너희는 이 법을 배우고 백성들에게 가르쳐라.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여라. 이 법은 너희가 얼마나 의로운 사람인지 증명하기 위해 준 것이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백성들이 생명을 얻도록 준 것이다.”
두 서기관은 왕의 말씀을 듣고 깊이 절했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첫 번째 서기관은 누구보다 열심히 법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모든 조항을 암송했고, 한 번도 정해진 샤밧의 날을 어기지 않았으며, 왕이 정한 규례를 정확하게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존경했습니다.
“저 사람만큼 왕의 법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서기관은 마음속으로 기뻐했습니다.
‘나는 누구보다 왕께 충성스러운 사람이다.’
두 번째 서기관 역시 왕의 법을 사랑했습니다.
그도 매일 법을 공부하고 샤밧의 날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는 법을 읽을 때마다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왕께서는 왜 이 법을 주셨을까? 이 말씀을 통해 왕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어느 날, 왕이 두 서기관을 불렀습니다.
“내일은 거룩한 샤밧이다. 너희는 성문 앞에 나가 백성들이 나의 법을 어떻게 지키는지 살펴보아라.”
다음 날, 두 서기관은 성문 앞에 섰습니다.
사람들은 일을 멈추고 샤밧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늙은 여인이 무거운 짐을 끌며 성문으로 다가왔습니다.
여인의 옷은 낡았고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가득했습니다.
짐수레에는 병든 어린 손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여인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제 손자가 밤새 열이 심했습니다. 성안에 있는 의원에게 데려가야 합니다. 제발 도와주십시오.”
첫 번째 서기관이 엄숙하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샤밧이오. 왕의 법은 이날 짐을 나르는 일을 금하고 있소.”
여인은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저도 왕의 법을 압니다. 그러나 아이가 너무 아픕니다.”
서기관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왕의 법을 안다면 더욱 지켜야 하지 않겠소? 나는 왕의 명령을 어길 수 없소.”
그는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때 두 번째 서기관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의 상태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왕께서 샤밧을 주신 것은 백성들을 괴롭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병든 아이를 살리는 일이 어찌 왕의 마음에 어긋나겠습니까?”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아이를 의원에게 데려가도록 도왔습니다.
첫 번째 서기관은 크게 화를 냈습니다.
“당신은 왕의 법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오! 나는 법을 지켰지만 당신은 법을 어겼소!”
두 사람의 다툼은 결국 왕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왕은 두 서기관을 불렀습니다.
먼저 첫 번째 서기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나의 법을 사랑하느냐?”
그가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누구보다 왕의 법을 열심히 공부했고, 단 한 조항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는 왜 내가 그 법을 주었는지도 알고 있느냐?”
서기관은 대답했습니다.
“백성들이 왕의 명령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왕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이냐?”
서기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왕은 두 번째 서기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그 여인을 도왔느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왕이시여, 저 역시 왕의 법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왕께서 가난한 자를 돌보라 하시고, 생명을 귀히 여기라 하시며, 샤밧을 주신 까닭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살리는 일이 왕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그 뜻에 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너희 둘 다 나의 법을 배웠다. 너희 둘 다 나의 법을 지키려고 애썼다.”
그리고 첫 번째 서기관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너는 나의 법을 지키면서 누구를 바라보았느냐?”
서기관이 대답했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왕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네가 법을 잘 지켰다는 사실은 그렇게 기뻐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백성이 고통받는 것은 보지 못하였느냐?”
서기관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왕은 말했습니다.
“너는 나의 법을 가지고 너의 의로움을 세웠구나. 너는 나의 명령을 많이 기억했지만, 그 명령을 내린 나의 마음은 잊어버렸다.”
서기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왕이시여, 저는 왕을 위해 달려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왕이 대답했습니다.
“너는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를 향해 달린 것이 아니라 네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서기관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왕이시여, 제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왕이 말했습니다.
“다시 나의 법을 펼쳐라. 그러나 이번에는 네가 얼마나 잘 지켰는지를 세지 말고, 그 법을 통해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무엇을 기뻐하는지 살펴보아라.”
그리고 왕은 두 서기관 모두에게 당부했습니다.
“나의 마음을 안다는 이유로 나의 법을 버리지 말아라. 또한 나의 법을 지킨다는 이유로 나의 마음을 잃어버리지도 말아라.”
그날부터 첫 번째 서기관은 다시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질문을 품었습니다.
‘나는 이 말씀으로 나 자신을 높이고 있는가? 아니면 이 말씀을 주신 왕의 뜻을 배우고 있는가?’
그리고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왕의 법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이 반드시 왕의 마음을 가장 깊이 아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기도제목
1. 자기 의를 내려놓는 믿음
자신의 생각과 열심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의 뜻을 신뢰하게 하소서.
2. 여호와의 마음을 아는 지혜
토라를 주신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게 하소서.
3. 긍휼에 합당한 순종의 삶
예슈아의 속량을 기억하며 죄와 싸워 이기고, 거룩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4. 참된 언약 백성으로 살아가는 은혜
여호와께 온전히 연합하여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약속의 자손이 되게 하소서.
5. 예루살렘의 평안과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참된 샬롬을 허락하시고, 전쟁과 상처로 고통받는 모든 이들을 위로하소서. 메시아이신 예슈아를 통한 부활의 회복을 누리게 하소서. (시122:6)
Ⅰ. 객관식 20문제
1. 로마서 9장 16절에서 언약의 선택과 긍휼의 근거로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인간의 노력과 열심
② 혈통과 장자의 권리
③ 긍휼히 여기시는 여호와
④ 인간의 지혜와 능력
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 사용하신 표현은 무엇입니까? (출 3:6)
① 아담과 노아와 모세의 하나님
②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③ 아브라함과 이스마엘과 에서의 하나님
④ 이삭과 에서와 요셉의 하나님
3.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의 계보를 이어 가겠다고 말씀하신 아들은 누구입니까?
① 이스마엘
② 에서
③ 이삭
④ 야곱
4. 이삭의 탄생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①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약속을 이룰 수 있다.
② 여호와의 약속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 이루어진다.
③ 장자는 언제나 언약을 상속받는다.
④ 믿음이 있으면 기다릴 필요가 없다.
5.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 전에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② 두 아들이 똑같은 민족을 이루리라.
③ 어린 자가 큰 자를 섬기리라.
④ 장자에게만 복을 주리라.
6. 야곱이 언약의 계보를 이어 간 이유에 대한 올바른 설명은 무엇입니까?
①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었다.
② 야곱은 에서보다 언제나 정직했다.
③ 여호와께서 자신의 약속과 뜻에 따라 언약을 이어 가셨다.
④ 야곱이 자신의 노력으로 선택을 얻어 냈다.
7. 야곱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은 무엇입니까?
① 선택받은 사람은 변화될 필요가 없다.
② 언약을 받은 사람도 여호와의 다루심 속에서 변화되어야 한다.
③ 자신의 방법으로 축복을 얻는 것이 믿음이다.
④ 잘못을 저질러도 책임이 없다.
8.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롬 9:6)라는 말씀을 통해 묵상할 수 있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①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모든 약속이 취소되었다.
② 혈통과 외적인 소속만으로 참된 믿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③ 토라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④ 이방인은 언약에 참여할 수 없다.
9. 이스마엘에 관하여 성경에 분명하게 기록된 사실은 무엇입니까?
① 그는 할례를 받지 않았다.
② 그는 아브라함의 아들이며 할례를 받았다.
③ 그는 이삭의 아들이었다.
④ 그는 야곱에게 장자권을 팔았다.
10.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긴 사건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① 당장의 욕구보다 여호와께서 주신 귀한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②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죄다.
③ 장자는 절대로 잘못할 수 없다.
④ 언약은 인간의 선택과 무관하므로 삶의 태도는 중요하지 않다.
11. 금송아지 사건 이후 모세가 백성을 위해 간구했을 때 여호와께서 선언하신 말씀은 무엇입니까?
① 모든 사람의 죄를 모세에게 돌리겠다.
②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겠다.
③ 죄를 범한 사람은 모두 즉시 죽는다.
④ 언약을 받은 사람에게는 죄의 책임이 없다.
12. 금송아지 사건에서 드러난 여호와의 성품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입니까?
① 공의는 없고 긍휼만 있으시다.
② 긍휼은 없고 심판만 하신다.
③ 죄를 심판하시면서도 긍휼을 베푸신다.
④ 죄를 범한 백성에게는 관심이 없으시다.
13. 바울이 로마서 9장 15절에서 인용한 말씀은 출애굽기 어디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① 출애굽기 12:13
② 출애굽기 20:8
③ 출애굽기 33:19
④ 출애굽기 40:34
14.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따르면 예슈아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목적은 무엇입니까?
① 죄를 지어도 심판받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하시려고
②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시려고
③ 토라를 무시하고 살아가게 하시려고
④ 인간의 모든 선택을 무의미하게 하시려고
15. 히브리서 5장 8–9절에서 예슈아께서는 누구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말씀합니까?
① 혈통만을 자랑하는 사람
②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는 사람
③ 순종하는 모든 사람
④ 종교적인 지식이 많은 사람
16. 로마서 6장 1–2절에서 바울이 단호하게 부정한 생각은 무엇입니까?
①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생각
② 여호와의 은혜를 의지해야 한다는 생각
③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계속 죄 가운데 살아도 된다는 생각
④ 예슈아의 죽으심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
17. 로마서 10장 2–3절에서 바울이 지적한 이스라엘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① 여호와께 대한 열심이 전혀 없었다.
②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의를 세우려 했다.
③ 토라가 본래 악한 것이었다.
④ 모든 계명을 완벽하게 지켰다.
18. 예레미야 31장 33절에 나타난 새 언약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① 여호와의 법을 완전히 폐지하신다.
② 여호와의 법을 백성의 마음에 기록하신다.
③ 사람마다 자기 생각으로 법을 만들게 하신다.
④ 외적인 지식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하신다.
19. 이사야 56장 6절에서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의 모습으로 언급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①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한다.
②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않는다.
③ 여호와의 언약을 굳게 지킨다.
④ 자신의 혈통을 자랑하여 다른 민족을 멸시한다.
20. 이번 샤밧 메시지의 핵심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① 언약의 자손은 자신의 노력으로 의로움을 증명하는 사람이다.
② 토라를 많이 공부하면 마음의 변화는 필요하지 않다.
③ 언약의 자손은 여호와의 긍휼을 신뢰하며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다.
④ 예슈아의 속량을 믿으면 회개와 순종은 필요하지 않다.
Ⅱ. 주관식 5문제
1. 로마서 9장 16절을 기록하고, 이 말씀이 인간의 열심과 여호와의 긍휼에 관하여 가르치는 내용을 설명해 보세요.
2. 야곱은 처음부터 완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야곱을 다루신 과정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3. 토라를 열심히 공부하고 계명을 지키면서도 자기 의를 세우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를 경계하기 위해 어떤 마음이 필요할까요?
4. 예슈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다는 사실이 왜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는 허락이 될 수 없는지 성경 말씀과 연결하여 설명해 보세요.
5. ‘나는 여호와의 뜻을 따라 달려가고 있는가, 아니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 뜻을 이루려고 달려가고 있는가?’ 이 질문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묵상한 내용을 적어 보세요.
객관식 정답표
1. ③ 2. ② 3. ③ 4. ② 5. ①
6. ③ 7. ② 8. ② 9. ② 10. ①
11. ② 12. ③ 13. ③ 14. ② 15. ③
16. ③ 17. ② 18. ② 19. ④ 20. 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