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하게 느껴졌던 한 계절은 떠나갔다. 구름 한 점 없는 화창한 날, 예년과 다르게 수은주가 내려앉아 있지만 아내와 같이 Flushing Meadows Corona Park 호수 길을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이리저리 토사곽란 하는 바람은 호수주변을 둘러싼 빛바랜 갈대들을 흔들어 깨우지만 하늘을 향해 고개를 꼿꼿하게 쳐들고 있을 뿐, 아무 대꾸도하지 않는다. 몸 시린 겨울 사이로 앙상하게 뼈대만 남기고 떠나버린 부모들의 사체 속에 숨어있다 따뜻한 햇볕에 살며시 연한 몸뚱이를 내보이는 어린 갈대들. 그리고 오솔길 옆에 겨울 내내 푸름을 잃지 않고 버텨온 드넓은 알래스카 잔디 위에는 지빠귀(American Robin), 까마귀(American Crow), 탄식비둘기(Mourning), 흰점 찌르레기(European Starling), 붉은 어깨 검정 새(Red-Winged Blackbird), 청둥오리(Mallard), 캐나다 기러기(Canada Goose)가 한데모여 돋아난 새순을 뜯고 있다. 발레리나처럼 환하고 요란한 모습으로 온 몸을 들썩이며 아름다움을 표현해 보이는 미국 다람쥐는 산책객들을 유혹한다. 달리던 자전거를 세우고 간식거리로 가져온 Crouton(버터에 구운 작은 빵조각)을 던져주자마자 두 앞발로 집어 들더니 서너 걸음 떨어 곳, 이미 드러누워 버려있는 오크나무 위로 재빠르게 올라가 주위를 살피더니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싫은 맛은 아닌지 서있는 곳 몇 걸음 앞까지 다가와서 먹었던 것을 달라고 앞에서 촐랑거린다. 낮은음자리표를 그리듯 살랑거리며 오는 바람에 호수는 촘촘한 물비늘을 돋아내고, 머물러 호수와 친구가 되고 싶은 바람은 뜀박질을 하며 달려오는 꼬리바람에 떠밀려 내 몸을 스쳐가는 바람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어디론가 떠난다. 호수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가는 바위 위에는 대여섯 마리의 거북이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봄볕을 하나도 놓침 없이 온 몸으로 받아드린다. 바람은 바람으로 불어가며 흔들어보지만 본연의 모습을 잃지 않고 그대로 지키고 있는 사물. 호수는 강렬하게 내뿜는 봄 햇살을 받아드리며 은빛으로 희게 빛을 낸다. 삶의 연륜이 쌓이고 짙어갈수록 봄을 그리워한다고 했던가. 바쁜 일상에도 내 마음은 어느새 봄의 언덕에 올라와 봄을 위한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맞선을 보기 위해 정성을 다해 화장을 한 순백의 처녀처럼, 세상은 화사함으로 넘쳐나지만 단 한 번의 꽃을 피우고 퍼뜩 사라질 것이라는 아쉬움은 지금 진행되어가고 있는 이 계절보다 앞선다. 봄은 가만히 가는 듯해도 갈수록 강렬해지는 햇볕을 끌어오고 꽃들은 아우성치고 원망하다 떨어져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봄은 모든 계절의 시작하지만 결국 아쉬움만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버리는 계절. 계절은 멈춤 없이 영원토록 자연의 궤도를 따라 순환해야만 한다는 것을 암시하듯, 산책길은 작년에도 백목련 꽃의 무덤이 되어 있었고 올해도 무덤이 되어가고 있다. 내 生이 마침표를 찍지 않는다면 내년 봄에도 백목련 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볼 것이다. 온 힘을 다해 빛줄기를 쏟아내었던 春陽은 지쳐 피곤한지 고개를 끄덕거리고 숲 속의 나무 가지 뒤로 몸을 숨기며 점점 눈을 감는다. 아내와 같이 달리다가도 無心한 아이처럼 자전거를 세워두고 다시 영원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하늘을 바라본다. 영원 속에서 잠시 머물다 결국 생의 마침표를 찍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야 하는 것은 슬픔이다. 인생이란 병속에 갇혀 찰랑거리는 물과 같은 것, 이미 정해진 시간을 가지고 탄생되었는데 서글퍼 눈물을 흘리면 무엇 하랴. “흙이 되면 이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야.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몸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며 달려왔던 길은 막다름에 이르고, 자연은 영원한데 인생은 찰나에 불과하다니 참으로 안타갑군. 생물학적인 현실이 아예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세포가 늙어가는 생물이 아니라 영원토록 이어지는 사물로 태어났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이 자연 경관도 영원히 즐길 수 있고......”이라고 중얼거렸다. 옆에서 듣던 아내가 대뜸 “시한부 인생으로 태어났으니 사라져야 하는 것도 신이 만들어놓은 자연의 원리에요. 흘러가는 그대로 받아드리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고, 가장 큰 축복은 살아있는 동안 기쁨을 잃지 않고 생을 마칠 때는 고통 없이 이 땅을 떠나는 것은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이 아니겠어요?”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한다. 놀라서 엉겁결에 “참 귀도 밝네. 왜 남의 말을 엿듣고 그래? 그런데 맞는 말만 하는 것 보니 당신이 나를 점점 닮아가는 것 같아”라고 시답지 않는 말로 응답했다. “지금 당신이 나를 웃으며 대하듯, 살아있는 동안 만나는 모든 것들을 그렇게 받아드리고 나타내 보이며 사는 것이 행복이에요. 그러니 괴로운 것이 인생이라고 절망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살아요. 세상 떠나는 날까지 당신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세상과 마주하세요. 그러면 부족해서 오는 질투도, 아픔에서 오는 미움도 사라지고 영혼은 항상 평온해지며 마음에는 행복이 드넓게 깃들 거예요.”라고 입을 삐쭉거린다. 한참 어린 아내를 가르쳐만 왔는데 이제 중년이 들어서서는 나를 가르치려고 든다. 고깝다는 생각에 또 다시 고개를 젖혀보니 방금 전하고 달리 Cyan Blue가 된 광활한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미지의 차원을 보듬고 있는 하늘은 보니 얼마 전에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에서 “우주는 11차원으로 이루어진 세계로 일반적인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는 3차원의 세계와는 질이 다르다. 인간이 다음 차원인 4차원을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인간이 마음의 벽을 허물어 버리지 못하고 평정심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고 현재의 과학으로도 경험할 수도 없지만 11차원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내면에 있는 스스로의 참모습을 자각(깨달음)하면 11차원에 도달할 수 있다. 탈 차원이란 인간 내면의 관조와 본성을 깨닫고 마음의 벽을 허무는 것이며 평상심을 찾을 때 가능하다. 곧 ‘우주와 나’는 일체의 작용이기에 내 속에 불순한 것을 버리면 우주를 이해할 수 있다.”는 著名한 우주과학자들의 異口同聲이 떠올랐다. 신이 창조하신 광활하고 신비한 우주의 운행이나 심지어는 우주 속에 미세먼지만큼도 안 되는 지구, 그 속에서 아웅다웅하며 살아가는 내 행위조차 이해할 수 없지만,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인생이라며 땅을 치며 통곡을 하고 절망을 하면 무엇 하랴. 내 자신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던 젊은 시절, 고통스러울 때마다 왜 신은 나를 어머니의 胎로부터 생성시켰는지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神과 우주의 본질은 절대적으로 無이기에 결국은 모두 다 사라진다는 것을 긍정하며 신의 뜻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절대자에 의해 창조되어 세상에 보내진 존재이고 어김없이 그 자연 안에서 살다가 회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늘 하루도 평상심은커녕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꺼져가는 불꽃처럼 살아가는 모습에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 지혜로는 묵묵히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를 이해할 수 없지만 죽음도 행복이라고 溫良謙虛하게 받아드리며 살아가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 마주치는 고뇌도 한 순간, 더 이상 푸념하지 않고 돌고 도는 계절처럼 스스로 용해시켜야 한다는 법칙을 배워야 한다. 神의 숨결이 담겨있는 이 계절은 바람을 타고 나를 향해 달려오지만 삶에 대해 진지하고 진솔함이 부족해서인지 자연의 이치를 깨닫기 까지는 너무도 요원하다. 아쉽지만 내 지혜로 자연을 이해할 수 없다할지라도 물이 흐르듯 정해진 이치에 따라 살아가야 하고, 더불어 살아있는 동안 자연의 이치에 맞추어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어차피 내 짧은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 지금 이 시간부터는 삶과 세상을 형이상학적이고 고상하게 받아드리려는 모습은 송두리째 파기해버리자. 오늘이 지나고 내일 아침에는 눈을 뜰지 알 수 없지만 살아 움직이고 있는 동안은 스스로 지닌 것을 내려놓고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생명을 사랑하며 길을 걸어가자. 자연의 법칙에는 사랑이 내재해 있고, 자연의 한 부분인 내 자신 역시 사랑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自我를 내려놓은 生은 자유롭고 여유로우며 행복하고 아름다움으로 변화되어 간다는 것을 상상해보며, 그 소망을 매일매일 영혼 바구니 안에 담고 살아가자.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연한 잎을 띄운 가지들은 계속해서 흔들거리고, 여린 내 영혼 역시 바람결에 흔들린다. 오늘도 이런저런 생각에 납덩이처럼 무거워진 영혼은 안식처를 찾다가 이내 春夜의 짙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직 수정하지 않고 나온데로 쓴 글입니다. 이해하소서***
첫댓글 겨울소나기 님..감사합니다.
목마님, 별말씀을요. 어서 활천문학이 활성화되기를 기도합니다.
역시 겨울소나기님 글은 잔잔한 감동이 있어 좋습니다.
자주 올려주세요~~
주향기님도 자주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