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인가 광룡정에 글을 써야지 글을 써야지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여러 이유가 있다
이런 글을 쓸까 저런 글을 쓸까 하고 주제가 바뀌기도 한다
글을 다른 사람에게 내보이지 않은지 오래 되어 어색함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위해 글을 써야 하는지 목적없음도 있는 것 같다
없음이라기보다는 부족함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계속 적어 보고 싶은 몇가지가 있어 소소하게 나마 시작해보려고 한다
인간관계가 항상 너무 힘들다 힘들었다
어릴 때부터 착하다거나 순하다는 이야길 많이 들었는데,
여기에도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는데,
나는 일지가 자수 정관이고 태지이면서 연살이다
그러면서 월지는 편재이고, 병지이면서 겁살이다
월지가 일지를 생하고 있으면서 반합이다
반합인 것이 중요한지는 모르겠다
그보다도 삼합의 생지에 해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다르게 말하면 눈치보는 삶이라고 이야기할 것인데,
어릴 때 생각이나 사고방식을 보면 눈치보는 삶이 아니라
기준이 외부에 있는 삶이라고 본다
무슨 생각이 특별히 있는게 아니라 단지 그저 남이 보이고 보였다
다른 사람의 감정, 표현, 행동 등등
보이니까, 맞출 수 있고, 맞출 수 있으면 '착한 사람'이 된다
그런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기본적으로 굳이 다투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사람들이 불안해 하거나 걱정하거나 바라는 마음도 잘 보이니
맞추게 된다 맞추어 주게 된다
어릴 때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년시절의
유년시절에는 이러했고, 자라면서는 '눈치'에 가까워졌다고 본다
좀 더 내 편을 들어서 말하면
마음이 편안하고 좋을 때는 어릴 때와 비슷하고, 좋지 않으면 '눈치'가 되고
그런 식으로 말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기도 한다
내가 볼 때 대운이 '제왕' 대운에서 그 다음대운으로 바뀌면서 부터
계속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근데 나는 또 이걸 스스로 핑계라고 말해볼 것이다
대운 세운 월운 일운 시운
운이 오고 가고 가는데, 일어날만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지
일어나지 않을만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대체로 천간에 계수가 오면 괴로운데
외로움부터 해서 과거 기억이 올라 오곤 한다
대개 부정적인 기억이다
헌데, 이건 다르게 말하면 '해결되지 않은, 해결하지 못한' 내 안의 아픔인 것이지
다른 누구의 아픔도 아닌 나 개인의 아픔인 것이고,
'계수'가 와서 겪은 일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겪어야만 하는 일'은 아니라고
내가 해결하지 못한 마음이 사건이 '계수' 운이 올 때 드러난 것 뿐이라고
그래서 누군가는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해결해야 하는 혹은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라고
다시 돌아가서, 그러니까 내 기본적인 시선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외부에, 기준이 외부에 있는 것이다
기준이 외부에 있으면, 총명할 수 없다
글을 쓸 수도 없다
외부는 하나가 아닌 여럿이고, 자꾸 변화하는데
어찌 당당하고 총명할 수 있을까
불안하고 초조하고 염려스럽다
항상 새로이 시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내어 공부를 할 때는 괜찮다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정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부분 때문에
꼬이거나 헷갈리는 것이다
보편이나 사회, 세계, 세상을 이야기하거나 고민하면서
이것을 잘 알지 못했던 것 같고, 정리하지 못했거나 인식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제라울이 자주(?)하는 말로
'수도가 뭔지 모르니까' '자천이 뭔지 모르니까'
이러면 반박이 들어올 것 같아서 싫고 피하고 싶은데, 일단 그래도 쓴다
이 말없이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를 모르겠으니 어쩔 수가 없다
자기 성장? 자기 성숙? 인격 완성?
적어도 나에게는 와닿지 않는다
저 일반적인 말이 포함하지 않고 있는 것이 마음 한 켠에 떠올라서 사용하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수도가 뭔지 모르니까' '자천이 뭔지 모르니까' 라고 해야 한다
이런 설명은 글을 쓰면서 떠올라서 하게 되는데,
다시 마음을 내어 공부를 할 때와 그렇게 마음을 내어 공부를 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 때
차이가 무엇인가
집중이라고 본다 내 안으로의 집중
얼마나 내 안에 내 마음에 집중하고 있는가
얼마나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나 스스로와 관계하고 있는가
제라울을 만나거나 혹은 대화하거나 하면서
만날 때마다 혹은 대화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항상 내가 워낙 수준이 없어서
주로 이런 이야기를 반복해 온 모양이다
기억은 잘 안난다 맞는지도 모르겠는데,
대충 그런 느낌이다
'뭐 하고 싶냐고'
내가 느끼는 감상은 상담에서 사용하는 '기적질문' 같기도 하다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는 샘이 있다면,
어떤 한계도 제한도 없이 소원을 빌 수 있으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고 한다면
무엇을 빌겠느냐고 무엇을 하겠느냐고
그러면 나는 대답하곤 했던 것 같다
이러이러한 것을 하고 싶다고
'할 것'이라고
결단을 이야기 한 것일까 싶기도 하다
그런 것이 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있을 것 같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이게 이것이
기준을 외부에서 나에게로 돌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시선을 외부에서 부터 나에게로 자기 자신에게로 다시 가져오는 과정이라고
이전에 많은 순간 '사랑'을 이야기 했던 것처럼
또 꽤 많이 이야기 한 것이 있는데 혹은 그리 느끼는 것이 있는데
고민했던 것이 있는데
'역지사지' 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역지사지' 해야 한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러면서 동시에 사람이 '역지사지' 할 수 있는가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대개 결론은 '할 수 없다'고
관계가 잘 되어도 '투사'이고 잘 되지 않아도 '투사'라고
'역지사지'는 없다고
다만 노력은 가능하다고
먼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도 좋아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도 싫어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남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을 남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생각 정리가 좀 되어서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는데,
단순할 때 표현하면
대개 그냥 그런 느낌이다
'역지사지 해야지!'
그런 것은 없는데..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많은 순간 '수용' '포용' '이해' 등등 많은 오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라울이 달아준 댓글이나 말해준 것도 있는데 기억은 안나는데
체감 느낌은 그렇다 '그런게 어디있냐고' '왜 이해 해야 되는데' 같은
당시에는 이해 못했고, 지금도 글을 다시 찾아 보지 않았으니 이해 못했다
어디 있는 글인지도 모르겠고 그렇다
내가 떠올리는 느낌과 그것에 대한 이해만 있다
항상 '수용'하고 '포용'하고 '이해' 하려고 했다
지금도 대금짓 중에 하는 심법 중에 '자비와 사랑'이 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거나 느꼈거나 믿었던 것 같다
요새는 이런 생각도 간간히 하는 것 같다
'믿고 있는 것'이라고
'네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라고
대인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항상 어렵다
사람들은 기준이 있는듯 군다
헌데 실제 행동을 보면 기준이 없다
생각이상으로 기준이 느슨하고, 관계중심적이거나 이익중심이거나, 감정중심이다
어디까지 내어 줘 봤냐고 할 수도 있는데,
비유하면 사람들은 삶을 내놓으라고 한다
네 삶을 내놓으라고
지금은 건강 때문에라도 하지 못한다
그러니 기준이 외부에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본다
저런 많은 것에 휘둘린다
현실적으로 삶을 내어줄 수는 없고 내어 주기도 싫고
괴로움이 쌓인다
근데 '보편'이라고 하잖아
보편이 되어야 한다고
저런 것을 다 포함할 수 있어야 '보편'인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은 순간 했던 것 같다
생각보다는 요새는 '믿음'이라는 단어가 더 편안하게 다가오는데
많은 순간 그런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글이 자꾸 새는 이유를 찾지 못했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운을 띄우기가 어렵다ㅎㅎ
지금도 본론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논리전개가 이상하다
보편인데, 어째서 기준이 '나'인지를 설명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런 식으로 운을 띄우고 시작해본다ㅎㅎ
앞에서 말했듯이 역지사지는 불가능하다
모든 것은 투사이고, 모든 것은 내가 보는 세상이다
모든 것은 내가 보는 내가 보고 있는 것이다
역지사지를 위한 노력만 있는 것이지
역지사지는 없다
아무리 역지사지라고 해봐야 내가 아는만큼 역지사지이다
보편도 그렇다
보편이 무엇인가 어떻게 보편을 가지는가
이것이 보편인가 저것이 보편인가
주관이 어떻게 객관일 수가 있는가
글을 쓰면서 또 떠오르는데, 그래서 '내가 확보한 만큼 객관'이라고 하나 싶기도 하다
나의 주관이 보편이 된 만큼 보편이라고 할까 객관이 된 만큼 객관이라고 할까
보편도 객관도
뭐라고 하든 내가 아는만큼 이라는 것이다
내가 아는 만큼 보는 만큼
글을 쓰고 있으니 명확한 '보편'에 집착했던 이유가 다시 떠오르는데
계제를 높히고 싶어서 그렇다ㅎㅎ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 보편에 대한 이해를 명확히 하고 싶었던 것이고 집착한 것인데,
어떻게 하든 그런 보편은 없다는 것이다
절대적인 보편, 절대적인 객관은 없다
수학이라거나 철학(?)을 하다보면 느끼는데,
나중에는 '공리'에 닿는다
어이가 없다
약속이라고 하거나 그렇게 보기로 한 것이라고 하거나
다르게 말하면 '그냥 그렇게 설명한 것'이 된다
그러면 다르게 말할 수 있으면 다르게 말하면 된다
누군가 혹은 어떤 사람들이 그리 하자고 정한 것인데,
쓸모가 있거나 편리하니 쓰고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고 본다
근데, 단지 '그러한 것'일 뿐일까
모든 개념에는 의미가 담긴다
'의도'가 있다
이것을 수학이라고 해야 할지
과학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적어도 '명확히' 하자는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말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좀 더 쉬운 비유로는 '경성과학'이 있고 그 반대가 있는데
경성과학은 간단히 하면 실험과학을 말하고, 다른 것은 그 나머지다 '사회학' 같은 것
사람마다 다르긴 한데, 그 경성과학자만의 자부심이 있다
과학에는 '명확하게' 하자는 의도가 있으니
경성과학이 경성과학자가 '주류'가 되고 힘이 있다
애초에 그 과학이 사용하는 방식이 '명확하게'하는 방식이고
그러한 의도를 갖는 것이다
이런 말이 적절할지 모르겠는데, 그들의 '공리'도 그러한 공리인 것이다
내가 보는 세계에도 그러한 것이 있다
세계라고 하거나 인식이라고 하거나 생각이라거나 감정이라거나
내가 보는 모든 것
모든 것이 내 마음의 반영이니
감정의 반영이고, 생각의 반영이고, 인식의 반영이고, 앎의 경험의 반영이다
내가 가진 작은 생각도
내가 가진 주관도
내가 가진 보편도
나의 '공리'를 벗어날 수 없다
아무리 넓히고 넓히고 넓혀서 큰 보편을 이루어 내도,
언제나 시작에는 '나의 공리'가 있다
내 의도가 있는 것이고 내 생각이 있는 것이고 내 욕망이 마음이 의지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작도 끝도 나의 욕망이고 나의 의지이고 나의 마음이고 나의 의미이기에
'보편적 나의 의미'가 된다
나의 의미가 커져서 넓어져서 보편을 이루어서 '보편'이라고 칭하는 것이지
언제나 나의 의미이다
지금 문득 떠오르는 말은, 그 영향력이 보편이라 보편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기도 해본다
하이지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