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씨의 말리는 듯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전 품 안에 그 동안 고이고이 모셔뒀던 붓을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한지에 글씨 연습을 하듯 천천히 먹을 갈고 붓을 먹물에 찍어 가이씨의 얼굴을 향해 붓을 들이대었습니다.
“어라, 니엘양. 그건 언제 산거에요?”
“아아. 저번에, 제 고향에 다녀오는 길에 가져 왔던 거에요. 그리고 테라에서 산 붓들도 있구요. 원래 크레센트에서는 붓을 외교문서를 작성 할 때 쓰거든요. 은빛산맥에 위치한 작은 나라에요.”
“가깝지 않아요? 대체 어떤 곳이죠?”
“전혀요. 거긴 황혼의 사막근처에 있는 은빛산맥이니까요. 먼편이죠. 뭐, 내전 때문에 엉망이 된 곳이죠. 제 고향이에요. 멸망하기 직전의 나라라고 보아도 되요. 정통성이 없는 제 2왕자 대신 제 주군이셨던 왕녀님의 수명을 연장시켜드리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요. 제가 왕녀님의 수호기사가 되던 첫째날부터 암살자를 보내었던 분입니다. 저 이전에도 왕녀님의 유모들이 죽어갔다더군요. 태자저하도 그의 손에 살해당했죠.”
뭐 그의 야욕을 읽지 못한 제 탓도 크지만. 그나저나 유스군은 의외로군요. 지켜보고 있다니. 메피스토는 제 옆에 주저 앉았습니다.
“그럼 그 붓은?”
“제가 신녀로써, 혼돈의 신탁에 의거해 외교의 권한을 지니셨던 왕녀님을 보좌하기 위해 처음 붓을 들게 되었을 때부터 쭉 지니고 있는 붓이에요. 제 양부는 왕녀님을 보조해 주시는 분이셨죠. 제 부모님의 친우셨습니다. 제 부모님은 왕녀파였어요. 반란이라는 이름 하에 세상에서 사라지셨죠. 제 양부도.”
메피스토씨께서는 창 밖으로 보이는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제가 살인을 밥먹듯이 하게 된 것도 그때였어요. 신관으로써의 제제는 제게 고통이었죠. 이미 오른손의 마비가 잦아진 걸로 봐서는 더 이상 무기를 잡지 않아야겠죠.”
“니엘양?”
“메피스토씨. 저승의 숲 때부터 쭉 생각해왔어요. 그 쪽이 제 옆에 계신다면 전 무기를 잡지 않아도 될까하고요. 적어도 피는 뒤집어 쓰지 않아도 될 것 아닐까 싶어요. 이기적이지만.”
전 제 호주머니에서 작은 펜던트를 꺼냈습니다. 은으로 정교하게 아기천사가 세계져 있는 펜던트에요. 왕녀님께서 제게 생일 선물로 주셨던 거죠. 제가 못견딜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주라고 하셨던 건데. 사람은 아닌 분이지만.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만은.
“이쪽먼저 이야기 할께요. 제 멋대로지만. 좋아해요. 이 펜던트. 가지고 계셔주세요. 선물이에요.”
“니엘양? 어디 아파요? 얼굴이 빨개요!”
“이거 받아주세요.”
펜던트를 메피스토씨의 손에 올려드리고 재빨리 가이씨의 얼굴에 ‘가이씨 바보. 멍청이 말미잘. 해삼. 못생긴 해산물시리즈! -니엘!-’을 적어넣었습니다. 그나저나 웃음이 나오네요.
“풋. 아-. 메피스토씨, 제가 한 말은 잊어주세요. 메피스토씨께서 제 적이 되시면 그땐 절 죽여주세요.”
“니엘양?”
메피스토씨, 이런부탁 해서 죄송해요.
“카이씨의 패밀리어죠? 메피스토씨는. 그 주인이 나타나 원래의 정신을 되찾은 것이고.”
“네. 니엘양. 알고 계셨나요?”
“메피스토씨는 느낌이 묘했으니까요. 마치 타인인 것 같았어요. 메피스토씨가 아닌. 하지만 된 것 같아요. 저승의 숲에서 절 도와주셨을 때도. 그리고, 제 곁에 계시는 것도, 제칸에서의 일들도, 테라에서도. 감사해요. 메피스토씨.”
“니엘양이 감사라뇨. 괜찮아요. 좋아서 한일인데요.”
“그나저나 저 얼굴의 낙서는……?”
“메피스토씨를 가이씨가 괴롭히신 것에 대한 약간의 복수에요. 그나저나 밤이라 그런지 시원하네요.”
다른 붓을 벼루와 함께 슬쩍 놓고서 전 몸을 일으켰습니다.
“메피스토씨. 바닷가, 같이 산책할래요?”
바닷가의 바람은 무척이나 시원했습니다. 슬쩍 슬쩍 보고있는 하늘도 참 맑아보여요. 메피스토씨도 아무말씀이 없으시기에 전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나오기 전, 저희 둘을 발견한 아카엘씨께서 ‘메피스토, 사고나 치지말고 돌아오세요.’라고 하셨는데말이죠. 카일씨도 ‘늑대왕. 제대로 하고와.’라고 하셨고, 저와 메피스토씨께서 나가다 마주친 주민분께선 ‘아가씨에겐 약간의 썸씽도 필요한 법이지’라며 샌들을 빌려주셨습니다.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지만요.
“메피스토씨.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네요.”
“니엘양.”
“제 딴엔 용기를 낸다고 내서 고백한 거였는데.”
저 하늘의 별은 참 아름다워요. 저 같은 아이야 차여도 별 할말은 없다지만, 혼돈께서는 이럴 여유도 주시는 군요. 죄를 지은 제게도.
“후우-.”
메피스토씨께서 옆에서 크게 한숨을 내 쉬셨습니다.
“니엘양, 힘들었으면 말을 하셨어야죠. 이제 괜찮아요?”
“그래요. 대답을 듣지 못한 건 제 잘못이니까요.”
“니엘양, 저도 니엘양과 똑같아요. 마음은.”
“예?”
잠깐, 그말을 리플레이를.. 아니고! 그 말 해석 좀 해주세요! 전 지금 착잡한 마음이라구요! 메피스토씨?
“저도 마찬가지에요. 니엘양의 마음같이.”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것 같습니다.
“많이 덥네요.”
“그러게요.”
“고마워요. 메피스토씨.”
메피스토씨께선 제가 드린 팬던트를 손에 쥐시곤 뚜껑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펜던트 안에선 작게 접힌 쪽지가 떨어져 내렸습니다. 메피스토씨께서 그 쪽지를 펴서 읽으시곤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하셨습니다.
“푸-풋! 니엘양, 와서 볼래요?”
“예? 그거 대체 어떤... 맙소사.”
그 쪽지엔 왕녀님의 직인과 함께 제게 하는 명령이 아니라 제 연인이 될 사람에게 하는 명령이 적혀 있었습니다.
“「크레센트 외교부 서열 3위. 니엘 덴 세렐리트와의 약혼을 맹세한다고 치고 넘어가고, 혼인 해줬으면 좋겠군요. 니엘에게 이 쪽지 보여주실거죠? 니엘! 축하해! 그나저나 결혼은 본지에서 할꺼지? 내 앞에서 해야한다! 알겠지? 내 충직한 신하에게 -크레센트 제 1왕녀 유리엔느 드 크레센트 페르트.- 」라고 적혀있어요.”
“와,왕녀님! 맙소사!”
“니엘양의 상관분도 허락해 주셨는데요?”
“괜찮겠죠. 꺅-!”
일어서다가 발목을 접질러버렸습니다. 샌들 끈이 끊어져 버렸어요. 메피스토씨께선 절 안아 드셨습니다. 그리고 전 얼떨결에 안겨서 집으로 돌아가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집에서 저흴 맞이하신 아카엘씨께선 저와 메피스토씨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며 엘리제씨가 주무시고 계시나 보러가야겠다며 가이씨의 방으.. 가이씨의 방?! 가이씨. 새까맣게 칠해진 얼굴이 참 과관이세요. 제가 두고간 매직까지 써서 깔끔하게 마무리라니.
“마무린 누가한거죠?”
“유스가.”
“니엘양?”
“아뇨. 메피스토씨.”
그리고 메피스토씨의 뺨에 작게 입을 맞추고서 전 아리스양과 함께 쓰는 방으로 향했습니다.
“잘자요!”
메피스토 씨의 얼굴은 붉어 지셨지만요.
“니엘양도 좋은 꿈 꾸세요!”
아리스양이 뒤에서 제 어깨를 잡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니엘씨, 밤중에 메피스토랑 둘이서 어디를 갔던거에요.”
“저기, 아리스양. 그건 말이죠… 그게…….”
“밤중에 남녀 둘이서만 밖으로 나가다니.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었어요?”
“아니에요. 비밀이에요.”
어리둥절해하는 아리스양을 뒤로 남겨둔 채, 전 방으로 들어와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습니다. 기쁘고 즐거운 밤이었습니다.
첫댓글 아이쿠~♡ 핑크빛이네~ 니엘 축하해~~(옆에서 꽃 뿌린다) <-어이어이
핑크모드 하나 더 추가… 라고는 해도, ……카디오 씨랑 맨날 떨어져 있었으니 꽃 날릴 일도 없었다고, 카미유는… (엉엉엉) <- 그러나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밀린 일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_-;
자아자아, 이제 코세르테르 귀환 일기만 쓰면 완벽하겠군요 ~_~ 그리고 메피스토가 '카일'의 패밀리어라는 사실은, 제칸에서 배타고 출발하던 그날 미리 다 까발려 버렸다- 라는 설정입니다만 -_-; (이제사 발견해서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