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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수 속초시장은 지난 4월 4일 속초에서 일어난 산불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지만 소방관 및 자원봉사들 비롯한 국민들의 후원으로 산불피해가 최소화했다는 내용의 감사의 서한문을 발송했다고 지역신문이 전했습니다.
속초시장은 서한문을 통해 “이 산불로 속초시 북부지역에 170헥타아르에 이르는 면적에서 가옥과 상가, 숙박 및 대규모 관광시설 등 2,600여 시설이 전소되거나 유실되어 약 700여억원의 재산상 피해를 입었고, 이중에서도 가옥을 잃은 200여명의 이재민들과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커 재기에 어려움을 격고 있었으나, 국민여러분들의 성원으로 임시주택에 입주하여 안정을 찾는 등 원상복구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초속 30m를 넘나드는 엄청난 강풍속에 잡히지 않을 것 같은 화마의 현장에는 마치 슈퍼맨처럼 소방관들께서 있었고, 악마같은 불길은 소방관들을 무서워하듯 도로를 건너지 못했다”고 강조했다고합니다. “화마가 할퀴고 간 자리는 참옥하고 처참했지만, 온 국민들께서 보듬고 지나간 자리는 눈부시고 따뜻했으며 아름다웠다“며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김철수 속초시장은 “고생하신 모든 분들께 8만 속초시민을 대신하여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전국 소방공원을 비롯한 성금품 기탁자, 개인택배 후원자 등 여러 자원봉사자들의 든든한 지원은 산불재난을 극복하는데 큰 버팀목 이라고 덧붙이면서 끝으로 “국민들께 받은 사랑, 두배 세배로 갚고, 또 갚아나가겠다”며 “산불피해복구에 대한 의지와 더불어 시민 한 사람이라도 더 행복해하는 속초를 만들겠다”고 각오를 밝혔습니다.
정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원망하고 자기가 시장을 맡았을 때 또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할 수 있냐며 황당해 할 수도 있지만 이 상황속에도 감사할 일들을 생각하니 이렇게 감사할 일이 많을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그런 감사의 마음이 마음을 사로잡으니까 이제 더욱 감사한 일을 갚으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할 지를 깨닫게 되었고 더욱 사명이 뜨거워져서 더 열심히 맡은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일년의 반을 감사함으로 보내고 새로운 일년의 나머지 반의 첫 주에 맥추감사주일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맥추감사절의 의미는 먹을 것이 없어지고 힘들어 지던 때에 새해의 첫 추수로 보리를 거두어들이며 감사함에서 시작하였습니다. 특히 이스라엘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땅에 들어가면서 처음 추수를 했던 ‘초실절’ ‘맥추절’이 그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실 축복의 땅의 첫 삶에서 처음 거두어들인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며 감사한 절기를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날이 현대의 월력으로 따져보았을 때 상반기를 끝내고 하반기 첫 주일이 바로 그 절기와 맞아 떨어지기에 우리에게는 더욱 의미가 있는 절기의 예배가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맥추절에 2019년의 상반기를 은혜가운데 보내게 하시고 남아있는 반 년의 기간이 더욱 은혜가 넘치기를 기도하며 감사하는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감사는 첫째로, 맡기신 일에 하나님께서 힘주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12절입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맡은 이 일을 자신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허락하여 주셨기에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감사하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죄인의 괴수를 은혜로 구원하여 주시고 이스라엘백성들뿐 아니라 이방의 나라까지 전도자로 세워주신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어려움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힘을 주시고 계심을 생각할 때 더욱 감사하였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겠다는 다짐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의지로 십자가를 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노력으로 하나님께서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수 있도록 힘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그 누구도 성령님의 능력없이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예수를 부인했던 베드로도 성령의 충만을 받고 난 후에는 당당하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십자기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는 그 명령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성령을 힘입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섬기는 교회에서의 헌신과 주변의 이웃을 위한 여러 가지 섬김들도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능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시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전도자의 자격 완성은 바로 성령의 권능을 받음에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의 임재를 맛보기 전에 제자들은 한 사람도 전도할 수 없었으나 권능을 받고난 제자들은 능력있는 전도자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시대적인 사명은 복음증거입니다. 그러나,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혼자 다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우리의 모든 일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고 우리에게 주님이 함께해주실 때 우리는 평안함을 누리며 아무리 어려운 일도 담대히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영국의 어떤 가정에 한 처녀가 있었는데 이 처녀는 어두워지면 무서워서 밖에 못 나가는 공포증에 시달렸습니다. 이 공포증이 점점 깊어져 이 처녀는 나중에 불을 켜고 잠을 자야 하는 심한 노이로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처녀가 부흥 성회에 참석했다가 목사님으로부터 “성령님께서는 평안과 기쁨과 자유의 영이십니다. 성령님을 의지하면 모든 공포와 절망을 극복하고 영광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바람과 같으신 인격자로서 어디에나 계시며 부모처럼 형제처럼 여러분을 도와 주십니다”라는 말씀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고 이 깨달음을 통해 성령충만을 받아 공포증과 노이로제를 극복했습니다. 불과 몇 시간만에 이 처녀는 놀라운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 날 밤 이 처녀는 불을 끄고 평안히 잠을 잤습니다. 이 사실을 안 부모가 다음 날 아침 원인을 묻자 처녀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제 안에는 성령님께서 계신 걸요. 저는 이제 무섭지 않아요. 성령님께서 저를 보호해 주시니까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의 성령께서 보혜사로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증거할 때 귀신이 소리치며 떠나가고 병든 자가 낫고, 포로된 자가 자유를 얻으며 가난한 자가 복을 받고 진리에 눈먼 자가 눈을 뜨는 위대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께서는 구만리 장천에 계시지 않고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늘 기도함으로 성령을 소멸치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장 9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시고 사명을 감당할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 능력은 바로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힘으로 우리의 모든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맥추감사주일, 오늘 우리가 감사할 첫째 이유는 바로 우리에게 사명주신 하나님, 사명과 함께 힘주시고 능력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 성령님의 인도로 평안함과 기쁨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삶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런 감사를 회복하시고 항상 힘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감사는 둘째로, 나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보다 남들을 도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13절입니다.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그들과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의 교인들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헌금을 하며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정말 참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를 돕습니다. 세상은 가면 갈수록 이기적이고 자기 자신을 위해 인생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영향을 받으면 교회도 교회가 개인주의화 되어지고 자기 자신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이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의 참 모습은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서로가 서로의 형편을 돌보며 한 가족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 초대 교회의 모습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예루살렘교회를 돕고 예루살렘교회가 안디옥교회와 협력하고 안디옥교회가 다른 이방 나라에 세워진 교회를 돕는 참 아름다운 모습을 보며 참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2019년 맥추감사주일에 감사해야할 감사제목도 바로 이것입니다. 전국의 수많은 신앙인들이 우리 고주리교회의 형편을 알고 목회자가 생활하기 힘든 것을 알고 십시일반으로 도왔기에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교회의 사역도 감당하며 올해 상반기를 은혜가운데 보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족하지만 우리 고주리교회도 아무 것도 없는 형편중에 세계에 흩어져서 사역하고 있는 다섯분의 선교사님가정과 선교기관, 교육기관 두 군데까지 총 일곱곳을 매월 후원하며 도울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서도 서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구제하며 뜻있는 일에 우리의 마음을 모으고 재물을 모으는 것도 인생에 있어 기쁜 일인데 예수님안에서 어떤 다른 목적이 없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힘을 모은다는 것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사의 제목이 될 것입니다.
잠언 19장 17절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지금 세계에서 제일의 부자는 미국의 빌 게이츠입니다. 그가 현재 가진 재산은 1000억달러정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돈으로 130조원정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빌게이츠가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리고 불우한 이웃을 위해 내놓은 돈이 500억달러정도 된다고 합니다. 예전에 그는 기자들을 모으고 회견을 하면서 자기가 세상을 뜨기에 앞서 전 재산의 95%를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내놓고 나머지 5%는 자손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최고 계명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의 어머니는 빌 게이츠가 열 한 살 되었을 때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모두 암송하게 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그 중에서도 한 구절을 묵상하고 평생 실천했습니다.
그 구절은 누가복음 6장 38절입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을 우리 모두 함께 읽겠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페테스부르크의 어느 탁월한 사업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은 후 한 선교단체를 방문해서 인도로 파송된 많은 선교사들의 재정을 보조하겠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그래서 선교단체의 한 간사가 그에게 “당신은 어떻게 사업을 하기에 그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기 전에는 나 자신과 세상만을 위해 돈을 물 쓰듯 썼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기쁨이 전혀 없었고, 보람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한 뒤 나는 이전에 결코 맛보지 못했던 기쁨과 평안을 맛보았으며 삶의 참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즉시로 내가 사업으로 번 돈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는데, 그 때부터 사업은 전보다 두 배나 불어났습니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의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기쁨으로 하나님께 심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천하 만물의 소유주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에게 아낌없이 줄 때 더 많은 것으로 우리를 채워주신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잘 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생이 단 한 번의 인생이고 목숨이 끝나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그 결과로 얻어진 것으로 서로를 돕고 나눠주며 참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사람입니다. 맥추감사주일 우리의 섬김과 나눔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가 받은 섬김과 나눔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해야할 감사는 마지막 셋째로, 서로 하나되고 사랑할 수 있게 하시는 그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해야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14절입니다.
“또 그들이 너희를 위하여 간구하며 하나님이 너희에게 주신 지극한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이 생기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생기고 믿음의 형제들의 어려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며 친가족이상의 참된 사랑이 생기는 것을 감사했습니다. 정말 이것은 기적중의 기적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 피보다 진한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정말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고 그리고 가족입니다. 자신과 가족이 아닌 사람을 더 생각하며 그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본능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정말 하나님의 믿음을 받은 참 성령의 사람은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기적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그리고 자신의 관계가 그런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이고 기적적인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입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프랑스가 한창 전쟁중에 있을 때에 어떤 사람이 군대의 징집위원 앞에서 자신은 2년 전에 죽었다고 말을 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2년 전에 본인으로 위장하고 자기 대신 군에 입대한 친구가 적군에게 포로로 잡혔다가 사형당했던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황제는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이 청년은 군대에 입대할 이유를 다 해결했다고 하면서 군입대를 취소하고 자유를 주라고 명했다고 합니다. 사랑의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고 사망권세 깨뜨리시고 부활하셨기에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영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전히 죄의 종으로 살다가 영원한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이웃에게 참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고 우리가 예수님과 같은 마음으로 형제를 위해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을 나눠주며 섬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기적이며 이런 기적을 우리가 경험한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이기에 가능하다고 성경에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시는 은사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15절입니다.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은사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서든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만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콘스탄스 종교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말을 타고 가고 있던 두 추기경의 이야기를 하기 좋아하였습니다. 그 둘 중의 한 사람이 풀 밭에 목자 하나가 앉아 울고 있는 것을 보고 멈추었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서 그 목자를 위로하려고 애쓰며 “왜 울고 있느냐?” 물었습니다. 그 초라한 목자는 대답하지 않고 꾸물거렸습니다. 그러나 그 추기경이 재촉하자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이 두꺼비를 바라보면서 울었습니다. 저를 이성과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사람으로 만드시고 이 흉칙한 두꺼비와 다르게 만들어 주셨음을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 번도 감사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추기경은 그 목자의 경건함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돌아가면서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오, 성자 어거스틴이여! 당신이 무식한 자들이 일어나서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다고 말했던 것이 참으로 옳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혈과 육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추기경과 같이 정말 감사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며 회개하는 생각을 가지지 않으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 여러분께 이성을 주신 하나님, 여러분에게 계속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정말 사지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깨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우리의 모든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건강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것으로 감사하셨습니까? 병원에 가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온 것, 죄를 짓지 않고 감옥에 가지 않고 살아온 것, 예수님을 믿어 이제 천국에 가는 인생으로 살아가며 죽어서 지옥에 가지 않을 수 있게 된 것... 이런 것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본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의 그 말할 수 없는 은사에 대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분이 계십니까? 형제 여러분,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이 되어 주셨다면 그분을 인하여 언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이 마땅하겠습니까? 또한 우리가 잠에서 깨는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인하여 얼마나 오래 동안 계속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겠습니까? 다시 잠자러 갈 때까지 해야 합니다. 해 뜨는 때부터 해질 때까지 하나님의 성호가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잠이 우리의 의식을 달콤한 망각 속으로 밀어 놓을 때까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잠자며 꿈 속에서라도 계속 하나님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즐거운 것입니다. 마치 감사한 손길로 아름다운 화음을 연주한 후에도 감사에 찬 감정의 화음이 전율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먼저 우리를 사랑하여주시고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감사하며 살아가야합니다. 맥추감사주일 우리는 한 해동안 살아가면서 그 때 그 때 필요한 것을 채우시는 것을 먼저 감사합니다. 실제적으로 맥추감사주일이나 추수감사주일이나 모두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을 얻어서 살아가게 하신 것으로 보통 감사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속에서 어떤 감사의 날, 어떤 감사의 제목을 돌이켜보시면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죽어주시고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신 것을 감사하는 것이 첫째 감사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을까합니다.
맥추감사주일에 우리는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돕는 손길을 허락하시고 도울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시고 믿음안에서 귀한 형제, 믿음안에서 귀한 가족을 허락하시고 참된 희생과 섬김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우리의 감사의 제목이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가 하나되어지고 서로 섬기며 힘든 삶을 해결하게 하신 것이 감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가 넘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