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운데 들과 넓은 들, 삽다리와 판교
_충남 예산군 삽교읍 삽다리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내 고향 삽교를 아시나요
맘씨 좋은 사람들만 사는 곳
시냇물 위에 다리를 놓아
삽다리라고 부르죠
서울역에서 장안선 타고
천안을 지나고 온양을 지나
수덕사 구경을 하시려거든
삽다리 정거장서 내려야죠
서울역에서 장항선을 타고 천안 지나고 온양을 지나, 수덕사 구경을 하려거든 삽다리 정거장서 내리란다. 한국전쟁의 1·4 후퇴 때 이곳에 내려간 조영남의 ‘삽다리’ 노래이다.
흐르는 물에 다리를 놓아 ‘삽다리’라 했다고 한다. 내에 다리처럼 삽을 놓아서 그 이름이 나왔다고 하기도 하고.
삽다리는 ‘가운데 들’이라는 뜻
다리 이름의 유래에 대해 엉뚱한 일화도 있다. 맨 처음에는 이 다리가 섶으로 놓은 ‘섶다리’였고, 섶다리가 변해 ‘삽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삽다리의 본래 이름이 ‘가운데의 들’이라는 뜻의 ‘삽다리(삽들)’였다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인터넷을 통해 누가 사다리에 관해서 물었다.
“왜 삽다리라고 했나요?”
그에 대한 답.
‘섶다리, 삽다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섶다리가 변하여 삽다리가 된 것이 현재 삽교라 부르게 된 것이라 전해집니다. 지명과 관련해서는 지금의 삽교 옆에 살던 새아씨가 친정어머니의 부음을 듣고 건너지 못하여 애태우는 것을 본 마을 사람들이 섶으로 다리를 놓아 건너게 하였다는 이야기와 함께 1860년 무렵 흥선대원군이 남연군 묘를 조성할 당시 행차하는 다리가 좁아 섶으로 다리를 더 놓았다는 이야기도 함께 내려온답니다.“
이걸 믿어야 될지? 그렇다면 다리가 생기기 전에는 이곳의 이름이 없었을까?
삽다리의 ‘삽’은 ‘사이’라는 뜻의 ‘샅’이 변한 말이다. 샅바, 사태살(샅애살), 고샅 등의 ‘샅’은 ‘사이(間)’라는 뜻이다. 삽다리 근처 예산읍 향천리의 ‘삽티(고개)’도 ‘사이의 재’라는 뜻인데, ‘새재’와 같은 뜻의 땅이름이다.
샅>삽 >사이(間)
‘삽’이 들어간 땅이름은 많다. 사이의 골짜기인 삽곳, 사이의 고개인 삽재, 사이의 들인 삽들, 사이의 마을인 삽실 등이다.
삽다리나 삽실 같은 땅이름에서 ‘삽’은 어떤 뜻을 가질까?
우리말에서 두 낱말이 합쳐져 복합어가 되는 경우, ㅂ(비읍) 음이 사이에 첨가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음운상으로 ‘ㅂ음 첨가’라고 한다. ‘샅다리’는 ‘샅’과 ‘다리’라는 말 사이에 ㅌ 대신 ㅂ이 들어간 예인데, 앞음절의 말음(받침)이 자음이 아닌 모음일 때도 ‘ㅂ’이 첨가되기도 한다. ‘메+쌀(메쌀)’이 ‘멥쌀’로, ‘벼+씨(벼씨)’가 ’볍씨‘로, ‘대+싸리(대싸리)’기 ‘댑싸리’로 되는 것처럼.
샅+다리→ㅂ첨가→삽다리
메+쌀→멥쌀
벼+씨→볍씨
대+싸리→댑싸리
충남 예산군에 있는 삽교읍의 중심은 삽교리(揷橋里)이다. 여기의 ‘구삽다리’가 원마을인데 여기에 삽다리가 있다고 하지만 이는 다리 이름이 아니고 들의 이름이다. 삽다리 북동쪽의 마을인 샛들은 한자로 신흥리(新興里)라고 하는데, 여기서의 새(샛)는 '사이' 뜻이 아닌 '새로(新)'의 뜻이다.
삽다리에서 ‘다리’는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들’의 뜻이며, 삽다리는 ‘삽들’이 변한 이름이다. ‘삽교’에서 ‘교(橋)’는 ‘다리’가 아니라 ‘사잇들’이라는 뜻인 ‘삽들’의 ‘들’이 ‘다리’와 음이 비슷하여 의역해 붙인 것이다.
‘넓은 들’이라는 뜻인 ‘널들(너다리, 너더리)’이 ‘판교(板橋)’가 된 이치와 같다.
판교, 지명의 예언성
판교(板橋) 이야기가 나왔으니 판교에 대한 이야기도 좀 해 보겠다.
‘달안(안양)’ 항목에서도 지적했지만, 판교는 ‘넓은 들’이라는 의미의 ‘널다리’ 또는 ‘너더리’로 불리던 곳이다. ‘널다리’, ‘너더리’에서 ‘다리’, ‘더리’는 원래 ‘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널다리’에서의 ‘널’도 ‘널판지(板)’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넓음’의 뜻을 담은 것이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판교’ 이름에 대한 설명.
”판교동(板橋洞)의 명칭은 서출동류(西出東流)하여 판교 앞을 흐르는 운중천에 널판지로 다리를 놓고 다녀서 「널다리」라고 부르다가 「너더리」로 변했다. 이것이 한자로 판교(板橋)라고 표기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떻든 한자로 판교가 되면서 ‘넓은 다리’의 뜻을 담아 오랫동안 전해져 오더니, 그 이름처럼 이곳에 큰 다리라고 할 수 있는 인터체인지가 들어섰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의 예언성을 실감하게도 된다.
판교 근처 매지봉 밑의 이매동에는 ‘갓골’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은 분당 시가지가 들어선 곳의 가장자리가 되니 ‘가(가장자리)의 고을’이란 뜻의 ‘갓골’이란 이름이 잘 맞아떨어진 경우이다. 거기서 멀지 않은 수내동(藪內洞)은 원래 ‘숲안’이라고 불려왔던 곳으로 지금은 나무의 숲이 아닌 아파트의 숲으로 둘러싸였으니 조금은 신기하기도 하다.
땅이름을 보고 앞날을 점쳐 온 이들은 성남시 분당 일대의 시가지는 서쪽으로 뻗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우연이지는 모르지만 그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
판교 근처의 땅이름 중에 예언성을 띤 땅이름들을 보자.
모두 많이 모인다는 뜻의 ‘모두만이’가 대장동(성남시 분당구)에 있다. 한동안 뉴스에 많이 등장했던 대장동은 전에는. 태릉. 능고개. 도장골. 모두만이. 아랫말. 웃말 등이 있었던 전형적인 농촌이었다. 그러던 것이 성남시가 이 지역을 2010년대 초부터 집중 개발하여 큰 아파트단지로 발돋움했다. 외지인들이 많이 모이게 된 것이다. 이 사실을 여기의 ‘모두만이’라는 땅이름과 연결해 생각해 보면 지명의 신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곳 말고도 이 지역에서 지명의 신비를 느낄 만한 것이 더 있다.
궁(宮)의 안뜰처럼 아늑한 곳이 될 것이란 뜻의 ‘궁안(宮內)’(궁내동), 늘어나는 고을(마을)의 뜻인 ‘는골(정자동), 즐겁게 산다는 뜻의 ‘낙생(樂生)’(운중동) 등.
예산의 ‘삽다리’도 ‘다리’라는 땅이름을 갖게 되면서 이 지역에 많은 다리가 놓였다. 주로 삽교천을 따라 놓인 다리인데, 삽다리교를 비롯하여 충의교, 배나다리교, 수촌교 등이다. 삽교천은 그리 깊은 내가 아니어서 아주 옛날에는 이 지역에 이렇게 다리가 많지 않았다.
‘삽다리교’라는 이름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삽다리’ 자체가 다리 이름인데 그 뒤에 ‘다리’의 뜻을 가지 ‘교(橋)’가 덧붙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삽다리’란 이름은 다리 이름이 아니고 단순히 이 지역에 있는 하나의 땅이름이기 때문이다.
삽다리는 전국 여러 곳에 있다. 경기도 파주시 동패동,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춘천시 북산면, 충남 당진군 송악면 가교리 등이다.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도 삽다리가 있는데, 역시 ‘사이의 들’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삽다리인가, 섶다리인가?
삽다리를 적당히 발음하면 섶다리가 되고 반대로 섶다리를 적당히 발음하면 삽다리가 된다. 글자로만 보면 모음과 받침 하나 차이지만, 두 다리는 엄연히 다르다. 즉 삽다리는 그 다리가 놓인 곳에 따른 이름이지만 섶다리리는 다리를 만든 재료에 따른 이름이다.
앞에서는 삽다리에 관한 설명을 했으니 여기서는 섶다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누구에게나 추억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삶의 문화 속에 애환이라고도 할 수 있는 추억들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어느 마을에나 크던 작던 물줄기는 다 있다. 그 물줄기 중에는 그대로 쉽게 건널 수 없는 것도 꽤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곳에는 다리가 놓여지게 마련이다. 간단히 돌을 듬성듬성 놓아 만든 징검다리가 있는가 하면, 제대로 교각을 만들어 안전하게 만들어 놓은 큰 다리도 있다. 작은 냇가에 한두 개씩 늘씬하고 길쭉한 섶다리가 자리잡은 동네들도 있다.
옛날엔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짚을 엮어 지붕을 갈아주는 행사를 하곤 했다. 한 해의 농사를 짓고 나서 초가지붕 갈아 주는 일은 동네 사람들의 품앗이이기도 했다. 이 무렵에 대개 마을 앞 냇가에 다리를 적당히 놓거나 놓여진 다리를 손보기도 했다.
이 섶다리놓기는 해마다 여름 장마철 후에 볼 수 있는 우리 마을 공동체의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했다.
예산군의 삽교읍에서는 가을이면 '삽다리 축제'를 벌이곤 하는데, 이 행사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이 ‘섶다리놓기’이다. 삽교읍만의 문화 자원을 축제 콘텐츠로 활용해 활력있는 삽교의 옛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주민간의 화합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사라져 가는 우리 전통문화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존해서 후대로 마을의 역사와 문화가 이어지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초가지붕과 섶다리는 수명이 거의 1년이다. 섶다리는 통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지는데 수명이 한 해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수가 나면 섶다리는 대개 떠내려가곤 했다. 그래서 장마가 끝난 후 물이 어느 정도 줄어들면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다시 나뭇가지를 베어다가 섶다리를 만들곤 했다.
섶다리에서 ‘섶’의 사전풀이는 ‘잎이 붙어 있는 땔나무나 잡목의 잔가지, 잡풀 따위를 말린 땔나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또 섶은 섶나무의 준말로, 입나무. 물거리. 풋나무 등의 총칭이다. 흔히 이 ‘섶다리’를 ‘삽다리’라고도 하는데, 여기서의 ‘삽’은 ‘섶’의 변화형이다. 우리 언어에서 ‘어’와 ‘아’는 발음상 넘나드는 일이 많다. ‘마리(首)’와 ‘머리(頭)’처럼 말이다,
-----------
친척말
샅, 샅바, 고샅, 사태살, 사타구니, 샅샅이
친척 땅이름
삽다리. 충남 당진군 송악면 가교리, 강원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 강원 횡성군 둔내면 삽교리
삽들. 경북 군위군 부계면 명산동, 전남 보성군 웅치면 유산리
삽재(삽령. 揷嶺). 경북 고령군 성산면 대흥동
삽거리(작골). 경북 상주시 이안면 흑암리
삽고개(삽티). 충남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
삽골재. 경남 의령군 유곡면 마장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