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詩]
너릿재를 넘으며 / 김화정
2022. 10. 16(일)
풀꽃들 귀엣말에 출렁이는 이십곡리
부러진 꽃대에선 그날이 풀려 나온다
꺾다가
잦아드는 숲
어느 날의 흐느낌일까
찢겨진 네 목소리 한 소절 맺지 못해도
귀 열어 길이 오고 저마다 길이 되고
우는 길
달래 보느라
걸음마다 피는 꽃들
(시집 ‘그 말 이후’, 아꿈, 2022)대
[시의 눈]
옛날 이곳은 ‘판치’(板峙)라 했지요. 죽은 자의 관(널)이 많아 그리 붙여졌어요. 1894년 동학운동때 가담자들을 처형해 널에 넣어 이곳에 버렸다 해서 ‘너릿재’란 이름이 됐습니다. 1946년 8·15광복 1주년 때 화순탄광노동자들이 광주기념식에 참가하러 재에 올랐습니다. 한데 미군은 이들을 무차별 학살했습니다. 5·18광주항쟁 때는 재에 숨어든 사람들에게 공수부대가 총격을 가했습니다. 이 재에는 무참하게 당한 한이 이리도 깊습니다.
그래 통곡하는 이가 넘쳐나 또다른 이름 ‘울재’라 했다지요.
오늘 길섶에 핀 가을 꽃대들이 당시 사람들의 억울한 울음을 바람에 전합니다. 이 꽃대의 대열로 곧이어 눈보라는 기관총처럼 또 갈기겠지요.
김화정 시인은 전남 화순 출생으로 2006년 ‘시와상상’ 신인상, 2010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하여 시집 ‘맨드라미 꽃눈’(2012), ‘물에서 크는 나무’(2020) 등을 냈습니다. 그는 사물에 깃든 서정을 끌어와 자신의 빛과 그늘로 연몌(連袂)시키는 깊은 시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