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열사릉 백광옥 해설강사
<연재> 정창현의 ‘북녘 여성을 만나다’ (12)
정창현 | tongil@tongilnews.com
승인 2013.06.14 08:33:17
“이곳에는 몇 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까?”
“애국렬사릉은 1986년 9월 17일 완공됐습니다. 당시까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던 ‘애국열사’들을 한데 모아 처음에는 190위가 모여졌습니다. 현재는 약 570분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물들에게 대해 일일이 설명하려면 굉장히 힘들겠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항상 학습을 하고 경험이 쌓이면 일 없습니다(괜찮다). 힘들기보다는 이분들의 업적을 인민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다는 자부심이 더 큽니다.”
그렇게 묘비의 주인공들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일일이 사진을 찍었다. 북측 안내원이 “거 묘비를 그렇게 찍어서 무얼 하려고 합니다. 날씨도 추운데 빨리 식사를 하러 갑시다”라며 계속 재촉했지만 들은 채 마는 채 사진을 찍는데 열중했다. 2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 길재경 부부장이 망명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망했다는 내용의
2003년 5월 19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자료사진 - 민족21]
‘사건’은 그로부터 3개월에 터졌다. 국내의 한 통신사가 2003년 5월 17일 오전 8시 18분 서울 외교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일 서기실 부부장 길재경 미 망명”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길재경 부부장의 망명 소식을 전하며 ‘김정일 서기실 길재경 부부장은 누구인가’, ‘북 고위인사 망명일지’ 등 관련기사를 잇따라 내보냈다. 17일자 문화일보는 이 소식을 1면 머리로 다뤘고, KBS, MBC, SBS 등 방송사들도 저녁 메인뉴스 등에서 주요 기사로 처리했다.
다음 날 필자는 3개월 전 애국열사릉을 방문해 찍은 사진 속에서 길재경 부부장의 묘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9일 중앙일보는 1면에 길재경 부부장의 묘비 사진과 함께 “길 부부장은 3년 전인 2000년 6월 7일 사망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특종 보도했다. 이틀만에 ‘길재경 부부장 망명’ 기사는 오보로 드러난 셈이다.
그런데 이 기사의 후폭풍이 의외로 거셌다. 언론사들의 사과.정정이 잇따랐다. 처음 이 기사를 낸 통신사는 19일 “국내외에 엄청난 파장과 물의를 빚은 데 대해, 해당 기사에 거론된 인사들 개인은 물론, 관련 기사를 실은 국내외 언론사,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는 사과문을 게재했다. KBS도 같은 날 9시 뉴스에서 “이번 망명설과 같은 북한 보도는 사실확인이 어렵다는 고충이 있기는 하지만 진상을 끝까지 확인하지 않고 보도한 것은 잘못”이라는 사과방송을 내보냈다. 경향신문도 20일자 1면에 ‘길재경 망명설 오보 사과드립니다’ 제하의 알림기사를 게재했다.
그동안 국내언론의 북한관련 오보는 시리즈로 묶을 만큼 많았지만 이처럼 신속하게 오보로 확인된 경우는 드물었다. 또한 해당 언론사들이 오보를 인정하고 해명과 사과를 발표한 경우도 이례적이라고 할 만큼 신속했다. 이것이 북한 보도와 관련해 국내언론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공식 정정보도문을 낸 사례일 것이다. 아마도 길재경 부부장의 무덤사진이 없었다면 이렇게 신속하게 논란이 종결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첫댓글
<딱 1건>만 정정~~
나머진 ~~
길재경 망명기사는 한창 대북봉쇄,급변 전략이 펼쳐질 때의
이를 지원하는,
오보라고 보기도 힘든 그냥 목적성 작문기사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