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8장 16-22절. 바울이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초청함. 요약설교
16절.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1. 바울을 동행한 사람들과 로마 교회에서 마중 나온 성도들이 함께 로마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백부장 율리오는 죄수들을 모두 시위대장에게 인계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처음에는 시위대 군영으로 인도되었으나, 시위대장의 배려로 군영 밖 셋집에서 가택연금 식으로 유치되었습니다.
이처럼 시위대장이 바울에게 특별대우를 해준 것은 총독 베스도의 고소장이 호의적이고, 백부장 율리오가 대단히 호의적으로 보고를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셋집에서 바울을 지키는 군사와 함께 쇠사슬에 메어 있었습니다.
즉 군사의 왼손에 쇠사슬을 묶고, 그 쇠사슬을 바울의 오른손에 묶어서 도망을 못 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군사들은 낮에는 3시간마다 교대를 했고, 밤에는 4시간마다 교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하루에 7명의 군사들이 바울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 군사들은 황실 경호부대원으로서 로마 황실과 원로원의 자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갇힌 것이 황실 복음 전도에 진전이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서 4장 22절에는 <가이사 집 사람 중 몇 사람이 예수를 믿고 빌립보 성도들에게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17절.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1. 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바울이 사흘 후에 유대인 지도자들을 청했다는 것은 바울이 삼일 동안은 감방 생활에 적응하고 또 로마 교회 성도들과 인사하는 시간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3일을 지난 후에 바울은 로마 도성에 있는 유대인의 회당 지도자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이 있으면 먼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후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먼저 유대인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이처럼 바울은 가택연금 된 셋집을 나갈 수는 없었으나, 사람들을 초청해서 만나볼 수는 있었습니다.
AD 6년경에 로마 도성에는 유대인들이 6천 명 정도 살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2.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바울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이나 유대교 관습을 배척하지 않았다고 변명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 중 두 가지 사항에 해당합니다.
즉 유대인들은 ① 할례 백성, ② 모세 율법, ③ 성전 숭배- 이 세 가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할례 백성이나 모세 율법을 배척한 일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근본적으로 자신도 난지 8일 만에 할례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베냐민 지파라는 것을 자랑했고(빌 3:5), 바울은 모세의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도 자랑했습니다(빌 3:6).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이 예수님 믿었으면 할례받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고(갈 5:1-2),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된다고 주장했습니다(갈 2:16).
그렇기 때문에 이런 바울의 주장이 유대교인들에게는 마치 바울이 할례 백성을 부인하고, 모세 율법을 비방한다고 오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3.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예루살렘의 유대교인들이 로마 천부장과 총독에게 바울을 죄수로 죽여달라고 고소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루살렘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고소한 직접적인 이유는 성전 모독죄였습니다(행 21:29).
이처럼 바울의 재판은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로마 군인들에게 고소해서 시작된 것이었고, 바울이 유대민족이나 유대교인들을 고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8절. 로마인은 나를 심문하여 죽일 죄목이 없으므로 석방하려 하였으나
1. 예루살렘 치안을 담당한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했으나 바울이 죽음을 당할 만한 형사적인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총독 벨릭스에게 보고했습니다( 행 23:28-29).
또한 총독 벨릭스 앞에서 재판받을 때도, 바울은 자신이 성전 모독죄를 범하지 않았고, 단지 죽은 자의 부활 때문에 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행 24:21).
그리고 총독 베스도도 재판을 통해서 바울에게 죽일 만한 죄를 범한 일이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행 25:25).
뿐만 아니라 헤롯 아그립바 왕 2세도 재판을 통해서 바울이 사형이나 결박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고 판시했습니다(행 26:32).
이처럼 바울은 무죄였으나 천부장이나 총독들이 바울을 무죄 석방하면,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암살했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로마에 가서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상소했던 것입니다.
19절. 유대인들이 반대하기로 내가 마지 못하여 가이사에게 상소함이요 내 민족을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니라.
1. 로마 사람들인 천부장과 총독들은 바울을 무죄 석방하려고 했으나, 유대교인들이 바울을 사형에 처하라고 계속 데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유대교인들은 40명의 암살단이 길에 매복하여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동맹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바울은 마지못해서 가이사 황제에게 상소한 것이요, 바울 자신이 유대 민족을 황제에게 처벌해달라고 고발한 것이 아니라고 변명을 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로마에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바울이 유대인과 화목하지 못해서 가이사 황제의 재판을 받게 된 경위를 잘 설명했습니다.
즉 바울이 유대민족을 고발한 것은 적극적으로 유대민족을 공격하려고 고발한 것이 아니라, 유대민족이 죄 없는 바울을 죽이려고 하기 때문에, 정당방위로 어쩔 수 없이 고발한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한 것은 로마에 있는 유대교인들에게 피해를 주려는 것이 아니고, 바울 자신이 신변 보호를 받기 위한 것임을 양해해달라고 부탁한 말이었습니다.
20절. 이러므로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1. 이러므로
앞에서 바울은 로마 황제의 재판을 받게 된 동기와 과정을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잘 설명한 이후에, 본격적으로 복음 전도에 들어갑니다.
<이러므로>란 <유대교 지도자들이 바울에 대해서 적대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으므로>라고 이해해도 좋습니다.
2. 너희를 보고 함께 이야기하려고 청하였으니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먼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는 것이 자신의 규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들은 바울의 복음 전도를 대적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정해주신 복음 전도의 사명이 이방인을 위한 전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이방인에게 전도하는 이방인의 사도를 삼으셨습니다( 행 22:18-21).
이처럼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았으나, 바울의 마음속에는 동족 유대인들을 향한 불타는 애정이 있었습니다.
즉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자기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롬 9:3).
3.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이스라엘의 소망>이란 메시아 왕국에 대한 소망을 가리킵니다.
즉 이스라엘인은 구약시대부터 메시아가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메시아 왕국이란 현실적이어서, 메시아가 오시면 다윗처럼 이방 나라를 무찌르고, 로마도 무찌르고 유대인이 천하를 다스리는 지상 메시아 왕국을 이룩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믿은 메시아는 바로 십자가에 달렸다가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 메시아이시고, 메시아 왕국이란 지상 왕국이 아니라 장차 부활하고 영생 천국에서 이루어진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가 부활했는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유대인이 세계를 다스리는 메시아 왕국이 이룩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습니다.
이처럼 유대인의 메시아 왕국이나, 여호와 증인의 여호와 왕국이나 박태선 문선명의 왕국이나 모든 이단들의 왕국은 바로 지상 왕국을 가리킵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칼빈주의는 지상에 각 부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지상 하나님의 나라를 많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21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유대에서 네게 대한 편지도 받은 일이 없고 또 형제 중 누가 와서 네게 대하여 좋지 못한 것을 전하든지 이야기한 일도 없느니라.
1. 바울 사도가 로마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유대민족을 황제에게 상소한 것은 마지못해서 그리한 것이라고 변명하자, 로마 유대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유대교 지도자들로부터 바울에 대해서 좋지 않은 편지나 좋지 않은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즉 로마 유대교 지도자들은 바울의 재판 건에 대해서 들은 적이 없고, 바울에 대해서 나쁜 편견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외국 유대인들은 기독교나 바울에 대한 편견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로마 유대교 지도자들은 바울에 대해서 객관적인 마음으로 그 신학 사상을 듣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22절. 이에 우리가 너의 사상이 어떠한가 듣고자 하니 이 파에 대하여는 어디서든지 반대를 받는 줄 알기 때문이라 하더라.
1. 로마 유대교 지도자들은 바울의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분파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즉 유대교 분파로서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센파, 열심당파처럼 예수파라는 유대교 분파가 있다는 것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예수파는 어디서든지 유대인들에게 반대를 받고 있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특히 여기서 이 <파>(αἱρέσεως)라고 표현한 말은 사도행전 24장 5절에서 <이단>이라고 번역한 단어와 동일한 말입니다.
그러나 이처럼 이단시하는 예수파에 대해서 로마 유대교 지도자들은 바울에게 한번 들어보고자 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로마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전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그래도 외국에서 사는 유대인들은 비교적 마음이 열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감옥 생활을 하면서도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해서, 유대교 지도자들을 감옥으로 불렀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의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을 본받아서, 어떤 환경에서라도 이웃 친척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