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린다. 가을비의 빛깔은 다른 계절의 비 보다 밝고 환하다. 원색의 단풍이 배경이 되어서 그런 것일까. 가을비는 유난히
조용하면서도 포근하다. 안개를 품은 듯 아련하면서도 왠지 모를 미지의 풍경이 그려져 마음이 먼저 길을 나선다. 우산에 닿는 비의 소리는
피아노 건반의 음률처럼 맑고 투명하다. 한 번은 두둑, 한 번은 두두둑 거리기를 반복한다. 빗방울은 마치 우산을 무대로 춤을 추는 듯 리듬이
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나도 모르게 그 리듬에 마음의 박자를 맞추게 된다. 비의 리듬을 담고 바라보는 가을 풍경은 무심코 바라보던
풍경과는 분위기와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같은 풍경이지만 감성에 따라 색감과 사물이 더욱 뚜렷하고 선명하게 와 닿으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된다. 우산 속은 사람의 품 속처럼 참 아늑하고 포근하다. 어느 아동문학가는 ‘우산 속을 엄마 품 속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서일까.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거리를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가끔씩 추억하나 떠오른다. 유난히
감성적이었던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그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무살을 갓 넘긴 때였다. 갑작스런 오빠의 죽음에 대한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밀어 올라오는 슬픔과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끌어안고 가을 속을 어둡게 헤매었었다.
그날도 비가 내렸다. 내리는 비에 나를 흠뻑 적셔야 할 것 만 같았다. 가방 속에 우산이 있었지만 꺼내지 않고 비를 맞으며 걸었다.
혼자만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며 한참을 그렇게 걸었었나 보다. 어느 순간 비의 감촉이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내개
한참동안이나 우산을 받쳐주었지만 생각에 빠진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걷기만 했던 것이다. 그 때 나는 울고 있었던 것 같다. 비와 함께 눈물을
흘리며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언뜻 봐도 훤칠한 키에 깊은 눈매가 인상적인 훈남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화끈거리며 어찌 할 바를 몰라
당황스러워 나도 모르게 “괜찮습니다. 그냥 가세요!”라며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그는 못 들은 척 계속 우산을 받쳐 주었다.
“괜찮다니까요! 왜 이러세요!” 라며 더 크게 화를 내었다. 그제야 그는 무안해 하며 나를 앞질러 가 버렸다. 그 때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문득문득 그 때의 그 사람이 생각난다.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받쳐 준 호의를 그렇게 냉랭하게 대했으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고맙다는 인사말 한마디 못하고 버럭 화를 냈으니 그 미안함이 내내 자리 잡고 있다. 생면부지의 사람이었지만 가끔은 내게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진 남자가 우산을 받쳐 준 적이 있었다는 것에 낭만적 위로를 받기도 한다. 지금까지도 그 날의 추억을 꺼집어내어 수다로 위로를 받고 있으니
그에게 진 빚이 크다. 이름도 모르고 이제는 얼굴도 어렴풋해진 그에게 고마움을 담아 행복을 빌어 본다.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것임을’ 이정하 시인의 시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의
내용 일부이다. 그날의 추억때문인지 이 시가 깊이 와 닿는다. 비를 맞는 사람에겐 우산이 필요하겠지만 그 보다 가슴에 내리는 비를 받쳐줄
마음의 우산이 더욱 필요한 것이다. 비 내리는 날의 아름다운 풍경중 하나는 우산 두 개가 나란히 가는 모습이다. 많은 말 하지 않아도
나란히 가는 그 모습에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다정함과 표정이 전해진다. 우산 속의 기온은 봄날의 햇살처럼 따뜻할 것 같다. 가을비가
곱게 내리는 날, 마음이 통하는 사람과 우산을 나란히 하고 걸어보고 싶다. 서로에게 마음의 우산이 되어 아픔과 슬픔을 감싸주고 기쁨을 함께
나누며 가을 속을 걷는다면 우산 속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가을날이 될
것이다.
기사입력: 2016/11/23 [16:34] 최종편집: ⓒ 광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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