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23]
강병주(姜炳周, 1882-1955)②
강병주 목사는 1922년에 풍기교회(1947년 성내교회로 개칭)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1933년 사임할 때까지 영주 지역 경제에 큰 관심을 가지고 농민들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습니다. 경안농원을 운영하면서 농민들을 계몽하고 농사 개량 관련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 쌀 생산을 늘리는 방법과 채소 농사에 대한 안내서였는데 한글로 써서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1931년에는 한글학회의 전신이었던 조선어학회 명예회원으로 추대되었고 목사로는 유일한 회원이었습니다. 아들 강신명(1909-1985)도 아버지와 뜻을 같이하여 한글 보급에 힘썼는데, 특히 26세였던 1935년에 펴낸 한글 동요집 『새색시 새서방』은 한국기독교사적 유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강병주 목사는 1935년에 중앙총회 종교교육부에서 일하면서 어린이 교육을 위해 『동화작법(童話作法)』을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38년에는 신사참배 거부로 구속되기도 했습니다. 1943년에는 서울 아현동에 동흥중학교를 설립했고, 해방 직후 체신부 장관의 요청으로 지방을 순회하며 체신부 산하 공무원의 한글 교육을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1947년 10월 9일에 조선어학회가 『조선말 큰사전』을 출간했는데 강병주 목사는 기독교 용어 전문위원으로 활동했고, “한글 목사”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였습니다. 6·25전쟁으로 출간되지는 못했지만 한글 교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글맞춤법통일안 500문답 해설』이란 책을 편찬했습니다. 강병주 목사가 출간한 책들로는 『십사석수확법』, 『면화다수확법』, 『신선동화집』, 『동화작법』 등이 있습니다. 그는 1955년 5월 30일 서울에서 소천했습니다.
<참고>
2022. 12. 12. 영주시민신문 <인물따라 세월산책 ⑱ 강병주>
영주향토문화백과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