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농인들 감동시킨 BTS ‘수어 안무’는 어떻게 나왔나
방탄소년단 ‘퍼미션 투 댄스’
입모양 소통 닫힌 마스크 시대
‘수어 안무’ 말걸며 “BTS와 춤을”
희망 메시지 전할 특별한 안무 고민
코로나 종식 알리는 콘셉트
‘수어 안무’ 만나 의미 배가돼
왜곡되지 않도록 정확한 표현 노력
전문가와 수차례 논의·확인
“가장 중요한 표정 잘 살려” 평가
팬들, 제목·소품에 다양한 의미 부여도
방탄소년단이 ‘즐겁다’라는 의미의 국제 수어를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갈무리
‘즐겁다’를 표현하는 슈가와 정국. 뮤직비디오 갈무리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좀 더 특별한 퍼포먼스가 없을까?” 요즘 소셜미디어(SNS)를 뜨겁게 달구는 화제의 ‘그 안무’는 이런 고민에서 시작됐다. 1년 넘게 이어지는 팬데믹 시대에, ‘우리 모두 힘내자’는 노랫말의 메시지는 ‘그 안무’를 만나 의미가 배가됐다. 바로 방탄소년단(비티에스·BTS)이 지난 9일 발표한 신곡 ‘퍼미션 투 댄스’에 등장하는 수어 안무다.
방탄소년단은 노래 후반부 다 함께 “나나나나나~” 하는 대목에서 ‘즐겁다’ ‘춤추다’ ‘평화’를 뜻하는 수어 동작을 활용한 안무를 선보인다. 엄지손가락은 펴고 나머지 손가락을 반쯤 구부린 채 몸을 위 아래로 긁는 듯한 동작은 ‘즐겁다’, 왼손 손바닥을 무대 삼아 다른쪽 손의 두 손가락을 좌우로 움직이는 동작은 ‘춤추다’, 양손 브이 동작은 ‘평화’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곡은 미래의 방탄소년단이 2021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보라색 풍선을 날리며 코로나19 종식을 알리는 콘셉트다. 몸을 흔들며 춤추면서 동작을 해야 해서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우려도 있었지만, 희망적인 메시지를 세심하게 잘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이 ‘춤추다’라는 의미의 국제 수어를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갈무리
좋은 의미로 시작한 안무가 왜곡되지 않게, 방탄소년단 멤버들과 안무팀은 수어 동작의 정확한 표현에 특히 신경 썼다. 빅히트뮤직 쪽은 “대표 단어와 상징적인 동작을 정한 후 안무로 표현해보았고, (농인, 수어 통역사 같은) 전문가들과 수차례 논의하면서 메시지가 잘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했다. 사실상 안무를 함께 만들어간 셈이다. 정확한 동작과 함께 멤버들이 가장 신경 쓴 것은 표정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표정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즐겁다’를 뜻하는 수어 동작에는 ‘반갑다’는 의미도 있다. 멤버들이 농인들에게 “즐겁게”라는 노랫말을 이해시키려면 한껏 즐거운 표정을 지어야 한다. 농인 유튜버 하개월은 자신의 개인 채널에서 “수어는 표정을 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방탄소년단이 활기찬 느낌과 즐거운 표정을 정말 잘 표현했다”고 언급했다.
방탄소년단과 출연자들이 함께 ‘평화’를 뜻하는 국제 수어를 춤으로 표현하고 있다. 뮤직비디오 갈무리
알엠과 뷔의 ‘평화’. 뮤직비디오 갈무리
이런 노력에 전세계 많은 이들이 감동하고 있다. 소셜미디어에는 특히 농인들이 ‘수어 안무’를 따라 추는 영상이 많다. 최근 소셜미디어에는 “사촌 동생이 뮤직비디오를 보다가 ‘와, 나한테 춤추라는데’라며 행복해했다. 이를 듣고 우는 중”이라는 감동적인 사연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 국내 농인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코로나19 관련 정부 브리핑을 통역하는 김동호 수어 통역사는 “농인분들이 먼저 발견하고 영상을 공유해주더라”고 말했다.
단순히 수어를 안무에 활용해 우리 모두 하나라는 메시지를 전해서 특별한 게 아니다. 김동호 통역사는 “농인분들에게 음악은 문화 중에서도 가장 거리가 먼 장르다. 노랫말을 이해하고 춤을 따라 추려면 조금 더 단계를 거쳐야 하는 문화적 거리가 있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청력을 갖고 계신 분들도 음악 소리는 ‘웅’ 하고 진동이 울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노랫말과 맞는 안무 동작을 수어로 표현하면서 농인들도 그 의미를 바로 알아차리고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방탄소년단이 그 차이를 줄여줬다”고 말했다. 팬데믹 시대에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상대 말을 입모양으로 읽는 농인들이 소통에 특히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방탄소년단의 시도가 더욱 각별하다.
방탄소년단의 영향력이 크다는 점에서 ‘셀럽’의 구실을 떠올리게도 한다. 시대극 <미스터 션샤인>이 10대들에게 ‘의병’에 대해 공부하게 했던 것처럼, ‘퍼미션 투 댄스’ 수어 안무는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이름)들이 수어에 관심을 갖게 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 아미들은 개인 블로그 등에 수어의 의미를 전하고, 국립국어원 수어사전을 공유하기도 한다. 한국은 2016년 법이 개정돼 ‘수화’라는 표현이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는 ‘수어’로 바뀌었다는 사실도 알리고 있다. ‘퍼미션 투 댄스’에서 활용한 수어 동작은 영어처럼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국제 수어’(국제 수화)다. 아미들은 ‘춤추다’ ‘평화’의 경우 한국 수어 표현이 다르다는 정보도 함께 전한다. 김동호 통역사는 “셀럽의 행동 하나하나가 주는 효과는 굉장히 크다. 국제 수어를 써서 전세계 농인들을 위해 음악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사회적 약자, 관심을 덜 받는 이들을 세심하게 배려해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도 소셜미디어에서 “청각 장애로 음악을 즐기는 데 어려움을 겪는 전세계 15억명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팬들은 신곡 ‘퍼미션 투 댄스’ 글자를 재조합하면 ‘스토리스 온 펜데믹’이 된다는 해석도 내놨다.
앞서 방탄소년단은 지난 5월 미국 토크쇼 <더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CBS)에 출연해 ‘버터’를 수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멤버 뷔는 팬데믹 시대에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면서 “축하한다”는 수어 동작도 했다. 평소 이런 행동의 영향일까. 아미들은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에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뮤직비디오 속 배경인 ‘빨래방’과 방탄소년단이 희망을 노래하는 또 다른 곡 ‘봄날’ 속 빨래방을 연결짓고, 제목을 애너그램(단어의 문자를 재배열하여 다른 뜻을 가지는 다른 단어로 바꾸는 일종의 말장난)으로 재조합해 ‘스토리스 온 팬데믹’으로 만드는 식이다. 팬들의 이런 해석에 대해 빅히트 쪽은 “뮤직비디오 시나리오에 맞는 소품과 장소를 정했다”며 말을 아꼈다. ‘퍼미션 투 댄스’는 팬클럽 이름이 ‘아미’로 정해진 ‘아미 생일’(8주년)에 맞춰 일부러 지난 9일 발매했다.
코로나 종식을 알리는 신문을 보고 있는 모습이 ‘퍼미션 투 댄스’ 티저 영상에 등장했다. 영상 갈무리
‘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온다. 마지막 남녀노소 모두 마스크를 벗는 대목에서 울컥했다는 반응이 많다. 뮤직비디오 속 ‘우리들’처럼 마스크를 벗을 날이 올까? 방탄소년단이 ‘퍼미션 투 댄스’로 답하고 있다. “우리가 춤을 추는 데 허락은 필요 없다”고. 그런 날은 온다고. 티저 영상에는 2022년 팬데믹이 종식되고 방탄소년단의 콘서트를 알리는 장면이 나온다. 리더 알엠(RM·아르엠)은 14일(한국시각) 미국 토크쇼 <더 투나이트 쇼 스타링 지미 팰런> 진행자 지미 팰런과 한 화상 인터뷰에서 “(공연장에서) ‘소리 질러’라고 다시 외치고 싶다”며 마스크를 벗은 세상에서 투어를 하고 싶은 바람을 전했다.
뮤직비디오 갈무리, 국립국어원 수어사전 갈무리(작은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