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의 보청기
손 원
구순의 아버님께서 노인성 난청을 겪고 계신다. 여든이 넘어서면서 부터 10여년간 보청기를 착용하고 계시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아버님과 대화가 쉽지 않다. 평소 목소리가 낭낭하지 못한 나의 목소리를 듣기는 더 어려우신 것 같다. 그러다보니 대화가 줄어들고 꼭 드릴 말씀이 있으면 바짝 다가가서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 나는 나름대로 아버님과의 대화 노하우가 있다. 먼저 면전에서 목청을 높혀 입모양을 보여드린다. 아버님의 반응이 신통치 않으면 최대한 보청기 가까이에서 핵심 단어를 말한다. 이렇게 하다보니 난청이신 아버님은 물론이고 나도 답답해 진다. 일반적인 이야기는 그렇더라도 꼭 소통을 해야할 경우에는 필답으로 한다.
얼마전 부터 치아 때문에 고통을 겪고 계셔서 수차례 치과를 다녀 왔다. 아버님은 걸리적 거리는 치아를 뽑기를 원하셨고 의사선생님은 보존을 권했으나 소통이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듣고 치아상태를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해 드렸다. 보호자가 옆에 있다면 이렇게라도 할 수가 있겠지만 아버님은 평소 홀로 지내시고 주말에만 내가 보살핀다. 그러다보니 평소 대인관계에 많은 불편을 호소하신다.
간혹 친구분들의 보청기가 잘 들린다는 것을 알고 부러워하기도 하신다. 그래서 그분들이 구입한 보청기 상사를 찾아가 상담을 하기도 했다. 10여년간 4회나 보청기를 바꾸기도 했다. 새 보청기를 착용하면 심리적으로 처음에는 잘 들린다고 하시다가 오래지 않아 실망을 하시고 했다. 얼마전 이다. "얘야, 친구가 새로한 보청기를 내가 한 번 착용해 보니 잘 들리더라."
아버님은 청신경이 안 좋아서 어떠한 보청기든지 효과가 좋지 않을 거란 청각사의 말을 수없이 들어 왔기에 확신은 없었지만 혹시나하는 기대도 가졌다. 아버님은 이전에도 친구의 보청기를 끼워보시고 같은 말씀을 하셨고 그때마다 그 보청기 상사를 찾아갔으나 실망했던터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하도 원하시길래 나는 나름대로 알아 보기로 했다. 먼저 그 노인분을 만나 보기로 했다. 아버님을 태워 노인들이 계시는 곳을 가니 그분을 포함한 어르신 몇 분이 마트앞 평상에서 환담하고 계셨다. 황씨라는 어르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드리니 자신의 보청기를 아버님 귀에 끼워주셨다. 나는 얼마나 잘 들으시는 지 시험을 해 보았다. 여러가지 질문을 드리니 아버님은 본인의 보청기 보다 더 잘 들으시는 것 같지가 않았다. 20여분간 그분의 보청기를 착용 한 후 "아부지 어떠세요?" 라고 물으니 "내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라고 하셨다. 얼마 전 잠깐 착용하셨을 때는 잘 들렸던 것이 지금은 아니라고 하신다. 그래서 남의 보청기로 맛보기 한 것 보다는 본인에게 맞는 보청기를 구입하면 잘 들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 황씨 어른께 보청기상사 연락처를 알아가지고 돌아왔다.
요즘은 고도의 정보화시대인 것 같다. 가끔 인터넷으로 적절한 보청기가 있는지 검색하곤 했는데, 그것이 빅데이터로 활용된 듯 몇 개 보청기 상사에서 광고 메시지가 왔다. 일반적으로 보청기상사를 방문하면 그 자리서 청력검사를 하고 보청기 구입을 권유한다. 보청기는 비교적 고가여서 적어도 수년간은 문제가 없어야 구입할 수 있겠는데 단 몇 분간의 시험착용으로는 신뢰할 수가 없어 망설인 경우가 많았다. 구입을 하면 오래지 않아 실망을 하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분히 체험하고 구입여부를 결정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런 조건을 충족하는 보청기 상사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 전화가 왔다.
서울에 본사를 둔 전국체인점으로 거주지 가까이 체인점을 소개 해 주었다. 상담원은 나의 심경을 꽤뚫고 있는 듯 호쾌하게 설명했다. 그는 유명보청기를 한달간 무료체험을 해 보고 구입여부를 결정해도 좋다는 것이었다. 물론 제품가의 20%를 보증금으로 내면 체험 후 구입여부와 관계없이 돌려준다는 것이었다. 중고품도 아닌 새상품을 한달간 사용하고 그냥 돌려 줘도 된다는 말에 부담이 된다고 하니 걱정 안해도 된다고 했다. 며칠 후 아버님을 모시고 가까운 체인점을 방문하기로 했다.
문득 삶의 질에 가장 우선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보는 것, 듣는 것, 먹는 것일 것이다. 이들 중 한가지라도 문제가 생기면 삶의질이 현저히 떨어진다. 그것도 본인이 답답할 정도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아버님께 해드린 몆번의 보청기로도 여전히 청력에 많은 지장을 겪고 계신다. 다소 부담은 되겠지만 지불한 댓가만 있다면 감수 하겠으나 효험이 없을 것 같아 고민해 왔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충분한 체험을 한 후 구입할 수 있다니 믿음이 간다.
국가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많은 복지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장애인이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양질의 시책이 계속 나오고 있다. 보청기 구입에는 국가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 어르신네들은 감사히 여기고 보청기를 마련한다. 그런데 일부 보청기 상사의 얄팍한 상술에 넘어가 마을 어르신네들이 무더기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보청기 대금만 챙기고 정작 어르신들은 만족한 청력개선이 안되기 때문이다. 보조금지급 기관은 어르신들의 보청기 상태를 가끔 모니터링하여 보청기로 인한 피해와 상실감을 줄이는 노력이 아쉽다.
노인복지를 국가에서 다 챙기기는 어렵다. 자식 등 보호자가 있으면 그들이 1차적으로 보살필 의무가 있음은 물론이다. 보호자가 없는 어려운 어르신은 국가책임으로 하고 보호자가 있는 경우에도 보호자가 보살필 여력이 없다면 어느 정도는국가 지원이 필요하다. 나이들어 누구나 보고 듣고 먹는데 불편 없는 기본적인 복지가 보장면 좋겠다
누구든지 늙으면 노안, 청력장애, 치매 등 노인성 질병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때를 대비해서 스스로 대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도 있을 것이다. 결국 가족이나 국가가 보살펴야 한다. 국민복지가 더욱 촘촘해지고 강화되는 복지국가의 국민의식이 달라져야 한다. 노인성 질환의 치유를 돈벌이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노인건강을 중요한 노인복지사업으로 하여 국가와 사회공동체가 같이 해결해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2021. 6. 4.)
첫댓글 선생님의 효성이 돋보이는 보청기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도 보청기도 세월을 이길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