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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현대시> 3월호 이달의 시인 <박현수 시인> 대담
상투적인 세계로부터의 필사적인 탈주
서 안 나 (시인)
시총(詩總)이라는 무덤이 있다...시총(詩總)은 나로 하여금 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벼르고 벼른 끝에 출가하듯이 길을 떠난 것은 길 가득 벚꽃 이파리가 유사流砂처럼 흐르던 어느 봄날이었다. 차바퀴에 그 부드러운 몸들이 으깨지는 것이 두려워 차를 밀듯이 천천히 나아가던 그런 봄날이었다. 자주 길은 어긋나고 이정표는 사라져버린 낯선 길이었다.
-박현수. 평론집 『황금빛 책갈피』자서 중에서-
박현수 시인과 대담을 하기 위해 내가 자주 가는 카페에서 약속을 정했다. 대담 장소로 가는 중에 박현수 시인의 평론집에 쓰인 자서를 떠올렸다. 시인의 진술처럼 시총(詩總)이 시인에게 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을 그 지점을 생각해 보았다. 어쩌면 박현수 시인에게 시란 자주 어긋나고 이정표가 사라져버리는 낯선 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담을 준비하면서 박현수 시인의 시세계와 더불어 그가 쓴 책들을 얼치기로나마 읽었다. 명상의 흔적들이 행간마다 숨을 쉬고 있었다. 박현수 시인과의 대담 자리에서 나눌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라 예감을 하면서 카페로 들어갔다. 사람 좋은 박현수 시인이 다소 야윈 모습으로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안나: 안녕하세요. 인터뷰로 만나 뵙게 되니 새삼스럽게 반갑네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박현수 시인 관련 자료들을 나름으로 꼼꼼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여러 문학잡지 소시집 코너에 시를 발표하셨고, 그 외에도 여러 작품들을 발표하셨더군요. 소시집 코너가 시인의 입장에선 반가움과 부담감이 동시에 찾아드는 청탁이었을 텐데요.
박현수: 반갑습니다. 작년에 세 군데『시인시각』,『시와 상상』, 『다층)에서 소시집 코너에 작품을 발표했는데 사실 그런 원고 청탁이 기쁘긴 하지만 부담이 많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소시집 코너가 시를 보통 5편 정도를 요구하니까 미리 써놓은 작품이 많지 않은 경우 심리적으로 많이 쫓기게 되는 경우가 많죠. 저 역시 과작이라 작품 준비하는 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어렵긴 하지만 여러 작품을 집중적으로 쓰고 선별할 수 있다는 점은 게으른 저에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서안나: 네. 덕분에 독자들은 좋은 시를 읽게 되어서 좋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웃음) 1992년에 한국일보에 「세한도」라는 작품으로 등단하셨지요? 등단작과 관련하여 등단 전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예상 외로 궁금해 하는 분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만.
박현수: 제가 문단에 나온 지 올해로 17년째인데요, 문단 행사에 가끔 참석하면 저를 모르셔도 제 등단 작품은 아시는 분이 꽤 많아서 스스로 놀라고 또 반성한 때가 몇 번 있습니다. 등단작품은 군대 생활하면서 구상했던 작품입니다. 강원도 양구에서 밤새워 철책 근무를 하면서 어둠 속에서 머릿속에 한 편의 시를 매일 퇴고하였습니다. 그래서 한 편의 시가 보통 두어 달 이상 걸려 완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세한도」는 그보다 더 오래 걸렸습니다. 그 구상의 스케일을 너무 크게 잡았기 때문입니다. 세한도의 작품 세계와 저의 삶, 그리고 시를 아우르는 어떤 틀을 구상했지요. 그래서 군대에서 완성하지 못 한 채, 군복 주머니에 초고를 넣고 제대를 했지요. 제대 후 사회에 적응하기 전에 미완의 상태로 마무리 지었던 게 그 작품입니다. 그 당시는 미완의 상태라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하려고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안 고친 것이 더 나았던 것 같습니다. 작년인가요,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34호에 관련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서안나: 네. 철책선에서 보초를 서면서 구상하고, 군복 주머니에 초고를 넣고 제대했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상식적인 질문이지만 시에 처음 입문하게 된 사연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네요. 고향이 강원도 태백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시집 해설에서 황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는 내용을 읽었어요. 특히 황지라는 곳의 특수한 환경이 시에도 많이 드러나고 있는데요, 첫 시집에 실린 「아버지 까라마조프·1」이나 「주술의 마을」, 「만항재를 넘으며」등의 작품이나 인터넷에서 읽은 「홍시」라는 수필에서 그런 생활이 엿보입니다만.
박현수: 제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문학의 시작은 탄광촌 황지의 석탄 먼지라 할 수 있지요. 마치 강 하구의 하늘을 까맣게 뒤덮으며 몰려다니는 되새 떼처럼 황지의 탄 먼지는 세상을 인식하는 순간부터 하늘에 가득했으니까요. 저는 봉화에서 나서 대여섯 살 때 황지로 갔는데, 저는 세상이 원래 그렇게 탄 먼지로 가득한 곳인 줄 알았어요. 제 시에는 기본적으로 탄 먼지가 묻어 있습니다. 비참한 삶에서 얻은 우울하고 사색적인 시선이 일단 그렇고요. 그러면서 그것을 혈혈단신으로 꿰뚫고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 같은 것도 거기에서 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문학은 고독하고 어두운 탄광촌 아이에게 하나의 탈출구나 구원 같은 것이었습니다. 위안 받을 것이라고는 문학 책뿐이었으니까요.
서안나: 유년시절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한 가지 더 여쭤 볼게요. 박현수 시인이 형제분들과 함께 펴낸 『형제산고』라는 일종의 동인지라 할 수 있는 작품집과 관련된 기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형제자매들이 모여서 해마다 글을 엮어 책을 만든다는 기사내용이 참 독특하게 다가왔습니다. 바쁜 일상 중에 각기 다른 방면에 종사하는 형제들이 모이기도 어려울뿐더러, 더구나 같이 생각을 모아 책을 펴낸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은 일인데요. 형제분들이 모두 글에 관심이 많으신가 봅니다.
박현수: 우리 형제는 모두 여섯입니다. 그 중 맏형께서 상당히 인문학적 지향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삶 속에서 언제나 책을 끼고 다녔어요. 지게를 지고 갈 때도 리어카를 끌 때도 늘 책을 주위에 두었습니다. 우리 형제들끼리 모이면 그런 얘기도 합니다. 아마도 맏형님이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형제들 중 몇 명은 조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또 다들 덩치가 작아서 크게 성공은 못 했을 거라고.(웃음) 『형제산고』는 1985년 형제들 글이 여러 사보나 학보에 활자화 된 것을 모아 묶은 것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지속적으로 책을 프린트본으로 엮어 오고 있는데 지금까지 11집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옛날에 가난한 형제들끼리 모이면 문학 이야기를 하느라 밤을 새우기도 했지요. 제가 신춘문예에 등단할 때 재야문인 형제들이 농담 삼아 내가 제도권 시인이 되었다고 배신자라 하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형제도 앞으로 제도권 문인으로 정식 등단할 가능성이 많다고 봅니다.
서안나: 네. 형제들끼리 모여 문학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밤을 세우는 정경이 그려집니다. 참 부러운데요. 그리고 궁금했던 점이 있어요. 세종대 재학 시절 휴학을 하고 1년 동안 도서관에서 파묻혀 많은 책을 읽었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는데요. 아마도 그 시기가 박현수 시인 개인적으로도 많은 내공을 쌓는 의미 있는 한 해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독서의 시간이 깊은 사유와 명상이 함께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2번째 시집의 제목 역시 <위험한 독서>라는 점을 생각할 때 박현수 시인에게 “독서”가 주는 묘미나 독서행위가 차지하는 의미가 각별할 듯합니다. 어떤 책들을 주로 읽고, 독서 행위를 통해 깨달은 점들이 있다면요. 그 일 년의 시간이 궁금해지는데요?
박현수: 제대하고 대학 3학년생으로 복학을 하고는 아는 친구도 없고 해서 거의 혼자 학교를 다녔어요. 그러다 3학년 마치니 졸업이 부담스럽더라구요. 휴학을 한 가장 큰 이유는 어디 가서 국문과 나왔다는 소릴 할 정도의 소양이 내게 있는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휴학을 하고 세계문학전집 목록에 줄을 그어 가며 여러 고전들을 읽고, 그 다음에는 바슐라르, 엘리아데 등의 글에 빠져 이론적인 글의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복학한 그 해에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또 그 해에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하기도 했지요. 그때 휴학을 한 그 선택은 지금 생각해도 의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서의 맛을 그때 만끽했지요. 제 시에 독서 비유가 많은 것도 그때 생긴 취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독서, 읽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다룬 시를 모아 그럴싸한 책을 엮으려는 기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서안나: 네. 다양한 매체들 때문에 책을 읽는 독서 인구가 감소하는 현재 상황에서, 독서 행위와 그 의미에 관련된 책이 나온다면 저도 한 번 읽어보고 싶네요. 좋은 책 기대하겠습니다. (웃음)
박현수 시인께서는 신춘문예에 「세한도」로 등단하고 나서, 첫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1998년, 청년정신)를 발간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제가 첫 시집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박현수 시인께서 메일로 보내준 시집 원고를 읽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보니 절판으로 나와 있던데요. 신춘 출신 시인인 경우, 시집 출판에서 많은 이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첫 시집에 관련된 이야기 좀 해주시죠. 절판된 시집과 얽힌 흥미로운 사연이 있을 듯합니다.
박현수: 시집을 구해드리지 못해 죄송하네요. 10년 넘은 책이라 저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워낙 과작(1년에 열 편 정도도 못 씁니다)이라 시집 분량의 시가 모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시집 낼 생각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금천구 시흥동 살 때 어느 날 밤 늦게 어떤 사람이 전화를 했어요. 박현수 시인 맞냐고 하면서 저를 만나려고 엄청 노력하다가 어떤 시인을 통해 방금 전화번호를 알아서 전화를 했다더군요. 그리고 지금 저희 집 근처에 있으니 한 번 만나자고 하더군요. 그래서 나갔더니 청년정신이라는 출판사 사장을 맡은 이종록 시인(이정록 시인이 아닙니다)이었어요. 그래서 출판사를 만들어 시집 시리즈를 만들고자 하는데 내 시집을 첫 번째로 출판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한 가지 조건만 내세우고 하자고 했습니다. 그 시집 시리즈가 지속적으로 계속된다는 약속만 해준다면 그렇게 한다고 했지요. 그런데 대여섯 권 나오고 그 시리즈가 끝났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좀 아쉬워요.
서안나: 네. 출판사의 사정으로 시집이 절판되어 안타까워하는 시인들이 있는데 박현수 시인도 그렇군요. 첫 시집에서 시집 해설을 쓴 금동철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박현수 시인의 작품이 고독과 고고의 사이에서의 이상과 현실의 고뇌를 드러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해설에서 다루었다시피 유년기를 비롯한 군대에서의 생활, 사랑과 이별과 결혼, 결혼 후의 아버지로서 맞는 사건들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아 박현수 시인의 삶을 옆에서 한 편의 영화로 지켜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제목을 ‘우울한 우리 시대의 사랑’이라 붙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박현수: 그 제목은 사랑 시들이 대중성이 있다는 출판사의 판단에 맡긴 것입니다. 그런데 차라리 등단작품 제목인 ‘세한도’가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사실 표제시인 그 시가 저에게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닌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가난한 출판사에 어떤 도움이 될까 하여 알아서 하도록 했어요. 첫 시집의 시편은 일상과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어서 독자에게 다가가기 쉬운 면이 많지요.
서안나:네. 그런 숨겨진 이야기가 있었군요. 가난한 출판사를 배려하시는 박현수 시인의 모습이 인간적으로 느껴집니다. 전 개인적으로도 첫 시집에서 「세한도」를 비롯하여, 「내소사」, 「하오의 미학 강의」 시편과 「아버지 까라마조프」 연작, 「황지」 연작 등을 인상 깊게 보았습니다. 특히 「하오의 미학강의」 연작 시편에서 소재로 채택한 내용이 제2시집인 『위험한 독서』에서는 더욱 심화하였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이런 시편들이 곧 두 번째 시집을 엮는 사유의 씨앗들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제2시집의 「고인돌」이나 「시총」과 같은 작품들이 곧 제1시집의 「하오의 미학강의」와 맥을 같이하는 작품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만.
박현수: 정확한 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두 번째 시집 제목을 처음에는 ‘하오의 미학 강의’라고 붙이려 했는데 너무 난해하다는 선입견을 준다는 이야기가 있어 지금의 제목이 되었어요. 첫시집이 전반적으로 일상적인 체험과 깊이 관련을 맺고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하오의 미학 강의’처럼 지적인 면이 강조된 작품들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두 번째 시집은 첫 시집의 그 부분을 심화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안나: 그런데 지금도 누군가는 차라리 「세한도」풍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쓰고 시 세계를 마무리하고 그 세계로 넘어 갔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던데,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박현수: 사실 그런 이야기를 몇 번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 작품은 많지 않지만 저는 그런 서정성 강한 작품 세계에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너무 지겨웠어요. 당시 서정시들이 사물을 인간의 시선으로 변용시켜 어떤 교훈을 끌어내는 도식에 너무 쉽게 의존하고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저의 시도 일부 그런 면이 있다고 반성을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그런 서정시를 쓰는 시인은 저 말고도 많기에 저는 뭔가 변화를 시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이 잘 하는 분야가 아니라 내가 새롭게 하고 싶은 영역에 투신하고 싶었지요. 그래서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 사이에 다소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첫시집의 하오의 미학 강의 계열의 시는 그런 변화를 생각한 이후에 쓴 시라서 따른 서정적인 시와 질감의 차이가 납니다.
서안나: 그렇군요. 이제 두 번째 시집으로 화제를 옮겨 볼까 합니다. 이번 대담을 기회로 두 번째 시집인 『위험한 독서』역시 꼼꼼하게 읽게 되었습니다. 각 시집의 출판 연도를 보니 1998년에 첫 시집을 내고 8년 만에 두 번째 시집이 출판되었던데요. 많은 시간이 소요된 만큼 완성도 또한 높은 시집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시를 읽으면서 좋은 시들이 실린 페이지들을 접어 보았더니, 80퍼센트 이상의 작품들이 접혀지더군요. 시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요?
박현수: 고맙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읽어주실 줄 알았더라면 보관용으로 지닌 첫 시집도 드릴 걸 잘못했네요.(웃음) 제 보관본은 낙서가 너무 많아 드리기도 좀 뭐합니다만. 8년만에 두 번째 시집 낸 것은 이제 생각해보니 시를 정면으로 승부하지 못 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시간들은 나름대로 내 시의 방향에 대한 방황이 심했던 기간이었습니다. 요즘 오히려 시에 대한 욕망이 더욱 강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인돌」, 「출정」이라는 작품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주목받지는 못 했습니다. 지금까지 「고인돌」에 주목해준 사람은 곽명숙 시인의 어느 평론뿐이었던 것 같습니다.
서안나: 저도 「고인돌」이란 작품을 참 좋게 읽었습니다. 제1시집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고뇌를 노래했다면, 제2시집에서는 1시집의 <하오의 미학강의>와 같이 소재를 고사에서 채택하여 보다 확대된 시의 세계를 펼쳐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집으로 2007년 <한국시인협회>서 주는 <제39회 시인협회 ‘젊은 시인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는데요. 박현수 시인 개인적으로도 애착이 많이 가는 시집일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미 기존에 발표했던 작품들도 시집에 수록할 때 다시 수정을 거친 작품들도 더러 보였습니다.
박현수: 개인적으로 시에 대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만들어준 시집이라 평가합니다. 여러분들이 좋게 봐주신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시집에 실린 작품 중 일부는 잡지 발표 당시와 내용이나 형식들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전보다 나아진 작품도 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내용이나 형식상 좀 허술하더라도 진정성이 더 있었다는 점에서 차라리 이전 작품이 더 낫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드는 작품도 있었습니다. 퇴고를 할수록 진정성으로부터 멀어지고 수사학이 우위에 놓이는 기분이 많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불안감 때문에 지금도 시를 쓸 때 퇴고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퇴고는 완성에 대한 욕망의 결과가 아니라 불안감의 다른 형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서안나: 저도 시를 발표할 때,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요. “퇴고는 완성에 대한 욕망의 결과가 아니라 불안감의 다른 형식”이란 말을 들으니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군요. 다시 시집 이야기로 돌아가서, 자서에 관련된 이야기로 박현수 시인의 작품에 다가가 보도록 할게요.
전 개인적으로 시집을 읽을 때, 자서 부분에 많은 관심을 두는 편입니다. 어찌 보면 시집 자서에 쓰인 시인의 말이 그 시집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고도 생각해봅니다. 박현수 시인의 시집 자서에 있는 내용 중에 “시를 명상한다”라는 내용이 와 닿았습니다. “시를 쓰기 위한 명상”이 아니라, “시를 명상한다”라는 내용에서 박시인의 시 세계가 축약되어 담겨 있다고 봅니다. ‘시를 명상한다’는 것은 시적 주체가 시의 의미와 형식의 전체적인 여러 요소 속으로 잠기는 것이 아니라. 시를 관조하는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박시인의 시에서 메타시적인 요소나 언어와 문자 자체에 대한 사유들이 많은 점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박현수: 저는 크게 인식하지 못 하고 있었는데, 지금 지적하신 말씀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런 것 같습니다. ‘시에 대한 명상’이라는 말이 제가 지니고 있는 시에 대한 관점을 잘 보여주는 것 같네요. 어느 순간부터 저는 시 자체에 대한 메타적인 관심이 많이 생겼습니다. 아마도 시학 관련 공부를 하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시를 명상한다는 것은 시를 하나의 대상으로 놓는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내 이전에 누가 이런 명상을 했는지 궁금해서 개인적으로 이규보, 퇴계 등의 우리 고전 메타시도 꽤 모아 내 방식대로 번역도 해보곤 했습니다. 나중에 책으로 엮어볼까 하는데 집중할 시간이 없어 잘 되지 않을 듯합니다.
서안나: 네. 흥미로운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박현수 시인의 시에서 ‘길’이란 소재와 만났을 때 ‘명상’이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는데요. 작품 「길에 대하여」를 보면, “태초에 혼돈을 정리한 것은 길이며/ (중략)/ 길은 집으로 들고/ (중략)/ 실핏줄처럼/ 파생되는 길에/ 길을 잃은 것은 길이다/ (중략)/ 가장 우회한 길이 삶이라면/ 잃은 길 위에/ 다시 잃은 길이 시라는 것이다”에서도 곧 길 위의 노정들은 시를 명상하는 것이며 이는 곧 삶을 명상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박현수 시인의 작품 중에서 신체어 중 “발”과 관련된 시어들과 “발자국”, “길” “순례”등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인에게 있어서 시와 삶과 명상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을 해보았습니다만.
박현수: 시에 대한 명상은 제 시의 중요한 주제입니다. 메타시적 관점이 제 시에 선행되어 있다는 것은 일종의 불행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사실 메타적 시선은 대상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을 조절하는 일종의 인위적인 제어력을 필요로 하는데, 그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마치 술자리에서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아 술자리의 모든 광경을 잔인하게 지켜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시적으로 그 명상이 너무 현학적으로 반복적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고민이지요. 그러다 얻은 결론이 자서에 밝힌 “시에 대한 명상이 세계에 대한 명상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메타적 시선이 나를 완전하게 장악하면 시에 대한 명상은 세계에 대한 명상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문득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시에서 시나 수사학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하나의 텍스트로서 세계를 말하면서 동시에 시를 메타적으로 말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후 시 쓰기가 다소 덜 지겨워졌습니다.
서안나: 네. 두 번째 시집에서 「고인돌」과 「우황리 공룡발자국」,「타작」,「연어」,「까마귀」,「위험한 독서」,「해맥」,「시총」그리고 「무뇌설법」,「클리쉐」,「엉겅퀴」,「숙박계의 현대시사」등이 특히 기억에 남았습니다. 이들 작품에 보면, 문자와 언어 이전의 세계를 상상력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던 곳으로 보고, 신의 부재와 언어와 문자의 출현으로 이 세계가 폐쇄되고 축소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시적 주체는 새문법이 도래해야 한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작품 「연어」에서도 연어가 도래하는 “수미상관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는 인력과의 싸움”이 곧 “젊은 시인의 시 쓰기에 다름 아니다”(「연어」)고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늙은 시를 벗어버리고 새로운 시 쓰기는 언어 이전의 언어로 회귀하는 것을 말씀하는 것 같습니다만.
박현수: 새로운 시 쓰기에 대한 저의 갈망을 지적하신 것 같습니다. 시는 ‘상투적인 세계로부터의 필사적인 탈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갈망을 위해 과거와의 모든 관계를 전면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미래파가 ‘도서관을 불태우자’는 구호를 내건 것도 이와 관련이 있겠지요. 그러나 과거를 적극적으로 연계시킴으로써 새로움을 획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안나 시인께서는 그 과거를 ‘언어 이전의 언어의 세계’로 보고 계신 듯합니다. 그 세계는 태초의 서정성의 상태일 것입니다. 그곳엔 현실성과 초월성이 함께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일종의 비유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실제 언어 이전이나 이후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지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를 신비화하고 싶지 않고 미래에 모든 것을 투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지금 여기’에서 활로를 모색할 뿐입니다.
서안나:네, 현실성과 초월성이 존재한다는 말, 깊게 와 닿습니다.『위험한 독서』를 보면, 미학강의나 시론 등에 관련된 시편들도 눈을 끕니다. 개인적으로 시론이나 예술 창작론에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박현수: 그 시집에 「예술창작론」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소사 창건 설화를 통해 예술의 창작 비밀 같은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소사 불당 내의 단청을 그리기 위해 화공을 불렀는데 그는 그림을 그리는 백일 동안 절대 들여다 보지 말라 하지요. 사미승이 궁금증을 참지 못해 99일째 들여다보니 금빛 새 한 마리가 붓을 물고 단청을 그리고 있다가 그만 붓을 떨어트리고 날아가 버렸다는 설화입니다. 전통적으로 예술의 세계는 법당 안의 세계처럼 신비로운 미지의 영역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그 미지의 영역이 과학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가시적 세계로 나오긴 하였으나 그래도 여전히 미지의 영역은 남아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 시의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이것은 신비주의가 아닙니다. 인간의 잠재적 초월성에 대한 믿음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철학과 미학이 혼융된 시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상적 경지에 대한 도달 없이는 새로운 시는 기교상의 변혁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시인들의 공부가 필요한 것도 이 지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육화된 철학과 사상 혹은 신념이 없이는 울림이 큰 시도 나오기 어렵다고 봅니다. 그 점에서 저는 이육사의 「광야」나 백석의 「북방에서」 같은 스케일이 큰 시를 좋은 시라 생각합니다.
서안나: 네. “육화된 철학과 사상 혹은 신념”과 그로 인한 “큰 울림이 있는 시” 이 부분에서 많은 시인들이 공감하리라 생각됩니다. 박현수 시인의 시를 읽다보면, 두 번째 시집의 마지막 4부의 짧은 시편들이 눈에 뜨입니다. 앞의 「고인돌」과 같은 작품들이 거대한 담론을 이야기한 데 비해, 짧은 시편들도 그 나름대로 서정적 아름다움의 매력을 지니고 있는데요. 최근 발표한 시들에서도 이처럼 짧은 소품의 시들을 많이 발표하고 계신데요. 이 부분에 대해 말씀 좀 해주시죠.
박현수: 시는 형식적으로 ‘날렵한 단도’와 같은 데 장점이 있다고 봅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시는 짧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장시가 되더라도 응축된 단편의 연작시 형식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산문화된 시들이 시의 존재 가치를 위협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지하 시인이 말한 ‘자발적 가난의 형식’이 이런 짧은 시 형식과 관련이 있지요. 요즘 시는 내용과 형식상 비만 상태에 도달한 게 많습니다. 짧게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것을 괜히 미적 고려 없이 부연하고 반복하는 양상이 요즘 시에 많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시는 날렵한 형식 때문에 각광을 받을 것입니다.
서안나: 네. 그럼 이번엔 최근의 발표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작년 가을에 발표했던 「겨울 강가에서 예언서를 태우다」(『애지』, 2008년 가을호)란 시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었습니다. 그 작품을 읽으면서 박현수 시인의 등단작 「세한도」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시가 남성적이고 스케일이 커서 박현수 시인의 시 세계의 특징을 잘 드러내 주는 시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엄결성이랄까요. 혹은 견인주의적인 정신세계가 드러나는 시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생각만큼 조명을 받지 못하여서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아쉬운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제2시집의「고인돌」이란 시와「겨울 강가에서 예언서를 태우다」도 유사한 맥락의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박현수: 제 작품에 주목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그 작품은 사실 제가 오랫동안 고민해오던 주제 중의 하나를 다룬 것입니다. 인간을 넘어선 어떤 것의 문제, 즉 초월성의 문제 말입니다. 그 시는 인간을 배제한 초월성의 궁극적인 폐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 외부에서 초월성을 찾는 것은 부정적 결과만을 낳을 뿐이죠. 결국 초월은 인간 내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문제에 대해 사실 고민이 많았고 여전히 고민 중이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가닥은 잡았습니다. 그 시는 우리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개울가에 가서 예언서나 점복서 따위를 불태워버린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 애들이 이 시를 보고 신기해 하더군요. 스케일 면에서 「고인돌」이란 시와 비교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안나: 네. 이러한 시적 경향은 시인께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통 시학>과도 연결되고 있다고 생각해보게 됩니다. 『현대시와 전통주의의 수사학』과 평론집 『황금책갈피』에서 우리 고유의 <전통 시학>을 통해 동학, 태극사상, 주리론 등에 관련한 시인의 깊은 사유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요. 첫 시집의 「하오의 미학강의 4」의 부제로 달린 “장자어법”이나 제2시집의 「시총」,「시야, 너 어디 있느냐」, 그리고 근래에 발표한 「금서」와「시인전위」(『다층』2008년 겨울호 소시집), 「참새에 관하여」(『현대시』2008년 8월호) 와 이번 현대시 3월호에 실릴「풍수에 대한 각주」 등이 이런 경향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홍용희 평론가가 이를 두고 “입고출신”, “옛것으로 들어가서 새로운 것으로 나온다”(『다층』2008년 겨울호 소시집)라고 했는데, 이 말이 박현수 시인의 시 정신의 핵심을 지적하고 있다고 보아지는데요. 아마도 이러한 시인의 전통 시학에 대한 관심과 깊은 사유가 사물의 본질과 맞닿아 행간의 여백을 형성하고 정신적인 차원의 울림으로까지 확산하는 큰 시세계를 형성하는 것 같습니다.
박현수: 저에 관한 여러 자료를 섭렵하셨군요. 전통시학에 대한 관심은 제 문학과 학문의 기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통시학의 핵심을 문학적으로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계승하고, 학문적으로는 현대의 문학이론으로 다듬고 싶은 커다란 포부가 있습니다. 그런 지향을 홍용희 선생이 ‘입고출신’이라 표현했는데, 적절한 거 같아요. 좀 현학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현재의 위기 상황을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유의미한 과거의 호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전통 사상 속에는 여러 가능성이 많으므로 이를 잘 개발한다면 문화 현상을 새롭게 해석할 적절한 문학이론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동학이나 그것이 기반하고 있는 기층사상과 한국화된 유학이론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전문적인 천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안나: 네. 우리 전통 사상 속의 가능성을 문학 작품 속에 시도하는 박현수 시인의 작업이 무척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박현수 시인은 시인 이외에도 평론가로 그리고 소장 학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계속 해오고 계신데요.『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현대시와 전통주의의 수사학』, 『황금책갈피』, 『원전주해 이육사 시전집』, 『한국 모더니즘 시학』 등의 저서를 내어, 각종 우수 도서에 선정되기도 하셨더군요. 늦게나마 축하합니다. 또, 평론이나 저서들을 읽다 보면 문장이 참 깔끔하고 명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장강화를 위한 박현수 시인만의 특별한 비법이 있는지요?
박현수: 감사합니다. 제 문장에 그런 장점이 있다는 사실을 솔직히 저는 실감하지 못 하겠습니다. 내 걸음걸이의 장점을 말하는 것처럼 좀 어색하게 들리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면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문체를 선호할 것 같습니다. 독서를 할 때 너무 기교적인 글들이 내용상으로 전혀 진도가 나가지 않는 것이 제일 불만이거든요. 얼마전에 김훈 씨의 산문집을 읽다가 너무 수사적이라 지루하게 여겨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사적인 글의 한계를 실감했습니다. 기교적 글쓰기 역시 나름대로의 장점이 있겠지만 제 성격에는 좀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시에서는 수사적인 것을 일부러 시도하기도 하지만 기교가 사유를 담고 있지 않는 경우를 스스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핵심에 바로 가닿는 아름다움이 제 지향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서도요.(웃음)
서안나: 겸손의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박현수 시인께서는 창작뿐만 아니라 학술과 평론 쪽에도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더 깊은 성취가 있길 바라면서도, 같이 시를 쓰는 시인으로서는 여러 지면에서 박현수 시인의 시를 더 자주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이번 대담을 통해서 박현수 시인의 시 세계를 깊게 음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은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바쁜 시간 내어서 이야기를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나 올 세 번 째 시집에 큰 기대를 걸어보면서 이 자리를 마칠까 합니다. 올해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고 건필하세요.
박현수: 감사합니다. 인터뷰 때문에 부끄러운 제 시와 글을 읽느라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서안나 시인께서도 올해 문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대담이 끝나고 카페에서 스파게티와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시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와 앞으로 나아갈 시 세계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현수 시인의 순하지만 순간순간 섬세하게 빛나는 눈가에서 문득 예언자적인 섬광을 보기도 했다. 박현수 시인의 시 한 구절이 별똥별처럼 나를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빗줄기 속에서
꼿꼿이 뇌문을 읽는 예언자여(박현수,「까마귀」중에서)
2009년 <현대시> 3월호 이달의 시인 <박현수 시인> 대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