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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수상작 시-강화진 50-1 시 발걸음의 무게.
발걸음의 무게
해질 녘 발걸음에 실린 삶의 무게는 얼마일까?
어깨에 걸쳐진 가방만큼의 무게를 더한 발걸음엔 힘겨움이 묻어나고
펄럭이는 비닐봉지 양 손에 든 이의 잰 발걸음엔 고단함이 담겨있다.
저녁놀의 붉은 아름다움도
눈 감은 이의 고단함엔 빛을 잃고
개인지 늑대인지 모를 어스름 저녁의 낭만은
힘겨운 하루를 보낸 이의 쳐진 어깨에 피곤함을 더한다.
길을 걷다 바라본 하늘의 붉은 노을이,
물 위에 비친 반짝이는 영롱함이
가던 길 멈추게 한 적이 언제였는지
몸이 원하는 대로 한참을 서서
서서히 지는 해를 서서히 바라본 적이 언제였던지
삶의 무게가 실린 발걸음을 내 딛는 그 때가
노을이 지고 있는 그 때라면
잠시 멈춰
가만히 서서 그 노을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걸으며 덜어낸 무게만큼
지는 노을에 실려 보낸 무게만큼
가벼워진 걸음으로
어깨엔 가방을 양 손엔 비닐봉지를 메고 들고
가던 길 터벅터벅 가면
그만일 뿐이다.
덜어낸 무게가 얼마든 간에.
2-수상작 시-유정호 28-1. 시 첫 그리고 사랑
첫 그리고 사랑
나는 나의 외로움이라는
콤플렉스를 잘 갈무리해서
모든 일들을 혼자하는 것에
많이 익숙해져 있었다.
밥먹는 것도, 여행을 가는것도,
감기몸살에 걸리는 것도
혼자서 잘 해내왔었다.
꽃이 색을 되찾을 무렵
그렇게 안주하고 있던 삶에
갑자기 찾아온
봄바람 같은 너는
살랑살랑 나를 흔들어 놓았다.
첫눈에 반했다.
분명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는데
무언가에 그리워하지 않기로 했는데
분명 너는 나에게서 결여된
무언가였기 때문에
나는 너를 운명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더디게 온 행복은
더디게 가기를 빌며
망설임 없이 너에게 연락을 했다.
찰나의 답장이 왔다.
너와 나는 체면은 없었어도
보고싶은 마음은 벌써부터 있었나보다.
봄은 나를 붙잡아두고
놓아주지 않았다.
3-당선작 20- 시조 장두현 -막차
막차
열심히 살았지만
미개한 나의 인생
어디서 왔는가는
별 의미 없었지요
하루에
온몸을 싣고
걸어온 길
닫히네
4-당선작 44. 동시 박성희-양보 외 2편
양보
나무가 잎 키울 때
잎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는
꽃봉오리
꽃 활짝 피자
잎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난다
서로의 배경이 된다.
5-당선작-손유심 53. 수필 언니의 영어책
언니의 영어책
언니가 걸어오고 있었다. 발등에 닿을락 말락 한실크 스커트가 흰 가운들과 환자복 사이에서 눈에 띄었다. 어떤 마찰도 없이 찰랑찰랑한 치맛자락과 급할 것 없어 보이는 걸음걸이에는 삶의 어떠한 하중도 느껴지지 않았다. 누가 봐도 수술을 앞둔 환자의 보호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내가 입고 있는 느슨한 밴딩 데님바지와 하늘하늘한 실크 스커트는 패턴의 직조가 다르 듯 언니와 나는 삶의 패턴도 달랐다.
- 너밖에 없네. 네가 어머니를 모셔야겠다.
큰오빠가 말했다. 그 곁에 있던 맏딸인 언니와 작은 오빠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 나밖에 없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태생부터 예외라는 듯 입을 꾹 다물고 내 반응을 기다렸다. 아마도 내가 여자이고 결혼을 하지 않아서, 돌보아야 할 자식도 없으니까, 정규직 직장을 다니지 않으니까, 오랫동안 네가 엄마를 잘 보살펴왔으니까, 네가 가장 잘하니까 당연히 내가 엄마를 돌보아야 한다고 셋이서 합의한 모양이다. 고령의 엄마를 시골에서 모셔왔고,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던 돌봄의 삶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척추관협착증 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방에 들어갔다. 의사는 다른 노인도 많이 하는 수술이라고 안심하라고 했지만 팔순을 훌쩍 넘긴 고령이라 마취가 걱정되었다.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어서 복도를 서성이는데, 아까부터 언니가 보이지 않았다. 화장실과 언니를 찾기 위해 중앙 복도로 나왔다. 기웃거리다 보호자 대기실이 따로 있는 것을 보았다. 벽면에는 각종 사인이 표시되는 모니터와 TV가 있고, 커피와 캔 음료가 진열된 자동판매기도 보였다. 여남은 보호자들이 정면을 향해 등지고 앉았는데, 아무도 차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지나가다가 힐끗 언니를 본 것 같았다. 잘못 봤나 싶어 다시 확인했다. 스마트폰을 보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쳇, 여기 있었으면서… 한소리를 하려고 가까이 가다가 멈칫했다. 언니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해외여행 영어회화책이었다. 하도 열중하느라 사람이 가까이 온 줄도 모르고 있었다. 다가올 가을에 유럽으로 해외여행을 간다고 알음알음 준비해왔다.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나를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어떤 사람은 내게 효녀라고 말했다. 공원에서, 동네병원에서 만난 노인들은 엄마와 나를 번갈아 보고는 한결같이 내가 딸인지 며느리인지를 궁금해했다. 딸이라고 씩씩하게 대답하면 착한 효녀라고 칭찬하듯 말했다. 그러나 다른 해석이 필요한 하얀 거짓말에 가까웠다. 노인 돌봄은 유능하고 잘난 시람의 일이 아닌 밀실 구석의 허드렛일 혹은 일용직 노동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인생을 잘못 쓰고 있나, 하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돌봄이 절대 필요한 노인의 마지막 여생에 곁에 있어 주는 것뿐인데 나를 덜 진화한 인간으로 보는 것 같았다. 내 수고로 노쇠한 엄마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고, 그건 고귀한 인간의 일이지 않나, 그게 내 인정과 도리이고 합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효도가 아니라 사랑이고 쓸모 있는 인생을 사는 것이었다.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지치기 시작했고,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미래의 시간까지 다 써버린 것 같았다. 이럭저럭 인생이 다 지나가는 건가 불안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미미하더라도 내가 원하고 계획했던 일은 손에서 놓치 말자 했지만, 모든 생각의 시작과 끝은 엄마였다. 아파트 거실 창밖으로 오가는 사람도 없는 앞마당을 내다보며 나를 기다릴 것이다. 약은 잘 챙겨 드셨나, 차려놓고 나온 점심은 드셨나, 죄책감에 늘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읽던 책을 덮고 서둘러 도서관을 나선다. 이 돌봄이 끝나면 나,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내게 아직 미래가 남아있을까, 나는 점점 작아지기만 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언니를 본 후 곧 그 방을 나왔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비상구 계단을 내려왔다. 다 버리고 멀리 도망갈 생각밖에 없었다. 1층 주차장 출입구가 있는 에스컬레이터 뒤에서 주차장을 보는 척하며 팔짱을 끼고 침착해지기를 기다렸다. 가족 어느 누구도 내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힘들고 고단한 나를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해가 갈수록 나는 점점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어디로 갈까, 생각하는데 어느새 가득 고인 눈물이 볼을 타고 팔 위로 뚝뚝 떨어졌다. 나를 그냥 내버려두었다. 마침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공간이었고, 또 이곳이 병원이라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했다.
소소하거나 원대하거나 우리는 늘 ‘미미한 어떤 것’을 계획하고 움직인다. 그것에 의지해 하루를 살아가고 불완전한 존재를 견딘다. 희망, 소망, 꿈, 버킷리스트라고 말하는 것들이다. 이게 없는 삶도 있을 터인데, 그런 경우에는 삶의 하중을 감당하기가 참 힘들다. 그때 내가 그랬다.
원래는 있었으나 휩쓸리고 납작해지지 않으려 버둥거리다가 잃어버린 것들. 그러지 않았다면 가족이 이기적이고 치졸해도, 가능성과 반전의 기회가 내 인생에서 줄어들어도 크게 휘청이진 않았을 것이다. 그날 느닷없는 울음의 정체는 언니의 영어책이 환기시킨 내 욕망의 간절함이었다.
엄마의 두 번째 기일을 앞두고 있다. 지나온 기억마다 후회와 자책의 지뢰밭이지만, 이제 오롯이 내 삶을 궁리중이다.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도서관에서 열리는 인문학 강좌를 신청해 두었다. 자수 블라우스와 예쁜 신발도 샀다. 대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떠나는 전날의 새내기처럼 설레었다. 이제 내 일상의 배경도 하나씩 달라지고 있다. 나에 대한 환한 희망을 품는다.
6-당선작 박은경- 52. 동화 친구찾기
친구 찾기
승기가 단체방에 문자를 보냈다. 방학인데 자주 올렸다.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는데도 여전했다. 읽으려고 해도 오타에다, 줄임말투성이라 무슨 말인지 헷갈렸다. 읽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디드 무히사?
또 시작이다.
-제발 그만해라.
-뭐 사과이디?
-왜 상관이 없니? 여긴 우리 반이 같이 쓰는 단체잖아.
-돼거드!
-너 계속 이럴래?
짜증이 폭발할 것 같았다. 그날은 시간이 늦어서인지 그 문자가 끝이었다.
또 문자가 올라와 봐라 하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문자가 올라오지 않았다. 승기가 문자를 멈추었다.
-승기 승기?
-왜 문자 안 하지.
민호와 선우가 술렁였다.
-그러게…….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쳤다.
-유주가 웬일이야?
-어? 그 그게.
선우 문자에 당황했다. 승기와 엮는 것 같았다.
-승기가 문자 안 하니까 궁금하니? 네가 그만하라고 했잖아. 말 잘 듣네.
-너도 그만해라.
선우가 신경 쓰였다. 승기가 나 때문에 문자를 못 하는 건가.
내 말을 듣는 승기가 아니었다. 그전에도 민호가 단체방이 개인 방으로 아냐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승기는 줄기차게 문자를 올렸다.
그런데 하루에도 문자를 수십 개 올렸던 승기였는데 멈추다니. 이상하긴 했다.
승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어디에 사는지 모르는데 어쩌지.
-누가 승기네 집 아니?
-모르는데.
-유주가 약 올려 봐.
아이들이 승기네 집을 모르는지. 선우는 엉뚱한 문자를 올렸다.
-승기를 약 올리라고!
어이가 없다. 문자를 그만하라고 했지만, 약 올리지는 말아야 하는데. 나에게 이런 걸 시키다니.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약 올리면 승기가 문자를 올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약 올리지. 돼지라고 할까? 아니, 대머리라고 할까? 승기는 뚱뚱하고 머리숱이 적지만, 약 올리면 뒤끝이 있을까 봐 두렵다.
-승기는 오타쟁이.
대충 지었다. 약 올리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타쟁이 좋은데.
-오타쟁이 맞네. 문자를 막 올렸으니까.
선우와 민호가 마음에 들어 했다. 약 올리면 승기가 보고 문자를 올릴 거라고 했다.
-오타쟁이 땡뚱?
-오타쟁이 뭔 일?
아이들도 약 올리며 좋아했다. 승기 문자가 올라오기를 바랐다.
-학원에서 들었는데…….
-그 사고였어?
기다리던 소식이 오기는커녕. 아이들 사이에서 끔찍한 소문이 돌았다. 승기가 사고 났다고.
-뭐 사고?
-어머! 어떡해.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괜히 말 만들어하지 마!
민호가 분위기를 정리했다.
-문자가 엉망이어도 그냥 내버려둘걸.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난 오타가 안 올라오니 좋은데.
-난 오타가 많은 문자는 읽지 않아.
아이들 마음이 솔직하게 드러났다.
-문자 잘해야 돼. 승기가 서운해할 수 있어.
아무리 그래도 나쁜 소문까지 도는데, 사실이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참!
-그래. 우리가 승기에게 너무 심했지.
-승기 소식 아는 방법 없을까?
-친구 찾기 어때?
-근데 누가 하지?
아이들 마음이 서로 통했다. 승기를 찾아보려고 했다.
-유주가 해야지.
-또 나야?
-그래, 네가 그만하라고 쏘아댔으니 해결해 봐.
선우가 시켰다. 승기와 엮을 때마다 기분이 상했지만, 승기를 찾으려고 받아들였다.
단체방에서 나와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친구 찾기 글부터 올리고 찾아보기로 했다. 승기 찾는 내용을 썼다, 지웠다 반복했다. 천천히 써 내려갔다.
‣친구 찾기
「다정초등학교 4학년 1반 이승기! 며칠 전부터 문자도 보내지 않고 전화도 안 받는 게 너무 궁금해. 승기야, 이 글을 보면 문자 해.
혹시 이승기 소식을 아는 애들은 댓글로 연락해.
이승기 찾는 사람: 오유주 외 친구들 일동」
글을 올리자마자 댓글이 올라왔다.
-수고했어. 기다려 보자.
-참 잘했어. 승기가 문자 할 거야.
선우와 민호도 승기 찾기에 나섰다.
-설마 무슨 일 있겠어.
-어디 갔을 거야.
아이들도 응원을 남겼다.
순식간에 조회 수와 ‘좋아요’가 올라왔다. 하트와 엄지척으로 표현했다. 고마웠다.
일일이 댓글은 달아주지 못했다. 잠시 화면을 아래로 내리니. 단체방에 빨간 표시가 보였다. 얼른 열어보았다.
-다들 오랫만!
드디어 승기 문자가 올라왔다.
-승기야, 무슨 일 있었니? 왜 문자 안 했어?
너무 반가웠다.
-쳇! 문자 못 하게 할 땐 언제공.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는뎅, 문자 보내고 싶겠냥?
승기가 오타 없이 문자를 올리자 깜짝 놀라서 눈이 커졌다.
-무사해서 고마워.
-왜들 난리양. 내가 사고라도 났는지 알았냥?
-오타쟁이 방가방가.
-오타쟁이 잼나.
아이들이 또 약 올렸다. 굳이 안 그래도 되는데 말이다. 한번 약 올리면 자주 약 올리는 건가.
-내가 오타쟁이라공!
승기가 눈치챘다. 자기에게 약 올리는 걸 알았다. 혹시 내가 오타쟁이 지은 것도 알았을까.
-승기야, 왜 전화 안 되니?
-나 엄마 나라에 왔엉. 계곡에서 놀다가 핸드폰 물에 빠졌었엉. 처음에는 먹통이었는뎅. 문자는 되고 통화는 아직 안 됑.
승기는 핸드폰이 말썽이었다고 했다. 베트남에 갔는지 미처 몰랐다.
-오타 없이 문자 잘 올리네.
민호는 승기를 칭찬했다.
-문자 열심히 한 덕분이양. 재미로 틀리기도 했지망. 내가 놀 때가 여기밖에 없잖앙.
승기는 심심했었나 보다.
-언제든 문자 해. 댓글 달아줄게.
선우는 승기에게 친절했다. 그전에는 아이들이 댓글도 달지 않았는데, 승기 문자에 관심을 보였다. 이제 나도 알았다.
-승기야, 궁금하니까 문자 자주 해.
-헤헤, 당연하징.
단체에서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 건 잠깐이었다.
승기는 수시로 문자를 올렸다. 그러나 그전처럼 문자에 대해 그리 짜증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