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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파주출판도시 마을신문에 연재 중인 이건복 사장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인사회의 연원에 대해서 중요한 지점을 밝혀주는 내용이라 인사회 카페에 옮겨왔습니다. * 원문의 위치 http://cafe.naver.com/bookcitynews.cafe
인문사회과학출판사의 4인의 전사 - 1
이건복 (동녘)
10․26 궁정동 총성, 유신정권의 붕괴, 12․12 군부 반란, 80년 서울의 봄과 뒤이은 80년의 5․18 광주민중항쟁. 독재와 억압, 학살의 만행을 알리고 올바른 정보와 지식, 지혜를 전파해야 할 방송․신문․출판은 하나같이 죽은 쥐처럼 납작 엎드려 있었다. 아니 오히려 군부세력에 갖은 아양을 떨면서 영명한(?) 이름을 휘날렸다(6.29 항복 선언 후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 있었노라고 스스로 떠벌리고 다니면서 지금 온갖 영화를 누리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87년 6월 항쟁. 노동자․농민․학생․청년․지식인․자영업자 등 그야말로 수많은 민중들이 한마음으로 항쟁 행렬에 동참해 끝내 군부세력의 항복 선언에 다름 아닌 6.29선언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엄중한 감시하의 군부독재 시대에 어디서 정보를 얻었으며, 어떻게 군부세력을 타도해야 한다는 일치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을까? 군부의 추악한 야욕과 야비함을 어떻게 알았을까? 모든 언론 매체들은 철저히 통제되었으며, 인터넷이란 단어조차 없던 시절에.
나는 그 이면에 우리 인문사회과학출판이 있었다고 자부한다. 정의․민주․민족․통일, 그리고 억압당하는 민중의 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그리고 처절하게 싸워온 인문사회과학출판사 집단(‘금요회’라는 출판사 대표 모임을 발전시켜 출판운동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이 참여했던 한국출판운동협의회의 회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좋은 책 한 권을 내서 팔면 수천수만 명이 그 책을 읽게 될 것이며, 그 독자들이 독서를 통하여 얻은 비전을 가지고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일하고 싸우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안 팔리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다. 실제로 감옥으로, 노동․농촌 현장으로, 그리고 민중의 이름으로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우리 독자들이었다. 청춘을, 심지어 목숨마저 버린 그들의 고뇌와 용기와 헌신에 경의를 표한다.
출판인들 역시 탄압을 비켜갈 수 없었다. 5․18에서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구속된 출판인이 150여 명에 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 출판인들은 정말 암담한 상황에서, 맨몸으로 거대한 군부독재세력과 치열하고 처절한 지식정보전을 치렀고, 승리했다. 애초에 나는 출판문화운동의 최전선에서 유일한 지식의 전달자 아니 판매자로서 헌신했던 4인의 전사, 사회과학출판사의 영업 4인방에 대하여 쓸 참이었는데,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앙되어 옆길로 새버렸다.
당시 판매금지 도서를 서점에서 판매하는 행위는 국가보안법 7조 위반이었다. 그러니 감옥에 가려고 작심하지 않은 다음에야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서슬이 시퍼런 군부독재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가능했다. 판매금지 도서들이 정상적인 유통망을 통하여 공공연하게 전국 어디서나 팔리고 읽혔다.
서울의 교보, 종로, 동화, 양우당, 청구, 중앙, 수원의 동아, 천안의 동방, 대전의 충남도서, 문경, 동남, 전주의 홍지, 이리의 대한, 군산의 군일, 광주의 종합, 나라, 삼복, 목포의 국제, 순천의 중앙, 여수의 대양, 진주의 청구, 삼천포의 심곡당, 마산의 학문당, 진해의 학애, 부산의 한림, 영광, 동보서적, 울산의 문화, 동아, 포항의 경북, 예지, 학문사, 경주의 제일, 대구의 대구서적, 제일, 한일, 한국도서, 거창의 오복당, 김천의 춘양당, 안동의 스쿨, 청주의 일선당, 충주의 문학사, 원주의 투비, 춘천의 청구, 강릉의 삼문사, 제주의 제주, 서귀포의 우생당 등 그야말로 서울에서 제주까지 우리 책들이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웬만한 대학들에는 한두 개씩의 사회과학서점들이 터를 잡고 있었는데, 그 서점들은 빼고도 이러했다.
단순히 가방에 판금 도서가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붙잡혀가던 시절에, 매 뉴스시간마다 용공이념 서적이라고 떠들어대는 책들이 버젓이 서가에 꽂히거나 좌판에 깔린 채 팔리고 있었다고 생각해보라. 그 당시에는 인문사회과학 책들이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 독자들은 위험할지언정 어렵지 않게 판매금지된 책들을 구해 읽을 수 있었다. 이들(서점 주인이나 직원)이 이런 책들을 팔 수 있는 여건, 팔아야겠다는 생각, 실제로 파는 행위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사회과학출판사의 영업 4인방, 바로 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겁났다. 그러나 우리에겐 사회과학출판사에 근무한다는 자부심, 우리 출판사에서는 좋은 책, 용기 있는 책을 낸다는 믿음, 우리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신뢰, 한 권이라도 더 팔면 뭔지 모르지만 보다 나은 세상이 빨리 올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그리고 바로 그 일에 동참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돌베개 임부장(현 한서지업사 임승남 대표), 한길사 변부장(현재 영민라미네이팅사 변용의 대표), 풀빛 조부장(현 대원인쇄사 조기환 대표), 그리고 필자인 동녘 이부장…. 아무도 우리의 전투에 훈장을 수여하진 않았지만, 우리는 사회과학출판의 최전선에서 판매금지를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싸웠던 선량하고 성실한 무명의 영업 전사들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 이 이야기는 4회에 걸쳐 나갈 예정입니다.) |
첫댓글 재미있게 읽고 있지요. 파주 이채쇼핑몰 씨너스 극장에 가면 비치되어있던데.... 저는 그곳에서 항상 영화기다리며 신문을 보았는데 좋은 내용입니다.
저도 영업의 4인방을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