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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궐(튀르크)족의 대이동과 오늘날의 튀르키예♡
터키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서는 옛날에 그들 조상이 중앙아시아에서 강성했을 시절에는 자신들의 영토 동쪽 끝에는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고구려와는 형제처럼 친하게 지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학생들이 배우는 역사 교과서에 보면 돌궐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별로 다루지 않는다. 하지만 옛날 역사서에는 고구려와 돌궐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다고 적혀있다고 한다.∼♡♡
우리가 부르는 돌궐이라는 이 말을 그들은 튀르크라고 부른다. 돌궐과 고구려와 전쟁을 하였다는 기록은 역사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으며, 배운 기억도 없다. 우리가 여진족과의 전쟁은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와 병자호란이라는 전쟁을 치룬 것으로 배웠었지. 그러나 돌궐족과의 전쟁은 배운 기억도 없고, 다만 신라의 진흥왕 순수비에 나오는 내용인데 신라의 24대 임금인 진흥왕(534~576)은 고구려와 돌궐이 전쟁을 벌이는 동안 고구려의 남쪽 수비군이 돌궐과의 전투에 투입된 시기를 이용해 고구려의 남쪽 지방을 차지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또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했다는 것으로 봐서 돌궐과 고구려는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화친 관계를 유지하는 그들이 말하는 형제의 나라임이 맞는 것 같다. 이러한 돌궐이 오늘날 튀르키예공화국의 주인이 되기까지를 튀르키예에 관하여 조사한 자료를 간략하게 기록해 보고자 한다.∼♡♡
돌궐(튀르크)족은 오늘날 러시아 땅인 바이칼 호수를 중심으로 떠돌이 생활이었던 유목생활을 하던 유목민족이었다. 돌궐(튀르크) 제국을 이룬 트루크족은 흉노(훈)족의 일파라고 말하기도 한다. 552년 돌궐족의 족장이었던 토문이라는 사람이 주변의 여러 부족을 복속시키고 힘을 길러 돌궐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돌궐제국과 당시의 상황을 알 수 있는 것은 몽골의 오르콘강 유역에서 발견된 돌궐문자 (튀르크어)로 기록을 남겨둔 비문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이 비문을 해석해 보면 돌궐족이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뚜렷한 의식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유목민족으로서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신라의 진흥왕 순수비에 나오는 내용인데 신라의 24대 임금인 진흥왕 (534~576)은 고구려와 돌궐이 10년간에 사활(死活)을 건 대전쟁(大戰爭)을 벌이는 동안 고구려의 남쪽 수비군이 돌궐과의 전투에 투입된 시기를 이용해 고구려의 남쪽 지방을 차지했다는 기록이 있다.∼♡♡
581년에 중국을 통일한 수나라의 침략을 받은 돌궐은 서쪽으로 쫓겨나가게 되었다. 583년 돌궐은 동족 간의 다툼으로 동돌궐(몽골고원)과 서돌궐(중앙아시아)로 분열되었다. 618년에 수나라가 망하자 북쪽의 동돌궐이 다시 강성해지기 시작했으나, 630년 당나라가 다시 동돌궐을 공격하여 동돌궐은 멸망하고 나라를 잃은 돌궐사람들은 서쪽으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돌궐의 공주와 결혼을 하였을 정도로 두 나라는 사이가 좋았다. 그런데 668년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고구려는 마침내 멸망하였다. 고구려가 망하자 많은 고구려 유민들은 몽골, 거란, 돌궐 등의 다른 민족에게 의탁하여 살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의 몽골지역에 있었던 돌궐로 들어갔다고 한다. 682년 동돌궐이 울란바토르(지금의 몽골)에서 제2의 돌궐제국을 수립할 때 고구려에서 온 유민들이 돌궐 주민들의 절반 정도인 2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돌궐은 특히 고구려 유민 가운데 여성을 뽑아 종교의 수장인 제사장에 임명했다고 하는데 또 이를 <탕구르> 라고 했는데, 고조선 시대 제사장의 수장을 <단군>이라고 한 것과 비교하면 <탕구르>는 <단군>과 같은 계열의 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구려가 망하고난 후 돌궐은 수많은 고구려 유민들을 받아들이는데 670년경에는 강성해진 당나라가 주변의 약소국들을 침략하게 되었는데, 당나라와 위그르의 침략으로 돌궐민족이 나라를 잃고 서쪽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682년 몽골초원에서 고구려 유민들을 받아들여 힘을 기른 돌궐은 울란바토르(지금의 몽골)에서 동돌궐을 다시 건설하였다. 745년 같은 계통의 부족인 <위구르>의 공격을 받아 동동궐은 멸망하였다.∼♡♡
중앙아시아로 옮겨간 서돌궐은 657년 당나라의 공격으로 다시 서쪽으로 밀리면서 세력은 점점 약해져 갔다. 돌궐족은 나라를 세운 552년부터 나라가 멸망한 745년까지 200년간 중앙아시아에서 세력을 펼쳤으나 수차례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주민들은 점점 서쪽으로, 서쪽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이들 주민은 결국 지금의 터키 지역까지 옮겨가게 되었다.∼♡♡
오늘날 튀르키예 공화국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오스만제국은 돌궐족의 후예인 <오스만> 장군의 아들 <오르한>이 세운 나라인데 이보다 먼저 돌궐의 후예인 셀주크 장군이 세운 셀주크 왕국을 이어받은 나라이다.∼♡♡
셀주크 제국(1037~1299)은 중국 서북부지역에 있던 돌궐족들이 <셀주크>라는 족장을 따라 볼가강을 넘어 흑해 연안 지역으로 왔다. 이들은 지금의 이란 북부지역에서 페르시아의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여 이슬람 수니파로 개종하였으며, 1037년 <셀주크>의 손자인 <차그니 베이>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왕국을 건설하였다. 1055년 바그다드를 정복하여 이슬람을 통일했고, 1063년에는 이란과 이라크(메소포타미아)지역을 총괄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1068년에는 비잔티움 제국의 아나톨리아를 침공하였다. 1071년에는 비잔틴제국의 대군을 섬멸하고 비잔티움 황제를 포로로 붙잡았다 사실상 소아시아 지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셀주크 왕국은 그후 나라 안의 사정이 복잡하게 되고 몇 차례의 십자군 전쟁과 몽골의 칭기즈칸 군대에 의해 망하고 1299년 셀주크 왕국에서 힘을 기른 돌궐족 출신의 <오스만>이 왕국을 건설하였다. 1037년 터키에서 셀주크 왕국을 세운 돌궐족들은 크게 번성했다가 칭기즈칸의 몽골군에 지배를 받다가 1299년 돌궐족 출신의 <오스만>장군의 아들 <오르한>이라는 사람에 의해 오스만 튀르크 왕국을 건설하였다. 돌궐족 도 몽골을 근거로 돌궐제국을 세웠을 때는 우리나라 사람과 비슷한 몽골인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당(唐)나라에 쫓겨 서쪽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이란, 아랍인들과 혼혈하여 서양사람을 더 닮은 지금의 터키 사람들이 되었다. 1326년 <오스만>의 아들인 <오르한>이 왕위를 오르고 이웃한 동로마제국의 변방의 지역으로부터 점령하기 시작한다. 1453년 <메메드> 왕은 동로마제국을 점령하였다. 1538년에는 프레베자 해전에서는 스페인 함대를 물리치고 지중해 전역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오스만제국이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맹국(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불가리아, 오스만제국) 으로 전쟁에 참가하여 전쟁에서 패배한 패전국으로 처리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영토의 대부분 상실하게 되었고, 1922년 <메메드 6세>가 폐위됨으로써 돌궐족이 건설한 거대한 오스만제국은 막을 내리고 마침내 1923년 역시 돌궐족의 후예인 케말파샤가 주도한 군사혁명으로 지금의 튀르키예 공화국이 설립되었다.∼♡♡
.우리는 튀르키예 인들이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그리고 터키인들은 왜 아직도 우리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를까? 답은 간단하다. 역사 교과서의 차이다. 우리나라의 중, 고 역사 교과서는' 돌궐'이란 나라에 대해 단지 몇 줄만 할애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터키는 다르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경험했던 튀르키예는 그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 역사 과목의 비중이 아주 높은 편이며 돌궐 시절의 고구려라는 우방국에 대한 설명 역시 아주 상세하다.' 형제의 나라'였다는 설명과 함께. 그래서 대부분의 튀르키예 인들은 한국을 알고 있다. 설령 한국이 그들을 몰라줄지라도 실제로 터키인들은 한국인들 역시도 그들과 같은 생각을 할 그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인들도 터키를 형제의 나라로 여길 것이라 믿었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88서울올림픽 때 터키의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한국인들에게서 큰 환영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은 데 실망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충격을 받고 돌아가서 그는 자국 신문에 이런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한다. “이제 짝사랑은 그만합시다.”라고 .'이런 어색한 기류가 급반전된 계기는 바로 2002 월드컵이었다.'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터키 유학생들이 튀르키예 인들의 따뜻한 한국 사랑을 소개하면서 터키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증폭되게 되었다.∼♡♡
6.25 참전과 올림픽 등에서 나타난 그들의 한국 사랑을 알게 된 한국인들은
월드컵을 치르는 동안 터키의 홈구장과 홈팬들이 되어 열정적으로 그들을
응원했다. 하이라이트는 한국과 터키의 3, 4위전. 자국에서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튀르키예 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살가운 어깨동무로 끝이 났고 터키인들은 승리보다도 한국인들의 튀르키예 사랑에 더욱 감동했으며 그렇게 한국과 튀르키예의 '형제애'는 더욱 굳건해졌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