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머뭇거려도
우수를 맞은 이월 중순 화요일이다. 보름 전 입춘에 한파가 닥쳐 한동안 지속되다 풀렸는데 다시 추위가 밀려왔다. “애국가 첫 소절에 낯익은 촛대 영상 / 검푸른 바다에서 일순간 서기 번진 / 추암에 아침 해 솟아 태백 준령 넘는다 // 죽서루 바위 절벽 을자천 감싸 흘러 / 바람에 부대끼는 색 바랜 둔치 갈대 / 서로는 몸을 비벼서 한뎃바람 견딘다” ‘오십천 겨울 갈대’ 전문이다.
앞 단락 인용절은 전날 삼척으로 동해척주비와 죽서루 탐방을 다녀와 남긴 시조다. 생활 속 일상 스케치와 더불어 글 부스러기가 덤으로 세 수 생겼다. 오십천은 죽서루 주초 바위 암반을 휘감아 흘러 삼척항으로 흘러들었다. 천변 갈대와 함께 ‘죽서루 감회’ 외에 철길을 달린 객차 차창 밖으로 보이던 검푸른 바다도 글감으로 놓치지 않아 ‘후포에서’도 남겨 지기와 안부를 나눴다.
화요일은 날씨가 추워 이른 아침부터 길을 나서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대출해 놓은 책을 펼쳐 읽다가 점심을 일찍 먹고 집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어제 서북산 금산마을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선배 문인이 뜰에 자란 매화가 핀 영상을 보내와 잘 봤다. 노천에 피운 매화에 벌이 날아와 꼼지락거리는 모습까지 포착했더랬다. 난 입춘 전 봉림동 분재원 뜰에서 핀 운룡매가 생각났다.
점심밥을 먹은 후 시래기를 삶아 둔 게 있어 무청 줄기 껍질을 벗겨 놓고 집 주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난 외동반림로에는 잎이 떨어져 미끈한 나목이 된 메타스퀘이아 가로수가 줄을 지었다. 퇴촌교삼거리에서 창원천 수변 산책로로 드니 조경수로 자라는 산수유는 꽃눈이 망울져 도톰해졌다. 천변으로 내려선 산책로 냇바닥 가장자리 버들개지는 솜털이 보송보송했다.
물웅덩이에 노니는 몇 마리 흰뺨검둥오리와 쇠오리들이 평화스럽게 보였다. 천변에서 하류로 내려가질 않고 징검돌을 디뎌 냇바닥 건너 창이대로에서 사림동 창원의 집 주택지 골목으로 들었다. 봄이 오는 길목 유심히 살펴보는 영춘화가 드리운 줄기를 찾아가니 노란 꽃잎을 펼친 꽃송이가 몇 개 보였다. 지난번 볼 수 없던 노란 꽃이 그새 피어나 몇 송이 달려 휴대폰 앵글에 담았다.
창원의 집으로 가니 흙 담장을 배경으로 볕 바른 자리 한 그루 홍매화는 꽃눈이 부푸는 즈음이었다. 그 곁 산수유도 망울져 노란 잎을 펼칠 낌새만 보였다. 높이 자란 나뭇가지에서 솜털이 감싼 목련꽃망울까지 살펴보고 솟을대문을 나와 봉림동 주택지로 향하면서 울타리 너머 자라는 정원수들의 열병을 받았다. 몇몇 집 매실나무와 산수유나무에서도 부푸는 꽃망울을 볼 수 있었다.
창원 컨트리클럽으로 가는 한들공원에서 봉림사지 입구 이정표가 선 들머리 분재원으로 향했다. 가지가 옹글어져 비틀어 자라는 운룡매는 한 달 전 대한부터 꽃망울을 터트리는데 추위에 주춤해져 개화가 더뎠다. 근동에서 노천에 보는 매화로는 가장 이르게 꽃을 피우는 매실나무였다. 주인장이 비운 정원을 거닐면서 영춘화가 피어나는 모습도 보고 분재가 가득한 온실로 가 봤다.
옹이에서 움이 터 가지가 비틀어지고 옹글어져 자라는 수형이 아름다운 분재를 한 자리에서 봤다. 그중에 제철보다 이르게 꽃을 피우는 매실나무들을 유심히 살폈다. 온실에서 자란 매실 분재는 노천보다 가온이 되어서인지 꽃망울이 먼저 부풀어 꽃잎을 펼친 매실 분재도 볼 수 있었다. 명자나무와 닮은 산당화도 분재로 인기 좋은지 몇 그루 보였는데 예쁜 꽃망울을 달고 나왔다.
분재를 가꾸느라 땀 흘렀을 주인은 자리를 비워 지나는 객이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피는 매화를 잘 완상했다. 분재원을 나와 한들공원에서 지기들에게 아까 분재원에서 담은 매화 사진을 지기들에게 보냈다. 향기까지 담지 못해도 늦도록 기승을 부리는 추위에도 우리 곁으로 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전했다. 주택지 거리 창원천 3교를 지나 반송시장 노점에서 달래와 쑥도 봤다. 25.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