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년부터 OB 베어스 팬으로서 프로야구를 즐겨왔지만, 올해만큼 여유롭게 경기를 지켜본 적은 없었다. 제4선발까지 확고하게 제몫을 다한 두산은 투타의 조화 속에 압도적인 성적으로 정규시즌 1위를 달성했다. 단 두 번 NC한테 1위 자리를 내주긴 했지만, 구단도 선수단도 팬들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음 경기에서 1위 자리를 탈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했고, 지금은 한국시리즈의 한 자리를 선점한 채 느긋하게 상대 팀을 기다리고 있다. 10월 8일에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치른 두산은 10월 29일까지 몸을 추스르고 기량을 가다듬으면서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한 팀과 7차에 걸친 한국시리즈 경기를 벌이게 된다.
올해는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800만 관중시대를 연 뜻 깊은 한 해이기도 했다. 2015년 8천만 관중을 야구장으로 불러 모은 미국 메이저리그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1982년 관중 100만 명으로 출범했던 한국 프로야구로서는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다. 이후 프로야구는 1983년 2백만, 1990년 3백만, 1993년 4백만, 1995년 5백만, 2011년 6백만, 2012년 7백만 등 완만한 증가세를 이어왔다. 특히 두산 베어스는 최초로 8년 연속 100만 명 이상의 관중이 입장하여 국내 최고 인기구단임을 입증했다. 관중석이 배가된 삼성 라이온스의 라이온즈 파크, 국내 최초의 돔구장인 넥센 히어로즈의 고척스카이돔도 팬 친화력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
두산 팬들에게는 특별한 면이 있다. 다른 구단 팬들처럼 상대방 선수를 야유하지도 않고 운동장에 물병 같은 이물질을 던지지도 않는다. 롯데 팬들은 상대 팀 투수가 롯데 주자에게 견제구를 던지면 ‘마! 마! 마!’ 하고 악을 쓰는데, 저들은 ‘던지지 마!’의 준말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임마! 임마! 임마!’의 준말이다. 두산 팬들은 경기가 끝나면 팀의 승패와 상관없이 선수들이 모두 퇴장할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응원을 보내준다. 선수들에게는 무엇보다 큰 격려가 될 것이다. NC 김경문 감독이 사령탑으로 있을 때 자연스럽게 형성된 미풍이다. 김경문 감독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기가 끝나면 자기 팀 팬들에게 먼저 인사한 뒤 상대편 응원석을 향해서도 모자를 벗고 정중하게 인사한다.
올해도 두산에는 연일 감동적인 장면이 이어졌다. 작년 한국시리즈 우승의 1등공신이었던 제1선발 니퍼트는 시즌 성적 부진을 이유로 구단에서 150만 달러에서 120만 달러로 연봉 삭감을 제시하자 흔쾌히 수락했다. 지금까지 한국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외국인 투수들 같으면 택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보란듯이 22승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아마도 내년 연봉은 200만 달러를 돌파하여 국내 프로야구 선수 가운데 신기원을 이룩할 것이다. 투수 부문에서는 니퍼트‧보우덴‧장원준‧유희관 등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5승 이상 투수 4명을 배출했으며, 타격 부문에서도 김재환‧오재일‧에반스‧양의지‧박건우 등이 20홈런 이상을 쳐냈다. 모두가 피나는 노력의 결실이었을 터.
니퍼트의 한국사랑, 야구사랑은 유별나다. 한국여성과 재혼하여 귀화까지 고려하고 있는 니퍼트는, 구심으로부터 새로 공을 건네받을 때마다 모자를 벗고 한국식으로 꾸벅 인사를 한다. 외국인 투수는 물론 국내 투수 가운데도 그러는 사람이 없던 새 풍속도다. 니퍼트를 멘토로 여기는 제2선발 보우덴도 그 영향을 받아 매사에 겸손하다. 니퍼트는 이닝이 끝났을 때도 바로 덕아웃으로 들어가지 않고 외야수가 다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이파이브를 한 뒤 함께 들어간다. 그 역시 지금까지 내외국인 투수를 통틀어 처음 보는 미덕이다. 참으로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선수다.
김태형 감독의 리더십도 믿음직스럽다. 선발‧중간계투‧마무리 역할을 적절하게 배분하여 투수들에게 충분히 준비할 여유를 준다. 한화 이글스 감독 김성근처럼 눈앞에 보이는 승리에 집착하여 투수고 야수고 혹사하는 만행은 상상도 할 수 없다. 시즌 초 내야수 에반스가 부진했을 때도 다른 팀처럼 방출하지 않고 2군으로 내려보내 스스로 약점을 보완할 시간을 줬다. 그 결과 에반스는 팀이 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에반스는 미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감독의 그러한 배려를 매우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구단에서는 올해 말로 계약기간이 끝나는 김태형 감독과 시즌 중에 일찌감치 재계약을 체결하여 든든한 신임을 보여주었다.
2016년 두산 베어스가 거둔 최고의 소득은 뭐니뭐니해도 김재환의 재발견이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김현수의 좌익수 자리를 꿰찬 김재환은 당초 기대주가 아니라 우려주였다. 2010년 포수로 입단한 그는 2015년에도 2할 3푼 5리의 타율에 7홈런, 22타점을 거둔 만년 후보선수에 불과했다. 그러던 김재환이 지난 겨울훈련 때 무슨 짓을 했는지 올해는 3할 2푼 5리의 타율에 37홈런, 124타점을 기록했다. 환골탈태 정도가 아니라 특급타자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홈런왕도 기대해볼 만하지 않을까? 김태형 감독은 포스트시즌 경험이 전혀 없는 김재환에게 한국시리즈에서도 4번 타자를 맡기겠다고 일찌감치 발표했다. 그 동안 지지부진한 성적 탓에 5천만 원에 불과했던 김재환의 연봉이 내년에는 얼마로 뛸지도 관심사다.
어제 잠실에서 벌어진 準플레이오프 4차전에서는 넥센 히어로즈가 우세할 것이라던 당초 예상을 깨고 LG 트윈스가 승리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LG는 이미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있는 NC 다이노스와 10월 21일부터 5전 3선승제 경기를 벌이게 된다. 두산은 거기서 올라온 팀과 10월 29일부터 7전 4선승제의 한국시리즈를 치르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두산의 한국시리즈 2연승을 예상하고 있지만, 단기전의 향방이란 그리 쉽게 점칠 수 없는 법이다. 두산이 우승하면 더욱 좋겠지만, 혹여 지더라도 최소 4경기 이상 가을야구를 즐길 수 있다는 건 더 없는 즐거움이다.
한잔하면서 느긋하게 넥센 : LG 야구경기를 시청한 뒤 잠들었다가 새벽 두시에 잠이 깼다. 정신이 맑았다. 베란다로 나가니 아파트 방범등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밝은 빛이 흘러들고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창가로 다가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바로 정수리 위에서 열이레 새벽달이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다. 한참 눈인사를 주고받은 뒤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냉장고에서 두부조림과 소주 한 병을 꺼내 받쳐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바둑TV에서는 이세돌과 박정환의 제8기 응씨배 세계바둑대회 준결승전이 한창이었다. 새벽술맛이 유별났다.
첫댓글 맹~ 밑에 올린 사진을 한~참 ~ 딜다보고 있네.
'새벽술맛'도 좋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기지는 사진이네.
정이 그리워지는 사진1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지만 나도 옆에 있는 듯 수리가 땡길라카네.하네.
올 강서구청 옆에 있다는 먹자골목에서 쇠주 반 병만 하만 안 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