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6주간 화요일 (루카9,51-56)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은 사마리아를 통해서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길을 통하여 예루살렘에 가시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길을 가시기에 앞서 심부름꾼을 앞서 보내셨고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 간에는 종교적이고 민족적인 적대감이 있었습니다(요한4,9). 사마리아인들은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의 신앙을 받아들였으나 하느님께 대한 예배는 예루살렘이 아닌 그리짐산에서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신명11,29). 그리짐산에 자기들만의 성전을 건립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서 냉대받는 것에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여쭙니다.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루카9,54).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태도는 사마리아 사람의 태도와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니 야단맞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루카6,32-33).
하느님이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요한3,17). 예수님께서는 잃은 사람들을 찾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루카9,10). 그리고 사도들도 역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 파견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7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 땅끝까지 구원을 가져다주도록 내가 너를 다른 민족들의 빛으로 세웠다.’ ” 그러므로 그 본분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을 거두기 전까지 그들은 결코 꾸짖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저주할 수 있는 권한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냉대에 개의치 않고 당신의 가실 길을 가십니다. 맞서지 않고 그저 당신의 일을 찾아가실 뿐입니다. 순리를 따르십니다. 우리도 주변 여건, 환경에 구애받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지 그것이 주님의 일이라면 기쁘게 해야 합니다. 아니,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이 주님의 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활동하다 보면 가끔은 이런저런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예기치 않은 일을 접하게 되면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개의치 말고 주님을 향한 길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반대하고 배척하는 이들을 거부할 것이 아니라, 때를 기다리며 주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그를 위해 기도하다 보면 내 마음이 먼저 커지게 되고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다 품을 수 있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에 화만 쌓이게 되고 주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먼저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는 삶의 활력소이고 품을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반대하고 배척하는 이들을 거부 할 것이 아니라,때를 기다리며 주님의 은총을 간구하는 것이 우리의 몫 입니다. 아멘
아멘!~~~
묵상 하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