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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애손호(悲哀孫皓)
오나라 마지막 황제 손호를 슬퍼함
悲 : 슬플 비(心/8)
哀 : 슬플 애(口/6)
孫 : 손자 손(子/7)
皓 : 흴 호(白/7)
손호(孫皓)는 손권의 손자로 동오의 마지막 황제였다. 손호를 사랑한 손권은 건강하게 오래 살라는 의미로 어렸을 때 팽조(彭祖)라고 불렀다. 즉위 초에는 정치를 잘 했으나, 나중에 주색에 빠지면서 포악해졌다. 오죽하면 진무제 사마염까지도 그의 포악함에 진저리쳤다고 한다. 천기(天紀) 4년(280), 동오가 서진에게 망했다. 손호는 항복한 후 귀명후(歸命侯)로 봉해졌다가, 태강5년(284) 낙양에서 사망했다.
역사는 망국의 군주였던 그를 혹평했지만, 망하기 전에 장인 하식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적어도 판단능력까지 마비되지는 않았다. "나는 덕이 모자라 백성들을 달랠 수 없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하늘의 법칙이 위반된다. 변화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길조라고 생각하게 했다. 부끄럽다. 무창 이서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식량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성이 견고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군대가 싸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죄이다."
손호는 예술적 재능이 있었다. 시와 글씨는 조조와 이름을 나란히 했다. 조조의 글씨는 웅혼하고, 손호의 글씨는 면밀했다고 하니, 글씨를 보면 사람을 안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폭군이었다는 손호가 역사상 가장 많은 사면권을 행사한 것은 역설적이다. 당태종 이세민은 왕망과 손호를 비교했다. 왕망은 거짓으로 인의를 행했고, 손호는 아무렇게나 은혜를 베풀어 둘 다 시작은 그럴 듯했지만, 끝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손호는 남이 자기를 똑바로 보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신하들은 그의 앞에서 감히 머리를 들지 못했다. 승상 육개(陸凱)가 간했다. "만약 예측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모두 어떻게 주군을 알아보겠습니까?"
손호는 육개만 머리를 들고 자기를 보라고 허락했다. 손호는 술자리에서 신하들에게 최소한 7되를 마시게 했다. 누군가 위요(韋曜)의 주량은 2되도 되지 않는다고 하자 그를 특별히 우대했다. 술지리가 열리면 위요에게만은 몰래 술 대신 차를 마시게 했다. 위요는 차를 마시고 취한 척 했다.
그러나 사관으로서 위요는 강직했다. 그가 한사코 황제로 추존된 손호의 부친 손화를 제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화가 난 손호가 위요를 죽였다. 낙양으로 잡혀온 손호에게 위의 중신 가충(賈充)이 비꼬았다. "각하는 남의 눈알을 파고, 얼굴가죽까지 벗겼다고 하는데, 이는 무슨 형벌인가?"
손호가 말했다. "신하가 되어 자기의 군주를 시해하면 간악하고 교활하고 불충인 사람이오, 그런 자에게 적용하는 형벌이라오."
가충에 고귀향후 조모(曺髦)를 살해한 것을 풍자한 말이다. 가충은 부끄러워서 더 입을 열지 못했지만, 손호는 표정도 변하지 않았다. 진무제와 왕제(王濟)와 바둑을 두고 있었다.
왕제가 손호에게 물었다. "당신은 오에 있을 때 얼굴가죽을 벗기고, 발을 잘랐다고 들었소. 무슨 죄 때문이오?"
손호가 대답했다. "군주에게 예를 잃은 신하는 그렇게 됩니다."
황제의 면전에서 자세가 바르지 않은 왕제를 풍자한 말이다. 손호는 사마염을 놀리기도 했다. 잡혀온 손호가 사마염에게 절을 올렸다.
사마염이 말했다. "짐은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그대를 기다렸다네."
손호가 말했다. "제가 있었던 남방에도 폐하를 기다리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30년 후에 과연 서진이 망하고, 건업에서 동진에 건립됐다. 사마염이 손호에게 시 한 수를 지으라고 말했다. 손호가 술잔을 들면서 사마염에게 권한 시를 지었다.
昔與汝爲隣
옛날에는 저와 이웃이었는데
今與汝爲臣
지금은 당신의 신하입니다.
上汝一杯酒
위에서 당신이 한 잔 술을 드시면
令汝萬壽春
만수무강하실 것입니다.
사마염은 공연히 시를 짓게 했다고 후회했다. 이러한 일화를 보면 손호는 망국의 군주였지만, 끝까지 기개를 잃지 않았다. 손견, 손책, 손권으로 이어지는 핏줄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동진시대 강남 사람들은 오랫동안 손호가 죽지 않았다고 믿었다. 역사와 달리 사람들은 그를 크게 미워하지 않았던 것 같다.
■ 손호(孫皓, 242 ~ 284)
중국 삼국시대의 오나라 최후의 황제이다. 즉위한 후 처음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점점 공신 일족들을 물리치고 근친자와 측근을 들여앉혀 새 제왕으로서의 권위를 확립시키려고 힘썼다. 조세를 가혹하게 징수하다 각지에서 반란이 잇달아 일어나는 가운데, 남하하여 쳐들어온 진나라 대군에게 항복하였다
자는 원종(元宗)과 호종(皓宗)이고, 별명은 팽조(彭祖)이다. 손권(孫權)의 손자로서 오정후(烏程侯)에 책봉되었으며 제3대 황제인 손휴(孫休)의 뒤를 이어 264년에 즉위하였다. 이듬해에 진(晋)왕조가 창업하자, 9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수도를 건업(建業: 南京)에서 무창(武昌)으로 일시 이전하였다.
즉위한 후 처음에는 선정을 베풀었으나, 점점 공신 일족들을 물리치고 근친자와 측근을 들여앉혀 새 제왕으로서의 권위를 확립시키려고 힘썼다. 조세를 가혹하게 징수하였고 주색에 빠져 폭정을 하였다. 그 때문에 호족세력의 지지를 잃어, 각지에서 반란이 잇달아 일어나는 가운데, 남하하여 쳐들어온 진(晋)나라 대군에게 항복하였다. 오나라는 4대 58년으로 멸망하였고, 손호는 항복한 후에 귀명후(歸命侯)의 작위를 받았으나 뒤에 서진(西晋)의 수도 하남성(河南省) 낙양(洛陽)에서 죽었다.
■ 살인이 취미인 사람백정 폭군 손호 이야기
역사는 현재를 보는 거울이다. 반성적 통찰을 주기 때문이다. 역사를 천착(穿鑿)함으로써 현재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 비판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魏, 蜀, 吳) 오나라의 말황제(末皇帝) 손호(孫皓)는 그 시대의 가장 악랄한 폭군이었고, 인간백정으로 후세에 이름을 드날린 독재자였다.
그는 폭군이 갖추어야 할 특징을 고루 지닌 천재였다. 그는 살인에 중독되어 사람 죽이기를 파리 죽이기보다 쉽게 하였고, 그 방법도 필설로는 표현할 수 없이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살인의 이유도 가지각색이었음은 물론이다.
손호가 대신 만욱(萬彧)의 적극 추천으로 오나라의 네 번째 황제가 되었을 때만해도 많은 사람들이 "손책처럼 학문을 좋아하고 법도를 신봉하니 현명한 군주가 될 것(만욱)이라"는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고 급기야 안위와 생명에 대한 공포로 변했다.
손호는 황위자리가 안정되는 듯하자, 본래 지녔던 이리와 승냥이 같은 난폭한 본성을 드러내 폭군반열의 꼭대기에 우뚝 섰다. 이리되자 손호 옹립에 찬성했던 복양홍과 장포가 자기들이 꼼꼼이 살펴보지도 않고 옹립했다고 후회하면서 거듭 탄식했다. 아첨배가 이 사실을 고자질하자 손호는 즉시 두 사람과 그 삼족까지 모조리 주살(誅殺)했다.
어느 땐가 위나라에 몇 사람을 사신으로 보냈는데, "사신 중 한 사람이 중원의 풍토가 아름답다고 칭찬 했습니다"는 말을 듣고 전후 맥락을 따져보지도 않고 그 사신을 무조건 죽여 버렸다. 그 사신은 "중원의 풍토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우리나라보다는 못하다"고 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특히 그는 자기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전임 황제인 손휴(孫休)의 황후와 아들 두 명을 이유도 없이 참살하고 말았다.
청고지사(淸高之士)로서 숭앙을 받던 수학자요 천문학자인 왕번(王蕃)은 권력에 빌붙어 아첨을 일삼는 자를 매우 싫어했다. 이런 왕번을 손호는 극도로 미워했다.
왕번을 죽일 구실을 찾던 손호는, 왕번이 연회에서 몇 잔술에 취한 척한다고 그 자리에서 왕번을 죽여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왕번의 머리를 산꼭대기에서 산 아래로 내던지게 하고 시위들에게 호랑이와 이리를 흉내 내어 그 머리를 찾는 유희(遊戱)를 벌이며 박장대소 했다.
그의 살인 수법도 잔혹하기 그지없다. 시뻘건 불에 달군 쇠톱으로 목을 잘라버리고, 시신을 저자에 내다벼려 썩는 냄새가 진동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 자기 얼굴을 똑바로 쳐다본다고 죽인 신하도 한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사치와 끝없는 물욕의 화신이었다. 백성의 빈곤은 모른 체 백성을 착취하여 자기 곳간을 가득 채웠다. 그 짓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도읍을 무창으로 이전한다고 법석을 떨어 수많은 백성을 고역에 시달리게 하고, 백성의 곳간을 강제로 털어 수도이전에 허비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도읍을 옛 건업으로 다시 옮겼다.
이런 와중에도 손호는 통일이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소망인양 중원을 통일하겠다고 빈번하게 군사들을 닦달함으로써 국력을 낭비하고, 백성을 유리걸식(流離乞食)으로 내몰았다.
결국 그는 하늘의 노여움을 샀음인지, 중원(魏)을 정복하여 통일하겠다는 다짐이 오히려 역풍이 되어 적국 위나라의 군대에 짓밟히자 목숨을 구걸하여 돼지처럼 살다 갔다.
이런 예사로운 말로 이 글을 맺는다. "하늘의 뜻을 따르면 흥하고,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 망한다는 것을 알뿐. 인생의 생사길흉을 예측할 수 없듯, 승리와 이둔(利鈍) 도 알 수 없으니, 짐승의 행동을 버리고 사람답게 살지어다."
▶️ 悲(슬플 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非(비)로 이루어지며, 마음(心)이 좋지 않아 슬프다를 뜻한다. 非(비)는 새의 날개, 여기에서는 어기는 일, 扉(비; 문짝)나 排(배; 밀치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억눌렸던 것이 배출구를 찾아 초조해지는 기분을 나타낸다. 마음대로 안되어 마음에 치밀어 오르는 괴로운 기분, 슬픔, 슬퍼하는 일을 말한다. ❷회의문자로 悲자는 ‘슬프다’나 ‘서럽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悲자는 心(마음 심)자와 非(아닐 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非자는 새의 양쪽 날개를 그린 것으로 ‘아니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悲자는 이렇게 ‘아니다’라는 뜻을 가진 非자에 心자를 결합한 것으로 ‘마음(心)이 영 아니다(非)’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마음이 영 아니라는 것은 기분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래서 悲자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悲(비)는 ①슬프다, 서럽다 ②슬퍼하다, 마음을 아파하다 ③슬픔, 비애 ④동정(同情), 가엾이 여기는 마음, 가엾게 여겨 은혜(恩惠)를 베푸는 일 ⑤가엾게 여겨 은혜(恩惠)를 베푸는 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슬플 애(哀), 슬플 오(嗚), 슬퍼할 도(悼), 슬퍼할 처(悽), 슬퍼할 개(慨), 슬퍼할 측(惻), 슬플 창(愴), 슬플 강(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기쁠 희(喜), 즐길 락(樂), 기쁠 환(歡), 달 감(甘)이다. 용례로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비참한 사건을 비극(悲劇), 갑작스러운 위험이나 두려움 때문에 지르는 외마디 소리를 비명(悲鳴), 인생을 슬프게 보거나 세상을 어둡고 쓸쓸하게 생각함을 비관(悲觀), 슬퍼하고 서러워함을 비애(悲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슬프고 끔찍함을 비참(悲慘), 슬픈 가락의 노래를 비가(悲歌), 슬퍼하며 탄식함을 비탄(悲歎), 슬프면서도 마음을 억눌러 씩씩함을 비장(悲壯), 비장한 결심으로 이루려는 소원을 비원(悲願), 슬픈 운수 또는 슬픈 운명을 비운(悲運), 마음이 슬프고 쓰라림을 비상(悲傷), 마음이 아프도록 몹시 슬퍼함을 비통(悲痛), 자비심이 많은 어머니를 비모(悲母), 슬픈 기별을 비보(悲報), 애절한 그리움을 비련(悲戀), 슬픈 느낌을 비감(悲感), 슬픈 곡조를 비곡(悲曲), 슬픈 근심을 비수(悲愁), 슬프게 읊음을 비음(悲吟), 슬픈 이야기를 비화(悲話), 사랑하고 불쌍히 여김을 자비(慈悲), 기쁨과 슬픔을 희비(喜悲), 괴로움과 슬픔을 고비(苦悲), 통탄하고 슬퍼함을 상비(傷悲), 슬프면서도 마음을 억눌러 씩씩함을 장비(壯悲), 근심과 슬픔을 우비(憂悲), 근심스럽고 슬픔을 척비(慽悲), 슬픈 일과 기쁜 일이 엇갈린다는 뜻으로 슬픔과 기쁨을 번갈아 맛봄을 이르는 말을 비희교지(悲喜交至), 슬프고 분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 차 있음을 비분강개(悲憤慷慨), 슬픈 바람과 처참한 비라는 뜻으로 비참한 처지를 비유해 이르는 말을 비풍참우(悲風慘雨), 슬픔과 기쁨을 우울함과 즐거움을 비희우락(悲喜憂樂), 즐거운 일이 지나가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일이 순환됨을 가리키는 말을 흥진비래(興盡悲來) 등에 쓰인다.
▶️ 哀(슬플 애)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衣(의; 옷, 애)가 합(合)하여 '슬프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哀자는 '슬프다'나 '가엾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哀자는 衣(옷 의)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哀자의 금문을 보면 衣자 중앙에 口자가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장례를 치를 때 입는 옷인 '상복(喪服)'을 표현한 것이다. 상복을 입은 사람은 분명 상주(喪主)일 것이다. 그래서 哀자는 장례를 치르며 슬픔에 겨워 울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슬프다'나 '가엾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哀(애)는 ①슬프다, 가엾다 ②불쌍히 여기다, 가련(可憐)하다 ③사랑하다, 애지중지하다 ④슬퍼하다, 마음을 아파하다 ⑤민망(憫惘)히 여기다 ⑥슬픔 ⑦상중(喪中) ⑧슬프게, 애처로이 ⑨성(姓)의 하나, 따위의 뜻이 있다. 유의어로는 嗚(슬플 오), 悼(슬퍼할 도), 悽(슬퍼할 처, 바쁠 서), 慨(슬퍼할 개), 悲(슬플 비), 惻(슬퍼할 측), 愴(슬플 창), 慷(강개할 강) 등이고, 반의어로는 兌(바꿀 태/기쁠 태, 날카로울 예, 기뻐할 열), 喜(기쁠 희), 怡(기쁠 이), 悅(기쁠 열), 樂(즐길 낙/락, 노래 악, 좋아할 요), 樂(즐길 락/낙, 노래 악, 좋아할 요), 歡(기쁠 환), 甘(달 감) 등이다. 용례로는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을 애도(哀悼), 슬프고 아깝게 여김을 애석(哀惜), 슬프고 가슴 아파함을 애통(哀痛), 돌아간 어버이를 슬퍼하며 사모함을 애모(哀慕), 사람의 죽음을 슬퍼함을 애척(哀戚), 슬픔과 기쁨을 애환(哀歡), 상대자의 동정심에 호소하여 부탁을 들어 달라고 사정하여 빎을 애걸(哀乞), 남의 불행을 가엾게 여김을 애련(哀憐), 슬픔과 즐거움을 애락(哀樂), 슬픈 심정을 읊은 노래를 애가(哀歌), 슬프고 가슴 아파함을 애상(哀傷),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슬픈 근심을 애수(哀愁), 불쌍히 여김을 애긍(哀矜), 슬픔과 괴로움을 애고(哀苦), 매우 애처롭고 슬픔을 애절(哀切), 슬픔과 설움으로 슬퍼하고 서러워함을 비애(悲哀), 불쌍히 여김이나 가엾게 여김을 긍애(矜哀), 서로 슬퍼함을 상애(相哀), 슬픔을 억제함을 억애(抑哀), 남의 슬픈 일에 같이 서럽게 욺을 조애(助哀), 애처롭게 하소연하면서 빌고 또 빎을 이르는 말을 애걸복걸(哀乞伏乞), 속으로는 슬프면서 겉으로는 슬프지 않은 체함을 이르는 말을 애이불비(哀而不悲), 부모의 죽음을 몹시 슬퍼함으로써 몸이 쇠약해진 꼴을 이르는 말을 애훼골립(哀毁骨立),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곧 사람의 여러 가지 감정을 이르는 말을 희로애락(喜怒哀樂), 여러 가지로 사정을 말하여 애걸함을 이르는 말을 만단애걸(萬端哀乞),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를 이르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등에 쓰인다.
▶️ 孫(손자 손)은 ❶회의문자로 孙(손)의 본자(本字)이다. 아들(子)이 이어짐(系)으로, 곧 자식에서 자식에게로 이어지는 것으로 손자(孫子)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孫자는 '손자'나 '후손'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孫자는 子(아들 자)자와 系(이을 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系자는 명주실을 손으로 엮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이어지다'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이어지다'라는 뜻을 가진 系자에 子자가 결합한 孫자는 '아들이 이어지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본래 갑골문에서는 子자와 糸(실 사)자만이 있었으나 소전에서는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系자로 바뀌었다. 그래서 孫(손)은 (1)후손(後孫)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손자 ②자손(子孫), 후손 ③움(나무를 베어 낸 뿌리에서 나는 싹), 돋아난 싹 ④맥락(脈絡) ⑤겸손하다(謙遜--) ⑥공손하다(恭遜--), 순종하다(順從--) ⑦달아나다 ⑧물려주다 ⑨~보다 못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자손 윤(胤), 자손 주(胄), 후손 예(裔),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할아버지 조(祖)이다. 용례로는 아들의 딸을 손녀(孫女), 손자 며느리를 손부(孫婦), 손녀의 남편을 손서(孫壻), 손자와 증손을 손증(孫曾), 아들의 아들을 손아(孫兒), 아들이 낳은 아들을 손자(孫子), 가지에서 또 새로 돋아 나온 곁가지를 손지(孫枝), 고생 속에서 열심히 공부함을 이르는 말을 손강영설(孫康映雪), 대대로 이어오는 자손을 일컫는 말을 대대손손(代代孫孫), 자손 대대로 이어져 내림을 일컫는 말을 세세손손(世世孫孫), 자손의 여러 대 또는 자손의 끝까지를 일컫는 말을 자자손손(子子孫孫), 자자손손의 썩 많은 세대를 일컫는 말을 자손만대(子孫萬代), 명당자리에 묻힌 사람의 자손을 일컫는 말을 명당자손(明堂子孫), 남의 집의 양자가 되어 성을 이어받은 자손을 일컫는 말을 계성자손(繼姓子孫), 매우 많은 자손을 일컫는 말을 백자천손(百子千孫), 천륜을 어긴 자손을 일컫는 말을 패자역손(悖子逆孫), 정략 결혼의 희생양이 된 슬픈 운명의 연인을 일컫는 말을 오손공주(烏孫公主), 자손을 위하여 계획을 함 또는 그 계획을 일컫는 말을 위자손계(爲子孫計), 대대의 자손에게 전하여 줌을 일컫는 말을 전지자손(傳之子孫), 화가 자손에게 미침을 일컫는 말을 앙급자손(殃及子孫), 차윤의 반딧불과 손강의 눈雪이라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서의 면학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차형손설(車螢孫雪), 착하고 옳은 일을 하면 자손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을 선선급손(善善及孫) 등에 쓰인다.
▶️ 皓(흴 호)는 형성문자로 浩(호), 澔(호), 灏(호), 灝(호), 皜(호)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흰 백(白; 희다, 밝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告(고)로 이루어졌다. 태양의 빛나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희다의 뜻이 있다. 나중에 날 일(日; 해)部를 白(흰백변)으로 고쳐 썼다. 그래서 皓(호)는 ①희다 ②깨끗하다 ③밝다 ④환하다 ⑤비추다 ⑥넓다 ⑦하늘 ⑧늙은이 ⑨백발(白髮) 노인(老人)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흴 고(暠), 흰 백(白)이다. 용례로는 희고 깨끗한 이를 호치(皓齒), 깨끗하고 흼 또는 빛나고 맑음을 호호(皓皓), 붉은 입술과 흰 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를 이르는 말을 호치단순(皓齒丹脣), 붉은 입술과 흰 이라는 뜻으로 매우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단순호치(丹唇皓齒), 붉은 입술과 흰 이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자의 얼굴을 이르는 말을 주순호치(朱脣皓齒), 맑은 눈동자와 흰 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명모호치(明眸皓齒)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