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 제국의 전시하 정책에 따라 선전방송으로 이용되었으며 1942년부터는 한국어 방송이 중단되고 영어식 용어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1942년 말에는 단파 방송 밀청 사건이 일어나 경성방송국 관계자와 관련자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45년에 해방 이후 9월부터 한국방송공사라고 개칭되었으며, 9월 15일에 한국인 직원들이 방송국을 인수하였으나 다음날 미군정청이 경성중앙방송국을 접수하였다. 이후 조선방송협회에 의해 운영되었다.
첫댓글 KBS (경성방송)의 역사
- 특히 조선총독부는 2중방송 실시와 더불어 방송을 통한 조선인 회유에 주력하면서 방송내용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총독부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방송을 본격적인 선전선동매체로 활용했다. 그동안 조선인 직원들에 의해 우리 민요와 동요, 국악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등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통제가 심했다.
KBS (경성방송)의 역사 2
-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본 제국의 전시하 정책에 따라 선전방송으로 이용되었으며 1942년부터는 한국어 방송이 중단되고 영어식 용어 사용이 금지되었으며 1942년 말에는 단파 방송 밀청 사건이 일어나 경성방송국 관계자와 관련자들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45년에 해방 이후 9월부터 한국방송공사라고 개칭되었으며, 9월 15일에 한국인 직원들이 방송국을 인수하였으나 다음날 미군정청이 경성중앙방송국을 접수하였다. 이후 조선방송협회에 의해 운영되었다.
KBS (경성방송)의 역사 3
- 전쟁이 일어난 직후에는 완전히 전쟁수행을 위한 선전선동도구로서만 기능했다. 이런 점에서 경성방송국이 한국 방송사의 서막을 올린 것은 사실이나 우리의 방송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