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회

<TABLE id=tblContent cellSpacing=0 cellPadding=0 width=740 border=0> <TBODY> <TR> <TD> * 이 글은 파주출판도시 마을신문에 연재 중인 이건복 사장님의 글을 옮겨온 것입니다. * 인사회의 연원에 대해서 중요한 지점을 밝혀주는 내용이라 인사회 카페에 옮겨왔습니다. * 원문의 위치  <A href="http://cafe.naver.com/bookcitynews.cafe">http://cafe.naver.com/bookcitynews.cafe</A>  </TD></TR></TBODY></TABLE>     인문사회과학출판사의 4인의 전사 (2)     이건복(동녘출판사 대표)     ------------ 30여년 세월을 출판에 몸담아 온 ‘동녘출판사’ 이건복 대표의 파란만장 출판 회고담을 들어본다. 맨바닥의 출판 초보자 시절, 1980~90년대 사회과학 출판의 중심, 그리고 출판도시의 성장을 최전선에서 지켜본 일들까지, 한 개인의 치열한 기록일 뿐 아니라 한국 출판의 격동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 ‘돌베개출판사’ 임 부장, 성명 임승남(林承男, 49년생). 전쟁고아. 법무부가 제공한 초․중․고․대학(?) 졸업 후 대학 동기생이었던 고려대 제적생 정진영(79년 광화문에 민중문화사라는 서점을 열어 출판문화운동의 최전선에 섰다)의 소개로 ‘대두’라는 출판사 영업부에 취직함으로써 출판계 입문.   1976년 가을이었다. 그는 자신의 출생지, 생년월일, 한자 이름도 모른다. 다만 전쟁 후 부친께서 돌아가셨다는 것, 누이(그때 나이로 5~6세 정도로 기억)가 있었다는 것, 자신이 임승남으로 불렸다는 것만 기억되어, 1949년쯤 서울에서 태어난 것 같고, 법무부대학 졸업(?) 날짜가 8월 8일이라 8월 8일생이라 하고, 임씨 중 흔한 林과 사내같이 크라는 의미로 承男을 이름으로 해서 1976년 겨울에 가호적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 현대사의 처절한 현장에서 부딪치고 깨지면서 살아남았다. 그의 말로는 수복 후 서울은 그야말로 양동의 양아치들이 상징하는 전쟁고아들 천지였다고 한다. 그들 가운데 지금까지 만나는 이가 10여 명 전후라 하니 도대체 이들 중에 몇 명이 살아남았는가?   그는 1977년 대두출판사에서 ‘평민사’로 옮긴다. 《인간시장》의 소설가 김홍신이 주간을, 현 국무총리 이해찬이 편집차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그는 영업차장을 맡았다. 나중에 돌베개출판사를 설립하게 되는 이해찬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중대한 기로가 되었다.   1979년 ‘과학과인간’이란 출판사에서 영업 일을 계속하던 임 부장은 그러나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노동현장이라고 생각, 영업부장직을 사퇴한다. 전태일 열사의 삶에서 받은 큰 감동이 그런 결심을 하게 했던 것이었다. 그 무렵 여전히 ‘평민사’에서 편집차장으로 근무하던 이해찬으로부터 출판사를 하려 하니 영업을 맡아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이 따로 있으나 몇 달 정도는 도와줄 수 있겠다며 ‘돌베개’ 영업부장을 맡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인생행로는 뜻밖의 사태로 인해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고 말았다. ‘돌베개’의 발행인이었던 이해찬이 5․18 이후 ‘법무부대학’으로 전학을 가버렸던 것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돌베개’를 인수해 사장을 맡게 된다.   그는 사회과학출판 영업자들 중 나이가 많은 편(대부분 이십대 중후반이었다)이었던 데다 인생의 곡절이 첩첩하고 또 매사에 언행이 일치하고 용감했다. 그의 언어는 거침이 없다. 비어, 속어, 육담, 보통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법무부 산하 초․중․고․대학 이야기는 우리뿐 아니라 모든 서점 종사자들에게 대단한 인기와 존경(!)을 받았다.   1980년대 뉴스를 기억해 보라. 민중, 민주, 항쟁, 노동, 자본, 이행, 논쟁, 해방, 마르크스 따위의 단어가 들어 있는 책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클로즈업될 때, 그 책을 낸 출판사 영업자들의 일상은 어땠겠는가? 출근할 때 대문을 빠끔히 열고 좌우 경계, 차 탈 때 주위 돌아보며 사주 경계, 사무실 입구에 혹시 이상한 차나 사람들 없는지 확인 필수(왜? 대개 집 앞이나 사무실 근처에서 연행해 갔으니까), 그것도 불안하면 주변에서 서성이다 사무실에 전화해서 ‘이상 무’ 확인한 다음 얼른 창고에 가서 압수당할 만한 ‘문제의 책들’을 다른 책들 속에 꽁꽁 숨겨놓고(일이 터지면 영락없이 관할 경찰서 대공과에서 출판사로 와서 창고를 뒤지기 일쑤였으니까) 재빨리 “영업 나갑니다” 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 사무실에 전화 받을 사람이나 있었느냐고? 그 당시 출판사 사회과학 편집자들은 대부분 법무부대학 졸업생이거나 청강생들이 많아서 간이 좀 컸다. 이러한 긴장, 불안, 초조, 자괴의 생활 속에서도 서점에 나가면 으레 소주잔을 가운데 놓고, 적을 때는 대여섯, 많을 때는 이삼십 명의 영업자들이 모였고, 술판 위로 임 부장은 예의 시끌벅적한 언어의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이렇게 모인 것이 ‘인문사회과학영업인협의회’의 시초였다.   한편 서점 주인들은 어땠을까? 아마 우리나 그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우린 팔아야 하는 반면, 그들은 내용도 모른 채 잔뜩 겁을 집어먹고 다시는 그 무서운 책들 팔지 않겠노라 마음을 다잡으며 출근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어디 인문사회과학출판사와의 거래를 TV 뉴스 따위가 중단시킬 수는 없는 노릇. 자기 출판사의 책이 TV 뉴스에 출연하기 전에 모든 사회과학출판사 영업자들은 서점에서 자기 책들이 중단 없이 또 당당히 전시되어 판매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했다. 몰래 숨겨놓고 파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것은 우리 방식이 아니었다. 뒷구멍이 아니라 ‘맞짱’ 뜨며 파는 것이 우리 원칙이었다.    그들을 ‘의식화’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 거래의 제1조는 인간적인 접근이었다. 그 위에 약간의 훈수와 약간의 배려와 약간의 부추김이 보태졌다. 우리나 당신네나 열심히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냐, ‘짭새’들이 책 빼앗아 가면 저항하지 말고 가져가게 해라, 압수해 간 부수만큼 다시 공급해주겠다, 우리가 어떻게 그 수많은 책들을 일일이 다 읽어 보느냐, 그냥 출판사에서 보내니까 팔았을 뿐이라고 해라, 걱정하지 마라 등등.   1970~80년대, 수많은 책들이 TV 전파를 타고 판매금지 당했지만, 서점 쪽에서 경찰에 신고하거나 고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다 진보세력이었을까? 그 사람, 임 부장.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다 힘들어 할 때, 어려움에 처했을 때, 좌절할 때, 그가 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힘이었다. 특히 나에게 그랬다. 모든 사회과학출판사 영업자들의 한결같은 맏형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여전히 그때의 자신의 역할을 부인하고 있다. 임 부장, 아니 우리들의 형, 승남이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1980년대 중반 대학가에서 인문사회과학출판사들이 전시 판매를 한 적이 있었다. 총학생회의 협조 하에 이루어졌던 이 행사에는 항상 대학본부와 대공 관계자들과의 전쟁이 부록처럼 따라다녔다. 매번 승남이 형이 진두지휘를 했던 것 같다. 참여 출판사 수 확대, 대학가 주변 서점들의 반발 무마, ‘짭새’들의 동향 파악, 판매수익금 분배 등 할 일이 간단치 않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학교 안으로 책을 들여갈 루트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정문에는 대공과나 정보과 형사가 거의 상주하다시피 했으므로 버스나 소형 트럭으로는 정문에서 검문검색을 통과하기가 어려웠고 다른 교통수단은 마땅치 않았다. 우리는 별의별 수단을 다 개발해 썼다. 후문 이용, 학생 편 이용, 연세대의 경우 병원을 경유해서 공급, 고급 승용차 이용, 학생들을 동원해 숫자로 밀어붙이기….   이 일뿐 아니라 우리 네 사람은 대개 각자의 역할이 있었던 것 같다. 전체 지휘는 승남이 형, 우리에게 우호적인 출판사와 대형서점과의 관계는 변 부장이, 현장 지휘는 조 부장이, 그리고 출판계와 서점계에 우리의 정당성을 알리는 일은 주로 영업부장이자 사장이었던 내가 맡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 출판 탄압이 가중됨에 따라 문화전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매달 몇 명씩 출판인들이 구속되고, 수십 종의 책들이 판금도서로 분류되어 그 목록이 서점에 통보되었다. 전국 서점에서 매일 일어나는 압수․수색이 반복되었다. 그들 나름의 전쟁을 치르는 서점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것도 우리 몫이었다. 서울지역의 경우 우리는 정말이지 거의 매일 서점에 들렀다. 100여 권의 책을 양손에 나눠 들고 서점을 들어갈 때, 나는 한 번도 그들로부터 “이 부장, 겁나서 동녘 책 못 팔겠어”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들은 다만 “이 부장, 좀 편한 책 만들지 왜 이렇게 복잡하게 팔아” “관악서 대공과에서 또 오래” 등의 말을 인사처럼 했다. 그러면 나는 “X같은 XX, 할 일 없이 왜 그래. 무조건 모르고 팔았으니 다시는 안 팔겠다고 쓰고 오세요”라고 대답했다. 그러면 서점 주인은 “관악서에 내가 쓴 각서가 수십 장이야” 그러면서 ‘짭새’들이 압수해가면서 남긴 인수증을 슬며시 내밀었다. “좀 많지?” “아휴, 무슨 말씀을. 바로 보내드릴게요. 미안합니다.” “나중에 소주나 한 잔 합시다.” “좋죠.”   그런 와중에도 시간은 흘렀고, 민주화에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 임 부장, 아니 ‘돌베개’ 임승남 사장은 출판사의 경영권을 당시 편집주간이었던 한철희 현 ‘돌베개’ 사장에게 넘기게 된다. 전쟁고아 출신으로 이리저리 살다가 출판사에 들어와 결혼해서 마누라도 얻고 애도 셋씩이나 생겼고 집도 한 채 장만했으니 이제 나는 내 할 일 하겠노라, 그러니 내 퇴직금이나 받고 그만둘 테니 자네가 출판사 잘 꾸려 나가라, 자네가 맡으면 돌베개가 더 잘 되리라 믿는다, 이것이 그의 퇴임의 변이었다. 퇴임식을 하는 그의 표정에서 나는 홀가분한 행복감을 읽었다. 미련 따윈 한 톨도 없었다.   임 부장에 대한 글을 쓰려는데, 그와 함께한 20여 년의 세월이 머쓱하게도 이상하게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의 기억은 내 머리가 아니라 몸에 새겨진 탓인지도 모르겠다. (다음호에 3회가 연재됩니다. 이 이야기는 4회에 걸쳐 나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