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각시 오는 저녁 / 박주병
별이 총총한 밤 마당에는 모깃불이 메케하고, 한쪽에선 머슴이 멍석을 겯고, 멍석에서 아이는 드러누워 별을 보고, 늙수그레한 여인과 과년 찬 딸은 다리미질을 하고, 봉두난발 영감태기의 곰방대 담배통에는 깜박이는 불빛이 숨이 차고, 콩밭도 다 매고 두벌논도 다 매고, 농사 잘돼야 가을에 딸 시집보낼 텐데, 늙다리 암소는 주저앉아 이쪽을 보고 푸우 한숨을 내쉬고, 반딧불이는 길을 잃고 허둥지둥 헤매고, 박각시는 바가지꽃 집 앞에서 붕붕거린다.
박각시 오는 그 저녁에 다섯 살 내 누이 ‘부뜰이’가 눈을 감았다.
진즉에 박부터 두었어야 하는 건데 뒤늦게야 박을 두고 싶어도 공간이 없다. 오두막이며 헛간채 초가지붕이나 돼지우리 지붕이나 밭둑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시멘트 바닥인 옥상에다 심을 건가. 담장이 있다 하나 만원이다. 사십 년이 다 된 구기자 덩굴이야 늙을 대로 늙어서 국량이 넓다 하나 틈이 없으니 마음뿐이겠고, 서로 다투듯 얽히고설키어 담장을 빙 둘러 휘감은 다래며 머루며 으름 같은 것들은 아직 젊어서 남 생각 할 줄 모른다. 바닥에 그냥 두자니 감나무 소나무 매화나무 같은 것들이, 모란이며 해당화며 은목서 같은 것들이, 바위며 돌덩이 같은 것들이 빽빽한 가운데 심을 틈도 없거니와 심을 수 있다 한들 종일 가야 햇볕인들 잠깐이라도 쏘일 수가 있겠는가. 난초처럼 방안에 들인다든가 국화처럼 분에 담는다든가 연꽃처럼 옹기 같은 데 둘 수도 없고 찔레처럼 아무 틈서리에나 처박아 둘 수도 없다.
박을 어디에 둘까. 내 마음 가장자리에 한두 송이 바가지꽃을 피우련다. 박각시 붕붕거리면 아, 이 마음 어이할거나. “오빠! 큰 오빠! 비단구두 사러 언제 서울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