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자공이 공자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가난하여도 결코 아첨함이 없으며
부자이면서도 교만함이 없으면 어떠합니까?”
이 말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가난하여도 매사 즐겁게 생각하고,
부자이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다.”
자공이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자이면서도 교만함이 없는 정도면 괜찮지 않은가 물었는데요.
공자는
그 정도를 넘어서
가난하여도 즐겁게 생각하고,
부유하면서 예를 즐길 줄 아는 단계에 이르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습니다.
즉, 공자는
삶에 있어 희락의 높은 수준까지 올라가야 함을 자공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런 희락주의를 외친 분이 존 파이퍼 목사님입니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 ‘히도니즘’(희락주의)를 배우고요. 그렇게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본분임을 외친 분입니다. 하나님을 그저 두려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기뻐하고, 열망하라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전도서에 전도자는
시험 삼아 자신을 즐겁게 하고,
낙도 누려 보았았는데요. 인생을 살아보니 이런 삶도 허무한 면이 있음을 말하였습니다.
전도자는
인생에 있어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삶을 인생들이 살아야 할지 알려 주고 싶었을까요?
전도자는 인생을 살면서,
어떤 노력을 하며, 어떤 진리를 깨달았나요?
#전도서 2장 1-11절, #김영한, #아침개인묵상, #성경 하브루타 코칭
<즐거움도 헛됨>
1.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2.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3.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또 내가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그들의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내 어리석음을 꼭 붙잡아 둘까 하여
1) 전도자는 마음에 무엇을 깨달았다고 하였나요? (1절)
- 전도자는 시험 삼아 자신을 즐겁게 하고, 낙을 누리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허망함을 알았습니다.
2) 나 자신은 무엇을 즐겁게 누렸나요? 그러나 어떤 면에서 그 즐기는 것에 허망함이 있다고 느꼈나요?
3) 전도자는 웃음과 희락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였나요? (2절)
- 전도자는 웃음에 관하여 미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희락에 대하여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4) 전도자는 왜 웃음과 희락에 대해서까지 미친 것이고,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였을까요?
- 전도자는 허무주의에 빠진 듯 살아갔습니다.
허무주의(Nihilism)는 어떤 사상인가요?
철학자 F. H. 야코비(1743~1819)가 ‘허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야코비가 칸트에 관해 아주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칸트 이전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저수지로 흘러 들어갔고, 칸트 이후의 모든 철학은 칸트라는 저수지에서 흘러나왔다.”
야코비가 말한 허무주의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에 주로 사용되었는데요. ‘허무주의’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여기며, 탐미주의(Aestheticism)를 배격하는 철학 사조였습니다.
허무주의는 기존 고전 전통 철학 체계와 심지어 사회 과학도 완전히 거부했습니다. 이런 허무주의는 기존 사회질서를 인정하지 않았고, 가정, 공동체, 나라에 대한 권위를 거부하였습니다.
허무주의는 공산주의 시초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진화론의 대부 찰스 다윈, 인간의 심리조차도 자연법칙에 지배된다는 종합 사회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 등의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결국, 허무주의자들은 영혼과 육체, 물질적 실체와 영혼의 결합을 부정하였습니다.
즉, 세상 권위뿐만 아니라 영적인 세계와 신적 주권에 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이런 해체주의 혹 허무주의의 대가가 누구일까요?
바로, 니체입니다. 니체는 기존 사상, 특히 중세 이후 강하게 세상에 영향을 준 기독교 사상을 배격하였습니다. 신을 부인하고 ‘위버멘쉬’, 초인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요. 결국 해체주의에서 허무주의로 빠졌습니다. 자기 자신도 정신병에 걸려서 병원서 죽게 되었습니다.
5) 전도자는 마음에 깊이 무엇을 생각하였나요? (3절)
- 전도자는 어떻게 해야 자신의 마음을 지혜로 다스릴지 고민했습니다.
- 술로 자신의 육신을 즐겁게 할지도 생각했습니다.
- 어떻게 하여야 천하의 인생들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떤 것이 선한 일인지를 알아볼 때까지 전도자는 자신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꼭 붙잡고 있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4.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5.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6.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7.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8.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1) 전도자는 “인생에 선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어떤 시도를 해 보았나요? (4-8절)
- 전도자는 자신의 사업을 크게 하였습니다.
- 자신을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었습니다(4절).
-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습니다(5절).
- 자신을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습니다(6절).
-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자신을 위하여 종들을 낳기도 하였고요. 자신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습니다(7절).
-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자신을 위하여 쌓고,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습니다(8절).
2) 나 자신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이 선하고,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해 봤나요?
9.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10.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
11.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1) 전도자는 인생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면서 어떤 자신을 발견하였나요? (9절)
- 전도자 자신은 창성하고,
- 자신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사람보다 더 창성하고, 지혜도 여전함을 알았습니다.
2) 전도자는 어떤 삶을 경험해 보려고 하였나요? (10절)
- 무엇이든지 자신의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아니하였고,
- 무엇이든지 자신의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막지 아니하였습니다.
- 그런 수고 가운데 자신의 마음이 기뻐하였고, 모든 수고를 통해 얻은 몫이 있었습니다.
3) 전도자는 수고를 통해, 무엇을 얻었다고 하였나요? (10절)
- 수고 가운데 자신의 마음이 기뻤고, 모든 수고를 통해 ‘몫’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G. S. 오그덴은 이 부분을 자신의 주석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전도자는 ‘보상’이라는 단어나 ‘몫’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 혜택을 설명한다. 이것은 전도자(코헬레트)의 어휘에서 중요한 용어이며, 우리는 2:21에 ‘수고(toil)’라는 단어와 함께 사용되는 것을 발견한다(3:22; 5:18; 9:6, 9; 11:2).
이 문맥은 그가 ‘몫’ 또는 ‘보상’이라는 단어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준다. 그것은 성취의 기쁨과 사물 자체에 대한 즐거움을 설명한다.
그러나 ‘몫’이 그가 찾고 있던 것에 대한 완전한 해답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단지 이용 가능한 것의 일부일 뿐이다.”
(오그덴, G. S., & 조그보, L. (1998). 전도서 핸드북, 뉴욕 : 연합 성경 협회)
...
He uses the word reward or “portion” to describe that benefit. This is an important term in Qoheleth’s vocabulary, and we find it used alongside the word “toil” in 2:21; 3:22; 5:18; 9:6, 9; and 11:2.
This context shows what he means by this word “portion” or “reward”: it describes the joy of achieving, as well as his pleasure in the things themselves.
However, it is clear that “portion” is not the complete answer to what he was seeking; it is only a part of what might be available.
Ogden, G. S., & Zogbo, L. (1998). A handbook on Ecclesiastes (p. 62). New York: United Bible Societies.
4) 그러나 전도자가 참 많은 경험을 통해 수고도 하고, 자신의 못을 얻었지만, 어떤 느낌이었나요? (11절)
- 전도자가 많은 것을 실제로 경험해 본 뒤, 생각해 봤을 때, 자신의 손으로 한 모든 일, 수고, 그리고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5) 나 자신은 언제 인생의 허무를 맛보았나요? 그 뒤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6) 최근 하나님이 해 아래서 나 자신이 어떤 삶을 더 살도록 이끄시는 것 같은가요?
7) 오늘 말씀 중 받은 도전 혹 은혜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