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1월 24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연무장길 일대가 인파로 북적이고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33년째 살고 있는 신모(63)씨는 서울숲이 개장하던 그날을 아직까지 기억한다.
경북 문경 출생인 신씨는 1970년에 일가족과 함께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상경했다. 이후 1978년 강서구 화곡동으로 옮긴 뒤, 1994년 성동구 성수동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 동서를 오가던 신씨 일가가 성수동에 뿌리 내린 까닭은 그 당시만 해도 서울 시내에서 집값이 그나마 저렴했기 때문.
서울숲 자리에 있던 뚝섬경마장은 신씨가 성수동으로 옮기기 전인 1989년 경기도 과천으로 이전한 상태였지만, 경찰기마대가 남아 있던 동네에서는 여전히 말똥냄새가 자욱했다.
하지만 말똥냄새 풍기던 동네는 현재 서울에서 가장 핫플레이스가 됐다. 2005년 옛 뚝섬경마장 자리에 서울숲이 조성되면서다.
2005년 6월 서울숲 개장식에 참석한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10~20년 후 여러분의 아들딸이 성장해 어른이 될 때 즈음 이곳은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숲이 될 것”이라며 “런던에 하이드파크가 있고, 뉴욕에 센트럴파크가 있다면 이제 우리 서울에는 그에 못지않은 서울숲이 있다는 것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가운데)이 2005년 6월 서울숲 개장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
5조원의 재정수입 포기한 이명박 대통령
사실 이명박 전 시장의 전임자였던 고건은 뚝섬경마장을 주거용지와 상업용지로 매각하려 했다. 초대 민선 서울시장인 조순 때 뚝섬경마장 자리에 돔구장을 세우려고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부지를 매각해 1998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의 여파로 어려웠던 서울시 재정을 보충하려고 한 것. 뚝섬경마장이 있던 땅을 주거나 상업용지로 매각하면 무려 5조원의 재정수입이 기대됐다.
하지만 현대건설 사장 시절 아파트 사업에 부정적이던 정주영 회장을 설득해 서울숲 한강 건너편 압구정동 아파트 신화를 만들었던 이명박 전 시장은 5조원을 매각수익을 과감히 포기했다. 대신 2000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경주마들이 떠난 뚝섬경마장 부지에 35만평(약 116만㎡) 규모의 숲을 조성하기로 했다.
여기에 이 전 시장의 후임자인 오세훈 시장이 2008년 성수동 등 낙후된 서울 시내 ‘준(準)공업지역’ 부흥을 목표로 ‘준공업지역 공동주택 관련 조례’를 개정한 것은 성수동의 모습을 완전히 뒤바꿨다.
준공업지역에 가해지던 각종 철지난 규제들이 완화되자 서울숲 주위로는 갤러리아포레(2011년)를 시작으로 트리마제(2017년), 아크로서울포레스트(2020년) 등 고급 주상복합들이 차례로 들어섰다.
과거 성동구 마장동에서 도축한 소 가죽을 수제화 등으로 가공하던 피혁공장과 자동차 수리공장들이 즐비했던 성수동에서 볼 수 없었던 건물들이었다.
2012년 한강 하저(河底)터널이 뚫리면서 분당선 서울숲역도 들어섰다. 강남은 물론 경기 남부에서부터 젊은 인구들이 지하철을 타고 성수동으로 유입됐다. 젊은 인구가 유입되자 과거 정미소로 쓰였던 붉은 벽돌의 대림창고를 시작으로 철공소·고물상 등으로 쓰이던 대형 창고들도 커피향과 빵냄새가 풍기는 베이커리 카페 등으로 속속 탈바꿈했다.
그 결과 현재 서울숲 일대 주상복합들의 시가총액을 합산하면 10조원이 훌쩍 넘는다. 5조원의 부지 매각수익을 포기하고, 옛 뚝섬경마장 자리에 나무와 풀을 심은 것이 더 큰 결과로 돌아온 것이다.
성수동 일대에만 본인을 비롯해 모친과 여동생 등 일가족 5가구가 뿌리를 내린 신씨는 “말똥냄새가 풍기던 경마장에서 주상복합과 카페로 둘러싼 공원으로 바뀐 서울숲을 볼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라며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최대한 더 아껴서 이 동네 땅을 조금이라도 더 사둘 걸 그랬다”고 웃으며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서울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제4지구를 방문해 성수동 일대의 재개발 구역을 둘러보고 있다.
서울시장 선거 관전포인트 된 성수동
성수동이 다가오는 6월 서울시장 선거의 화두로 떠오른 것은 정원오가 민주당의 유력후보로 떠오르면서다. 그는 지난해 11월 ‘성수동’이란 제목의 책까지 펴내면서 자신의 치적을 홍보했다.
그러자 성수동 출신으로 강북구 삼양동 일대 판잣집을 전전하다가 사상 최초 5선(選) 서울시장 도전이 유력한 오세훈 시장 측에서도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사실 성수동 개발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성수동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탈바꿈한 것은 이명박 전 시장 때 서울숲을 조성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 터닝포인트였다고 입을 모은다. 이어 후임자인 오세훈 시장이 서울숲 주변 ‘준공업지역 규제’를 완화하고, 2009년 ‘한강르네상스 계획’ 발표와 함께 성수동 한강변 일대를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한 것은 오늘날 ‘한국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는 성수동을 만든 촉매제가 됐다.
하지만 서울숲 조성 9년 뒤인 2014년 성동구청장이 된 정원오는 ‘성수동’이란 제목의 책까지 내면서 성수동을 오롯이 자신의 치적으로 돌리는 모양새다. 실제로 정원오는 ‘성수동’에서 “2014년부터 성동구청장으로 일하면서 성수동 도시재생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고 소개하면서 책 서문에서 “사람들은 성동구청이 원대한 청사진과 치밀한 계획을 토대로 인프라를 조성하고 혁신을 추진할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한 결과 성수동이 발전했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책 서문에서 성수동과 별반 관계없는 김대중의 언급은 나왔지만, 이명박 전 시장이나 오세훈 시장의 이름 석 자는 일언반구 언급되지 않았다.
사실 오 시장은 그동안 성수동에 대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정원오가 성수동 개발을 치적으로 내세우자 논쟁에 뛰어든 모양새다. 자연히 서울숲 조성 당시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서울시 관계자들 역시 내색은 못하지만 황당하고 서운하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
도리어 일부 관계자들은 정원오와 같은 민주당 소속이었던 박원순 때 성수동 개발이 10년 이상 표류하지 않았더라면 성수동이 지금보다도 더 주목받는 동네가 됐을 것이란 아쉬움도 강하게 드러낸다.
이들이 가장 아쉬워하는 대목은 박원순 때인 2014년 9월, 서울숲 옆 삼표레미콘 부지에 들어오려던 110층 높이의 현대차그룹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유치 계획이 무산된 것이다.
재개발·재건축이란 단어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던 시민단체 출신의 박원순은 2013년 4월 ‘한강변 관리방향 및 현안사업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50층 이상은 도심, 부도심만”이란 조건을 달았다. 당시만 해도 광화문·여의도·강남과 같은 서울 3대 도심(CBD)도 아니고, 청량리·왕십리·신촌·잠실과 같은 부도심도 아닌 준공업지역에 불과하던 성수동으로서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이어 박원순은 2014년 4월에는 ‘2030 서울플랜’을 확정하면서 한강변 층고를 최고 ‘35층’으로 묶는 대못을 박기에 이른다. 중랑천과 한강이 합수하는 자리에 있는 성수동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결국 현대제철(옛 인천제철) 소유였던 삼표레미콘 부지에 높이 540m의 초고층 빌딩을 세워 현대차그룹의 글로벌 본부로 삼으려던 정몽구 당시 현대차그룹 회장(현 명예회장)은 2014년 9월 서울숲 현대차 GBC 포기를 전격 선언한다.
고장난 중고차나 수리하는 준공업지대에서 글로벌 자동차 기업본부를 유치한 땅으로 거듭날 기회였으나 천금 같은 기회가 날아간 것이다.
현대차 본사가 서울숲 옆으로 이전하면 인근 성동구 왕십리 뉴타운은 물론 행당동, 옥수동, 금호동과 인근 광진구 구의동 아파트촌까지 고소득 대기업 직장인 가족들의 연쇄이주에 따른 낙수효과가 기대됐지만 모조리 물거품이 됐다. 정원오가 2014년 7월 성동구청장에 당선된지 바로 2달 뒤에 일어났던 일이다.
강남·북 격차 키운 현대차 GBC 무산
당시 삼표레미콘 부지 사업을 담당했던 조남준 전 서울시 도시공간본부장 역시 그 결정에 깊은 아쉬움을 드러냈다.
조 전 본부장은 “오세훈 시장 재임 당시 현대차 입주는 이미 상당 기간 진전되어 공공기여까지 이야기가 오갔다”며 “그런데 박원순 당선 이후 시행된 층고 제한에 더해, 결정적으로 서울시 측에서 기존 110층 1개 동을 50층 이하 2~3동으로 변경하자고 제안하면서 입주 무산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박원순 때 서울숲 삼표레미콘 부지의 현대차 GBC 사업이 무산된 것이 서울의 강남·북 격차를 더욱 키웠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실제로 서울숲 현대차 GBC 사업이 무산된 당일인 2014년 9월 18일, 현대차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옛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매입하면서 서울숲 삼표레미콘 부지를 대체할 새로운 현대차 GBC 부지로 낙점 발표했다.
강남구 삼성동 일대는 서울 3대 도심(광화문·여의도·강남)에 해당하는 관계로 50층 이상의 빌딩을 올리는 데 법적 문제가 없었다. 여기에 현대차는 105층 높이 초고층 빌딩을 짓기로 했다가 현재 서울시와 협의를 거쳐 49층 높이의 빌딩 3동을 세우는 공사를 한창 진행 중이다.
매머드급 공사로 인한 막대한 돈이 강남 일대에 풀리면서 인근 삼성동, 대치동, 청담동(이상 강남구), 잠실동(송파구)은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2020년 6월 일찍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됐다. 모두 ‘옥탑방 시장’을 자처했던 박원순의 재직 때 있었던 일이다.
한편 2014년 현대차의 사업포기로 한동안 표류하던 서울숲 삼표레미콘 부지는 오세훈 시장이 2021년 4월 복귀한 이후 79층 높이의 초고층 복합개발을 다시 추진 중이다.
2022년 3월에는 삼표레미콘 측과 협의를 거쳐 한때 동양 최대 레미콘 공장으로 강 건너 압구정동 아파트촌 조성 때 콘크리트를 공급했던 레미콘 공장도 철거했다. 결과적으로 2014년 현대차 GBC 개발 무산 때부터 시작해 초고층 개발을 위해 10년 이상의 시간만 허공에 날린 셈이다.
그 사이 부지 개발주체 역시 현대차에서 삼표산업으로 바뀌었다.
사실 삼표레미콘 부지는 삼표산업의 전신인 강원산업이 중랑천변 공유수면을 조성해 만든 땅이다. 하지만 한때 재계 30위권에 속했던 강원산업은 IMF 외환위기 와중에 경영난을 겪으면서 해당 부지를 사돈기업인 인천제철(현 현대제철)에 넘겼다. 하지만 초고층 개발을 앞두고 현대제철이 땅의 원주인이었던 삼표산업 측에 부지를 재매각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의 안주인인 정지선 여사는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의 장녀다.
삼표산업 측은 최고 79층 높이의 초고층 빌딩 2동을 올린다는 계획이지만, 현대차그룹 본사 이전과 같은 파급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30년째 성수동에 살고 있는 신씨는 “15년 전 즈음부터 100층이 넘는 마천루가 입주한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는데 무산됐다”며 “돌고 돌아 지금 비슷한 개발을 다시 한다니, 그 사이 시간만 날린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영동대교 북단에서 내려다본 성수전략정비구역 항공사진.
성수전략정비구역, 15년 넘게 슬럼화
박원순의 ‘한강변 35층’ 규제는 한강변의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 역시 차일피일 지연시켰다.
행정구역상 성수동은 서울숲이 있는 성수1가1동을 비롯해, 지하철 2호선 뚝섬역이 있는 성수1가2동, 뚝도청춘시장이 있는 성수2가1동, 지하철 2호선 성수역이 있는 성수2가3동 등 4개의 큰 구역을 통칭한다. 서울숲과 고급 주상복합이 들어선 성수1가1동 일대와 달리 ‘전략정비구역’으로 묶인 성수2가1동과 성수1가1동 일부는 동네 성격이 판이하다.
재개발을 앞둔 뚝도청춘시장 주변은 구획정리조차 제대로 안 된 미로 같은 골목길에 1·2층 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서울 도심에서는 이미 사라진 분홍색 네온사인을 켠 ‘맥양집(맥주·양주집)’도 즐비하다.
사람들이 몰리는 저녁 시간대면 보도와 차도 구분조차 안 된 거리에 취객들이 토해낸 쓰레기들도 널부러진다. 성동구청이 곳곳에 붙여둔 ‘성동에 살아요’란 구정 슬로건이 무색할 정도다.
앞서 이 일대는 2009년 오세훈 시장이 발표한 ‘한강르네상스 계획’과 함께 ‘전략정비구역’으로 지정됐다. 2011년에는 최고 50층 높이의 총 8247가구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는 계획도 발표됐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 역시 박원순 때 ‘한강변 35층’ 층고 규제에 막혀 직격탄을 맞았다.
서울숲 트리마제 인근에 있는 한 공인중개사는 “박원순 때 한강변 35층 기준 탓에 사업이 사실상 멈췄다”며 “오세훈 시장 재취임 이후 정비구역 변경을 재추진하면서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성수전략정비구역 역시 2021년 오세훈 시장 복귀와 함께 박원순의 유산인 ‘한강변 35층’ 규제를 철폐하면서 되살아날 움직임을 보인다. 2024년 11월에는 정비계획 변경과 함께 최고 70층 높이의 9428가구 아파트 단지를 짓는다는 계획도 발표됐다.
서울 도심과 지척인 성수동 일대에 1만가구 가까운 신축 아파트가 공급되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서울 주택난 해소에도 상당한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성수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1지구는 4월, 4지구는 3월 중으로 시공사 선정이 완료된다”며 “뚝도청춘시장 주변인 2·3지구도 조합장 선거가 끝나는 7월 이후 시공사 선정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는 6월 서울시장 선거는 성수동 일대에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 또다시 시장의 취향에 따라 정책이 180도 바뀔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그나마 박원순과 같은 ‘도시재생’에 방점을 찍어온 정원오 역시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정원오는 책 ‘성수동’에서 “성수전략정비구역은 물리적 조건과 사회적 환경을 감안할 때 자생적 변화보다는 계획된 개입이 필요한 지역”이라며 “도시의 전체 균형과 공공성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언급했다.
남진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성수동의 변화는 서울숲 같은 공공 인프라가 만든 기폭점 위에 강남·한강 인접성, 민간의 산업유산 활용, 젊은 층의 활동 흐름이 겹치며 커진 결과”라며 “서울시와 민간, 시대 변화가 맞물려 만들어진 변화로 봐야지, 특정 개인의 작품으로 환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