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
현판 글씨
석야 신웅순
종합문예지『춘하추동』1주년 기념에 초대를 받았다. 춘하추동 창간 때에도 가지 못했고 이 번에도 못 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일주년 기념에 무언가로든 벗이 되어 주고 싶었다.
님은 5,6년 전인가 시화전 관계로 하동에서 대전까지 내 서재 매월헌을 찾은 적이 있었다. 하동에서 대전까지는 천리길이다. 일 때문에야 왔겠지만 운전하며 몇 시간을 온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라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그 때 시화전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었다.
춘하추동 사무실에 편액이 있느냐고 물었다. 없다고 한다. 격을 갖춘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글씨를 받아야지 서각을 해야하지 현판식 해야지 비용이 만만치가 않다.
현판 휘호 선물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았다. 집에는 문패를 단다. 터를 잡았으면 토지신에게 신고를 해야 한다. 이것이 현판을 다는 작업이다. 종이때기로 써서 걸 수는 없지 않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꽃」일부
내용이 중하지 형식이 뭐 필요하냐 할지 모른다. 내용 없는 형식이 없고 형식 없는 내용이 없다. 형식은 그릇이요 내용은 그릇 속에 들어갈 내용물이다.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몸짓이지만 이름을 불러주면 내게로 와 꽃이 되는 것이다. 집에 간판을 달아야 집은 비로소 의미를 갖게 된다. 그래야 땅에 기운이 돌고 피가 돈다. 비로소 그 땅은 주소를 갖게 된다.
서각을 할 줄 알면야 금상첨화겠지만 내겐 전혀 문외한이다. 한 며칠 ‘춘하추동’ 글씨 구상을 했다. 청주에 있는 장○진 님께 서각과 표구를 부탁했다. 님은 나의 지음인 서각가이다. 나는 마음으로 밖에는, 형편상 서각까지는 해 줄 수 없었다.
서각하는데 여러 공정을 거친다고 한다. 나무를 구입하고 대패질하고, 사포지로 문지르고, 태우고, 긁고, 파고, 글씨 색깔도 넣고, 이런 고급스러운 세세한 과정을 거쳐야한단다. 장○진 서예가는 의장이 상당히 독특하고 고급스럽다.
손가락이 아픈데도 명절 내내 판각을 했다고 한다. 고맙다. 님은 오랫동안 내 글씨를 도맡아 서각 해주는 나의 지음 서예가이다. 예술하는 사람이 예술을 알아주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글씨와 서각은 나와 장○진 그리고 발행인까지의 합작품이다. 행운이 되었으면 좋겠다. 토지신도 따뜻한 옷 입혀주고 다정한 이름 불러주었으니 많이 고마워할 것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도 계절마다 기분 좋아할 것 같다. 햇빛ㆍ달빛, 눈ㆍ비도 편액을 매번 들여다보며 갈 것 같다. 정성을 다했으니 이렇게 자연이 춘하추동을 돌보아 주지 않겠는가.
그런 마음을 담아 휘호했다.
- 2024,2,13. 석야 신웅순의 서재, 여여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