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내리려는 추위
올해 이월은 소한 대한보다 더한 이례적 추위가 두 차례 닥쳤다. 공교롭게도 입춘과 우수 절기에 맞춰 북극발 시베리아 한기가 한반도에 항아리처럼 눌러 일주일씩 머문 형국이다. 이월이 하순에 접어든 금요일이다. 이번 주말로 추위가 물러가면 유예된 봄기운이 번지지 않을까 싶다. 어제 이어 아침 식후 이른 시간에 장소를 달리한 도서관을 찾아 길을 나서 창원역 앞으로 나갔다.
근교 농촌으로 가는 1번 마을버스를 타니 일터로 가는 낯익은 분들을 만났다. 기사를 포함해 몇 승객은 내 인상착의는 쉽게 눈에 띄어 매일 출근하는 이가 아님을 짐작될 테다. 어떤 때는 연달아 보이다가 한동안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시 나타나니, 저 사람은 과연 무슨 일을 하는가 궁금해하지도 싶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자연학교로 다니는 학생임을 드러낼 필요성은 느끼지 않는다.
용강고개를 넘으니 철길과 고속도로와 나란한 국도를 달려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났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들녘을 달려 일반산업단지를 거쳐 가술 거리였다. 작년 봄부터 연말까지 평일은 어김없이 오후 반나절을 머물던 곳이다. 그보다 무척 이른 시간대에 들녘이나 강둑을 먼저 걷고 마을도서관에서 책을 펼쳐 봤다. 올해도 아동안전지킴이 역할 수행은 이어진다.
내게 주어질 봉사활동은 삼월에 시작되어도 이번 겨울에도 몇 차례 가술의 마을도서관을 찾는다. 지난주 토요일 열람실을 찾았더니 마치 수제 레몬청 만들기 문화강좌를 열어 나도 참여해 보람된 시간을 가졌다. 그날 못다 읽은 책은 대출해 와 반납처리하고 신간 코너에서 읽을 만한 책을 골랐다. 이병률의 시집과 처음 접한 캐나다 명사가 남긴 자기계발서를 뽑아 열람석을 차지했다.
방송국에서 활동하는 주목 받는 시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신간이었다. 시인은 프롤로그에서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고 눈이 내리는 곳으로 따나 와락 스치듯 떠오른 것을 시집 제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아마 거기는 북해도였을 테고 본문에는 그곳 외 북유럽이나 몽골 여행 견문에서 스친 감성도 시로 엮었다. 중반 어디쯤 시구에서 ‘해화하다’ 시어를 찾아낸 성과를 거두었다.
시인은 ‘어질어질’ 시편에서 눈은 녹아 벚꽃이 피고 벚꽃이 녹아 강물로 흐른다면서 종국에는 당신에게 잘하고 싶다고 했다. 독자는 자연계에서 인간계로 건너온 ‘당신’을 다시 객체화 시켜 자연으로 돌려보내고 싶었다. ‘꼬리’라는 시에서는 네발 달린 짐승에게 꼬리가 달린 이유를 ‘좋은 풍경 앞에서 다리 네 개를 잠시 접고 꼬리를 깔고 앉아 풍경이라도 바라볼’ 속셈이라 유추했다.
따뜻한 감성의 온기를 느끼는 시집을 두어 시간 걸쳐 읽고 ‘밥 프록터 부의 원리’를 펼쳤다. 캐나다인 저자는 고졸 학력으로 세계적 명사 반열에 올린 ‘끌어당김의 법칙’을 창안한 저술가이고 연설가였다. 그는 성공한 사람들은 패배나 실패마저 장애가 아닌 기회로 삼는다면서, 부의 원리를 익히는 첫 번째 단계는 자신에게 삶을 더 낫게 바꿀 힘과 권리가 있음을 이해함이라고 했다.
점심시간 되어 프록터의 책을 접고 열람실을 나와 거리에서 추어탕으로 한 끼 때웠다. 이후 3번 마을버스로 우암 들녘을 지나 유등에 내려 강둑을 따라 걸었다. 번지는 오후 햇살에 바람이 세지 않아 그다지 추운 줄 몰랐다. 맞은편에 한 농부가 일광욕시키려는 거구의 싸움소 고삐를 잡고 다가왔다. 술뫼 농막에서 전원생활을 누리는 지인을 뵈어 한담을 나누고 한림정역으로 갔다.
창원중앙역에 이르러 창원대학 캠퍼스로 내려 공학관을 지났다. 볕 바른 남향 조경수로 자라는 매실나무는 자잘한 꽃망울이 부풀어 사춘기 소년의 여드름처럼 발그레 솟았다. 홍매와 함께 청매도 망울이 도톰하고 산수유도 연방 꽃잎 꽃술을 터뜨려 펼칠 낌새였다. 높이 자란 목련은 솜털로 감싼 꽃눈이 먹물을 함초롬히 머금은 붓을 보는 듯했다. 꽃잎을 펼치기 전 지금은 목필화였다. 25.02.21